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9일 화요일

망할 베레티니



  윔블던 4라운드가 끝났다. 결과는 뻔했다.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클래스를 보여줬고, 유망주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것을 입증했다. 눈에 띄는 경기가 있었다면 구이도 펠라Guido Pella가 윔블던 파이널리스트 출신 밀로시 라오니치Milos Raonic를 상대로 풀세트 역전승을 해냈다는 거 정도였다. 


Novak Djokovic(1) v. Ugo Humbert
6-3, 6-2, 6-3

  신예 우고 움베르Ugo Humbert는 자신이 그랜드슬램 4R에 걸맞는 신예라는 걸 전혀 증명하지 못하고 No.1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에게 허망하게 패배했다. 그는 자신의 서브가 잘 들어갔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치 조코비치의 플레이 스타일을 전혀 연구하지 않은 듯, 반템포 빨리 치는 조코비치의 페이스에 완전히 당황한 듯 했다. 자신의 장기였던 랠리는 조코비치가 공을 때릴 때마다 스타트 포인트를 완전히 잃어 신체균형이 무너졌다. 긴장이 지나친 모양이었다. 그의 시야는 매우 좁은 듯 했고, 너무 서둘렀다. 반대로 조코비치는 이를 자각이라도 한 듯, 아주 평온하게 연습하듯 경기했다. 조코비치가 뭘 할게 없었다. 상대가 정신이 한 개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스텝이 한 번도 없었던 듯한 우베르는 공을 죄다 날려먹었다. 그에게는 조코비치를 상대할 베짱이 없는 듯 했다. 유망주 우베르는 그렇게 윔블던 4R에서 퇴장했고, 이전 경기에서 잠시 숨찼던 조코비치는 다시 멘탈의 안정을 찾고 QF로 향했다. 


너무 밋밋한 움베르의 디펜시브 카운터


David Goffin(21) v. Fernando Verdasco
7-6(9), 2-6, 6-3, 6-4

   다비드 고팡David Goffin은 생애 세 번째 그랜드슬램 QF이자, 생애 처음으로 윔블던 QF에 진출했다. 4R에서의 세 번의 도전 끝에 윔블던 QF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는 예상대로 접전이 예상되었다. 1세트는 치열했고, 2세트에서 베르다스코는 파워 포핸드가 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고팡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베르다스코의 백핸드는 포핸드와는 정반대로 소녀감성이 충만했다. 정말 그 백핸드만 아니라면, 그 허약한 백핸드만 아니었다면 베르다스코는 고팡을 대신했을지도 모른다. 백핸드가 상대에게 찬스를 남발해주자, 그의 포핸드는 점점 파워만 가득 찬 채 라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Guido Pella(26) v. Milos Raonic(15)
3-6, 4-6, 6-3, 7-6(3), 8-6

  당연한 듯 가볍게 라오니치가 이길 줄 알았다. 경기를 아예 구경도 안했다. 하지만 펠라는 놀라운 역전승을 만들어내며 생애 첫 그랜드슬램 QF에 올랐다. QF 최고의 뉴비 스타는 Race to Milan에 있는 유망주들이 아니라, 낼 모레 서른을 바라보는 90년생 펠라가 되었다. 
  루마니아의 복식왕 마리우스 코필Marius Copil, 이탈리아의 노장 Andrea Seppi, 빅서버이자 윔블던 파이널 리스트 케빈 앤더슨Kevin Anderson을 물리친 펠라는 자신의 전적에 또다른 빅서버 이자 윔블던 파이널리스트의 이름을 올렸다. 훌륭한 왼손 서브와 발리를 가지고도 아르헨티나 출신이라 클레이코트에서만 성과를 낸 펠라는 드디어 윔블던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그의 QF 상대는 클레이 스페셜리스트 바티스타 어굿이다. 풋세트 접전까지 끝낸 그가, 서브의 이점 따위 금방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릴 바티스타 어굿에게 서브의 이점을 잘 살려낼지가 관심포인트가 될 듯 하다. 


