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3일 목요일

조커는 신화가 될 수 없는가



조커Joker, 2019








1. 호아킨 피닉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대단했다. 극 중 조커의 웃음, 자세, 말투, 걸음걸이를 포함한 모든 행동거지는 전부 대단히 작위적이다. 몰입되지 않으면 정말 웃기고 유치하게 보일 수 밖에 없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자칫 조금만 어색해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될 판이었다. 하지만 그의 연기가 보여주는 깊이는 어쩌면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당장 옆에서 일어나는 듯한 현장감이 덧대진 매우 진지한 상황으로 만들어 냈다. 대단했다. 



2. 미국적 배경?

  뭔가 체감해야할 미국적 배경이 필요한가 싶었다. 영화의 배경은 굳이 70년대의 뉴욕의 모습을 택했다. 왜 그 시대와 그 장소 이어야 하는지는 대충 감은 잡힌다. 하지만 그것 또한 책으로 읽은 것이었을 뿐.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뭔가 내가 더 알아야할 미국적 배경이 필요하지 않을까? 뭔가 더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그 시대와 장소의 현장감에 문화적인 거리를 두고 있는 내가 정말 영화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지 영화를 보는 내내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결정적이었던 건 광대복장을 한 아서 플렉의 첫 살인 이후, 고담 전체가 시위에 뒤덮이게 되는 전개였다. 영화의 설명이 불친절한 것일지는 몰라도, 조커의 살인이 왜 사회 전체가 가진 불만을 촉발하여 폭발시키게 되었는지는 완전히 공감하기 어려웠다.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직원들이 얼마나 개새끼들이었는지 현장에 없던 대중이 보았을까. 화이트칼라에 대한 단순한 혐오와 패배감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불만으로 가득 찬 대중이 광대라는 익명성에 가린 것에 매료되었을 뿐이었을까. 익명성이 문제였다면 왜 영화의 메시지는 종결까지 일관하지 못했을까. 애당초 아무리 술에 취했다 한들 범죄의 온상인 고담의 지하철을 그 화이트 칼라들이 밤늦게 탈수나 있었을까. 그들이 성추행하던 젊은 여자는 과연 그 전철에 타고 있을만 했을까.



3. 토머스 웨인

  배트맨인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토머스 웨인. 의사이자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기업가로 알려진 그는 대체로 인격적으로 완성된 캐릭터로 등장한다. 코믹스, 영화,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토머스 웨인은 현자나 선인 쯤으로 그려진다. 그렇게 넘치는 휴머니즘과 박애주의로 평생을 빈자 등 사회의 하층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토머스 웨인은 아이러니 하게도 바로 그 하층민에 속하는 조 칠이라는 길거리 강도에 의해 사망한다. 토머스 웨인이 브루스 웨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는 점, 바로 토머스 웨인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극적인 힘은 자신이 도우려고 했던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죽게 된다는 바로 그 아이러니다.
  그런데 토드 필립스의 조커에 등장하는 토머스 웨인은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영화의 시각이 주인공인 아서 플렉을 따라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기서 토머스 웨인은 단순히 아서 플렉을 비롯한 사회의 반항세력에 적대적이며, 위선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아서 플렉이 찾아갔을 때 그의 어머니를 가리켜 스스럼 없이 망상증 환자라고 일컫거나, 아서 플렉에게 주먹을 날린다거나, 광대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온 시위 대중에 대해 비겁한 도피자라고 비난하는 등 그는 절대 인격적 성인의 모습은 아니다. 영화의 시각(아서 플렉의 시각, 시위 대중의 시각)에서 토머스 웨인은 우리 자신과 완전히 구분된 다른 세계의 사람이며, 권력자이며, 정치인이자, 우리 자신들을 청소해내려고 하는 존재다. 아서 플렉과 시위 대중이 수퍼 래트라면 그는 수퍼 고양이인 셈이다. 



4. 망상증

  토머스 웨인에게 몇 년째 계속 편지를 보내며 매달리는 듯한 아서의 어머니 페니 플렉은 망상증 환자다. 그녀는 자신과 토머스가 사랑하는 사이이며, 아서 플렉이 그의 자녀라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그 부분이 등장했을 때,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뭐야.. 조커랑 배트맨이 이복형제야?.. 이런 식으로 조커와 배트맨을 대치시키는 거야?.. 이게 새로운 설정인가?.." 
  인생이 망칠때로 망쳐지고 있는 아서 플렉은 그 이야기를 듣고, 토머스 웨인을 찾아간다. 자신이 아들이라고, 빨리 자신을 구원해달라며 말이다. 토머스 웨인은 그녀가 망상증 환자에 불과하다고 냉정하게 내친다. 그럴 수 있다. 아서 플렉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망상증 환자라는 게 단순히 모욕적인 이야기여서 믿지 않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이전에 이미 자신이 토머스 웨인의 자식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자신의 불행한 삶의 돌파구로 믿고 싶었는 듯 했다. 그는 왜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하지 않냐면서 토머스를 원망한다. 물론 그는 토머스의 말대로 아캄 정신병원에 가서 어머니가 망상증 환자임을 확인하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왜 맛이 갔는지도 확인하게 된다. 
  이는 영화를 보는 내가 이 영화 속 내 사실 중 무엇이 망상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전부 의심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중간에 뜬금없이 혼란스러워 졌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게 영화는 아서 플렉의 애인이 사실 망상이라는 걸 보여주며 나를 엿먹였다. 



5. 애인

  극 중 아서 플렉은 그 흑인 여자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한 번 탔을 뿐이다. 그 여자는 흔히 하는 푸념으로 말을 잠시했을 뿐이고, 심지어 아서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느닷없이 그녀의 손짓을 지멋대로 한 번 흉내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스토킹한다. 
  이후 영화는 그녀가 아서를 찾아와 자신을 스토킹했냐고 따지면서 말도 안될 정도의 배포를 보여주며 썸을 타게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스토킹한 이상한 동네 남자에게, 심지어 딸도 있는 여자가 그렇게 대처하는 경우는 없다. 패배감과 열등감에 찌들어 여자들에게 말을 걸 자신이 없는 남성들이 상상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아 뭐 그래도 병신도 짝이 있다고, 뭐 그냥 뭔가 어떤 장치적 배역인가 보다 했다. 
  하지만 그건 역시나 아서 플렉의 환상이었다. 정말 비참한 현실을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분명히 그랬다. 만약 영화의 아서 플렉과 같은 사람에게 그러한 애인이 있다면, 그렇게 이어지는 애인이 있다면, 정말로 재미 한 개도 없는 병신 같은 농담에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애인이 있었다면, 아서 플렉은 절대 조커가 될 수 없다. 그 누구라도 조커가 될 수 없다. 



6. 왜 영화는 그를 죽이지 않았을까...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돈을 불태우며 이렇게 말한다. "It's not about money. It's about sending a message. Everything burns.." 그렇다. 중요한 건 메시지이다. 
  아서 플렉은 쇼프로그램의 호스트인 머레이를 시작으로 무차별 살상극을 벌인 후 경찰에 잡혀 연행되지만, 광대 가면을 쓴 시위대에 의해 구출되고 이 운동Movement의 시초로서 받들여진다. 그 과정에서 시위대 중 한 명에 의해 토머스 웨인과 마사 웨인이 살해당하는, 바로 배트맨의 탄생 과정이 그려지기도 한다. 토머스 웨인을 죽인 건 아서 플렉이 아니라, 그에 의해 동요되고 촉발된 알 수 없는 시위 대중 중 어느 한 명, 바로 Ananymous였다. 
  나는 당연히 아서 플렉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조커라는 신화를 위해서, 앞으로 이어질 영화의 세계관을 위해서라도 죽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죽을 필요가 없었지만, 아서 플렉은 반드시 죽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조커라는 캐릭터의 가장 큰 특징은 그가 기존의 질서와 규율에 완벽하게 반하는 캐릭터라는 점이다. 여러 설정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의 과거도 없다. 다크나이트에서 묘사한 것 처럼 심지어 그의 옷에는 상표도 없다. 그에게는 인간적 배경도 설정도 없다. 그에게 역사적 경로와 삶의 연속성이란 없다는 뜻이다. 그는 오로지 현재의 존재로서만 등장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질서와 규율따위가 의미가 없다.  
  그런데 영화에서 굳이 조커라는 이름으로 아서 플렉이라는 영화 오리지널의 이름과 삶을 부여했다면 그는 순교해야만 했다. 그는 고담시로 대표되는 사회의 불만을 대표했고, 그들의 시위라는 의사표현을 촉발시켰다. 토머스 웨인이 아서 플렉이 아니라 그로 인해 등장하게 된 광대가면에 가려진 익명의 시위자에 의해 사망한 것처럼 영화는 아서 플렉이라는 인격적 존재가 승화하고 단지 "조커"라는 메시지만이 남는 것을 묘사했어야 했다. "조커는 누구도 될 수 있다. 바로 우리 모두가 조커가 된다."라는 메시지 말이다. 
  그로써 최초의 조커이자 촉발자인 아서 플렉이라는 개인은 사라지지만," 조커라는 메시지는 일종의 사상으로써 어디에나 존재하게 된다. 바로 공포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조커"를 단지 악당캐릭터 한 명을 넘어서 어떠한 체계와 질서로도 해결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위험, 그 자체로 묘사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만약 영화가 그렇게 아서 플렉을 순교 시켰다면, 영화적 완성도와 몰입도가 더욱 높아졌을 것은 물론, 호아킨 피닉스와 토드 필립스를 배트맨이라는 코믹스 세계관에서 더욱 자유롭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차후 제작될 배트맨 단독 영화의 설정 또한 수월해질 것이며, 새로운 조커의 등장도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잭 니콜슨, 히스 레저 등을 거치며 해석되고 구성되어지는 21세기 최고의 빌런 조커라는 캐릭터에 대해 호아킨 피닉스라는 대배우를 제물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대답을 제시할 수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는 아서 플렉이 아캄 정신병원에 남아있는 것으로 끝났다. 발에 (아마도 상담사의 것이었을)피를 묻힌 채 우스꽝스럽게 도망다니는 모습으로 말이다. 음악이 밝았다. 



