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3일 목요일

Wimbledon Wimbledon




윔블던 4강 대진이 정해졌다. 


샘 퀘리Sam Querrey : 마린 칠리치Marin Cilic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 토마스 베르디흐Tomas Berdych


  1번 시드 드로에는 샘 퀘리가 8강에서 세계 랭킹 1위 앤디 머레이Andy Murray를 6-3, 4-6, 6-7(4), 6-1, 6-1로 이기고 생애 첫 그랜드슬램 4강에 진출했고, 4번 시드 드로는 4라운드에서 역대급 경기를 펼친 끝에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을 꺾은 쥘 뮬러Gilles Muller가 결국 마린 칠리치Marin Cilic에게 5세트 끝에 좌절하면서 칠리치가 4강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2번 시드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2010년 윔블던 파이널리스트 베르디흐에게 기권패하면서 베르디흐에게 4강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3번 시드 페더러는 당연한 듯 4강까지 순항했다. 페더러와 베르디흐는 지난해에도 4강 멤버였고, 퀘리와 칠리치는 윔블던 4강이 처음이다. 특히 퀘리는 아예 그랜드슬램 4강이 처음이다. 



1.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의 8th?


연습을 하는 건지, 대회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 페더러
출처:wimbledon.com


  페더러는 4강에 오르는 동안 단 한세트도 내주지 않았고, 한 번도 두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마치 지난 롤랑가로스의 나달처럼 윔블던의 페더러는 강력했다. 사실 2012년 우승 이후 2013년 이변의 2라운드 탈락을 제외하면 페더러가 윔블던에 나쁜 성적을 낸 적은 없다. 14, 15년에는 조코비치가 각성했던 시즌이고, 16년에는 8강 칠리치와의 경기가 장기전이 되면서 체력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 문제였지만, 그조차도 페더러는 4강까지 올랐다. 그 4강에서 풀세트 끝에 자신을 탈락시켰던 밀로스 라오니치Milos Raonic를 올해는 8강에서 만났지만, 이번에는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가뿐하게 승리했다. 
  페옹의 밥으로 유명한 베르디흐는 지난 호주오픈에서도 페더러에게 완벽하게 교육당한 바 있어서 4강 또한 페더러의 일방적인 경기가 될 듯하고, 결승에서 만나게 될 칠리치 혹은 퀘리도 이변이 없는 한 페더러의 8번째 윔블던 우승의 제물이 될 듯하다. 칠리치의 랠리 능력이 빛을 발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 페더러의 폼을 보았을 때는 칠리치가 포텐터진다해도 3:0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 페더러가 우승하게 된다면 올 시즌은 페더러-나달의 도미넌스가 수 년여 만에 컴백한 모양새가 된다. 호주오픈 결승은 맞대결이었고, 롤랑가로스는 나달이, 윔블던은 페더러가 지배한 꼴이기 때문이다. 



2. 머레이 & 조코비치
  
  나란히 8강에서 대회를 접은 두 선수는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며 탈락했다. 라파엘 나달이 4라운드에서 탈락하면서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조금 더 유지하게 된 머레이는 8강에서 샘 퀘리의 이변에 휘말리며 탈락했다. 그러나 머레이의 탈락은 조금 특별했다. 머레이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는 대회 초반부터 어딘가 불편해보이는 기색을 계속 보여왔다. 1라운드 시작 때부터 언론이 머레이에게 부상을 당한게 아니냐고 계속 물을 정도의 그는 부상 루머에 시달렸다. 본인은 아니라고 부인해왔지만, 8강 경기에서 그는 부상이 맞다고 관중들을 확신시켜주었다. 


