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오후였다. 전 날 밤을 지새운 나는 그 피곤함을 참지 못하고, 집에 들어오자 마자 나른한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단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오그라들어 자는 내게 친구가 덮어준 담요도 소용없었다. 윙~ 윙~ 거리는 소리는 내 귓속으로 파고 들었고, 나는 몽롱한 채로 억지로 일어나야만 했다. 매미가 백 마리는 모여서 웅얼거리는 것 같았다. 어디서 공사를 하는 건가 싶어 찌들어있는 몸을 이끌고 친구와 밖으로 나갔다.
7살, 8살 쯤 되보이는 아이들이 낡은 RC카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내 모든 일상 의 분노가 전부 윙윙거리는 RC카로 향했다. 친구가 권한 담배를 피워 물며, "저 멍청한 RC카가 내 근처로만 다가오면 밟아버리겠다.", "이 빌어먹을 동네에 전부 불을 질러버릴거다.", "못배워쳐먹은 애새끼들을 전부 발로 까버리던가 해야겠다."라며, 온 갖 분노를 친구에게 쏟아냈다. 아이들을 노려보며 RC카가 가까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저 멍청한 RC카가 내 근처로만 오면 밟아버릴거라고, 밟아 부숴버리겠다고 끊임없이 다짐했다.
마침내 아이들이 RC카를 내가 있는 쪽으로 몰기 시작했다. 나는 RC카의 윙윙거리는 소리에 취해 분노의 끝을 보기 시작했다. 그 때 였다. RC카 리모컨을 들고 있던 꼬마아이가 갑자기 나를 보며 크게 외쳤다. "많이 시끄러우시죠? 죄송해요. 금방 들어갈거에요."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수치심이 몰려왔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급하게 담배불을 밟아 끄고, 꽁초를 호주머니에 챙겼다. 꼬마아이와 눈이 마주치기가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화끈거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꼬마아이들은 지나가면서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외쳤다. "빌어먹을..." 녀석들은 나를 다시 한 번 사살했다. 나와 친구는 부끄러움이 범벅되어있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미친 듯이 끅끅대었다. 아이의 부모님께 엎드려 절하면서 사죄를 빌고 싶었다. 녀석의 대학등록금이라도 내주려면 부지런히 돈 벌어야겠다고 친구와 이야기했다.
저 멀리 창문에서 녀석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얼른 들어와 밥먹어" 라고 외치고, 그 꼬마아이는 대답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른 아이들도 흩어졌다. 내가 얼마나 최악인 인간인지 녀석이 한 방에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꼬마 녀석 덕분에 친구와 나는 찌들어있는 불평, 불만을 잠시 거둬 둔 채 밝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돈 벌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꼬마녀석의 등록금을 내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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