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3일 일요일

빅 4는 지는가




1.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페더러는 호주오픈에서 훌륭했음에도 유망주 치치파스에 의해서 16강에서 탈락했다. 뭐 치치파스가 차세대 페더러가 될 것이다 어떻다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같은데, 과거 칠리치, 디미트로프, 최근에는 즈베레프 등등이 나왔을 때 하던 이야기들의 재탕이 될 것 같다. 물론 랠리의 안정감과 정신력을 보여줬다는 점이 어린 나이에 비할 때 엄청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치치파스의 지금 나이 즈음, 나달은 이미 그랜드슬램을 3번이나 우승하며 페더러의 확고한 라이벌 자리를 굳혀가고 있었고, 조코비치 또한 페더러를 아예 부숴버리며 호주오픈을 우승했다. 앤디 머레이도 US오픈 결승에 오르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치치파스는 아직 즈베레프에 대기에도 벅차다.
  다시 페더러로 돌아와서, 페더러는 2018 호주오픈 우승 후 프랑스오픈 불참, 윔블던 QF, US오픈 4라운드, 2019 호주오픈 4라운드에 그쳤다. 빅4에게 그 정도 성적은 그냥 폭풍 부진같은 거다. 그래서인지 페더러도 이제 슬슬 은퇴 준비를 하는지 2019 프랑스오픈은 참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015년 이후 페더러는 체력 부담이 큰 프랑스오픈을 출전하지 않고 윔블던에 올인했기에 이번 발표가 은퇴를 대비해 마지막 그랜드슬램 참가를 채우는 것 같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다.
  내 의견에는 그냥 페더러가 재수가 없었다 정도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물론 과거 강력했던 위용을 요즘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작년 말 파리 마스터즈에서 페더러는 정신차린 조코비치를 거의 패배직전까지 몰아부쳤고, 이번 호주오픈에서도 충분히 좋은 폼을 보여줬다. 치치파스가 이상하리만큼 과하게 잘했을 뿐이다. 
  페더러에게 문제가 있다면 경기흐름이 조금 밀렸을 때 그것을 다시 끌고 오는데 들여야 할 체력적, 정신적 비용을 페더러 스스로가 부담스러워 하는게 아닌가 싶다. 페더러가 탈락하는 걸 보면 분명 페더러의 기본 플레이 자체는 좋은데, 상대가 보여주는 파이팅으로 인해 발생한 균열을 페더러 스스로가 메꾸지 못하는 것 같았다. 리드가 흔들릴 경우 필요한 추가적인 집중력과 체력이 부담이 되고, 그것이 조바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자멸하며 탈락한다. 치치파스와의 경기 막판 타이브레이크에서 리드하다 허무하게 무너진 게 그 사례라 할 것이다.
  사실 페더러가 정말 나이로 인한 체력저하가 있는지는 의아하다. 여전히 풀세트를 다 채워가며 그랜드 슬램 경기를 하고, 그가 보여주는 서브 앤 발리, 칩 앤 발리는 오히려 과거보다더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한 느낌이다. 공격적 포핸드의 스피드와 플레이스먼트는 더욱 날카로워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좌우로 벌리는 랠리가 됐을 때는 코트 커버리지가 약해지고, 카운터 샷이 과거에 비해 살짝 부족해진 느낌이 없는 건 아니나, 그건 누구라도 그렇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페더러는 볼 때마다 경이롭다. 저 나이에도 저런 움직임과 저런 샷을 보여준다는 게 놀랍다. 물론 이제 그랜드슬램 우승 확률이 떨어진 건 사실인 듯 하다. 예전 만큼 그 변수를 감당할 여유가 없어진 느낌이니 말이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말이다. 아마 혹시나 윔블던에서 조코비치나 나달이 일찍 탈락하고 이스너, 케빈 앤더슨, 샘 퀘리, 마린 칠리치, 밀로시 라오니치 같은 귀찮은 빅서버 들이 일찍 탈락해준다면 여유있게 페더러가 윔블던을 한 번 더 가져가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어쨌건 이제 우리는 페더러와 작별인사를 해야되는 때가 오고 있는 듯 하다.



