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7일 목요일

여기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칼 마르크스



다.. 심심해서 그래.. 심심하니까..


  유병언 씨의 시신이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유병언 씨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시신이 맞다, 아니다를 놓고 논쟁을 벌였고, 시신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백골화 될 리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유병언 씨의 죽음이 타살인가, 자살인가를 놓고도 갑론을박이 치열했다. 혹자는 시신이 유병언 씨의 것으로 조작된 것이며, 이를 통해 여론의 시선을 돌린 후, 박근혜 정부의 도움을 받아 유병언 씨는 해외로 이미 도피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후 등장한 유병언 씨의 아들 유대균 씨가 검거 될 당시에는, 유대균 씨가 치킨을 어떤 목소리로 시켰는지가 보도되었고, 그를 따르는 "미모의 수행원"이 검거 당시 엘리베이터에서 왜 미소지었는지가 이슈가 되었다.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국회에서는 날선 공방이 계속되더니 7일 오후,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세월호 관련자들이 대학 입학에 혜택을 받는다거나, 특검을 어떻게 구성할 것이라는 것이나,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어떻게 보상을 해줄 것인지가 주요 이슈들이었다. 

  윤 일병이 군대에서 가혹행위 끝에 죽음을 맞이했다. 희생자가 죽음을 맞이한 건 3개월에서 4개월 전이지만, 어느 새 갑자기 사건의 잔혹성이 이슈를 장악하고 있고,  "참으면 윤일병, 못참으면 임병장"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군대에 대한 깊은 불신이 여기저기 솟구치는 중이다. 야당은 이에 대해 김관진 현 안보실장이자, 전 국방부 장관을 해임하라고 외치고 있는 중이다. 





 토마스 홉스는 자신은 말로 인간을 기만한다면, 당신들은 행동으로 기만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가 무리하게 운항하게 된 원인과 구조활동에서 발생했던 여러가지 혼합된 문제들의 해결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유병언 씨를 법정에 올려봤자 기껏해야 주주들에 대한 횡령, 배임이 주된 처벌이 될 뿐, 세월호의 침몰과 수장된 안타까운 영혼들에 대한 죗값을 직접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아무도 관심없다. 애초에 유병언 씨 혼자 스포트라이트에 선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문제는 시스템에 있으며, 시스템에는 수 많은 복합적인 우연적 인과관계들이 겹쳐 있다는 것들도 물론 관심 밖이다. 유병언 씨도 시신으로 발견된 이 마당에 앞으로 또다시 발생하게 될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할 조치들이 어떤 것이 있을지는 여전히 안중에도 없다. 애초에 대화거리도 되지 않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빨리 발을 뺐고, 유병언 씨는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제 10년 쯤 후에 다가올 다음 사건을 기다릴 뿐이다. 

  세월호 사건 관련자들의 대다수인 단원고 학생들에게 대학 입학 혜택을 준다고 한다. 구조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그런 무리수로 씻어보려고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특검을 해서 뭘 어떻게 조지겠다는 건지 야당의 속내도 잘 모르겠다. 새누리당의 말마따나 야당의 공세는 진정으로 희생자와 유가족, 사건의 당사자들을 위한 조치가 아닌, 그저 "정치적인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법안 이란 건 사건을 진지하고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책임자를 식별해내고, 보상을 규정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벌써부터 입학 특례니 하며, 법안에 집착하는 걸 보니, 그저 희생자를 등에 업고, 박근혜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 안보인다. 사건에서 있었던 정부의 삽질을 꼬리 떼내고 싶어하는 여당과, 정의의 대리인인양 무리수를 펼치는 야당의 모습만 남아 보인다. 

  유병언 씨와 관련된 음모론들만 펼치던 사람들은 이제 윤 일병을 구타한 선임병들이 얼마나 개새끼인지 이야기하느라 바빠보인다. 뭐 그들이 개새끼가 아니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어린 젊은이들의 숫기가 포텐이 터진 모양이다. 그러나 오늘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잔혹하게 때려죽였는지가 핵심이다. 얼마나 잔혹하게 괴롭혔는지, 얼마나 안타깝게 죽었는지가 핵심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이 희생당한 것처럼 슬퍼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이 딱 한 가지 있다면, 윤 일병이 그들의 자식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야당은 역시나 오늘도 김관진 장관을 비롯한 관련 군 간부들을 모두 매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당은 자신들의 세력에 있는 사람을 비호하기에 바쁘다. 사람들은 여전히 어떠한 배경과 상황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에는 관심없다. 그들이 그 정도까지 윤 일병을 패는 일이 어쩌다 "정상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는지는 관심없다. 그저 군대는 지옥이고, 가해자들은 지옥에 있는 개새끼들이어서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 뿐이다. 그저 그들에게 이런 일은 드라마고 영화일 뿐이다. 그냥 가해자 비스무리한 새끼들은 다 싸이코패스니까 사회에서 매장되고 감옥에서 썩어야 할 뿐이다.  
  "희생자보다 가해자가 훨씬 많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 혹은 당신의 가족이 군대에서 희생자가 되기보단 가해자가 될 확률이 말도 안될 정도로 훨씬 크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 마치 학교 폭력 가해자의 부모들이 우리 XX는 절대 그럴리가 없다고 믿는 것 처럼 말이다. 어차피 상관없다. 윤 일병 때린 애들은 내가 모르는 애들이니까 욕해도 된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성씨를 가진 또다른 윤 일병을 기다릴 뿐이다. 




"다.. 심심해서 그래.. 심심하니까.."
"내가 이러고 있는 것도.. 다 심심해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