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8일 월요일

나달은 이미 죽어있었다.



2019 Australian Open 
Final 

Novak Djokovic v. Rafael Nadal
6-3, 6-2, 6-3

  노박 조코비치의 7번째 호주 오픈 결승과 라파엘 나달의 5번째 호주오픈 결승은 노박 조코비치의 7연승으로 끝났다. 라파엘 나달은 호주오픈에만 5번 결승에 올라(09, 12, 14, 17, 19) 페더러를 상대로 승리하며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2009년을 제외하고 4번 연속 준우승으로 끝났다. 부상으로 그다지 좋은 폼을 보이지 못할 거라 보였던 나달이 무실세트에 단 한 번의 브레이크를 허용하며 결승에 올라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결과는 허무한 경기 끝에 끝났다. 나달은 브레이크를 4번 내줬고, 조코비치는 손쉽게 7번째 호주오픈 우승을 거뒀다. 조코비치가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하기에는 나달이 너무 허접했다. 다들 조코비치가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다고 하지만, 조코비치의 실력은 2015 US오픈과 2016 호주오픈이 절정이었다. 이번 대회의 조코비치는 그냥 평범했고, 조코비치의 상대들은 자기들 끼리 싸우다 힘빼며 자멸했고, 기량이 떨어진 나달은 자신의 전략과 함께 자멸했다. 


1. 노박 조코비치 

- 조코비치는 크루거, 쏭가, 샤포발로프, 메드베데프, 니시코리, 푸이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쏭가가 부담을 줄 수 있었지만, 쏭가는 하락세라 그리 어렵지 않게 컷오프 되었다. 특히 니시코리는 카레아노 부스타와의 접전이 부담되었는지, 뭐 해보지도 못하고 중도 기권했고, 푸이는 상승세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준결승에서 허망하게 털렸다. 

- 조코비치는 잘했는가? 사실 조코비치의 폼이 그리 좋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코비치의 플레이는 아직 안정되지는 않은 듯 하다. 샤포발로프에게 한 세트를 내준 것은 사실 안 내줘도 될 것을 경기도중 흔들리면서 내줬고, 메드베데프에게 한 세트를 내 준 것 역시 굳이 안내줘도 될 것을 내줬다고 할 것이다. 샤포발로프와 메드베데프가 역시 힘을 조금 내어서 잠시 몰아세웠을 뿐 역시 조코비치의 에러로 세트가 나갔을 뿐이다. 

- 니시코리와 푸이. 니시코리는 조코비치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할 정도로 조코비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 둘의 플레이 스타일이 겹친다고 혹자들을 말하지만 이는 내가 보기에는 오해다. 양손 백핸드 다운 더 라인을 잘친다고 다 비슷한 건 아니다. 임팩트 타이밍이 조코비치가 좀 더 늦고 여유 있다. 니시코리는 반 템포 빨리 친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스텝 자체도 다르다. 큰 신장 차이 덕에 조코비치의 스텝이 훨 씬 보폭이 크고 유연함에 중점을 둔 스텝이라면, 니시코리의 스텝은 민첩성과 엄청난 잔발을 활용한 스텝을 쓴다. 간단히 말하면 니시코리가 더 급하고 서둘러서 치며, 더 공격적으로 치고, 니시코리의 공이 더 낮고 날카롭고 빠르고 짧다. 
  니시코리의 이러한 플레이가 조코비치에게 잘 먹히려면 니시코리는 평소보다 많은 활동량이 요구되며, 공격이 실패했을 때 버텨낼 여유로운 멘탈을 지니던가, 아님 조코비치가 먼저 실수할 때까지 안정적이고 일정한 공을 보내도록 방어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적어도 내가 본 경기 중에 니시코리가 그렇게 해낸 적은 2014 US 오픈 준결승 밖에 없다. 이상하리 만큼 니시코리는 조코비치만 만나면 혼자 멘탈이 털렸고, 자멸했다. 
  루카 푸이. 이번 호주오픈에서 밀로시 라오니치의 선전이 돋보였다. 그는 백핸드를 슬라이스로만 하는 강수까지 두면서 서브와 포핸드에 집중했고, 리턴 게임에서도 랠리를 지속하는 데 중점을 뒀다. 경기력이 좋았다. 그런데 그걸 루카 푸이가 잡아버렸다. 푸이의 공격적 백핸드가 라오니치에게 먹힌 듯 했다. 
  그러나 푸이와 조코비치의 경기는 허망했다. 그는 조코비치의 기계적 방어의 벽을 넘지 못하고 혼자 찬스를 알아서 다 놓쳤다. 게임스코어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푸이는 그래도 꽤나 멘탈이 잘 버티며 조코비치를 몰아세우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물론 1세트까지 였지만. 푸이는 공격적으로 플레이 하려다 자멸했다. 