2.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노박 조코비치. 나달의 유일한 과제가 되었다. 아마 이 과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나달의 선수 생활이 끝날 것 같다. 나달의 장기인 포핸드의 파워와 탑스핀은 하락했고, 활동량과 코트 커버리지 또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민첩성이 떨어진 것은 유난히 돋보인다. 공을 빨리치는 공격적 템포는 훌륭해졌지만, 조코비치를 만나자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더이상 나달은 과거와 같은 자신의 근성 플레이의 수준을 향유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호주오픈에서 나달의 플레이스타일 변화는 꽤나 적중했고, 나달은 여전히 노박 조코비치와 로저 페더러를 제외하면 어떻게 대처해보기도 까다로운 선수이다. 그 둘을 제외한 선수들과의 경기는 오로지 나달의 컨디션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에 승패의 결정권이 상대에게는 없다. 알렉산더 즈베레프나 닉 키리오스 정도의 선수가 나달에게 위협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조차도 다른 변수들에 막힌다.(이를테면 클레이라든가, 클레이라든가, 클레이라든가) 요즘 떠오르고 있는 수많은 유망주들은 그냥 나달에게 레슨 받고 있는 수준에 멈춘 듯 하다. 나달의 플레이 스타일 상 나달에게 위협적인 선수는 나달에게 익숙하며 나달을 향한 스트록이 안정된 선수들이다.  조코비치와 페더러이다.
  이제 조코비치에게 나달의 탑스핀 스트로크은 이제 확실히 칠만한 공이 되버린 듯 하다. 호주오픈에서 보듯이 조코비치는 나달의 공을 확실히 부담없이 자유자재로 받아 치는 듯 하다. 이런 조코비치를 극복하기 위해 나달에게는 공격적인 백핸드, 과거와 다르지 않을 활동력이 필요한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이 나이와 부상에 신음하는 나달에게 극복될 수 있는 과제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호주오픈 결승에서 나달은 폼이 올라있었고, 상승세를 타고 있었으며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2017은 항상 하던대로 이겨가던 경기를 페더러의 급 각성으로 내줬고, 2012, 2014는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2018 윔블던에서의 조코비치와의 경기에서도 체력적 부담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번 호주오픈 결승에서는 아무문제도 없고 달라진 전술도 성공적으로 안착한 상태에서 완벽하게 발린 것이다.
  이제 남은 건 클레이다. 2012년처럼 나달이 조코비치를 극복하고 프랑스오픈은 절대 자신의 것임을 확신하게 될 지 아님 이제 조코비치에게 프랑스오픈을 내주며 조코비치의 천하를 완성해주는 상왕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나달의 민첩성과 떨어진 스피드는 클레이의 재질에서는 확실히 상쇄되는 면이 있고, 탑스핀 또한 여전히 클레이에서는 위력적이다. 특히나 프랑스오픈에서 나달에게는 특별한 자신감이 있다. 나달은 클레이에서 만큼은 여전히 제왕의 아우라를 보여준다. 그 전까지 밀리는 듯 보였던 상대들 마저도 프랑스오픈에서 만큼은 확실히 쥐어패는 포스를 보여줬다. 그래서 이번 프랑스오픈이 고비다. 나달이 클레이시즌을 성공적으로 가져간다면 나달은 그래도 지난해 수준의 북미 하드코트 시즌의 성과를 보여줄 듯 하다. 하지만 만약 패배한다면 그대로 나달은 이제 빅4의 시대에서 저물게 되는 충격을 받을 듯 하다.



3.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


  조코비치는 빅4 경쟁에서 자신이 승리자임을 사실상 확정했다. 현재가 조코비치-나달의 2강의 시대가 되었다고 혹자는 말하지만, 그건 그냥 겉만 봐서 그렇다. 조코비치는 이제 나달을 확실히 압도하고 있다. 이번 프랑스오픈에서 조코비치가 우승한다면 이제 빅4 경쟁은 조코비치의 승리로 끝난다고 봐도 다름없다. 2015~2016 전성기에는 조코비치의 실력이 완벽했으나, 페더러라는 강력한 도전자가 있었기에 완벽한 제패에 2% 조금 흠이 있었다고 할 것이나, 현재는 당시에 비춰 조코비치의 기량은 부족하나 페더러, 나달, 머레이가 나가 떨어졌다고 보는 게 맞는 듯 하다.

