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7일 월요일

Wimbledon




  황제는 결국 자신의 19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이자, 8번째 윔블던 우승을 해냈다. 이로서 그는 역대 통산 윔블던 우승 횟수에서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를 제치고 단독 1위에 올랐으며, 올해에만 두 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했다. 


이제 그는 윔블던의 The One이 되었다.
출처:wimbledon.com


  결승 상대였던 마린 칠리치Marin Cilic는 역시나 황제의 신기록 상대가 되기에는 턱없이 허접한 상대에 불과했다. 빅서버들을 연이어 격파하며, 빅서버 넘버원의 명목으로 페더러에 도전한 칠리치는 1세트 게임스코어 2:1p 상황에서 찾아온 자신의 브레이크 찬스를 놓친 이후 눈물을 질질 짜내면서 간신히 경기를 끝내는 수준에 그쳤다.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앤디 로딕Andy Roddick,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 그리고 앤디 머레이Andy Murray와 같은 강력한 라이벌들을 상대로 윔블던 신기록을 세워왔던 황제에게 자신의 신기록 작성을 위한 상대로서 칠리치는 정말 수준 떨어지는 상대였다. 칠리치가 부상을 호소하며 질질짜고 있을 때, 그 앞을 쿨하게 지나던 페더러는 아마 우승이 눈앞에 왔다는 안도보다는, 몰입감이 떨어지는 데서 오는 일종의 허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대회 나름 좋았다고 평가받았던 칠리치의 백핸드는 페더러의 백핸드에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출처:wimbledon.com


  칠리치는 무려 그랜드슬램 우승자이다. 이미 그는 2014 US오픈 SF에서 황제를 3:0으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 니시코리 케이Kei Nishikori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모두가 황제의 우승을 예상했지만, 칠리치의 그런 과거에 기대어 혹시나 칠리치의 우승 혹은 선전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칠리치는 황제의 역사적인 순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바보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브레이크 기회를 만들어 내기까지 그는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표정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브레이크 기회를 허무하게 잃은 후, 그는 갑자기 초조해보였다. 빅4를 상대하는 선수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서브게임을 허무하게 내줬고, 그대로 경기 전체를 내줬다. 아무리 그래도 그랜드슬램 결승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그가 경기를 기권하지 않고 마무리했다는 점이었다.


브레이크 찬스 한번 놓치더니 바짝 쫄아버린 칠리치 
출처:wimbledon.com



  평소 같으면 투혼이라고 치켜세웠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빅서버에 의한 나달의 4라운드 탈락과 그 빅서버들에 의한 바보같은 경기들에 화가 나있었고, 바로 그 빅서버들의 대표격으로 결승에 오른 칠리치였기에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이번 황제의 윔블던 결승은 엄청난 역사성을 지닌 경기다. 황제의 8번째 윔블던 우승은 나달 혹은 조코비치, 적어도 머레이는 상대로 했어야하는 경기이고, 2008년은 커녕 2012년 혹은 2014년 결승 수준은 보여주면서 페더러의 역사적인 기록으로 끝났어야 하는 경기이다. 그래서인지 브레이크 찬스 한 번 놓친 것에 멘탈과 피지컬이 한 방에 무너지는 빅서버 나부랭이의 질질짜는 투혼에 도무지 동정심이 생기지가 않았다. 


결승상대가 나달이었다면..
출처:dailytelegraph.co.uk


  만약 나달이 결승에 올라 페더러와 만났다면 얼마나 엄청났을지가 계속 뇌리에 남았다. 물론 나달이 이기기는 힘들겠지만, 윔블던에서 결승까지 올라온 나달의 페이스라면, 올시즌 초 호주오픈 결승을 훨씬 능가하는 명경기를 보여줬을 것이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과거의 재현일 것이며, 새로운 현재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멍청한 빅서버가 올라왔고, 그는 페더러가 몸도 제대로 풀리기 전에 무릎을 꿇었다. 영 찝찝한 결말이다 .
  어쨌건 페더러는 우승했다. 올시즌은 정말로 페더러와 나달의 부활이 눈에 띄는 시즌이다. 호주오픈 결승은 페더러와 나달의 맞대결이었고, 롤랑가로스는 나달의 10번째 우승, 윔블던은 페더러의 8번째 우승으로 끝났다. 이 기세라면 페더러는 US오픈 우승도 충분해 보인다. 노박 조코비치와 앤디 머레이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페더러와 나달을 막을 선수는 아무도 없어보인다. 마치 그들의 라이벌리가 한창이었던 10년 전을 보는 듯 하다. 클레이를 장악하며 페더러를 견제하는 나달과, 클레이를 제외한 나머지를 지배하며 1위자리를 굳건히 하는 페더러.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페더러가 아웃도어 하드에서 나달을 압도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오랜만에 빅4. 머레이가 1위인건 조금 어색함.
출처:atpworldtour.com