부상을 숨길 수가 없는 머레이
출처: wimbledon.com



  골반 쪽 부상이라고 했다. 경기내내 그는 허리 아래 쪽을 손으로 붙잡는 모습을 보였다. 서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경기를 기권하지 않았다. 무려 승리해낼 생각도 있었던 듯 했다. 하지만 머레이는 1세트를 내줬고, 경기를 일찍 끝내는 데 실패했다. 4세트부터는 거의 환자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레이는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내며 경기를 끝까지 마무리했다. 자신의 조국에서 열리는 대회였기에 쉽게 물러설 수 없었던 듯 했다. 그는 정말 박수를 받을 만 했다. 보도들 또한 퀘리의 기적적인 승리보다 머레이의 투혼이 주 내용으로 다뤄지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반면 선수들이 상금때문에 1라운드에 출전해 대충 뛰고 기권한다고 씹어대던 조코비치는 베르디흐와의 경기에서 팔꿈치 부상을 호소하며 2세트 세 번째 게임에 리타이어드를 선언했다. 1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내주고, 2세트 첫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당한 이후였다. 본인은 1년 반 동안 팔꿈치 부상에 시달려왔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투어 선수들에게 팔꿈치 부상이야 엄청 심각하거나, 경미하거나 둘 중 하나이기에 조코비치의 말은 순전히 변명에 불과해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는 1세트 내용을 감안하면 그냥 하다가 안 풀리니까 짜증나서 경기를 접은 것이 분명했다. 이미 그가 좋은 경기력은 아니었지만, 무실세트로 8강까지 올라왔기에 급작스러운 부상을 호소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었다. 순전히 양아치같은 짓거리였다. 
  조코비치가 연타로 그랜드슬램 4강 진출에 실패한 건 20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고, 2016 윔블던 3R - 2016 US오픈 F - 2017 호주오픈 2R - 2017 프랑스오픈 QF - 2017 윔블던 QF로 이어지는 허접한 성적은 2008년 즈음 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야 찾아볼 수 있는 성적이다. 조코비치가 그랜드슬램 우승 1회로 만년 3위에 머무르던 시절이다. 전 코치 보리스 베커Boris Becker는 훈련 부족을, 존 매캔로John McEnroe는 와이프와의 불화를 이유로 제기해 오고 있지만, 뭐가 문제든 조코비치의 멘탈에는 확실히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보인다. 양아치 짓으로 그랜드슬램을 마무리 할 정도의 멘탈이라면 조코비치의 하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아주 오랫동안 테니스를 쉬어야할 것 같다고 칭얼거렸다. 



베르디흐가 깔짝잘해서 밀리니까 바로 경기 접은 조코뱅크
출처: wimbledon.com



3. 윔블던 & 빅서버

  4강에 오른 네 명의 선수 모두 전부 서브를 주 무기로 쓰는 선수들이다. 8강, 16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빅 서버들이 선전했다. 윔블던에서 빅서버들이 선전하는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역시나 별로 재미가 없었다. 2미터에 육박하는 거인같은 선수들이 서브를 넣어, 들어가면 이기고 안들어가면 지는 경기가 반복된다. 페더러야 말할 것도 없고, 칠리치나 베르디흐도 클래식한 서브 앤 발리 선수라고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없는 건 사실이다. 재미가 없다기 보다 그냥 멋지지가 않다고 표현해야할까. 아마 나달이 탈락해서 그런 것 같다. 


짱친 존 이스너John Isner와 함께 미국 출신 거인 빅서버 듀오를 이루는 샘 퀘리Sam Querrey
출처:wimbledon.com



4.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역시나 우려했던대로 나달은 4라운드에서 포텐 터진 빅서버 쥘 뮐러를 만나 탈락했다. 5세트는 무려 13:15까지 가는 어마어마한 경기였다. 모두의 관심을 받은 경기였지만, 경기 자체는 나달이 경기한다는 걸 빼면 그냥 재미도 없고 바보같은 경기였다. 
  나달은 간만에 윔블던에서 상당히 강력한 경기력을 보였다. 서브도 좋았고, 백핸드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3라운드 카렌 카차노프Karen Khachanov라는 강력한 서브와 빠른 스트록을 치는 유망주를 상대로 2세트 중반부터 고전하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4라운드까지 이어졌다. 4라운드 후반에 끝까지 버티며 경기를 끌고 갔지만, 체력적으로 부침을 보이며 결국 경기를 내줬다. 나달이 체력이 딸리다니. 형용모순 같지만 그랬다. 