  이제 조코비치가 걱정할 건 페더러나 나달이 아니다. 바로 유망주들이다. 호주오픈 때 좋은 모습보여줬던 치치파스, 티아포, 드 미노, 메드베데프, 샤포발로프, 그리고 지난 호주오픈 때 좋은 모습 보여줬던 정현, 그리고 현재 유망주세대 탑인 알렉산더 즈베레프 등등.
  이 세대는 지난 니시코리, 디미트로프, 칠리치, 랴오니치 등등의 90전후 세대에 비해 활동량이 매우 좋다. 그리고 성장세가 보다 가파르며,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등장한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빅4가 이제 끝물에 접어들고 있는 시점이라 빅4를 상대로 한 승리들이 은근히 잘 나오고 있다.
  그럼 조코비치만 문제인가. 치치파스가 페더러를 잡았다고 해서 다음 경기에서도 치치파스가 페더러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치치파스의 맥스 능력치가 터졌을 뿐, 여전히 페더러가 보여주는 주도권 잡아 펼치는 빠른 테니스와 슬라이스 기교로 보여주는 강약 조절 테니스에 유망주들이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나달도 마찬가지이다. 둘쑥 날쑥한 경기력, 정확도보다는 탑스핀에 기하다 보니 넘어오는 공의 타이밍 잡기가 어렵고,  공 자체의 변화가 너무 큰 몬스터 탑스핀인데다, 이상한 걸 또 받아쳐 포인트로 만들면서 들어오는 정신 공격, 짧았다 길었다 하는 대중 없는 스트록. 근데 또 느닷없이 발리하러 들어오는 디펜더. 멘탈이 깨지기 쉽고 에너지가 넘치는 유망주 레벨에 있어 이만큼 상대하기 빡치는 선수가 없다. 호주오픈에서 보았듯이 유망주들은 어떻게 뭐 대응도 못하고 끝나버린 경기 점수표를 보게 된다.
  그렇다면 조코비치는? 조코비치의 플레이스타일이자 강점은 기계적인 스트록이다. 조코비치는 코트 종이동을 하는 지 안하는 지도 모를 만큼 부드럽고 유연하게 자리를 잡고 정확한 클로즈드 스탠스에서 FM 스트록을 때린다. 그리고 그 공은 정확하게 양쪽 코스 깊숙히 날아가서 찍힌다. 그러다 상대가 랠리를 못이겨 드랍샷을 쓰거나, 자신이 드랍샷을 쓰면 네트 근처에서 짧게 공 날리는 족집게 같은 플레이로 끝난다. 이게 너무 기계적이어서 상대가 질려버린다. 하지만 이 플레이의 약점이 유망주와 맞부딫힌다. 조코비치는 기본이 방어적이라 랠리 템포가 페더러에 비해서는 느리나, 나달에 비해서는 빠르다. 치기 좋은 타이밍으로 오는 공은 아니지만 어쨌든 일정하다. 기계적으로 온다는 거다. 이 템포는 조금 빠르기는 하지만 페더러와 나달의 타이밍에 비해서는 적응하기가 좋다. 
  조코비치의 백핸드는 워낙 좋기는 하지만 코스에 강점이 있는 것이지 공 자체가 항상 엄청난 파워와 날카로움을 동반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일정하지 않은가. 이 흐름은 유망주들로써는 적은 경험으로도 쉽게 익숙해질 수 있다. 
  "벽치기" 말그대로 벽친다고 생각하며 플레이하면 되는 것이다. 치치파스가 조코비치를 만나 부숴버린 것도 거기에 있다. 다른 선수도 비슷할 테다. 파워로 때려 치는 티아포는 닉 키리오스가 그랬듯 조코비치를 샌드백으로 만들 수도 있고, 나달의 공 타이밍을 못잡아 삽질하던 호주의 미노도 조코비치의 흐름만 익숙해지면 마치 정현이 그랬던 것 처럼 그의 활동량으로 조코비치의 에러를 유도할 수 있다. 
  조코비치의 아우라에 아직은 포섭되지 않은 유망주들의 패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이 조코비치의 랠리 흐름에 맞춰서 자기 공만 친다면 조코비치는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만약 유망주 중 누군가가 이렇게 조코비치를 상대로 연승을 거둔다면 그가 ATP 투어를 제패할 새로운 빅4 종결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4. 앤디 머레이 Andy Murray


  그는 마지막으로 온힘을 짜내서 랭킹 1위를 한 것이었다. 허리 부여 잡고 윔블던 겨우 플세트 치뤄내던 그를 떠올리면 안쓰럽다.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가 요새 말로 메시, 호날두라면 머레이는 이브라모히비치나 팔카오, 수아레즈 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계 최강. 안타깝게도 그는 이제 윔블던 출전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할 것 같다. 전혀 이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았다. 그냥 갈 때가 되서 갈거다.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가 이상한 것 뿐이다. 빅4 중 가장 커리어가 적었던 앤디 머레이가 가장 먼저 퇴장한다는 게 참 안타깝기도 하고, 삶이란 게 그런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랭킹 1위 찍고 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정도는 들었다. 빅4도 이렇게 하나 둘 씩 저물어 가는 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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