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4일 월요일

스펙에 연연하지 마라





  황 대표는 당시 숙명여대 정치외교학 전공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취업에 소위 말하는 ‘스펙’이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며, 기업이 원하는 특성화된 역량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과정에서 학점과 영어점수가 크게 뛰어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영자신문반 편집장, 봉사활동, 대학 조기축구회 조직 등의 경험을 살려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한 청년의 사례를 들었다. “3점도 안되는 학점에 (영어시험) 800점 정도로 다른 스펙 없이 졸업했지만, 원서를 낸 15곳 중 서류심사를 통과한 5곳에서 전부 최종 합격했다”고 말한 그는 “이 청년이 제 아들”이라고 덧붙였다.




  황교안 대표가 멋있는 말을 했다. 요약하면 스펙에 얽매이지 마라. 기업이 원하는 특성화된 역량을 가져라. 스펙이 별볼일 없는 내 아들은 서류 광탈을 빼고 면접까지 간 곳은 전부 다 붙었다. 그니까 니들도 그렇게 해라. 

  캬아. 정말 멋진 말이다. 나도 간혹 주변에 있는 취준생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한다. 저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스펙은 별로 중요치 않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자기가 뭘 할 건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며 자신이라는 "상품"을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취직"이라는 목표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자기가 꼰대 같냐고 물어보는, 심지어 자기가 꼰대처럼 생겼냐고 물어보는 전형적인 "꼰대짓"을 하는 황교안 대표의 저 발언은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다. 정말 말 한 마디 한 마디 버릴 것이 없이 현실적이고 애정어린 저 조언이 왜 멍청한 걸까. 

  먼저 황교안 대표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황교안. 성균관대 법학과. 사법고시 23회. 사법연수원 13기. 대표적인 공안검사 및 검사장.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그리고 현재 제 1야당 당대표. 그는 기득권층의 최고봉이자, 사회 엘리트이며, 사회 지도층이다. 그가 해야할 일은 사회의 거시적인 문제를 논하는 것이며, 제도적 환경적 문제들을 개선하는 것이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환경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더 노력하라고 재촉하는 일이 아니다.

  두 번째로 시기를 살펴봐야 한다. 김성태 전 자유당 원내대표의 딸에 대한 KT 취업비리가 거의 확정에 가깝게 정리 된 것이 최근이다. 하필 황교안 대표의 아들이 취직했다는 곳이 바로 KT이다. 황 대표로서는 대단히 불리한 여건이 아닐 수 없다. 황교안 대표 말의 요지는 아들이 스펙이 별볼일 없었는데 합격했다는 것이다. 그 합격이 황 대표 말대로 "아들의 뛰어난 특성화된 역량" 덕분이든, 아버지가 황교안이어서 였든 둘 다 스펙이 별볼일 없었는데 합격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의심 받기 딱 좋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로 구라. 황교안 대표는 최초 말할 당시 아들이 토익 800점 대에 학점도 평점 3점도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차후에는 페북으로 토익이 925점이었고, 평점이 3.29라고 밝혔다. 말하면서 대충 얼버무리며 과장한 듯 하고, 그것이 화제가 되자 다시 한 번 자기 입으로 정정한 듯 하다. 재미있는 점은 황교안이 낮은 점수를 높게 이야기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 반대이니 거짓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애초에 아들이 스펙이 안 좋은데 합격했다는 취지가 아닌가. 그냥 착오가 있었다고 하는 편이 나았을 법 한데, 본인이 뻘쭘한 나머지 궤변을 늘어놓은 것 같다. 

  연세대 법학과 출신이라는 아들에게 3.29라는 학점은 평균 B+ 수준이며, 이는 학점을 소흘히 대하는 전통이 있는 법학과, 그것도 SKY 출신으로서는 상당히 준수한 수준이다. 토익도 925점이면 프리미엄이 있는 점수라고 할 수는 없어도 KT 정도에 취직하는 데 있어 딱히 손해볼 건 없는 점수다. 게다가 황대표 본인 말대로 아들이 영자신문 편집장도 해보고, 조기축구회 조직 운영에 참여한 경험도 있고, 봉사활동 경험도 있다지 않은가. 황 대표는 "스펙"을 뭘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보기에 황교안 대표 아들은 언더 독도 아니고, 탑 독도 아니고 그냥 아주 평범하게 취직한 아주 평범한 월급쟁이에 불과하다. 그나마 그 취직에 황교안 대표가 딱히 뭘 했을 것 같진 않다는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아들까지 팔았던 황 대표지만, 그는 결국 학생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지도 못했고,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딱히 위안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기분만 나쁘게 했을 뿐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니 자식처럼 3.29에 925만 채우면 취직이 될 거라는 건가. 스펙에 연연하지 말라는 데, 연세대 3.29에 925는 스펙이 아닌가. 영자신문 편집장 한 거랑, 조기축구회 리더가 된거랑 KT에 특성화된 역량이랑 뭔 상관인건가. 높은 걸 낮춰 말했으니 거짓말도 아니라는데, 그럼 스펙에 연연하지 말라는 건 도대체 뭔 소리인 건가. 결과적으로 황 대표가 대학교 1학년생들을 붙잡고 늘어놓은 헛소리는 본전도 못 뽑게 되었다. 

  뭐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긴 하다. 그는 자기 자식은 대기업에 보내놓고 《 "젊은이들 다들 대기업, 공무원만 되려해", 중앙일보, 2019.05.23 》 라고 하신 분이고, 《 "지방 중소기업도 사내 카페를 멋지게 만들어서 회사 가는 게 즐겁도록하면 지방으로 가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민중의소리, 2019.05.23 》 라고 하신 분이 아닌가.  역시 그 분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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