7. 영화의 위험

  우울한 분위기. 현실에 가까운 주인공의 절규. 그것의 해소 방식으로 선택한 폭력. 현대 사회 다수가 공감할 좌절을 표현하고 있기에 왜 이 영화를 위험한 것으로 여길지는 알겠다. 그러나 뭐 그렇게 새삼스러운 내용도 아니다. 이 정도 내용을 담은 영화야 머레이 역을 했던 로버트 드 니로의 택시드라이버 부터 시작해서 오지게도 많지 않은가. 
  영화를 보고 나서 대단히 밝아질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우울해지지도 않았다. 훌륭했던 연기 덕에 몰입감은 높았다. 다음 장면이 궁금해 화장실가는 것도 참았다. 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이 얼마나 현실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지는 알겠지만, 왜 그가 직접 해소를 위해 나서지는 않았는지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린 강도들이 부수고 약탈해간 광고판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항변하지 않는다. 어린이 병원에 총기를 가져간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저 소품이었다는 말도 안되는 항변만을 두어번 되내일 뿐이었다. 그렇게 미쳐가던 그는 자신의 조크와 개인적 고통을 웃음거리로 썼다며 머레이를 살해한다. 모든 해소는 폭력으로 나온다. 왜 그렇게만 해야했을까. 
  그는 지나치게 고립되어 있다. 그는 너무나도 불행한 자신의 삶에서 나와 타인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해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건 모두가 그런 것 아닌가. 내가 영화를 보며 걱정했던 건 바로 이 점이었다. 영화를 보는 모두가 자신의 삶을 영화 속 아서 플렉의 불행에 찌든 시선에 공감하여 비춰 보지는 않을까. 다들 자신만이 미저러블하다고 느끼며 타인에게 이해를 강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관점의 유혹이 있었다.




조커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다.







2019년 9월 27일 금요일

2019 US OPEN review



1.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노박 조코비치와 로저 페더러가 각각 4R와 QF에서 탈락했다. 자꾸 어깨타령하던 조코비치는 역시나 그랜드 슬램 천적 스탄 더 맨을 넘지 못하고 두 세트를 내준 후 기권했다. 로저 페더러는 체력적 열세를 보이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던 디미트로프에게 통산 첫 패배를 당했다. 노박의 탈락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면, 황제의 탈락은 역시나 의외였다. 디미트로프가 선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황제를 위협할 선수가 아닌데, 황제가 초반 세트를 내준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5세트에서 자멸한 것이 아쉬웠다.



역시 황제는 올해 US오픈도 
뜬금포로 탈락했다.



2. 

  조코비치를 상대로 강력함을 제대로 선보이며 부활하나 싶었던 바브린카는 이어지는 경기에서 북미 하드 시즌 최고 화제 메드베데프에게 패배하며 탈락했고, 황제를 탈락시키며 통산 3번째 그랜드슬램 세미 파이널에 이름을 올린 그리고르 디미트로프 또한 초반 우세와 찬스를 살리지 못한 채 역시나 메드베데프에게 패배했다. 이로써 노박과 황제가 포진되어 있던 top draw의 마지막 승자는 96년생 신성 다닐 메드베데프Daniil Medvedev가 되었다. 




스탄 더 맨은 거물 노박을 잡았지만, 
메드베데프에게 잡혔다. 



3. 

  신장 1.98m의 베이스라인 러너인 러시아의 신성 96년생 다닐 메드베데프Daniil Medvedev는 이번 북미하드코트 시즌 최고의 스타다. 그는 워싱턴오픈, 로저스컵, 신시내티 마스터즈 그리고 이번 US 오픈 까지 20승 2패를 기록 중이며, 4개 대회에서 전부 결승에 올랐다. 비록 워싱턴에서 키르기오스에게 석패하고, 로저스컵 결승에서는 라파엘 나달에게 털렸으나, 신시내티에서는 준결승에서 조코비치를 누르고 결승에선 고팽을 가뿐히 제치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조코비치가 작년에야 겨우 땄던 신시내티가
이 친구에겐 첫 마스터즈1000 타이틀이다. 


  그가 북미 시즌 동안 승리한 선수로는 마린 칠리치, 도미닉 티엠,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 카렌 카차노프, 카일 에드먼드, 그리고르 디미트로프, 다비드 고팡, 안드레이 루블레프 그리고 노박 조코비치가 있다. 키리오스와의 경기도 타이브레이크 접전이었다. 그가 북미시즌동안 일방적으로 털린 경기는 라파엘 나달과의 로저스컵 결승이 유일하다.(6-3, 6-0 나달 승) 그리고 그는 생애 첫 그랜드슬램 결승 상대로 또다시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을 만나게 되었다. 



4. 

  메드베데프는 원래도 지랄 맞은 러시안으로 유명했다. 치치파스와는 뭐 거의 치고박기 직전에 이를 정도였다. 치치파스가 자리를 재빨리 피했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면상에 죽빵이라도 한 방 날릴 기세였다. 역시나 이번 US오픈에서도 그는 볼보이한테 시비걸고, 심판한테 짜증내느라 화제가 되었다. 관중들을 비꼬기까지 했다. QF가 끝난 후에는 또 미안하다고 사과하긴 했으나, 그의 이미지는 끝난 듯 하다. 하필 또 결승 상대는 지랄 안하기로 유명한 나달이다. 


5. 

  라파엘 나달은 칠리치에게 유일하게 한 세트를 내준 것 말고는 무실세트로 결승까지 드라이브했다. 나달은 대진운도 좋았고, 2R에서는 상대의 기권으로 체력도 비축했다.  다른 경기들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작년 US오픈에서의 카차노프, 티엠, 델포 등과 벌였던 혈전과도 같은 빡센 경기는 없었다. 
  이번 대회에서 나달은 대단히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뭐 이번 시즌 컨셉인 것 같기도 했다. 보다 더 공격적이고 보다 더 많은 에러가 나왔다. 공격적이다 보니 게임이 좀더 흐름을 타게 되었다. 몰아부칠때는 미친듯이 몰아부치지만, 공격이 빗나가면서 자신의 찬스를 놓치며 한 방에 흐름을 내주며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달은 위기를 전부 극복해내며 결국 자신의 5번째 US오픈 결승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는 서브앤발리가 당연한 전략 중 하나가 된 나달



6.

  결과적으로 나달은 자신의 4번째 US오픈 우승이자, 통산 19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을 달성했다. 예상대로 메드베데프는 플레이 특성상 나달에게 그리 위협적인 선수는 아니었다. 다만 1, 2세트를 무난하게 나달에게 내주었지만, 3, 4, 5세트에서 엄청난 파이팅을 보이며, 향후 빅4의 후계 위치에 오를만한 상당한 잠재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반면에 나달은 1, 2 세트를 무난하게 승리하자, 3세트 부터는 조금 긴장이 풀린듯 싶었다. 분명 나달이 질 수 없는 상황인데 나달이 이상한 실수를 연발하며 3, 4세트를 내주었다. 5세트 또한 초반에 브레이크를 두 번 가져오면서 승기를 굳히나 했으나, 막판에 브레이크를 내주며 타이브레이크로 갈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나달이 겨우 자신의 서브게임을 마무리하며 우승을 가져올 수 있었다.


나달의 그랜드슬램 우승 19회..
이제 페더러와 1개 차이..



7.  

  지난 윔블던과 마찬가지로 유망주들이 득세였다. 특히 메드베데프의 결승 진출이나 마테오 베레티니의 준결승 진출이 눈에 띄었다. 잔디 코트에서 특출난 활약을 보였던 베레티니는 하드코트에서는 그저 그럴 것이라고 보았으나, 잔디 코트에 가장 비슷할 US오픈의 빠른 인도어 하드코트에서 빛을 발하는 듯 했다. 물론 그의 대진운이 좋은 편인 것도 사실이긴 했지만, 북미시즌에서 페더러, 키리오스를 잡았던 루블레프를 가뿐하게 탈락 시킨 건 대단히 의외였다. 준결승에서 나달을 상대로도 초반 선전했지만, 결국 기세를 내주며 1세트 이후에는 무너졌다는 게 아쉬웠을테다.



