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결국 자신의 19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이자, 8번째 윔블던 우승을 해냈다. 이로서 그는 역대 통산 윔블던 우승 횟수에서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를 제치고 단독 1위에 올랐으며, 올해에만 두 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했다.
이제 그는 윔블던의 The One이 되었다.
출처:wimbledon.com
결승 상대였던 마린 칠리치Marin Cilic는 역시나 황제의 신기록 상대가 되기에는 턱없이 허접한 상대에 불과했다. 빅서버들을 연이어 격파하며, 빅서버 넘버원의 명목으로 페더러에 도전한 칠리치는 1세트 게임스코어 2:1p 상황에서 찾아온 자신의 브레이크 찬스를 놓친 이후 눈물을 질질 짜내면서 간신히 경기를 끝내는 수준에 그쳤다.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앤디 로딕Andy Roddick,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 그리고 앤디 머레이Andy Murray와 같은 강력한 라이벌들을 상대로 윔블던 신기록을 세워왔던 황제에게 자신의 신기록 작성을 위한 상대로서 칠리치는 정말 수준 떨어지는 상대였다. 칠리치가 부상을 호소하며 질질짜고 있을 때, 그 앞을 쿨하게 지나던 페더러는 아마 우승이 눈앞에 왔다는 안도보다는, 몰입감이 떨어지는 데서 오는 일종의 허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대회 나름 좋았다고 평가받았던 칠리치의 백핸드는 페더러의 백핸드에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출처:wimbledon.com
칠리치는 무려 그랜드슬램 우승자이다. 이미 그는 2014 US오픈 SF에서 황제를 3:0으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 니시코리 케이Kei Nishikori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모두가 황제의 우승을 예상했지만, 칠리치의 그런 과거에 기대어 혹시나 칠리치의 우승 혹은 선전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칠리치는 황제의 역사적인 순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바보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브레이크 기회를 만들어 내기까지 그는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표정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브레이크 기회를 허무하게 잃은 후, 그는 갑자기 초조해보였다. 빅4를 상대하는 선수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서브게임을 허무하게 내줬고, 그대로 경기 전체를 내줬다. 아무리 그래도 그랜드슬램 결승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그가 경기를 기권하지 않고 마무리했다는 점이었다.
브레이크 찬스 한번 놓치더니 바짝 쫄아버린 칠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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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같으면 투혼이라고 치켜세웠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빅서버에 의한 나달의 4라운드 탈락과 그 빅서버들에 의한 바보같은 경기들에 화가 나있었고, 바로 그 빅서버들의 대표격으로 결승에 오른 칠리치였기에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이번 황제의 윔블던 결승은 엄청난 역사성을 지닌 경기다. 황제의 8번째 윔블던 우승은 나달 혹은 조코비치, 적어도 머레이는 상대로 했어야하는 경기이고, 2008년은 커녕 2012년 혹은 2014년 결승 수준은 보여주면서 페더러의 역사적인 기록으로 끝났어야 하는 경기이다. 그래서인지 브레이크 찬스 한 번 놓친 것에 멘탈과 피지컬이 한 방에 무너지는 빅서버 나부랭이의 질질짜는 투혼에 도무지 동정심이 생기지가 않았다.
결승상대가 나달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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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달이 결승에 올라 페더러와 만났다면 얼마나 엄청났을지가 계속 뇌리에 남았다. 물론 나달이 이기기는 힘들겠지만, 윔블던에서 결승까지 올라온 나달의 페이스라면, 올시즌 초 호주오픈 결승을 훨씬 능가하는 명경기를 보여줬을 것이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과거의 재현일 것이며, 새로운 현재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멍청한 빅서버가 올라왔고, 그는 페더러가 몸도 제대로 풀리기 전에 무릎을 꿇었다. 영 찝찝한 결말이다 .
어쨌건 페더러는 우승했다. 올시즌은 정말로 페더러와 나달의 부활이 눈에 띄는 시즌이다. 호주오픈 결승은 페더러와 나달의 맞대결이었고, 롤랑가로스는 나달의 10번째 우승, 윔블던은 페더러의 8번째 우승으로 끝났다. 이 기세라면 페더러는 US오픈 우승도 충분해 보인다. 노박 조코비치와 앤디 머레이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페더러와 나달을 막을 선수는 아무도 없어보인다. 마치 그들의 라이벌리가 한창이었던 10년 전을 보는 듯 하다. 클레이를 장악하며 페더러를 견제하는 나달과, 클레이를 제외한 나머지를 지배하며 1위자리를 굳건히 하는 페더러.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페더러가 아웃도어 하드에서 나달을 압도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오랜만에 빅4. 머레이가 1위인건 조금 어색함.