출처: wimbledon.com


  내가 보기에 나달의 패인은 간단하다. 자신감이다. 그는 윔블던 대회 전 잔디대회까지 불참했다. 언론이 설레발칠때마다, 그는 자신은 한 경기 한 경기 지켜볼 뿐이라고, 조심스러운 모습을 고수했다. 그가 겸손한게 아니라, 실제로 자신감의 문제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게 확실한 것 같다. 그는 2011년 이후로 4라운드를 통과한 적이 없다. 그 사실은 그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물병 세우는 데 집착하는 나달이 아닌가.)
  자신감이라는 패인과 경기의 결과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바로 "리턴"이다. 그가 클레이에서 선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리턴이다. 그러나 윔블던의 잔디에서 그는 리턴이 잘 되지 않았다. 서브가 강하지 않기에 그는 브레이크를 자주 내주는 선수고, 브레이크를 쉽게 따야하는 선수이다. 그러나 서브 리턴이 좋지 않으면, 브레이크따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가 스트록으로 점수따는 선수라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선전했던 1, 2, 3라운드 초반 나달은 적극적으로 베이스라인에 붙어서 리턴했다. 일단 리턴이 곧바로 넘어가고, 리턴이 날카롭게 들어가니 상대는 랠리를 하는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상대는 랠리 귀신 나달을 상대로 에러를 범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기세가 몰리면서 패한다. 그게 승리 공식이다. 나달이 이번 호주 오픈 8강에서 빅서버 넘버원 라오니치를 가뿐하게 3:0으로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출처: wimbledon.com


  하지만 카차노프와의 2세트부터 나달은 이상하게 점점 베이스라인 멀찍이 뒤로 물러서는 일이 잦았다. 아마 자신감이 떨어져서 그럴 것이다. 그러니 클레이에서처럼, 평소에 하던 것처럼, 뒤로 멀찍이 물러나서 일단 공을 넘기는 것에 집중했다. 베이스라인에서 뒤로 물러날수록 서브 리턴을 위해서는 더 빨라야하고, 더 많이 움직여야한다. 나달은 자신의 활동량이라면 그것을 잘해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20대 초반이 아니다.
  나달은 쉽게 지지 않는 선수이다. 그렇기에 뮐러와의 경기에서도 쉽게 지지 않았다. 나달이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낸 것도 나는 잔디코트, 서브앤발리어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에서 오는 것 같다고 보았다. 피지컬 적인 체력의 문제였다기 보다는 정신적으로 너무 큰 부담을 계속 받은 게 큰 탓이라는 것이다. 안그래도 비효율적으로 점수를 따는 나달이, 간신히 오랜 슬럼프에서 벗어나서, 아직은 불안한 멘탈로 맞이한 윔블던에서 맞이한 서브앤 발리어다. 나달이 힘들게 한 포인트 딸 때, 상대는 서브 한방 혹은 서브-리턴-발리 3구 플레이만에 점수를 딴다. 뛰어다녀야하는 건 나달 쪽이다. 상당히 멘탈적으로 피곤한 일이다. 나는 나달이 라켓을 안부순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코비치의 기권을 보니 더욱 그랬다. 



망할 빅서버.
출처: wimbledon.com



  비록 나달의 8강 진출은 실패했지만, 상황이 뭐 그렇게 나쁜 건 아닌 듯하다. 카를로스 모야 코치가 동행했다면, 상황이 좀더 나았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달은 정말 본인의 트라우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말 모든 것을 쥐어짜낸 끝에 탈락했다. 이제 잔디시즌은 끝났다. 다가올 북미하드코트 시즌에서 호주오픈과 인디언웰스, 마이애미 마스터즈 정도의 성적만 내준다면, 연말 랭킹 1위도 가능해 보인다. 페더러가 여전히 선전하겠지만, 북미시즌에서 좀만 선전해줫으면 좋겠다. 



나달은 패배했음에도 승자인 세레모니를 끝낸 뮐러를 기다렸다가 함께 퇴장했다. 
퇴장하면서 팬들에게 싸인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 짠한 순간이었다. 
출처: wimbled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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