사실 얘가 이렇게 선전할지 몰랐다..
내년 윔블던 기대된다..



  메드베데프는 올시즌 자신이 빅4의 가장 확실히 위협후보임을 공고히했다. 그는 조코비치를 무너뜨린 바브린카와 페더러를 무너뜨린 디미트로프를 자신이 가뿐하게 정리했다. 사실 페더러였다면 몰라도, 조코비치가 올라와도 딱히 결과가 다르지는 않았을 듯 하다. 메드베데프는 확실히 북미시즌 거치며 위닝멘탈이 장착된 듯 했다. 스탄 더 맨과의 경기가 결코 쉬운 경기는 아니었으나, 그는 멘탈 싸움에서 이겨내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패배했지만 나달과의 결승경기도 마찬가지였다. 메드베데프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그가 나달의 탑스핀에 대처하는 것을 볼 때, 기량상, 상성상 애당초 게임이 안되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1, 2세트를 내주고도 5세트까지 푸쉬했다. 만약 그가 나달의 탑스핀과 플레이스타일에 적응한다면 그가 제2의 조코비치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유망주 경쟁도 이제 이 뻐큐맨으로 슬슬 정리되는 것 같다.
나달의 후계자가 티엠이라면, 조코비치의 후계자는 메드베데프다.
그럼 페더러의 후계자는?? 치치파스?? 샤포발로프??ㅋㅋㅋ


  메드베데프는 이제 기타 듣보잡들과의 경기를 여유롭게 끝내는 꾸준함을 장착한 듯 하다. US오픈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그는 당연한 듯 결승에 올라 당연한 듯 대회를 무실세트로 장식했다. 윔블던 이후 그가 결승에 오르지 못한 대회는 없다. 윔블던 이후 27경기 중에 그는 3패 만을 기록했고, 그에게 패배를 안긴 선수는 닉 키리오스와 라파엘 나달 뿐이다. 이는 최소한 현재 기세로만 보았을 때,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가 보여주던 꾸준함에 조금이나마 근접한 유일한 기세다. 도미니크 티엠 조차도 클레이에서 이정도 꾸준함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메드베데프는 확실히 여유있는 기량의 수준에 도달한 듯 하다. 














2019년 8월 24일 토요일

2019 US OPEN draw




2019 US OPEN DRAW


Rafael Nadal(10, 13, 17)



1R v. J. Millman
2R v. T. Kokkinakis
3R v. Hyeon Chung
4R v. M. Cilic or J. Isner 
QF v. K. Khachanov or A. Zverev or F. Tiafoe
SF v. D. Thiem or  R. Bautista Agut or K. Edmund
F v. N. Djokovic or R. Federer  

  나달의 대진은 전반적으로 무난하고 수월한 대진이라 볼 수 있다. 정현이 나달에게 그리 어려운 선수는 아니고, 칠리치와 이스너 빅서버 듀오는 올해 하락세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QF 상대에서 예상되는 영건 중 카차노프가 좀 귀찮을 수 있는 선수일 뿐, 티아포는 나달을 극복하기에는 기량이 부족해보이고, 즈베레프는 그랜드슬램 삽질을 극복할 것 같진 않다.  
 티엠과 카차노프가 작년과 같은 폼을 보인다면 위협이 될 테지만 왠지 실제 경기는 나달이 우위를 어렵지 않게 점할 것 같고, 만약 닉 키리오스가 실수로 SF까지 올라와서 나달을 만난 다면 가장 어려운 상대가 될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나달이 체력이나 무릎문제만 없다면 무난한 나달의 승리가 예상된다. 결승에 조코비치가 오는 것만 아니라면 나달로서는 US오픈을 또다시 우승할 매우 좋은 찬스다. 

위협 : 
컨디션 터진 카차노프
마찬가지로 컨디션 터진 티엠
실수로 SF까지 올라와버린 키리오스
But, 이 모든 것보다 Only 노박



대진 빨 터진 나달. 
그가 걱정할 건 무릎과 조코비치 뿐.






Novak Djokovic(11, 15, 18)


1R. v. R. Carbelles Baena
2R. v. S. Querrey
3R. v. D. Lajovic 
4R. v. S. Wawrinka or H. Hurkacz
QF v. D. Medvedev or F. Fognini
SF v. R. Federer 
F v. R. Nadal

  조코비치의 대진은 그작 그런 대진이다. 조코비치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다, 신시내티에서 물을 먹이기 까지 한 메드베데프가 있고, 포니니나 허카츠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다. 게다가 4R에서 조코비치의 그랜드슬램 킬러이자 최근 회복세를 노리는 바브린카가 기다리고 있다. 준결승은 하필 또 페더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샘 퀘리가 위협에서 이제 다시 조코비치 밥으로 컴백한 것 같다는 점 정도. 만약 이대로 대진이 진행되고, 조코비치가 다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힘 다 빼고 나달을 만나게 생겼다. 물론 그렇다해도 조코비치가 결승에서 나달을 만난다면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결승까지 가는 길이 좀 어려워서 그렇지.

위협 : 
자신을 어렵지 않게 보고 있을 메드베데프, 
이상하게 그랜드슬램에서는 스탄 더 맨, 
그리고 황제


신흥 노박 킬러 메드베데프.

하필 또 이 새끼 자꾸 만나는 조코비치.




Roger Federer(04, 05, 06, 07, 08) 


1R v. S. Nagal
2R v. D. Dzumhur
3R v. L. Pouille or P. Kohlschreiber
4R v.  D. Goffin or G. Pella or J. Vesely
QF v. Kei Nishikori
SF v. N. Djokovic
F. v. R. Nadal


  페더러의 대진은 그냥 평범하다. 자신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SF에서 조코비치를 만나기 전까지 기량상 상성상 페더러에게 위협이 되는 선수는 없다. 페더러가 조코비치를 만나서 현재 승리할 수 있으려면 그를 파이널에서 만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페더러의 대진에 조코비치가 SF에 있다. 
  페더러는 특히 US오픈에서는 2012년 부터 유독 어정쩡한 때 느닷없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이번에도 어떤 이변이 생길지는 또 모르긴 하나 페더러가 조코비치만 잘 넘거나, 조코비치가 그전에 떨어진다면 페더러의 우승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위협 :
조코비치, 조코비치, 조코비치 
조코비치 힘들게 넘었는데 만나버리게 된 나달
그리고 그 자신




황제가 걱정할 것은 느닷없는 광탈뿐.
조코비치를 만나기도 전에 탈락해버릴 것 같은 이 왠지 모를 불안함.




2019년 7월 12일 금요일

The Classic



  무려 11년만이다. 나달의 극적인 승리로 끝났던 2008년 윔블던 결승 이후, 무려 11년만에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의 클래식 매치가 성사됐다. 



Novak Djokovic(1) v. David Goffin(21)
6-4, 6-0, 6-2 

  다비드 고팡David Goffin은 정말 잘했다. 1세트 4-3 상황까지 말이다. 어딘가 불안불안 했지만,, 조코비치의 멀찍이 떨어지는 스트로크들을 잘 넘기면서 잘 버텼지만,, 그리고 그는 놀랍게도 조코비치에게 먼저 브레이크를 따내는 모습을 보였지만,, 거기까지였다. 다들 그렇듯 고팡도 조코비치에게 브레이크를 먼저 따낸 뒤 곧바로 브레이크를 내주었고, 이어서 또다시 브레이크를 내주며 1세트를 털렸다. 브레이크 한번에 모든 기력을 쏟아부은 듯 고팡은 거짓말처럼 경기가 끝날 때까지 무기력하게 패했다. 
  고팡은 자신의 첫 윔블던 QF가 떨렸는지, 평소의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방어적으로 일관하느라 바빴다. 조코비치를 상대로 이겨려면 절대 먼저 지치면 안된다. 실수는 조코비치 쪽이 할 거다. 고팡은 기다렸어야 했다. 그러나 고팡에게는 여력이 없는 듯 했다. 그는 서둘렀고, 이도 저도 뭣도 아닌 방어만 계속 할 뿐이었다. 애초에 랠리 능력에서 기량차가 컸다고도 할 것이다. 고팡은 브레이크를 먼저 따내고도, 역시나 정신차린 조코비치의 리턴 압박에 그대로 무너졌다. 그 이후는 사실 경기를 볼 것도 없었다. 분명 조코비치는 패배할 여력이 있어보였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영혼이 상실된 고팡과 경기했고, 덕분에 4R에서 잠시 찼던 숨을 편안하게 고를 수 있었다. 


Roberto Bautista Agut(23) v. Guido Pella(26)
7-5, 6-4, 3-6, 6-3

  풀세트 역전승을 두 번이나 해낸 펠라가 3세트를 가져갔을 때 혹시나 했다. 하지만 베테랑 어굿이 그리 호락호락 한 상대가 아니었다. 어굿의 성실함과 멘탈이 다시금 돋보인 경기였다. 펠라가 3세트에서 선전했을 때, 어굿은 틀림없이 흔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어굿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3세트 마지막 게임에서 공을 치는 그는 1세트에서 치던 모습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브레이크 한 번에 성공했고, 경기를 끝냈다. 