 이번 우승으로 페더러는 오랜만에 랭킹 3위로 올랐다. 이로서 빅4는 오랜만에 랭킹 1~4위를 채웠다. 머레이와 나달이 각각 1위와 2위를 유지했고, 조코비치는 4위를 유지했다. 페더러가 인터뷰에서 빅4를 위협하는 유일한 빅4 이외의 선수라고 칭한 스탄 더 맨은 5위에 올랐다. 두 단계 떨어졌지만, 그에게 딱 맞는 자리다. 
  앞으로 있을 마스터즈 1000 시리즈인 로저스컵과 신시내티에서는 조코비치와 머레이가 각각 1000 포인트와 600포인트를 잃을 예정이라, 지난해 불참으로 잃을 포인트가 없는 나달과 페더러로서는 랭킹을 다시 과거로 돌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페더러가 올 초 선샤인 더블과 같이 두 대회 모두 우승한다면 어렵지 않게 1위에 컴백할 것이고, 나달이 두 대회 중 하나만이라도 우승에 가깝게 선전한다면 나달이 1위를 차지할 것이다. 현재 1위 머레이와 2위 나달의 포인트차가 300포인트에 불과해, 지금 분위기라면 나달이 어렵지 않게 1위를 탈환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머레이는 작년 하반기 각성 덕분에 하반기에 잃을 포인트가 많다. 조코비치도 은근 로저스컵이나 US오픈 등 하반기에 따놓은 포인트가 있어, 본인의 말대로 오래 쉰다면 랭킹은 쭉쭉 떨어질 것이다. 
  랭킹과 별개로 올 시즌에 따낸 포인트만 계산하는 Race to London 랭킹을 보면 현재 라파엘 나달이 7095점, 로저 페더러가 6545점으로 1, 2위를 달리고 있다. 3위인 도미닉 티엠Dominic Thiem과 4위 스탄 바브린카Stan Wawrinka가 각각 3345점과 3150점에 불과하고, 조코비치와 머레이는 각각 2585점, 2290점에 그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나달과 페더러가 올시즌을 얼마나 함께 독주했는가를 알 수 있다. 



10년 전 처럼 다시 둘이서 헤쳐먹고 있는 페더러와 나달
출처:sportinglife.com



  현재까지 치뤄진 세 개의 그랜드슬램의 결승 6개의 자리 중 페더러와 나달이 4개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페더러는 우승 2회, 나달은 우승 1회, 준우승 1회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둘이 침체되어간다는 평가를 듣던 시절을 지배한 조코비치와 머레이는 올 시즌 단 한 번도 그랜드슬램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코비치는 아예 4강 진출도 한 번도 못했고, 머레이는 프랑스오픈에서만 4강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마스터즈 1000 기록을 보면 더욱 놀랍다. 현재까지 치뤄진 5개의 마스터즈 1000대회 중 신예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가 일종의 어부지리로 가져간 로마 마스터즈를 제외하면 페더러와 나달이 각각 두 개씩 가져갔다. 페더러가 가져간 마이애미 마스터즈 결승은 또다시 페더러와 나달의 대결이었다. 조코비치와 머레이는 조코비치가 로마 마스터즈 결승과 마드리드 4강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대회 초반에 탈락하기에 바빴다. 조코비치가 올 시즌 따낸 타이틀은 250 대회인 도하와 이스트본이 전부이고, 머레이는 500대회인 두바이 대회가 유일하다. 회복하지 못할 하락세라던 나달의 2015년 보다 더 못한 성적이다. 상위라운드에 못오르다 보니 조코비치와 머레이는 조코비치가 마드리드에서 나달을 만나 가볍게 털린 것을 제외하면 올시즌 페더러와 나달을 만나 겨룬 적도 없다.
   올 시즌 페더러를 가장 강력하게 위협했던 것은 호주오픈의 라파엘 나달Rafael Nadal과 마이애미의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밖에 없었다. 나달에게는 페더러를 제외하면 딱히 위협적이었던 선수가 없었다. 페더러는 나달의 올시즌 7패 중 3패를 안긴 선수다. (나머지는 브리즈번 밀로시 라오니치Milos Raonic, 아카풀코 샘 퀘리Sam Querrey, 로마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 윔블던 쥘 뮐러Gilles Muller) 올 시즌에는 정말 페더러나 나달이나 깜짝패를 제외하면 딱히 경계할 선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50대회 결승에서 맞붙은 뒤로 나란히 맛탱이 간 조코비치와 머레이
출처:eurosports.com



