아무 저항없이 현실에 부지런히 적응해나간다는 비합리성이 개인들에게는 이성보다도 더 이성적으로 보인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중에서
만약 한 대규모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후생을 최대화 하고자 합리적으로 노력한다면,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지 않거나, 공동이익이나 집단이익의 달성과는 구분되는 별도의 유인들이 집단 구성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제공되지 않는 한, 그들은 공동이익이나 집단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멘슈어 올슨, "집단행동의 논리 - 공공재와 집단이론" 중에서
그 누구에게 묻던지 같은 대답이 나올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나친 경쟁 체제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가?", "그렇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현재 우리나라의 경쟁 체제에 문제 의식을 자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교육은 "대입"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대입"이라는 목표는 "취직",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속적 성공"을 향해 달려간다. 수도권 유수 대학의 정원은 전체 수업생의 10% 남짓이고, 유수 대기업 공채 경쟁률은 평균 57:1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중 임원까지 가는 비율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TV 속에는 수 많은 "Winner"들이 나와서 자신이 얼마나 코피터지게 노력해서 이 자리에 올라왔는지를 강변하고, 청자들에게도 바로 자신이 했던 그러한 노력을 요구한다. 데카르트적 인식론 처럼이나, 바로 "너"도 "나"처럼 코피터지게 한다면, "나"와 같은 "Winner"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내가 만약 친구나 동생들의 어려움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난 그들에게 그 "Winner"들이 했던 말과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내가 "Winner"여서는 아니다. 나 또한 그 "Winner"들을 동경하기 때문일 것이고, 그 "Winner"들이 말하는 가치가 우리가 사는 사회의 근본적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고 자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친구, 동생들에게 한 "Winner" 정치인으로 부터 직접 들은 조언을 말해줄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졌다면, 넌 "잔인"하게 노력해라."라고 말이다. 나는 그러한 조언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어떠한 성취를 얻기위해서는 "잔인"하게 노력해야하고,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싶다면, 바로 그 시스템에서 "Winner"가 되야하는 법이다. 나는 언제나 친구나 동생들에게 보다 잔인하게 노력할 것을 이야기했고,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강요하고 있다. 교육체제라는 것이 엿같긴 하지만, 어쨌든 내 동생, 내 친구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보다 전반적인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이야기는 아예 거꾸로 갈 것이다. 대입지상주의적인 교육, 세속적 성공 지향적인 시스템, 지나치게 성과 경쟁을 강요하는 문화, 빚을 지기를 요구하는 목돈사회. 전부 다 1년 365일 끊임없이 씹어대도 끝이 나지 않을 주제다. 사회적 성공이 요구하는 기준들은 점차 높아진다. 그것을 달성하려면, 일단 시작 조건이 훌륭하거나, "잔인한" 노력이 필요하다. 둘 중 하나라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도태된다. 흔히 말해, 88만원 세대, 100만원 짜리 인생이 될 뿐이다. 경제신문들은 각자의 자아성취를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세계 경제 위기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게 엿같긴하지만, 어쨌든 모두가 그저 그렇게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질서를 나 자신 부터 완전히 거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지방대학을 다녀봐야 받는 건 멸시 뿐이고, 싸구려 경차를 타고 다녀 봐야 얻는 건 경멸 뿐이다. 나는 그런 시선들을 전부 견뎌낼 생각이 없다. 사람의 가치는 성품에서 나온다고 우길테지만, 나는 내 성품을 K5로 보일 생각이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 듯 싶다. 모두가 문제를 자각한다고 개인들의 행동이 변화하는 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의 경쟁체제가 바보같은 에너지 낭비 혹은 우리 자신을 괴롭히는 갈고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갈고리를 떼낼 생각은 별로 없다. 그 갈고리라는 게 정말 굉장히 힘든 존재지만, 죽을 정도는 아닌가 보다. 게다가 행여 "Winner"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