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비외른 보리Bjorn Borg,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로드 레이버Rod Laver,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존 매켄로John McEnroe
출처: lavercup.com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이 최초로 복식 파트너로서 경기를 출전했다. 과거 2010년 로저스컵 복식 대회에서 당시 세계랭킹 1, 2위였던 라파엘 나달Rafael Nadal과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복식 파트너로 출전한 이래 가장 큰 뉴스이다. 사실 나달-조코비치 조합은 나달-페더러 조합에 비하면 그 무게감에 있어 비교도 안된다.
2010년 마이애미 마스터즈에 복식조로 나선 조코비치와 나달.
그들은 1회전에서 라오니치Raonic/포스피실Pospisil 조를 만나 7-5, 3-6, 8:10으로 패하고 탈락했다.
출처: cnn.com
그 둘의 복식 경기는 미국 대표와 유럽 대표가 맞붙는 골프의 라이더컵Ryder Cup처럼 유럽팀과 세계팀이 나뉘어 겨루는 레이버컵Laver Cup에서 열렸다.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두 번이나 거둔(오픈 시대 전 1962년, 오픈 시대 후 1969년) 테니스의 전설 로드 레이버Rod Laver의 이름을 딴 레이버컵은 올해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페더러와 나달이 한팀(유럽팀)에 속하면서 제대로 화제를 끌었다. 대회장소는 체코 프라하 O2 아레나에서 열렸고, 대회의 코트 표면은 인도어 하드 코트이다.
레이버컵의 진행은 조금 복잡하다. 80년대 라이벌인 비외른 보리Bjorn Borg와 존 매켄로John McEnroe가 각 유럽팀과 세계팀의 캡틴을 맡는다. 그 둘은 앞으로 3년 간 캡틴을 맡고 그 이후에는 다른 테니스 레전드들이 참여한다. 양팀은 백업선수 포함 7명의 선수로 구성된다. 경기는 사흘에 걸쳐 단식 9경기, 복식 3경기가 열린다. 첫 날의 각 경기의 승리팀은 1점, 두 번째날 경기의 승리팀은 2점 그리고 마지막 날 승리팀은 3점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총 13점을 따낸 팀이 우승팀이 된다. 만약 12 : 12 동점이 되면, 복식 경기가 decider경기로 추가로 열린다. 또한 각 경기는 2세트에, 10점을 따면 승리하는 매치 타이브레이크로 진행된다.
유럽팀의 선수는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마린 칠리치Marin Cilic,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 토마스 베르디흐Tomas Berdych 이렇게 6명, 여기에 페르난도 베르다스코Fernando Verdasco가 백업선수로 더해지고, 세계팀의 선수는 존 이스너John Isner, 샘 퀘리Sam Querrey, 잭 삭Jack Sock, 닉 키리오스Nick Kyrgios, 데니스 샤포발로프Denis Shapovalov, 프란시스 티아포Francis Tiafoe 그리고 백업선수로 타나시 코키나키스Thanasi Kokkinakis가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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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는 결국 유럽팀이 15:9로 우승하면서 끝이났다. 선수명단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유럽팀의 우세가 내내 이어졌지만, 가장 큰 점수가 걸린 마지막 날 단식 경기에서 나달이 이스너에게 패하면서 우승의 향방은 페더러와 키르기오스의 마지막 단식 경기로 까지 미뤄졌다. 올 초 마이애미에서 엄청난 경기를 보여줬던 두 선수의 레이버 컵 마지막 경기는 역시나 대단한 접전이었다. 첫 세트를 키르기오스가 따냈지만 페더러가 두 번째 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따내며 매치 타이브레이크에 접어들었다. 대회 우승이 고작 두 포인트로 결정되는 매치 타이브레이크는 긴장감 속에 페더러의 11:9 승리로 끝났다. 경기 승패가 결정되자 나달이 달려와 페더러에게 뛰어 안기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출처: lavercup.com
페더러와 나달의 복식은 두번째 날에 열렸다. 미국 데이비스 컵 듀오인 잭 삭과 샘 퀘리가 그 상대였다. 페더러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스탄 바브린카Stan Wawrinka를 파트너로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나달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마크 로페즈Marc Lopez와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었다. 페더러는 발리와 컨트롤 위주인 복식의 경기 스타일에 잘 맞는 선수이다. 반면 나달은 포핸드 탑스핀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고, 발리는 주로 피니쉬로만 쓰는 선수이기 때문에 복식과 잘 맞는 선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같은 사이드의 코트에 서있는 라파엘 나달Rafael Nadal과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출처: lavercup.com
페더러는 바브린카와의 조합 때처럼 듀스코트에 섰고, 나달은 어드코트에 섰다. 발리 위주인 복식에서는 코트 가운데로 때리는 공이 받기 까다롭기에 포핸드가 코트 가운데를 향하게끔 포지셔닝을 하는데, 의외로 두 선수는 각각의 백핸드가 코트 가운데를 향하게 끔 포지션을 정했다. 그들은 경기 전 전술 회의에서 이 포지션을 결정했고, 백핸드는 칠 사람이 먼저 소리치기로 하며, 네트 어프로칭은 함께 하는 것으로 정했다.