출처:atpworldtour.com
이번 우승으로 페더러는 오랜만에 랭킹 3위로 올랐다. 이로서 빅4는 오랜만에 랭킹 1~4위를 채웠다. 머레이와 나달이 각각 1위와 2위를 유지했고, 조코비치는 4위를 유지했다. 페더러가 인터뷰에서 빅4를 위협하는 유일한 빅4 이외의 선수라고 칭한 스탄 더 맨은 5위에 올랐다. 두 단계 떨어졌지만, 그에게 딱 맞는 자리다.
앞으로 있을 마스터즈 1000 시리즈인 로저스컵과 신시내티에서는 조코비치와 머레이가 각각 1000 포인트와 600포인트를 잃을 예정이라, 지난해 불참으로 잃을 포인트가 없는 나달과 페더러로서는 랭킹을 다시 과거로 돌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페더러가 올 초 선샤인 더블과 같이 두 대회 모두 우승한다면 어렵지 않게 1위에 컴백할 것이고, 나달이 두 대회 중 하나만이라도 우승에 가깝게 선전한다면 나달이 1위를 차지할 것이다. 현재 1위 머레이와 2위 나달의 포인트차가 300포인트에 불과해, 지금 분위기라면 나달이 어렵지 않게 1위를 탈환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머레이는 작년 하반기 각성 덕분에 하반기에 잃을 포인트가 많다. 조코비치도 은근 로저스컵이나 US오픈 등 하반기에 따놓은 포인트가 있어, 본인의 말대로 오래 쉰다면 랭킹은 쭉쭉 떨어질 것이다.
랭킹과 별개로 올 시즌에 따낸 포인트만 계산하는 Race to London 랭킹을 보면 현재 라파엘 나달이 7095점, 로저 페더러가 6545점으로 1, 2위를 달리고 있다. 3위인 도미닉 티엠Dominic Thiem과 4위 스탄 바브린카Stan Wawrinka가 각각 3345점과 3150점에 불과하고, 조코비치와 머레이는 각각 2585점, 2290점에 그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나달과 페더러가 올시즌을 얼마나 함께 독주했는가를 알 수 있다.
10년 전 처럼 다시 둘이서 헤쳐먹고 있는 페더러와 나달
출처:sportinglife.com
현재까지 치뤄진 세 개의 그랜드슬램의 결승 6개의 자리 중 페더러와 나달이 4개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페더러는 우승 2회, 나달은 우승 1회, 준우승 1회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둘이 침체되어간다는 평가를 듣던 시절을 지배한 조코비치와 머레이는 올 시즌 단 한 번도 그랜드슬램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코비치는 아예 4강 진출도 한 번도 못했고, 머레이는 프랑스오픈에서만 4강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마스터즈 1000 기록을 보면 더욱 놀랍다. 현재까지 치뤄진 5개의 마스터즈 1000대회 중 신예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가 일종의 어부지리로 가져간 로마 마스터즈를 제외하면 페더러와 나달이 각각 두 개씩 가져갔다. 페더러가 가져간 마이애미 마스터즈 결승은 또다시 페더러와 나달의 대결이었다. 조코비치와 머레이는 조코비치가 로마 마스터즈 결승과 마드리드 4강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대회 초반에 탈락하기에 바빴다. 조코비치가 올 시즌 따낸 타이틀은 250 대회인 도하와 이스트본이 전부이고, 머레이는 500대회인 두바이 대회가 유일하다. 회복하지 못할 하락세라던 나달의 2015년 보다 더 못한 성적이다. 상위라운드에 못오르다 보니 조코비치와 머레이는 조코비치가 마드리드에서 나달을 만나 가볍게 털린 것을 제외하면 올시즌 페더러와 나달을 만나 겨룬 적도 없다.