Sam Querrey v. Rafael Nadal(3)
7-5, 6-2, 6-2

  클레이의 왕은 엄청났던 지난 경기들의 서브게임에 비해, 샘 퀘리와의 경기에서는 오히려 서브게임에서 미스를 많이 보였다. 심지어 퀘리에게 브레이크를 내주기도 했다. 뭐 애당초 샘 퀘리 같은 빅서버의 서브게임이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서브가 들어가면 이기는 거고, 안들어가면 지는 단순한 구조이기에 나달이 브레이크를 6번이나 해냈다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나달이 퀘리에게 브레이크포인트 상황을 7번이나 내줬다는 게 이번 경기의 특이점인 듯 하다. 스코어는 일방적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달은 은근히 고전했다. 피로도가 좀 쌓인게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Kei Nishikori(8) v. Roger Federer(2)
4-6, 6-1, 6-4, 6-4

  무슨 4드론 저글링 러쉬마냥 초반에 엄청난 움직임을 보인 니시코리가 돋보였다. 지난 2017 호주오픈 때도 1세트에는 황제에게 테니스를 가르쳐주는 듯 했던 니시코리는 이번에도 역시 1세트에는 엄청난 폼을 보여주며 황제를 당황시켰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니시코리는 무너졌다. 아 뭐 생각보다는 잘 버텼다. 
  나이탓인지 몸이 덜풀린 황제는 시작부터 브레이크를 내준 후 반격에 나섰지만 니시코리는 꽤나 집중력을 보여주며 잘 버텼다. 하지만 2세트에 빡친 황제는 니시코리를 박살내버렸고, 니시코리는 그 때부터 그가 항상 보여주는 그 침울하고 지친 모습으로 경기를 진행했어야 했다. 
  황제의 서브게임은 초스피드로 끝나기 일색이었고, 니시코리의 서브게임은 무너질듯 안무너지는 모습으로 겨우겨우 이어져 나갔지만, 황제는 기어이 니시코리의 서비스 게임을 무너 뜨림과 동시에 멘탈마저 무너뜨려내면서 경기를 끝냈다. 니시코리가 오래버팀으로써 황제가 체력손실을 좀 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경기가 아닐까 싶다. 
  니시코리의 정말 온 세상 다 꺼지는 거 같은 우울한 표정을 보고 있자면, 좀 안타깝다는 마음이 듦과 동시에 참 저새끼는 왜 이렇게 근성이 없나 싶기도 하다. 시즌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뭔가 니시코리는 패배감을 더 안아 가는 것만 같다.







2019 Wimbledon Semi-Final(1)
Novak Djokovic(1) v. Roberto Baustista-Agut(23) 

  이제 어굿의 다음 상대는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이다. 어굿은 2016년 상하이 마스터즈에서 처음 승리를 거둔 후, 올 시즌에는 도하Doha와 마이애미Miami masters 1000에서 만나 전부 승리했다. 두 번 다 역전승이었다. 
  어굿은 충분히 노박에 대한 카운터 펀쳐 역할이 가능한 선수다. 2016년 첫 승리 이후 경기 양상을 보면 어굿이 노박에 대해 "이길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자신감을 갖고 경기하는 게 보인다. 실제로도 할 만하다. 
  어굿은 굉장히 성실하고 평이하다. 그의 플레이에는 딱히 강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포핸드가 대단히 좋은 것도 백핸드가 대단히 좋은 것도 아니고, 무브먼트가 좋은 것도 서브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냥 전부 평이하다. 그게 강점을 드러나게 한다. 매우 성실한 경기운영이라는 점이다. 
  그는 차분히 한 공 한 공 때린다.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상대가 이기고 있든 자신이 이기고 있든 그는 그냥 왠지 느려터져보이는 무브먼트로 공에 차분히 접근해 차분히 자신의 공을 때린다. 대단한 특성있는 공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있는 공은 아니다. 정자세로 잡고 치는 공이기 때문이다. 그의 멘탈과 성실함은 꽤나 강력한 무기가 된다. 랠리의 지속성을 대단히 높여주기 때문이다. 어굿이 조코비치에 대한 카운터펀처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마치 벽처럼 일정한 공을 끊임없이 넘기는 조코비치의 플레이는 상대에게 대단한 압박감을 준다. 나달이 그에 대해 평한 것 처럼 Unbeatable 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공이 보여주는 플레이스먼트는 매우 깊다. 조코비치는 공격하는 벽 같은 존재가 된다. 대다수의 선수들이 이러한 조코비치의 기계적인 좌우 스트로크에 질려버린다. 더 세게 공격하려다 에러에 자멸한다. 더 세게 공격이 들어가도 조코비치의 카운터와 패싱샷이 날아올 뿐이다.
  어굿의 성실한 멘탈은 이러한 조코비치가 주는 심리적 압박공격에 면역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조코비치의 일정한 공은 마치 그와 비슷하게 일정한 스텝과 일정한 스트로크를 치는 어굿에게는 딱 치기 좋은 공이 된다.(왜 어굿이 나달이나 페더러를 상대할 때는 일반인처럼 깨지는지에 대한 답도 된다. 나달과 페더러의 공격 특성은 어굿이 아예 따라잡지를 못하거나(페더러), 어굿이 공을 제대로 받아치지를 못하게(나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굿이 집중력으로 자신의 미스만 조금 컨트롤 한다면 랠리는 충분히 길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심리적 압박은 조코비치가 받게 된다. 조코비치는 페더러, 나달과 함께 신급에 있는 선수다. 나달은 몰라도 심지어 그 페더러도 조코비치와 랠리를 오래 지속하지 않는다. 대체로 벽과 같은 기계적인 스트로크에 대다수의 선수는 알아서 자멸해왔다. 마치 나달이 자신의 포핸드에 에러를 범하지 않고 잘 받아치는 조코비치에게 당황하는 듯, 조코비치는 돌부처같은 표정으로, 딱히 빠른 것 같지도 않은데 공을 계속 넘겨주고 있는 어굿에 당황하게 된다. 애당초 조코비치가 멘탈이 좋은 선수가 아니기에 조코비치는 점점 더 강한 샷을 때리려고 하게 되고, 그의 에러는 늘어나게 된다. 
  고팡이 실패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코비치를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공격을 할게 아니라 조코비치가 에러를 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워낙에 기계적인 조코비치이기에 그는 에러 한 개 한 개에 다분히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그게 공격에 있어 발생한 것일 때 더욱 그 타격이 크다. 따라서 조코비치를 상대로 할 때는 한 번 더 기다려야 하고, 그냥 공만 잘 받아 넘기겠다, 랠리를 지속하겠다는 마인드로 쳐야한다. 노박이 드랍샷을 남발하기 시작했다면, 작전은 반쯤은 성공한거다. 
  물론 그게 절대 쉬울리는 없겠지. 그라운드 스트로크 기계 노박인데. 하지만 어굿의 성실한 멘탈이라면 충분히 해낼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그의 스텝은 무슨 서예하는 사람처럼 정적이다. 그는 마치 무슨 태극권 수련이라도 하는 듯, 자세를 잡는데 온 신경을 쓰는 듯하고, 임팩트의 그 짧은 순간에 모았던 기를 내뱉듯 스트로크를 친다. 조코비치의 스트로크 플로우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 페더러나 나달이라면 모를까 조코비치의 일정한 스트로크 플로우에 어굿이 싱크를 맞춘다면 조코비치는 점점 불안해질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The Classic



2019 Wimbledon Semi-Final(2)
Rafael Nadal(3) v. Roger Federer(2)

  그야말로 윔블던 주최측으로서는 대박이다. 테니스 최고의 스타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 그의 최고의 라이벌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의 라이벌리가 SF에서 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게 결승이 아니라는 점 뿐일 것이다. 
  황제와 클레이의 제왕의 잔디에서의 마지막 대결은 무려 11년 전이다. 잔디코트에서 지금 껏 단 3번 맞붙은 페더러와 나달은 그 3번 모두 윔블던 결승에서 만났다. 

