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부끄럽지 않은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시인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어느 연구재단에서 사무를 맡을 때 였다. 역삼동의 어느 회장님께 소포를 하나 전해드려야 하는 일이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전철을 타고 다녀오려던 찰나에, 오찬 모임이 있으시던 이사장님께서 자신이 가는 길에 함께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어려운 옆좌석에 앉아 가게 되었다. 어렸던 내게 이사장님은 까마득한 어른이었다. 침묵 속에 대교를 건너고, 시내를 지났다. 문득 이사장님은 내게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좋아하는 일이라... 그 따위게 있을 리가 없다. 행여 있다고 해도 그 까마득함은 나의 입이 열리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기약없는 대답을 전해드렸다. 7, 80년대 라는 고된 시기를 치열함 하나로 버티며, 지금의 영광을 이끌어 낸 이사장님께, 대학 후배이자, 자신이 힘들게 이룩한 시대를 이어받아야 할 후 세대의 젊은이에게, 패기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 따위 대답은, 깊은 분노와 허무함을 가져왔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하신 분들이 의래 그렇듯, 이사장님은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시지 않았다. 아니, 그저 관심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사장님은 조용히 내게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이끄는 지 그리고 이끌어 왔는지, 결국 왜 "그 것"을 찾는 것이 그리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지를 차분히 일러주셨다. 
  이사장님은 오찬 장소가 있는 남산의 어느 호텔에서 내리셨고, 인상이 매우 좋으셨던 기사님은 내게 이사장님이 앉으셨던 자리로 옮겨서 앉아보라고 하셨다. 마치 젊은 사장님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껴보라며 농담을 건네셨다. 기사님은 편안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품위가 느껴지는 분이셨다. 기사님과 밝게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대교를 건너고 시내를 지났다. 문득 기사님도 내게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좋아하는 일이라... 그 따위게 있을 리가 없다. "아직 찾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 이사장님의 조찬 모임 부터 챙기고, 디너 파티라도 있는 날이면 숨 궃은 지하에서 홀로운 고독을 버티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치 않으셨던 기사님께는 정말이지 기운 빠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기사님은 밝게 웃는 얼굴로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찾아보라고 격려해주셨다. 기사님은 아까 전에 이사장님께서 하신 말씀들에 깊히 공감하고, 그런 면에서 자신은 이사장님을 존경한다고 말하셨다. '이런 저런 일도 해봤다. 사업 실패도 해봤고, 지금은 기사일을 하면서도 방송대를 통해 경영학을 공부한다. 자신이 인생의 모든 면을 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도 자신의 생각 또한 이사장님과 같다.' 기사님은 성공은 "좋아하는 것"의 가까이에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게도 "인상이 강해서 꼭 좋아하는 것을 잘 찾아서 성공할 것"이라고 덕담까지 해주셨다.

  아이러니하다. 조금은 속된 관점일지 모르지만, 두 분은 계급적 사회의 윗 부분과 아랫 부분을 각각 대표하시는 분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이야기"를 내게 했다. 그들이 말하는 "성공"이 단지 세속적 의미에서의 성공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기사님의 말 할수 없는 품격만 떠올려봐도 그렇다.「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공할 때까지 시도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공하고 난 이후에도 시도한다. 그것이 그들이 숭고함을 주는 이유다.」그들이 공통적으로 내게 말했던 이야기다. 그 날의 경험은 내게 큰 존경과 희망을 주었다. 그들 각각의 몫인 존경 그리고 내 자신의 몫인 희망. 

  때로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 있으면 가끔 위의 경험이 떠오른다. 같잖은 군상들이 내뱉는 역겨움. 희망과 존경이 사라진 소시민적인 상면. 오로지 남의 덕을 보고자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두리번 거리는 듯한 천박함. 그들의 관심사는 그저 전세 값이 얼마인지, "자기 집"을 얻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청약주택적금을 퍼부었는지, 어쭙잖은 국산 차를 몇 개월 할부, 어떤 옵션으로 샀는지, 누구 자식 새끼가 제일 등수가 높은지, 누구 자식 새끼가 공무원이 먼저 되는지,  누구 결혼식에 누가 돈을 많이 냈는지, 누가 가장 알랑거리는 지 따위다. 사실 삶에 있어서 그것들 만큼이나 중요한 이야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정말 필요한 이야기들이다. 그저 정말 살기만을 위해서 말이다. 
  특별히 대단하게 성공한 사람도 없다. 특별히 대단하게 망한 사람도 없다. 그저 시기심 가득찬 그저그런 인간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연회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누구도 내게 "좋아하는 일"이 무언지 묻지 않는다. 그들이 내게 해주는 이야기란, 그저 누구나 알 만한 회사에, 빨리 취직해서, 꼬박꼬박 월급을 모아서, 도무지 만기란 것이 보이지도 않는 할부와 대출로 집과 차를 사서, 새끼들 낳고 적당히 살아가라는 것 뿐이다. 그들은 그것이 성공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들은 철저히 두려워하면서 산다. 그들은 자잘한 실패마저 철저히 두려워하며 산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가 존경을 망치고, 스스로가 희망을 없앤다. 그리고서는 이 어두움이 전부 여당과 상류층들이 망친 잘못된 한국 사회 구조 때문이라며 탓한다. 그들 스스로에게 자신들의 모습은 지극히 성실하고 정의로운 모습이다. 실상은 그저 처절하리 만큼 초라한 소시민들의 모습 뿐인데 말이다. 




  
부끄럽지 않은가. 나나 당신이나 모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