2. 라파엘 나달
- 치치파스가 페더러를 컷오프 시켰을 때 모두들 흥분했다. 페더러가 결코 못하지 않았기에 그를 기량과 정신력에서 모두 압도하며 경기를 종결 시킨 치치파스가 나달도 잡고 새로운 스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냥 사람들이 테니스를 제대로 안보나 싶었다. 치치파스는 애초에 나달의 상대가 안된다. 마치 정현이 조코비치는 잡았지만 페더러에게 허망하게 털린 것과 비슷하다. 상성이 안 맞는다. 
  페더러는 대단히 공격적으로 플레이한다. 그런데 페더러 치치파스 경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치치파스가 페더러를 몰아치는 게 아닌데도, 페더러가 여유있게 공을 쳐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상하리 만큼 페더러는 자리를 잡고 때리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치치파스가 10대 나달과 비슷하게 플레이 했기 때문이다. 
  페더러의 직선적인 공격들을 치치파스는 활동량과 탑스핀으로 커버했다. 탑스핀이 엄청났다는 게 아니다. 방어적인 탑스핀 공을 쳐냈다는 거다. 그리고 그의 공은 무작위적으로 떨어졌다. 짧거나 길고, 빠르거나 느렸다. 페더러의 타이밍을 완전히 뺐을 수 있었다. 페더러는 자기의 흐름을 찾지 못하자 당황한 듯 했다. 그리고 치치파스는 이상하리 만큼 엄청난 정신력으로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켰다. 이게 그가 페더러를 정신력에서 이겼다는 점이었다. 게임의 흐름이 이미 여러 차례 페더러에게 넘어갈 상황에서 치치파스는 어떻게든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켰다. 자신의 리턴게임이 허망하게 끝나더라도 어떻게든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켰다. 당황한 쪽은 페더러 쪽이었다. 마치 2017년 US오픈에서 델포트로가 페더러를 물리친 방법과도 같았다.
  그럼 치치파스는 왜 나달에게 안되나? 그의 한 손 백핸드는 스윙 타점 순간이 매우 짧다. 거대한 신장에 비해 짧은 그의 원백 스윙은 공을 정타로 때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짧고, 주로 탑스핀 형태로 간다. 느리고 어정쩡한 탑스핀이다. 하지만 그 공이 꽤나 길고 안정적으로 넘어가고, 치치파스의 활동량이 보조되니 랠리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 같은 특성은 몬스터 탑스핀에다 왼손인 나달의 포핸드에 말 그대로 밥이다. 나달이 그냥 그의 백핸드로만 치면 그는 그냥 나달에게 찬스볼을 내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는 신예다. 나달의 탑스핀에 아예 대처가 안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미 조코비치, 즈베레프 등을 부숴버리며 결승에 올랐던 바르셀로나와 로저스 컵에서도 결국 나달에게 허망하게 털리며 돌풍을 마감했던 과거를 봐도 충분하다. 페더러는 치치파스를 처음 만났기에 당황했을지 모르지만, 이미 나달은 어렵지 않게 치치파스를 털은 경험이 있다. 
  그의 서브는 좋다고는 하지만 이스너, 카를로비치, 페더러 등에 비할 바는 아니고, 그것도 마냥 파워로 내리 때리는 서브다. 나달에게 딱히 위협이 될 수가 없다. 나달을 만난 그는 뭐 해보지도 못하게 멘탈이 완전히 박살난 채로 허망하게 털렸다. 

- 나달의 이번 호주오픈은 어찌보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토마스 베르디흐가 조금 문제가 되었을 뿐 나달이 만난 건 호주 출신 선수들 아니면 드 마이어, 티아포, 치치파스 등 유망주들 뿐이었다. 베르디흐와의 경기는 베르디흐가 변화된 나달의 플레이에 적응을 못하며 1, 2 세트를 허망하게 내주면서 끝나버렸고, 나달의 공을 치기에 유망주들은 여전히 아직 경험이 수없이 부족했다. 유망주들은 차라리 조코비치나 페더러가 편하다. 나달의 탑스핀과 긴 랠리는 다른 선수들과의 경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경기이기 때문이다. 