2006 Wimbledon Final 6-0, 7-6(5), 6-7(2), 6-3 로저 페더러 승 (3-1)
2007 Wimbledon Final 7-6(7), 4-6, 7-6(3), 2-6, 6-2 로저 페더러 승 (3-2)
2008 Wimbledon Final 6-4, 6-4, 6-7(5), 6-7(8), 9-7 라파엘 나달 승 (3-2)

  2009년에는 나달이 불참, 2010년에는 페더러가 베르디흐에게 패배, 2011년에는 페더러가 쏭가에 패배,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나달의 윔블던 참혹사, 2016년에는 둘 다 불참, 2017년에는 나달이 쥘 뮐러에게 4R 탈락, 2018년에는 페더러가 케빈 앤더슨에 QF에서 역전패 하면서 그들은 맞대결을 빗겨나가 왔다. 그런 그들이 2008년 결승이후 무려 11년 만에 윔블던에서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아주 윔블던에 있는 방송사들은 다들 신이나 보인다. 페더러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2008년 이후 끝났다 끝났다 했는데 페더러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윔블던 SF에 올랐고, 나달 또한 클레이면 몰라도 잔디에서는 끝났다 끝났다 했는데 여전히 프랑스오픈을 우승하고 윔블던 SF에 올랐다. 현역 테니스 선수중에 한 시즌에 윔블던과 프랑스 오픈을 동시에 우승한 유이한 두 선수(RF:2009, RN:2008, 2010)인 그들이 지난 프랑스 오픈 SF에서 만난 것에 이어 다시 한번 클래식 매치를 성사 시킨 것이다. 
  그럼 경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 정말 모르겠다. 나달이 이렇게 선전한 것도 전혀 예상 밖이다. 일단 코트 표면이 잔디이기에 당연히 페더러한테 유리하다. 그 밖에 페더러가 클레이에서 0:3으로 털리긴 했지만, 분명 그 때도 대단한 선전을 보여줬다. 페더러는 항상 클레이에서 나달에게 패한 뒤 윔블던에서 나달을 만나는 게 정신적으로 대단히 위축된다고 말해오긴 했지만, 시절도 시절이고, 지금도 그럴지는 사실 모르겠다. 페더러는 확실히 나이탓인지 몸이 조금 늦게 풀리는 감이 없지 않은 듯 하다. 페더러가 이번 대회에 내준 두 개의 세트 모두 1세트였다. 나달 또한 2017 호주오픈 때나, 지난 프랑스오픈 때나 페더러와의 경기 초반에 몸이 좀 늦게 풀리는 모습을 보여준 것을 고려한다면 경기초반이 분수령이 될 듯 하다. 둘 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1세트를 내줬을 때 부담감을 대단히 많이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페더러가 니시코리에게 꽤나 집중력과 체력을 많이 쏟았다는 점을 본다면 분명 피로도도 작용할 듯 보인다. 페더러는 니시코리에게 3세트 이상의 경기를 생각하지 않았을 테고, 초반에 리드를 내주면서 그것을 쫓아가서 회복해야하는 입장에 있었다 보니 체력 소모가 평소보다 컸을 것이다. 하지만 뭐 나달 또한 샘 퀘리와의 경기가 마냥 수월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본다면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나달에게 긍정적인 면이라면 센터코트 베이스라인 근처 잔디가 대단히 많이 패여있다는 점이겠다. 뭐 항상 그렇긴 했지만, 이번에도 잔디가 패이면서 뛰기에는 조금 더 수월해진 듯 하다. 하지만 나달은 샘 퀘리와의 경기에서 민첩성이 약간은 무뎌진 모습, 민첩성이 흔들리면서 임팩트시 신체균형이 안정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쉽게 말해 무릎에 피로도가 쌓였다는 말이다. 페더러와의 경기 때는 어쩔지 모르지만, 몸이 다분히 긴장상태에 있을 것이 틀림없기에 어느 정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6~2008년의 경기를 되새겨 보면, 당시의 나달의 서브는 지금에 비해 날카로움이 많이 부족했고, 활동량은 훨씬 좋았다. 지금의 나달이 조금 더 공격적으로 플레이하고자 한다면 당시 나달은 일단 뛰다니면서 공을 넘기면 된다는 성향이 더 강했다. 나달의 백핸드는 당시에 비해 훨씬 잔디에 적합해졌고, 드랍 발리의 기술적 숙련도도 높아졌다. 페더러는 당시에 비해 현재가 훨씬 더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진 듯 보인다. 철저히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효율적으로 공격한다. 다만 파워나 공의 무게감이 당시에 비해 조금 떨어진 듯하고, 당연히 체력적 부담이 있는 듯하다. 따라서 당시에 비해 이번 경기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페더러의 서비스 게임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나달 또한 상당히 압도적인 서비스 게임을 보여주고 있기에 둘 다 브레이크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물론 베이스라인에 붙어서 갖다 대기만 하면서 넘기던 2017의 페더러의 대 나달 리턴이 다시 등장한다면 나달이 랠리에 있어 고전할 것 같긴하지만, 요즘 나달의 서브가 워낙 좋은데다 페더러의 체력적 부담이 있다는 걸 감안할 때 그리 쉽게 풀릴까 싶긴 하다.  
  페더러의 서브가 보통의 빅서버들과 차원을 달리하긴 하지만, 나달이 키리오스를 거치면서 서브 리턴에 대한 자신감을 채웠고, 샘 퀘리와의 경기에서도 강력한 서브에 대한 적응을 마쳤다. (퀘리와의 경기도 문제는 리턴 게임이 아니고, 나달 자신의 서브 게임이었다.) 

결국 정리해보면

1. 잔디에서는 페더러가 유리하다. 
2. 나달의 서브 게임은 컨디션을 타는 듯 하다. 
3. 경기는 절대 3세트로 끝나지 않는다. 
4. 타이브레이크가 최소 2세트는 나올 것이다. 
5. 페더러의 하프발리 리턴이 먹히면 나달은 고전할 것이다. 
6. 나달의 리턴게임은 랠리 중 페더러가 얼마나 언포스드에러를 얼마나 하느냐에 달렸다.
7. 나달의 백핸드가 경기의 키가 될 것이다. 페더러가 칠 수 없게 해야한다. 
8. 경기는 과거처럼 장기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9. 페더러의 발리 대시는 지난 프랑스오픈 때보다 훨씬 늘 것이다. 
10. 둘 다 체력적 문제를 안고 있으나, 페더러 쪽이 더 부담이 크다. 
11. 경기 초반 및 1세트를 따는 선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경기를 승리할 것이다.
12. 페더러는 심리적 부담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13. 현재 나달은 잔디코트에서 자신감을 갖고 있다. 
14. 나달의 공격적인 서브는 조코비치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페더러에게는 통할 여지가 있다. 2017 호주오픈 때보다 나달의 서브 게임은 보다 위력적일 것이다. 


  그럼 결국 누가 이길 건가. 정말 모르겠다. 페이스를 보면 나달이지만, 코트 표면과 홈 이점을 고려하면 페더러다. 단순히 과거처럼 공격(페더러)-방어(나달)의 전개도 펼쳐질 것 같지 않다. 공 대 공의 대결 중 에 중요한 지점에서 밀린 쪽이 패배할 것이다. 나달이 리드하면서 시작한다면 페더러가 패배할 것이고, 페더러가 리드한다면 나달이 패배할 것이다. 리드를 누군가 극복해낸다면 그건 페더러보다는 나달일 것이다. 

어쨌든 기대된다...




11년 만이라니..





Roger Federer, Rafael Nadal, Novak Djokovic, Roberto Bautista Agut

  이번 윔블던 4강 멤버는 지난 프랑스오픈 4강 멤버와 1명 빼고 전부 같다. 로저, 라파, 노박. 대진도 같다. 나달과 페더러가 만나고 노박이 나머지 1명과 맞붙는다. 절묘하게 노박이 화제의 중심에서 멀어진 느낌이다. 특히나 프랑스오픈의 티엠은 기대주였지만, 이번 바티스타 어굿은 화제성이 거의 없는 선수이기에 더 그렇다. 스페인에서는 신나는 일이다. 윔블던 역사상 처음으로 스페인 선수가 두 명이나 SF에 올랐다. 오픈시대 이후 윔블던을 우승한 스페인 선수는 라파엘 나달이 유일하다. 
  지난 호주오픈 4강 멤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페더러가 없지만, 나달과 조코비치가 있었다. 참으로 집요한 그들이다. 만약 로저 페더러가 우승한다면 이번 연도 그랜드슬램 3개를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가 한 개씩 가져가는 꼴이 된다. 나달이 결승에 오른다면 나달은 올해 열린 3개 그랜드슬램 전부 결승에 진출한 선수가 된다. 



N. Djokovic : R. Bautista Agut = 55 : 45
R. Nadal : R. Federer = 50 : 50



- 페더러와 나달. 둘 중 누가 이기든 우승은 노박이다. 물론 어굿이 노박을 잡지 못했을 경우에 한 한다. 페더러와 나달 중 누가 이기든 상당한 피로를 안고 올라가는 것이며, 둘 중 노박을 상대로 이길 확률은 나달 쪽이 높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승 확률은 나달보다는 노박이 높다. 

- 페더러와 나달 중 누가 이길 거 같냐는 질문에 TV에 나오는 해외 테니스 전문가들은 죄다 조코비치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 

- 현재 노박 조코비치와 바티스타 어굿의 4강 1경기가 이제 막 시작했다. 센터 코트에 바람이 많이 불고 있으며, 노박이 슬라이스와 드랍샷을 초반부터 남발하는 거 보니, 노박은 충분히 질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조코비치는 시작하자 마자 브레이크를 해냈다.