  페더러는 어차피 계속 잘할 것 같고, 나는 개인적으로 나달이 앞으로 남은 하드시즌을 어떻게 보낼지가 걱정이긴 하다. 나달은 항상 하반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코비치와 머레이가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을 보면 페더러와 나달이 다시금 1, 2위로 연말 랭킹을 마감할 것이라고 보는게 현실적이긴 하다. 만약 윔블던의 패배에서 크게 좌절하지 않았다면 나달은 북미에서도 꽤 성공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2013년 북미 시즌 정복도 나달이 윔블던에서 1라운드에서 탈락한 후에 이룬 성과가 아니었는가. 자신감만 다시 충분히 채운다면 나달이 페더러와 함께 US오픈 결승 무대에 처음으로 오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다시 페더러와 나달의 시대가 돌아왔다.



  






2017년 7월 현재까지 투어 대회 우승/준우승



※ Grand Slam

Austrailian Open(Hard) : Roger Federer / Rafael Nadal
French Open(Clay) : Rafael Nadal / Stanislas Wawrinka
Wimbledon(Grass) : Roger Federer / Marin Cilic



※ Masters 1000 Series 

Indian Wells(Hard) : Roger Federer / Stanislas Wawrinka
Miami(Hard) : Roger Federer / Rafael Nadal
Monte-Carlo(Clay) : Rafael Nadal / Albert Ramos-Vinolas
Madrid(Clay) : Rafael Nadal / Dominic Thiem
Rome(Clay) : Alexander Zverev / Novak Djokovic


※ 500 series

Rotterdam(Hard) : Jo-Wilfried Tsonga / David Goffin
Rio de Janeiro (Clay) : Dominic Thiem / Pablo Carreno Busta
Acapulco(Hard) : Sam Querrey / Rafael Nadal
Dubai(Hard) : Andy Murray / Fernando Verdasco 
Barcelona(Clay) Rafael Nadal / Dominic Thiem
Halle(Grass) : Roger Federer / Alexander Zverev
Queen's Club(Grass) : Feliciano Lopez / Marin Cilic


※ 250 series
Brisbane(Hard) : Grigor Dimitrov / Kei Nishikori
Chennai(Hard) : Robert Bautista Agut / Danill Medvedev
Doha(Hard) : Novak Djokovic / Andy Murray
Sydney(Hard) : Gilles Muller / Daniel Evans
Auckland(Hard) : Jack Sock / Joao Sousa
Montpellier(Hard) : Alexander Zverev / Richard Gasquet
Quito(Clay) : Victor Estrella Burgos / Paolo Lorenzi
Sofia(Hard) : Grigor Dimitrov / David Goffin
Buenos Aires(Clay) : Alexandr Dolgopolov / Kei Nishikori
Memphis(Hard) : Ryan Harrison / Nikoloz Basilashvili
Delray Beach(Hard) : Jack Sock / Milos Raonic
Marseille (Hard) : Jo-Wilfried Tsonga / Lucas Pouille
Sao Paulo(Clay) : Pablo Cuevas / Albert Ramos-Vinolas
Houston(Clay) : Steve Johnson / Tomaz Belluci
Marrakech(Clay) : Borna Coric / Philipp Kohlschreiber
Budapest(Clay) : Lucas Pouille / Aljaz Bedene
Estoril(Clay) : Pablo Carreno Busta / Gilles Muller
Istanbul(Clay) : Marin Cilic / Milos Raonic
Munich(Clay) : Alexander Zverev / Guido Pella
Geneva(Clay) : Stanislas Wawrinka / Micha Zverev
Lyon(Clay) : Jo wilfried Tsonga / Thomas Berdych
s-Hertogenbosch(Grass) : Gilles Muller / Ivo Karlovic
Stuttgart(Grass) : Lucas Pouille / Feliciano Lopez
Antalya(Grass) : Yuichi Sugita / Adrian Mannario
Eastbourne(Grass) : Novak Djokovic / Gael Monfils