명성이나 기량만 따지면 이 조합을 이길 수 있는 조합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기에 경기 결과의 예측은 꽤 비등바등했다. 나란히 미국 국적인 잭 삭과 샘 퀘리는 다수의 데이비스 컵 복식 경기를 펼치며 호흡을 맞춰왔다. 또한 그 둘은, 행여 미국 선수가 아니라고 할까봐, 강력한 서브와 파워풀한 포핸드를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를 펼친다. 인도어 하드 코트라는 환경은 그 둘에 강력한 이점을 줄 것이다.
반면 페더러와 나달은 같이 연습을 한 것도 이번을 제외하면 한 번밖에 없고, 항상 서로를 상대하는 것만을 해왔기 때문에 호흡을 맞춘 경우는 그냥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나달의 영어는 오랜시간 놀림거리로 유명했다. 둘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오랜 시간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페더러와 나달의 플레이 거의 정 반대나 다름없다. 탑스핀 포핸드와 코트 바깥 플레이에 익숙한 나달과 올라운더 페더러의 플레이는 복식조로 호흡 맞추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경기 도중 수없이 작전회의를 해서 화제가 된 FeDal
출처: lavercup.com
경기는 긴장이 있었지만,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기에 대체로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많은 팬들은 나달/페더러 조의 승리를 원했을 것이 틀림없었기에 그 둘은 설렁설렁하기에는 어려웠다. 1세트는 브레이크를 성공한 나달/페더러 조가 6-4로 가져갔다. 페더러의 서브, 나달의 피니쉬 발리가 빛을 발했다. 1세트를 잡은 그들은 조금 긴장감이 떨어졌는지 2세트는 허망하게 1-6으로 내줬다. 나달은 확실히 복식에는 좀 안맞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나달의 서브는 너무 약했고, 발리는 피니쉬를 제외하면 낮게 깔리지 못했다. 그러나 매치 타이브레이크에 접어들자 분위기는 확실히 달랐다. 역시 월드클래스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 나달/페더러 조는 매치 타이브레이크를 확실하게 리드했다. 페더러 서브, 나달 발리 조합은 확실히 강력했다. 나달은 집중력이 살아난 반면 상대팀의 잭 삭은 더블 폴트를 비롯한 에러를 연발하며 멘붕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나달/페더러는 8:1까지 앞섰고, 막판 잭 삭이 조금 살아나면서 포인트를 내주긴 했지만, 10:5로 무난한 승리를 가져왔다.
페더러는 나달과의 복식 포함 3경기를 출전해 가장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면 전부 승리를 거뒀고, 나달은 단식 2경기, 복식 2경기에 출전해 각각 1승 1패씩 거두며, 2승 2패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나달이 마지막 날 단식 경기에 승리했다면, 우승은 그 때 확정되었겠으나, 나달이 져버린 덕에 페더러는 또다시 드라마적인 승리로 대회 우승의 한 복판에 섰다. 인도어 코트이기도 하고, 나달의 컨디션이 딱히 좋아보이는 것은 아니어서, 나달이 질 것이라는 생각은 안한 건 아니지만, 대회 양상 전체가 너무 드라마틱해서, 나는 사실 대회를 보는 내내 승부조작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페더러와 나달의 복식 경기는 경기 자체도 대단히 재미있게 봤지만, 게임에서나 볼법한 그 둘이 함께 펼치는 플레이를 보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함께 전술을 짜고, 경기 내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은 아마 그들의 팬들에게는 이상한 기분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이 아닌가. 함께 사진 안에 들어와있는 모습으로도 대단히 설레는 일이었다.
역시 클래스는 클래스임.
출처: lavercup.com
어쨌든 레이버컵은 페더러와 나달 덕분에 크게 화제가 되었고, 대회의 지속적인 흥행가능성에도 녹색불을 켰다. 조코비치와 머레이가 안 나온 것이 오히려 긍정적인 일이 되었다. 그 둘은 내년에 함께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 부상으로 빠진 캐나다 선수인 밀로스 라오니치Milos Raonic나 일본의 케이 니시코리Kei Nishikori는 내년 세계팀 에이스로 충분히 거론될 수 있는 선수이다. 이렇게만 대회가 지속된다면, 대회 흥행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페더러와 나달 덕분에 레이버컵은 제대로 흥행했고, 차기 대회에 대한 열기도 커졌다.
그 존 메켄로John McEnroe의 팀이 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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