2019년 7월 10일 수요일

테니스에서의 남녀차별



  TV 중계가 여자테니스만 보여준다고 불만을 쏟아내는 게 많은 듯하다. 중계화면을 송출받아서 중계할 뿐인 JTBC가 잘못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다른 해외 방송사에서도 마찬가지의 화면이 나오니까 말이다. 5세트인 남자 테니스에 비해 3세트인 여자 테니스 경기는 상대적으로 빨리 끝난다. 덕분에 여자테니스 경기를 중계한 후에도 남자테니스 중계를 이어서 할 수 있다. 4R 정도면 그리 중요도가 대단한 경기도 아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달의 풀 경기를 재방송으로 봐야했기에 나 또한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나름 테니스에서는 유독 남녀 평등을 위해 꽤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윔블던은 드디어 Miss, Mrs. 라고 부르던 호칭을 없애기로 했고, 상금 액수가 동액이 된지는 꽤 됐다. 여자 테니스 선수들은 젠더 차별 문제에 대해 다른 종목에 비해서 꽤 자주 언급하는 편이다. 세레나 윌리엄스는 남자 선수들이 더 거지같은 언행을 더 많이 하는 거 같은데 왜 자기한테만 엄격하게 구냐고 오랜 시간 항의해왔고, 알리제 코르네는 코트에서 옷갈아 입다가 경고를 먹고 왜 여자라서 경고를 주냐고 항의해서 화제가 됐다.
  그들의 주장들이 이유가 없는 건 아니라 할 것이다. 우리의 넘버 원 조코비치는 아주 옷을 찢어놓고도 경고 없이 경기 잘했고, 조코비치의 플레이어 박스에 대고 미친 사람 처럼 닥치라고 말한 페더러 또한 경고따위 먹지 않았다. 아예 과거 레전드 존 메켄로는 심판한테 지랄하는 아이콘이 되어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메켄로가 경고를 먹지 않은 건 아니다. 그의 경고, 실격 실적은 화려하다.) 확실히 남자 선수들에 비해 여자선수들에 대해서는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일반 관중이 볼 때도 왠지 여자 선수들의 강한 리액션들에 대해서는 더 안좋게 보는 것 같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마냥 여자 선수들이 편견에 시달린다고 보기도 그렇다. 세레나가 경고를 먹었을 때도 충분히 경고를 먹을 만 했다. 그 정도 지랄이면 남자 선수고, 영국 왕세자여도 경고를 먹을 여지가 다분했다. 세레나의 불만과 징계 자체는 논점을 달리한다고 봐야한다.
  꽤나 심난한 이슈였던 옷을 갈아입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자 선수들이 코트 한복판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도 아니고, 남녀를 떠나 보통 옷을 갈아입는 일은 코트 체인지 브레이크 타임 동안 코트 사이드 자기 자리에 앉아서 갈아입으니 말이다. 당시 경고조치를 내린 USTA도 여자가 옷을 갈아입은 게 문제가 아니라, 코트 사이드가 아닌 코트 베이스라인 한복판에서 갈아입은 게 문제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사안의 민감함을 고려하여 벌금을 물린 것도 아니고, 따로 출전금지 같은 징계를 내리지도 않고, 그냥 경고 정도로 끝냈다며 항변했다. 

  이번 윔블던에서도 이슈가 나왔다. 연습 코트에서 라켓 부수며 코트 바닥 조진 세레나에게 벌금이 10,000$이 나왔는데, 자신에게 째깐한 14번 코트를 배정했다며윔블던에 폭탄이나 떨어지라며 2차대전 드립으로 저주를 퍼부은 포그니니에게는 3,000$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우리의 징계왕 키리오스는 1R 경기로 3,000$, 2R에서 5,000$이 나왔다. 물론 심판에 대한 지랄 덕분이었다. 우리의 키리오스는 통산 상금액수보다는 통산 징계액수를 구하는 게 의미 있을 것 같다.) 코트 바닥 조진 세레나에게 너무 과한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이게 여자 선수들에 대한 차별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명백하게 보기 어렵긴 하지만, 세레나에 대한 과한 차별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키리오스의 개지랄이 두 경기를 합쳐서 8,000$에 그쳤는데, 라켓 한번 바닥에 내리 조진 세레나에게 10,000$이나 내는 건 사실 좀 과하다 싶긴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협회측에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윔블던의 잔디는 1년내내 개 빡세게 관리된다. 사실 대회 때 말고는 쓰는 일이 없다. 센터코트 같은 경우는 윔블던 본선 빼고는 아예 그냥 논다고 봐야한다. 윔블던이 잔디의 전통에 집착하다보니 잔디 훼손에 대단히 민감하다. 게다가 세레나에 대한 일종의 괘씸죄도 있어보인다. 세레나는 대단한 스타이기도 하지만 심판 및 대회 주최 측과 사이가 결코 좋을리가 없는 선수로 네임드이기도 하다. 그녀는 불만을 엄청나게 격하게 표출하고, 자신에게 불합리하다 싶으면 보이콧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협회측이 주로 끌려다니는 입장이 된다. 하필 대단한 스타이다 보니 경기 코디네이터들도 세레나의 불만에 끌려다니는 장면이 여러번 연출된다. 또한 그 14번 코트가 자신에게는 연습코트일지 모르지만, 다른 수 많은 선수들에게는 본선 경기장이 아닌가. 포그니니나 키리오스와 비교해도 그렇다. 그들의 문제가 단지 발언의 문제였다면, 세레나는 시설물 훼손 같은 거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조금 과한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포니니의 드립은 왠지 그냥 협회 측에서도 조금 코트배정으로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폭탄 드립이 해석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건 그냥 분노의 표출이라고 해석했던 것 같으니 말이다. (물론 포니니도 여러차례 징계로 유명한 선수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게 젠더이슈로 까지 이어질 만 한 문제인가는 조금 의아스럽다. 

 더 큰 쟁점은 전 세계랭킹 1위인 아자렌카로 부터 나왔다. 그녀가 현 여자 세계랭킹 1위인 애슐리 바티Ashleigh Barty의 4R 경기와 2018 우승자 안젤리크 케르버Angelique Kerber 2R 경기가 2번 코트에 배정되었다는 것이 불평등을 보여주는 것이라 지적한 것이다. 지난 프랑스오픈에서의 여자 준결승전이 두 경기 모두 필립 샤트리에에서 벌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의 연장이었다.
  이에 대해 바티는 2번 코트든 센터 코트든 내 알 바 아니라는 남극점 같은 반응을 내놨고, 바티의 경기 당시 센터코트에서 경기를 치뤘던 나달은 내가 하든 바티가 하든 상관없지만, 뭐 배정자입장에서는 골치아프지 않겠냐며, 남자 랭킹 1위인 노박이 센터코트에서 전 경기를 치르는 것도 아니고(조코비치는 2경기는 센터코트, 2경기는 1번 코트에서 경기를 치뤘고, 로저 페더러는 3경기를 센터코트, 1경기를 1번코트에서 치뤘다. 나달 또한 3경기를 센터코트, 1경기를 1번코트에서 치뤘다.) 자신도 롤랑가로스 경기를 수잔 랭글랜에서 치르지 않았냐고 답했다. 
  여자 선수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다. 세계 랭킹 1위인데 1번코트도 아니고 2번코트로 밀렸으니 말이다. 2번코트가 약간은 한급 낮은 남자선수(예를 들면 니시코리 케이라든가, 니시코리 케이라든가, 니시코리 케이라든가..)의 단식이나, 화제가 될법한 복식이나 혼합복식 경기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영국 최고의 자국 스타인 앤디 머레이의 복식 경기가 펼쳐졌던 곳이 2번 코트였다는 걸 보면 뭐 좀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자 선수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게 사실일 듯하다.