2017년 7월 13일 목요일

Wimbledon Wimbledon




윔블던 4강 대진이 정해졌다. 


샘 퀘리Sam Querrey : 마린 칠리치Marin Cilic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 토마스 베르디흐Tomas Berdych


  1번 시드 드로에는 샘 퀘리가 8강에서 세계 랭킹 1위 앤디 머레이Andy Murray를 6-3, 4-6, 6-7(4), 6-1, 6-1로 이기고 생애 첫 그랜드슬램 4강에 진출했고, 4번 시드 드로는 4라운드에서 역대급 경기를 펼친 끝에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을 꺾은 쥘 뮬러Gilles Muller가 결국 마린 칠리치Marin Cilic에게 5세트 끝에 좌절하면서 칠리치가 4강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2번 시드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2010년 윔블던 파이널리스트 베르디흐에게 기권패하면서 베르디흐에게 4강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3번 시드 페더러는 당연한 듯 4강까지 순항했다. 페더러와 베르디흐는 지난해에도 4강 멤버였고, 퀘리와 칠리치는 윔블던 4강이 처음이다. 특히 퀘리는 아예 그랜드슬램 4강이 처음이다. 



1.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의 8th?


연습을 하는 건지, 대회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 페더러
출처:wimbledon.com


  페더러는 4강에 오르는 동안 단 한세트도 내주지 않았고, 한 번도 두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마치 지난 롤랑가로스의 나달처럼 윔블던의 페더러는 강력했다. 사실 2012년 우승 이후 2013년 이변의 2라운드 탈락을 제외하면 페더러가 윔블던에 나쁜 성적을 낸 적은 없다. 14, 15년에는 조코비치가 각성했던 시즌이고, 16년에는 8강 칠리치와의 경기가 장기전이 되면서 체력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 문제였지만, 그조차도 페더러는 4강까지 올랐다. 그 4강에서 풀세트 끝에 자신을 탈락시켰던 밀로스 라오니치Milos Raonic를 올해는 8강에서 만났지만, 이번에는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가뿐하게 승리했다. 
  페옹의 밥으로 유명한 베르디흐는 지난 호주오픈에서도 페더러에게 완벽하게 교육당한 바 있어서 4강 또한 페더러의 일방적인 경기가 될 듯하고, 결승에서 만나게 될 칠리치 혹은 퀘리도 이변이 없는 한 페더러의 8번째 윔블던 우승의 제물이 될 듯하다. 칠리치의 랠리 능력이 빛을 발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 페더러의 폼을 보았을 때는 칠리치가 포텐터진다해도 3:0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 페더러가 우승하게 된다면 올 시즌은 페더러-나달의 도미넌스가 수 년여 만에 컴백한 모양새가 된다. 호주오픈 결승은 맞대결이었고, 롤랑가로스는 나달이, 윔블던은 페더러가 지배한 꼴이기 때문이다. 



2. 머레이 & 조코비치
  
  나란히 8강에서 대회를 접은 두 선수는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며 탈락했다. 라파엘 나달이 4라운드에서 탈락하면서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조금 더 유지하게 된 머레이는 8강에서 샘 퀘리의 이변에 휘말리며 탈락했다. 그러나 머레이의 탈락은 조금 특별했다. 머레이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는 대회 초반부터 어딘가 불편해보이는 기색을 계속 보여왔다. 1라운드 시작 때부터 언론이 머레이에게 부상을 당한게 아니냐고 계속 물을 정도의 그는 부상 루머에 시달렸다. 본인은 아니라고 부인해왔지만, 8강 경기에서 그는 부상이 맞다고 관중들을 확신시켜주었다. 