-  나달의 서브. 나달의 플레이스타일이 바뀌었다. 나달은 좀 더 플랫한 서브를 넣었고, 그 다음 이어지는 포핸드를 때리는 3구 플레이에 보다 집중했다. 리턴 때는 그냥 아니다 싶은 공들은 굳이 쫓아가서 치려고 하지 않았다. 철저히 효율적으로 플레이를 하려고 하는 듯 했다. 델포트로와 명경기 하다가 조코비치와의 경기에서 졌던 윔블던, 티엠과 명경기 하다가 델포트로와의 경기에 기권한 US오픈에 대한 피드백인듯 했다. 
  나달은 서브게임에서 대단히 공격적으로 플레이하고, 리턴 게임은 상대의 실수 혹은 우연한 찬스로 30를 따지 않는 한 쉽게 버렸다. 브레이크는 세트 당 딱 한번을 따내고 나머지는 안정적으로 가자는 전술인 듯 했다. 브레이크 찬스에만 과거의 플레이가 나왔다. 이게 조코비치와의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는 주효했고, 경기를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이러한 플레이는 유망주들과 베르디흐를 당황케 했다. 



3. 결승 
- 나달의 변화한 플레이스타일은 조코비치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경기 전에 내가 걱정했던 부분은 나달의 서브 3구 플레이가 먹히려면 상대의 리턴이 코스로 들어오는 비중이 적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조코비치의 리턴은 그 명성답게 조코비치의 폼이 아무리 좋건 나쁘건 길게 들어오고 양쪽 코스로 들어온다. 나달의 3구플레이는 전혀 통하지 않았고, 나달은 에러를 연발했다. 

- 나달은 공격적으로 플레이했고, 그건 엄청난 에러로 이어졌다. 나달은 기존 경기에서 재미본대로 똑같이 했다. 하지만 상대는 조코비치였고, 조코비치의 스트로크는 일단 길게 떨어진다. 나달은 그것을 공격적으로 쳐내려고 했고, 에러로 이어지거나 조코비치의 방어로 끝났다. 나달은 더욱 조급해졌고, 무리하게 공격적으로 치려하는 듯 했다. 당연히 그것은 무리수가 되었다.

- 플랫한 서브는 조코비치의 밥이다. 나달은 보다 빠른 서브를 쳤다. 그 말은 서브가 보다 플랫해져 변수가 떨어지고, 서브는 물론 그 리턴 속도도 빨라져 3구를 치는 타이밍이 빨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나달은 호주오픈에서 결승까지 다 이겨서 티는 안났지만, 명확히 민첩성이 떨어져 있었다. 나달의 에러가 이상하리 만큼 많았던 것은 자신의 서브가 빨라진 만큼 상대의 리턴이 무너져야 하는데, 그것이 조코비치의 리턴을 흔들리게 할만큼은 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이 3구 타이밍을 잃게 만들었다. 

- 조코비치는 허점을 드러냈다. 조코비치는 잘했다. 그 답지 않게 흔들리는 순간을 잘 버텨냈다. 사실 조코비치가 허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코비치는 나달에게 워낙 추격당하거나 역전당한 적이 많아서 그런지, 이상하게 리드할 때 매우 불안해했다. 나달을 상대로한 그의 세컨서브는 허접했다. 나달이 이미 자신의 흐름을 잃었기에 그것을 공략하지 못했을 뿐이다. 만약 나달이 방어적으로 플레이하다가, 이 틈을 노려 공격적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썼다면 조코비치를 흔들리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나달은 조코비치에게 이미 정신적으로 졌다. 나달은 그래도 상당히 좋은 흐름으로 결승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나달은 호주오픈에 강하다는 조코비치의 전적이나, 최근 상대전적이 안좋은 기억, 윔블던을 내준 기억, 자신의 몸상태가 그리 좋지 않을 거라는 기억들 때문인지 조코비치를 엄청 의식하는 듯 했다. 던롭으로 바뀐 공이 무거워졌는지 어쩐지 보다는 이미 나달은 조코비치에게 정신적을 밀린 것 같았다. 바로 치치파스가 페더러에게 버티며 이겼던 그 정신력이다. 조코비치가 그렇게 강력하게 공을 치지는 않았지만(물론 몇몇 결정적인 순간에도 조코비치는 기계처럼 공을 쳐내며 승기를 잡았다.), 이미 나달이 경기 시작부터 조코비치의 아우라에 눌린 느낌이었다. 나달은 홀로 에러를 연발했고, 그의 공의 파워는 랠리와 함께 이어지지 않았다. 그냥 이미 조코비치한테 지는 것을 전제로 깔아둔 것 같았다. 원래도 조코비치의 서브게임은 브레이크 하기가 어렵고, 자신의 서브게임은 힘들게 따냈지만, 이번에는 그게 마치 "포기"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 경기는 허망했고, 랠리도 별로 많이 하지도 않았다. 그냥 조코비치가 루카 푸이를 이긴 것 처럼 허망하고 평범하게 나달이 무너졌다. 조코비치는 나달을 이제 완전히 밥으로 보는 게 확실한 듯 하고, 나달은 조코비치를 확실히 벽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이제 테니스가 재미없어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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