올 시즌 페더러를 가장 강력하게 위협했던 것은 호주오픈의 라파엘 나달Rafael Nadal과 마이애미의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밖에 없었다. 나달에게는 페더러를 제외하면 딱히 위협적이었던 선수가 없었다. 페더러는 나달의 올시즌 7패 중 3패를 안긴 선수다. (나머지는 브리즈번 밀로시 라오니치Milos Raonic, 아카풀코 샘 퀘리Sam Querrey, 로마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 윔블던 쥘 뮐러Gilles Muller) 올 시즌에는 정말 페더러나 나달이나 깜짝패를 제외하면 딱히 경계할 선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50대회 결승에서 맞붙은 뒤로 나란히 맛탱이 간 조코비치와 머레이
출처:eurosports.com
페더러는 어차피 계속 잘할 것 같고, 나는 개인적으로 나달이 앞으로 남은 하드시즌을 어떻게 보낼지가 걱정이긴 하다. 나달은 항상 하반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코비치와 머레이가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을 보면 페더러와 나달이 다시금 1, 2위로 연말 랭킹을 마감할 것이라고 보는게 현실적이긴 하다. 만약 윔블던의 패배에서 크게 좌절하지 않았다면 나달은 북미에서도 꽤 성공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2013년 북미 시즌 정복도 나달이 윔블던에서 1라운드에서 탈락한 후에 이룬 성과가 아니었는가. 자신감만 다시 충분히 채운다면 나달이 페더러와 함께 US오픈 결승 무대에 처음으로 오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다시 페더러와 나달의 시대가 돌아왔다.
2017년 7월 현재까지 투어 대회 우승/준우승
※ Grand Slam
Austrailian Open(Hard) : Roger Federer / Rafael Nadal
French Open(Clay) : Rafael Nadal / Stanislas Wawrinka
Wimbledon(Grass) : Roger Federer / Marin Cilic
※ Masters 1000 Series
Indian Wells(Hard) : Roger Federer / Stanislas Wawrinka
Miami(Hard) : Roger Federer / Rafael Nadal
Monte-Carlo(Clay) : Rafael Nadal / Albert Ramos-Vinolas
Madrid(Clay) : Rafael Nadal / Dominic Thiem
Rome(Clay) : Alexander Zverev / Novak Djokovic
※ 500 series
Rotterdam(Hard) : Jo-Wilfried Tsonga / David Goffin
Rio de Janeiro (Clay) : Dominic Thiem / Pablo Carreno Busta
Acapulco(Hard) : Sam Querrey / Rafael Nadal
Dubai(Hard) : Andy Murray / Fernando Verdasco
Barcelona(Clay) Rafael Nadal / Dominic Thiem
Halle(Grass) : Roger Federer / Alexander Zverev
Queen's Club(Grass) : Feliciano Lopez / Marin Cilic
※ 250 series
Brisbane(Hard) : Grigor Dimitrov / Kei Nishikori
Chennai(Hard) : Robert Bautista Agut / Danill Medvedev
Doha(Hard) : Novak Djokovic / Andy Murray
Sydney(Hard) : Gilles Muller / Daniel Evans
Auckland(Hard) : Jack Sock / Joao Sousa
Montpellier(Hard) : Alexander Zverev / Richard Gasquet
Quito(Clay) : Victor Estrella Burgos / Paolo Lorenzi
Sofia(Hard) : Grigor Dimitrov / David Goffin
Buenos Aires(Clay) : Alexandr Dolgopolov / Kei Nishikori
Memphis(Hard) : Ryan Harrison / Nikoloz Basilashvili
Delray Beach(Hard) : Jack Sock / Milos Raonic
Marseille (Hard) : Jo-Wilfried Tsonga / Lucas Pouille
Sao Paulo(Clay) : Pablo Cuevas / Albert Ramos-Vinolas
Houston(Clay) : Steve Johnson / Tomaz Belluci
Marrakech(Clay) : Borna Coric / Philipp Kohlschreiber
Budapest(Clay) : Lucas Pouille / Aljaz Bedene
Estoril(Clay) : Pablo Carreno Busta / Gilles Muller
Istanbul(Clay) : Marin Cilic / Milos Raonic
Munich(Clay) : Alexander Zverev / Guido Pella
Geneva(Clay) : Stanislas Wawrinka / Micha Zverev
Lyon(Clay) : Jo wilfried Tsonga / Thomas Berdych
s-Hertogenbosch(Grass) : Gilles Muller / Ivo Karlovic
Stuttgart(Grass) : Lucas Pouille / Feliciano Lopez
Antalya(Grass) : Yuichi Sugita / Adrian Mannario
Eastbourne(Grass) : Novak Djokovic / Gael Monf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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