부상을 숨길 수가 없는 머레이
출처: wimbledon.com



  골반 쪽 부상이라고 했다. 경기내내 그는 허리 아래 쪽을 손으로 붙잡는 모습을 보였다. 서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경기를 기권하지 않았다. 무려 승리해낼 생각도 있었던 듯 했다. 하지만 머레이는 1세트를 내줬고, 경기를 일찍 끝내는 데 실패했다. 4세트부터는 거의 환자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레이는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내며 경기를 끝까지 마무리했다. 자신의 조국에서 열리는 대회였기에 쉽게 물러설 수 없었던 듯 했다. 그는 정말 박수를 받을 만 했다. 보도들 또한 퀘리의 기적적인 승리보다 머레이의 투혼이 주 내용으로 다뤄지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반면 선수들이 상금때문에 1라운드에 출전해 대충 뛰고 기권한다고 씹어대던 조코비치는 베르디흐와의 경기에서 팔꿈치 부상을 호소하며 2세트 세 번째 게임에 리타이어드를 선언했다. 1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내주고, 2세트 첫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당한 이후였다. 본인은 1년 반 동안 팔꿈치 부상에 시달려왔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투어 선수들에게 팔꿈치 부상이야 엄청 심각하거나, 경미하거나 둘 중 하나이기에 조코비치의 말은 순전히 변명에 불과해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는 1세트 내용을 감안하면 그냥 하다가 안 풀리니까 짜증나서 경기를 접은 것이 분명했다. 이미 그가 좋은 경기력은 아니었지만, 무실세트로 8강까지 올라왔기에 급작스러운 부상을 호소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었다. 순전히 양아치같은 짓거리였다. 
  조코비치가 연타로 그랜드슬램 4강 진출에 실패한 건 20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고, 2016 윔블던 3R - 2016 US오픈 F - 2017 호주오픈 2R - 2017 프랑스오픈 QF - 2017 윔블던 QF로 이어지는 허접한 성적은 2008년 즈음 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야 찾아볼 수 있는 성적이다. 조코비치가 그랜드슬램 우승 1회로 만년 3위에 머무르던 시절이다. 전 코치 보리스 베커Boris Becker는 훈련 부족을, 존 매캔로John McEnroe는 와이프와의 불화를 이유로 제기해 오고 있지만, 뭐가 문제든 조코비치의 멘탈에는 확실히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보인다. 양아치 짓으로 그랜드슬램을 마무리 할 정도의 멘탈이라면 조코비치의 하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아주 오랫동안 테니스를 쉬어야할 것 같다고 칭얼거렸다. 



베르디흐가 깔짝잘해서 밀리니까 바로 경기 접은 조코뱅크
출처: wimbledon.com



3. 윔블던 & 빅서버

  4강에 오른 네 명의 선수 모두 전부 서브를 주 무기로 쓰는 선수들이다. 8강, 16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빅 서버들이 선전했다. 윔블던에서 빅서버들이 선전하는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역시나 별로 재미가 없었다. 2미터에 육박하는 거인같은 선수들이 서브를 넣어, 들어가면 이기고 안들어가면 지는 경기가 반복된다. 페더러야 말할 것도 없고, 칠리치나 베르디흐도 클래식한 서브 앤 발리 선수라고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없는 건 사실이다. 재미가 없다기 보다 그냥 멋지지가 않다고 표현해야할까. 아마 나달이 탈락해서 그런 것 같다. 


짱친 존 이스너John Isner와 함께 미국 출신 거인 빅서버 듀오를 이루는 샘 퀘리Sam Querrey
출처:wimbledon.com



4.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역시나 우려했던대로 나달은 4라운드에서 포텐 터진 빅서버 쥘 뮐러를 만나 탈락했다. 5세트는 무려 13:15까지 가는 어마어마한 경기였다. 모두의 관심을 받은 경기였지만, 경기 자체는 나달이 경기한다는 걸 빼면 그냥 재미도 없고 바보같은 경기였다. 
  나달은 간만에 윔블던에서 상당히 강력한 경기력을 보였다. 서브도 좋았고, 백핸드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3라운드 카렌 카차노프Karen Khachanov라는 강력한 서브와 빠른 스트록을 치는 유망주를 상대로 2세트 중반부터 고전하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4라운드까지 이어졌다. 4라운드 후반에 끝까지 버티며 경기를 끌고 갔지만, 체력적으로 부침을 보이며 결국 경기를 내줬다. 나달이 체력이 딸리다니. 형용모순 같지만 그랬다. 



