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어렸을 적에는 맞춰주기에 바빴다. 누군가들을 만나면, 그리고 그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녀들에게 접근해 맞춰주기에 바빴다. 시간도 맞췄고, 취향도 맞췄고, 가치관도 맞췄다. 더 이상 맞춰줄 것이 없다면, 그 누군가는 귀찮은 짐이 될뿐이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자, 이제 그 누군가들은 내게 맞춰주기 시작했다. 시간도 내게 맞추고, 취향도 내게 맞추었으며, 가치관도 내게 맞춰주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내게 그들은 불편했고, 의심스러웠다.
누구와의 대화도 불편하고 어색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자꾸만 내가 상대에 맞춰주고 있는 건지, 아니면 상대가 내게 맞춰주고 있는 건지, 에 대한 판단만 가리려고 할 뿐이다. 특히나 요새는 그 누구에게도 맞춰주려 들지 않는다는 건 덤이다.
이전에는 서로 맞추어나가는 것이 규범적으로 당연한 명제라고 생각했다. 뭐 사실 아직도 그리 생각하기는 한다. 다만 가끔은, 맞춰주고, 맞춰지는 상황을 떠나서, 거짓말처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고, 친밀감이 형성되고, 함께 비를 맞을 수 있는, 그런 딱 맞는 사람을 만나면 보다 진솔해지고 즐거워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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