  뭐 엄밀히 따지면 작금의 배정이 그리 부조리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면도 있다. 상위코트일 수록 입장권이 디질라게 비싼 걸 고려하면, 코트 배정은 보통 화제성을 고려해서 배정한다. 많은 관중이 관심을 가질만 한 경기를 많은 좌석이 있는 코트에 배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 화제성에는 당연히 세계랭킹이라던지 명성이라던지 최근 상승세라던지 그런 걸 따지게 될 것이다. 관중들은 그런 선수에 관심을 가질 테니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티나 케르버는 자연스럽게 센터코트에서 밀리게 되는 건 자연스럽다. 안 그래도 세레나를 제외하면 춘추전국인 여자테니스에서 지난 프랑스오픈에서 처음으로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하고 갓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애쉴리 바티나 그랜드슬램 3회 우승자이긴 하지만 꾸준한 성적을 내지 못한 안젤리크 케르버가 테니스 역사를 좌지우지 하는 선수이자 윔블던의 황제 로저 페더러나, 그 라이벌이자 그랜드슬램 18회 우승자이자 바로 그 페더러를 윔블던에서 무찔렀던 라파엘 나달이나, 현 세계랭킹 1위이자 그랜드슬램 15회 우승에 윔블던만 4번 먹었던 노박 조코비치에 비하기에는 화제성 측면에서 과하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자테니스에서 빅4에게 맞대할 만한 선수는 세레나 윌리엄스를 제외하면 없는 거나 다름없다. 
  다른 사례를 봐도 그렇다. 앤디 머레이Andy Murray와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iams의 혼합복식은 혼.합.복.식. 주제에 전부 센터코트에서 경기했다. 단식이 사실상 메인 이벤트인 테니스에서 사실상 친선전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혼합복식이 센터코트를 차지한 것이다. 또한 세레나는 10번 시드라는 듣보잡 시드에도 불구하고 1회전을 센터코트에서 치뤘고, 현재까지 치른 5경기 중 2경기는 센터코트, 3경기는 1번코트에서 치뤘다. 바티가 2번코트에서 4R 경기를 치르는 동안 콘타와 크비토바의 경기가 센터코트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 최대 화제의 선수이자 10번, 11번 코트에서 퀄리파잉 경기를 한게 전부인 15살짜리 애기인 코리 거프Cori Gauff는 4R까지 네 경기를 치르는 동안 센터코트에서 1경기, 1번코트에서 3경기를 펼쳤다. 심지어 센터코트에서 거프의 3R가 벌어지는 동안 세레나의 3R는 1번 코트에서 열렸다. 이쯤 되면 남녀의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세레나나 거프에 대한 특별대우를 논해야 할 지경이 아닌가. (코리 거프가 1R를 1번코트에서 치른 것은 사실 상대가 비너스 윌리엄스였기 때문이다. 거프가 그 비너스를 이기고 감격해하는 것이 대단히 감동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으로 여겨져서 그녀가 화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 
  아자렌카의 문제제기는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아자렌카는 왜 다같이 땡볕에 서서 고생하는 데 남자 선수들의 소득이 훨씬 더 많은지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는데, 그냥 아 여자테니스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럼 여자테니스는 왜 차별받나? 뭐 놀라울 것도 없다. 여자 테니스는 별로 재미가 없어서다. 로저 페더러의 경기보다 노박 조코비치의 경기가 더 재미없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에서 재미없다. 테니스 경기를 같이보는 여자 사람들도 종종 내게 말하곤 한다. "난 여자테니스는 재미없어서 관심없어". "왜 여자 테니스는 박진감이 없을까?"
  나는 그냥 여자테니스 선수들의 복장이 치마여서 그렇다고 말했다. (저 멍청한 원피스 치마 같은 유니폼만 안입어도 훨씬 박진감 넘쳐보일 거다. 차별을 논하기 전에 2차대전 시절에나 입을 것 같은 유니폼이나 좀 바꿨으면 좋겠다. 청순한 하얀 원피스를 입고 허리를 굽힌채 공을 치려고 달리는 모습 자체가 내게는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사실 다른 스포츠들에 비하면 여자 테니스는 꽤나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월드컵 결승만 봐도 그렇다. 여자 축구 월드컵은 다들 언제하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사실 여자선수들에 대한 차별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주 얘기하는 스포츠도 테니스가 유일해 보일 정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뭔가 차별을 위해 차별이 발생한다기 보다는 다른 수많은 이유들로 인해 결과적으로 차별이 발생하는 것 같다. 가장 눈에 띌 법한 이유라면, 테니스라는 스포츠 경기에서 관중들이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냐 일 것이다. 여자 피겨스케이팅 대회는 그렇게도 수많은 사람이 보면서 남자 피겨스케이팅 대회는 텅텅 비어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과연 그것을 사회적 차별이라고 부를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결과적인 현상이라고 볼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대회를 함께 치른다는 이유로 윔블던에서 남자선수들과 여자선수들에 대하여 동등한 대우를 하고자 하는 주최 측의 노력도 사실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여자선수들이 5세트 경기를 하지 않는 것이나, 상금을 똑같이 받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지 않은가. 
  궁극적으로는 당연히 여자 선수들이 스포츠에 있어서 "여성적 차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맞을 것이다. 관습인 차별들이다. 예컨대 여자는 무조건 치마를 입어야 한다던지, 여자는 무조건 상금을 남자 선수보다 적게 줘야된다던지, 여자 선수는 자켓을 입을 수 없다던지, 뭐 그런 바보같은 차별들 말이다. 이러한 관습의 굴레를 넘기위해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고, 충분히 변화되어 가고 있다고 본다. 
  다만 자본주의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적인 차별은 어쩔 수 없기도 할 것이다. 과거 세레나가 나이키로부터의 자신이 받는 스폰액이 다른 남자 선수들에 비해서 적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레나의 상품성이 떨어져서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운동복에 관심이 덜하기 때문이고, 덜 사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로저 페더러나 라파엘 나달을 보고 나이키를 사지, 세레나를 보고 나이키를 구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아자렌카의 지적이나 다른 여러 사건들에서 나온 지적이 바보같은 소리라거나 헛된 비판이라고 할 생각은 없다. 여전히 우리 모두의 의식, 무의식 속에서는 남녀를 차별적으로 보는 의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비판들이 사실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라하더라도 여자 테니스 선수들이 차별을 느끼고 있고, 불만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받아들여야 할 정도가 아닌가 싶다. 




remember the name



This is

10% luck
20% skill
15% concentrated power of will
5% pleasure 
50% pain

And 100% reason to remember the name.



Fort Minor,  『 Remember the name 』




2019년 7월 9일 화요일

망할 베레티니



  윔블던 4라운드가 끝났다. 결과는 뻔했다.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클래스를 보여줬고, 유망주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것을 입증했다. 눈에 띄는 경기가 있었다면 구이도 펠라Guido Pella가 윔블던 파이널리스트 출신 밀로시 라오니치Milos Raonic를 상대로 풀세트 역전승을 해냈다는 거 정도였다. 


Novak Djokovic(1) v. Ugo Humbert
6-3, 6-2, 6-3

  신예 우고 움베르Ugo Humbert는 자신이 그랜드슬램 4R에 걸맞는 신예라는 걸 전혀 증명하지 못하고 No.1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에게 허망하게 패배했다. 그는 자신의 서브가 잘 들어갔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치 조코비치의 플레이 스타일을 전혀 연구하지 않은 듯, 반템포 빨리 치는 조코비치의 페이스에 완전히 당황한 듯 했다. 자신의 장기였던 랠리는 조코비치가 공을 때릴 때마다 스타트 포인트를 완전히 잃어 신체균형이 무너졌다. 긴장이 지나친 모양이었다. 그의 시야는 매우 좁은 듯 했고, 너무 서둘렀다. 반대로 조코비치는 이를 자각이라도 한 듯, 아주 평온하게 연습하듯 경기했다. 조코비치가 뭘 할게 없었다. 상대가 정신이 한 개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스텝이 한 번도 없었던 듯한 우베르는 공을 죄다 날려먹었다. 그에게는 조코비치를 상대할 베짱이 없는 듯 했다. 유망주 우베르는 그렇게 윔블던 4R에서 퇴장했고, 이전 경기에서 잠시 숨찼던 조코비치는 다시 멘탈의 안정을 찾고 QF로 향했다. 


너무 밋밋한 움베르의 디펜시브 카운터


David Goffin(21) v. Fernando Verdasco
7-6(9), 2-6, 6-3, 6-4

   다비드 고팡David Goffin은 생애 세 번째 그랜드슬램 QF이자, 생애 처음으로 윔블던 QF에 진출했다. 4R에서의 세 번의 도전 끝에 윔블던 QF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는 예상대로 접전이 예상되었다. 1세트는 치열했고, 2세트에서 베르다스코는 파워 포핸드가 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고팡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베르다스코의 백핸드는 포핸드와는 정반대로 소녀감성이 충만했다. 정말 그 백핸드만 아니라면, 그 허약한 백핸드만 아니었다면 베르다스코는 고팡을 대신했을지도 모른다. 백핸드가 상대에게 찬스를 남발해주자, 그의 포핸드는 점점 파워만 가득 찬 채 라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Guido Pella(26) v. Milos Raonic(15)
3-6, 4-6, 6-3, 7-6(3), 8-6

  당연한 듯 가볍게 라오니치가 이길 줄 알았다. 경기를 아예 구경도 안했다. 하지만 펠라는 놀라운 역전승을 만들어내며 생애 첫 그랜드슬램 QF에 올랐다. QF 최고의 뉴비 스타는 Race to Milan에 있는 유망주들이 아니라, 낼 모레 서른을 바라보는 90년생 펠라가 되었다. 
  루마니아의 복식왕 마리우스 코필Marius Copil, 이탈리아의 노장 Andrea Seppi, 빅서버이자 윔블던 파이널 리스트 케빈 앤더슨Kevin Anderson을 물리친 펠라는 자신의 전적에 또다른 빅서버 이자 윔블던 파이널리스트의 이름을 올렸다. 훌륭한 왼손 서브와 발리를 가지고도 아르헨티나 출신이라 클레이코트에서만 성과를 낸 펠라는 드디어 윔블던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그의 QF 상대는 클레이 스페셜리스트 바티스타 어굿이다. 풋세트 접전까지 끝낸 그가, 서브의 이점 따위 금방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릴 바티스타 어굿에게 서브의 이점을 잘 살려낼지가 관심포인트가 될 듯 하다. 


벌써 두 번째 풀세트 역전승 Pella
이 경기가 하이라이트였다. 중계도 안했지만..