출처: wimbledon.com


  내가 보기에 나달의 패인은 간단하다. 자신감이다. 그는 윔블던 대회 전 잔디대회까지 불참했다. 언론이 설레발칠때마다, 그는 자신은 한 경기 한 경기 지켜볼 뿐이라고, 조심스러운 모습을 고수했다. 그가 겸손한게 아니라, 실제로 자신감의 문제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게 확실한 것 같다. 그는 2011년 이후로 4라운드를 통과한 적이 없다. 그 사실은 그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물병 세우는 데 집착하는 나달이 아닌가.)
  자신감이라는 패인과 경기의 결과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바로 "리턴"이다. 그가 클레이에서 선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리턴이다. 그러나 윔블던의 잔디에서 그는 리턴이 잘 되지 않았다. 서브가 강하지 않기에 그는 브레이크를 자주 내주는 선수고, 브레이크를 쉽게 따야하는 선수이다. 그러나 서브 리턴이 좋지 않으면, 브레이크따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가 스트록으로 점수따는 선수라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선전했던 1, 2, 3라운드 초반 나달은 적극적으로 베이스라인에 붙어서 리턴했다. 일단 리턴이 곧바로 넘어가고, 리턴이 날카롭게 들어가니 상대는 랠리를 하는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상대는 랠리 귀신 나달을 상대로 에러를 범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기세가 몰리면서 패한다. 그게 승리 공식이다. 나달이 이번 호주 오픈 8강에서 빅서버 넘버원 라오니치를 가뿐하게 3:0으로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출처: wimbledon.com


  하지만 카차노프와의 2세트부터 나달은 이상하게 점점 베이스라인 멀찍이 뒤로 물러서는 일이 잦았다. 아마 자신감이 떨어져서 그럴 것이다. 그러니 클레이에서처럼, 평소에 하던 것처럼, 뒤로 멀찍이 물러나서 일단 공을 넘기는 것에 집중했다. 베이스라인에서 뒤로 물러날수록 서브 리턴을 위해서는 더 빨라야하고, 더 많이 움직여야한다. 나달은 자신의 활동량이라면 그것을 잘해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20대 초반이 아니다.
  나달은 쉽게 지지 않는 선수이다. 그렇기에 뮐러와의 경기에서도 쉽게 지지 않았다. 나달이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낸 것도 나는 잔디코트, 서브앤발리어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에서 오는 것 같다고 보았다. 피지컬 적인 체력의 문제였다기 보다는 정신적으로 너무 큰 부담을 계속 받은 게 큰 탓이라는 것이다. 안그래도 비효율적으로 점수를 따는 나달이, 간신히 오랜 슬럼프에서 벗어나서, 아직은 불안한 멘탈로 맞이한 윔블던에서 맞이한 서브앤 발리어다. 나달이 힘들게 한 포인트 딸 때, 상대는 서브 한방 혹은 서브-리턴-발리 3구 플레이만에 점수를 딴다. 뛰어다녀야하는 건 나달 쪽이다. 상당히 멘탈적으로 피곤한 일이다. 나는 나달이 라켓을 안부순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코비치의 기권을 보니 더욱 그랬다. 



망할 빅서버.
출처: wimbledon.com



  비록 나달의 8강 진출은 실패했지만, 상황이 뭐 그렇게 나쁜 건 아닌 듯하다. 카를로스 모야 코치가 동행했다면, 상황이 좀더 나았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달은 정말 본인의 트라우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말 모든 것을 쥐어짜낸 끝에 탈락했다. 이제 잔디시즌은 끝났다. 다가올 북미하드코트 시즌에서 호주오픈과 인디언웰스, 마이애미 마스터즈 정도의 성적만 내준다면, 연말 랭킹 1위도 가능해 보인다. 페더러가 여전히 선전하겠지만, 북미시즌에서 좀만 선전해줫으면 좋겠다. 



나달은 패배했음에도 승자인 세레모니를 끝낸 뮐러를 기다렸다가 함께 퇴장했다. 
퇴장하면서 팬들에게 싸인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 짠한 순간이었다. 
출처: wimbled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