Roberto Bautista Agut(23) v. Benoit Paire
6-3, 7-5, 6-2

  이 대진에서의 두 선수는 딱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졌다. 성실함의 상징 어굿과 장난스러운 페르. 경기 결과는 이미 예견 된 건지도 모르겠다. 페르의 무거운 서브와 알찬 기교가 좋긴 하지만, 그가 어굿의 랠리를 견뎌내기는 아무리 잔디코트라도 어려워보였다. 페르의 멘탈은 서서히 망가져갔고, 결국 그랜드슬램 4R라는 벽을 이번에도 깨지지지 않았다. 
  올해 호주오픈에서도 QF에 오르며 개인통산 그랜드슬램 최고성적을 거둔 어굿은 QF에서 구이도 펠라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어굿에게 어려운 상대는 아니기에 그는 개인 통산 최초 그랜드슬램 SF에 오를 가능성도 높다. 수퍼 대진운 노박을 막을 수 있는 선수는 그가 유일해 보인다. 


Sam Querrey v. Tennys Sandgren
6-4, 6-7(7), 7-6(3), 7-6(5)

  퀘리가 여유있게 승리할 줄 알았으나, 퀘리와 샌드그렌은 마치 서로 자신이 더 미국식 테니스에 어울린다고 자랑하는 듯 서브 앤 포핸드의 향연을 보여줬다. 타이브레이크는 당연했고, 샌드그렌에게도 찬스가 있었던 듯 하나, 관록의 퀘리가 승리했다. 확실히 퀘리는 상대의 공이 노말하게 오는 한 백핸드를 잘 쳐내는 듯 하다. 


Joao Sousa v. Rafael Nadal(3)
6-2, 6-2, 6-2


요즘 백핸드 쩌는 라파


  키리오스는 정말 큰일을 했다. 나달은 키리오스를 제물로 확실히 윔블던에서의 폼이 올랐다. 소사가 나달의 상대가 안되는 선수였다는 건 차치하고도 나달의 움직임이 너무 좋았다. 나달이 공을 쫓아가는 속도는 마치 전성기적의 모습을 보는 듯한 정도였다. 또한 그는 망설임이 없었다. 때때로 서브라인 근처로 떨어지는 짧은 공일 때 잔디에서의 나달은 네트에 꼴아박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게 얄짤없었다. 망설임없이 그대로 밀어쳤다. 소사가 랠리를 잘해냈던 장면도 자주 나왔으나, 나달은 그것마저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이 끝까지 쫓아가서 카운터를 날렸다. 자기의 플레이어 박스를 보며 도대체 어떡해야 하냐고 소리치는 소사의 마음이 이해가 갈 정도였다. 
  나달은 키리오스의 서브도 받았었는데, 이정도 서브쯤이냐 하며 소사의 서브를 너무 쉽게 리턴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나달의 서브게임이다. 나달은 리턴게임이 워낙 좋아서 그렇지, 나달은 서브게임을 내주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특히 나달이 부진하던 시절은 리턴게임보다 서브게임이 확실히 망가지는 모습을 보였다. 키리오스와의 경기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서브게임을 보여준 것은 물론, 아예 쏭가와 소사와의 경기에서는 브레이크 포인트 상황 자체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서브게임을 압도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1st 서브 득점률에서 1R 78%, 2R 82%, 3R 89%, 4R 86% 라는 무슨 빅서버들의 승률을 보여주고 있다.  키리오스와의 경기 이후에 확실히 더 늘어난 걸 보면 나달의 서브게임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상당해진 것 같다. 
  나달의 QF 상대는 드디어 만나는 거구의 빅서버 샘 퀘리Sam Querrey다. 확실히 나달이 승리하긴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나달이 키리오스와의 경기 이후로는 딱히 땀을 흘리는 모습이 잘 안보일 만큼 여유있게 승리를 챙기며 체력을 아꼈고, 키리오스의 서브를 겪은 만큼 자신감도 차있다. 게다가 나달이 서브게임에 자신감이 있는 만큼 타이브레이크로 가더라도 나달에게 충분히 유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윔블던은 잔디고, 퀘리는 빅서버라는 점은 남아 있다. 퀘리의 서브는 확실히 강력하긴 하다. 물론 현재 나달의 폼이 너무 좋아서 샘 퀘리가 나달의 포핸드를 백핸드로 받기는 어렵지 않을까하고, 나달의 좋아진 서브게임을 퀘리가 브레이크할 수 있을까도 싶다. 경기 초반이 중요하다. 1, 2세트를 연타로 나달이 잡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2세트까지 1:1로 가버리면 나달에게는 체력적 부담이 될 것이다. 이기더라도 다음 상대가 페더러 일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퀘리는 딱 2016년 조코비치와의 경기를 떠올리면서 이미지 트레이닝 하면 될 듯하다. 빅4를 상대로 이런 빅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무조건 한 두 세트는 준다고 봐야된다. 

Kei Nishikori(8) v. Mikhail Kukushikin
6-3, 3-6, 6-3, 6-4

  쿠쉬킨이 커리어 하이인데다 노장이어서 니시코리가 3:0으로 이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 세트를 내줬다. 니시코리가 2연속 윔블던 QF 진출에 성공했다. 무언가 고단했던 2018 윔블던에 비해, 니시코리의 2019 윔블던은 훌륭한 대진운 덕에 무난하게 QF에 올랐다. 평생 재활해야할 듯한 발목 덕에 피로한 경기가 생겨버리면 바로 다운되어버리는 니시코리는 QF에 오르는 동안 세계랭킹 50위 이내 선수를 만난 적도 없고, 세트를 내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주 여유로운 대진 덕에 체력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니시코리의 다음 상대는 황제다. 니시코리는 황제에게 6연패를 당하다가 지난 2018 WTF RR에서 오랜만에 승리했다. 그러나 니시코리에게는 별로 가망이 없어 보인다. 니시코리의 컨디션에 문제가 없고, 니시코리가 황제와의 유일한 그랜드슬램 대결이었던 2017 호주오픈에서 선전하긴 했지만, 이곳은 윔블던이고 윔블던은 황제의 로마다. 잘가라 니시코리.. 아쉽지만 안녕..


Matteo Berrettini(17) v. Roger Federer(2) 
6-1, 6-1, 6-2


유망주 이제 완전 안녕..


  매우 기대했던 경기다. 아예 안보던가 혹은 보다 말다 하며 대충 봤던 다른 경기들에 비해, 황제와 베레티니의 경기는 1분 1초도 놓치지 않고 풀로 지켜봤다. 그리고 굉장한 허망함을 느껴야 했다. 멍청한 베레티니 자식. 녀석은 움베르와 마찬가지로 쫄았는지, 찬스볼도 다 날려먹었다. 그가 잘한 게임은 경기 첫 자신의 서브게임 뿐이었다. 예상대로 그는 페더러의 다양한 공격 방법에 대처하지 못했다. 그렇게 브레이크를 당하기 시작하자, 그는 당연한 듯 황제의 브레이크 숫자를 늘려줬다. 심지어 브레이크 포인트 방어도 못했다. 그는 7번의 브레이크 포인트 찬스를 내줬고 그 중 방어에 성공한 건 단 한 차례 뿐이었다. 오히려 황제가 당황한 듯 했다. 이 새끼 왜 이렇게 쉽게 끝내버리지? 하고 말이다. 
  황제는 다시금 테니스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을 다양하게 보여줬다. 탑스핀, 파워샷, 드랍샷, 드랍발리, 하프발리, 롱 슬라이스, 쇼트 슬라이스, 스매시 등등 아주 여유롭게 스텝을 밟아가면서 단 한 차례도 서두름 없이 편안하게 게임을 운영했다. 아마 땀도 안났을 거다. 조코비치와 마찬가지로 황제는 아주 훌륭한 연습을 센터코트에서 했다. 
  베레티니는 자신이 황제한테 안된다는 것을 너무 빨리 깨달은 듯 했다. 그의 포핸드가 페더러의 발리에 여러차례 발리자 힘이 너무 빠진 듯 했고, 짧은 공 기교 대결에서도 황제의 순발력에 감탄만 하는 듯 했다. 그의 퍼스트 서브는 여러차례 황제의 가벼운 리턴에 주도권을 내줬다. 맞다. 그는 쫄았다. 
  그래도 베레티니에게 희망은 있을 거다. 그의 포핸드는 조준 잡는데 타이밍이 더 필요해서 그렇지, 어쨌건 기본에 충실한 포핸드다. 다만 그 포핸드가 준비자세가 워낙 느린데다, 백핸드도 조금만 무빙하며 샷을 치면 전부 날라가기에, 그는 서브를 확실하게 살리던지, 발리를 확실하게 살리던지 어쨌건 보완이 필요할 듯 하다. 잔디 시즌 끝났으니 이제 그가 재미 볼 시간은 지난 듯 하다. 








N. Djokovic : D. Goffin  =  80 : 20
R. Bautista-Agut : G. Pella  =  70 : 30
S. Querrey : Rafael Nadal  =  25 : 75
Nishikori Kei : Roger Federer =  25 :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