벌써 두 번째 풀세트 역전승 Pella
이 경기가 하이라이트였다. 중계도 안했지만..


Roberto Bautista Agut(23) v. Benoit Paire
6-3, 7-5, 6-2

  이 대진에서의 두 선수는 딱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졌다. 성실함의 상징 어굿과 장난스러운 페르. 경기 결과는 이미 예견 된 건지도 모르겠다. 페르의 무거운 서브와 알찬 기교가 좋긴 하지만, 그가 어굿의 랠리를 견뎌내기는 아무리 잔디코트라도 어려워보였다. 페르의 멘탈은 서서히 망가져갔고, 결국 그랜드슬램 4R라는 벽을 이번에도 깨지지지 않았다. 
  올해 호주오픈에서도 QF에 오르며 개인통산 그랜드슬램 최고성적을 거둔 어굿은 QF에서 구이도 펠라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어굿에게 어려운 상대는 아니기에 그는 개인 통산 최초 그랜드슬램 SF에 오를 가능성도 높다. 수퍼 대진운 노박을 막을 수 있는 선수는 그가 유일해 보인다. 


Sam Querrey v. Tennys Sandgren
6-4, 6-7(7), 7-6(3), 7-6(5)

  퀘리가 여유있게 승리할 줄 알았으나, 퀘리와 샌드그렌은 마치 서로 자신이 더 미국식 테니스에 어울린다고 자랑하는 듯 서브 앤 포핸드의 향연을 보여줬다. 타이브레이크는 당연했고, 샌드그렌에게도 찬스가 있었던 듯 하나, 관록의 퀘리가 승리했다. 확실히 퀘리는 상대의 공이 노말하게 오는 한 백핸드를 잘 쳐내는 듯 하다. 


Joao Sousa v. Rafael Nadal(3)
6-2, 6-2, 6-2


요즘 백핸드 쩌는 라파


  키리오스는 정말 큰일을 했다. 나달은 키리오스를 제물로 확실히 윔블던에서의 폼이 올랐다. 소사가 나달의 상대가 안되는 선수였다는 건 차치하고도 나달의 움직임이 너무 좋았다. 나달이 공을 쫓아가는 속도는 마치 전성기적의 모습을 보는 듯한 정도였다. 또한 그는 망설임이 없었다. 때때로 서브라인 근처로 떨어지는 짧은 공일 때 잔디에서의 나달은 네트에 꼴아박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게 얄짤없었다. 망설임없이 그대로 밀어쳤다. 소사가 랠리를 잘해냈던 장면도 자주 나왔으나, 나달은 그것마저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이 끝까지 쫓아가서 카운터를 날렸다. 자기의 플레이어 박스를 보며 도대체 어떡해야 하냐고 소리치는 소사의 마음이 이해가 갈 정도였다. 
  나달은 키리오스의 서브도 받았었는데, 이정도 서브쯤이냐 하며 소사의 서브를 너무 쉽게 리턴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나달의 서브게임이다. 나달은 리턴게임이 워낙 좋아서 그렇지, 나달은 서브게임을 내주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특히 나달이 부진하던 시절은 리턴게임보다 서브게임이 확실히 망가지는 모습을 보였다. 키리오스와의 경기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서브게임을 보여준 것은 물론, 아예 쏭가와 소사와의 경기에서는 브레이크 포인트 상황 자체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서브게임을 압도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1st 서브 득점률에서 1R 78%, 2R 82%, 3R 89%, 4R 86% 라는 무슨 빅서버들의 승률을 보여주고 있다.  키리오스와의 경기 이후에 확실히 더 늘어난 걸 보면 나달의 서브게임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상당해진 것 같다. 
  나달의 QF 상대는 드디어 만나는 거구의 빅서버 샘 퀘리Sam Querrey다. 확실히 나달이 승리하긴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나달이 키리오스와의 경기 이후로는 딱히 땀을 흘리는 모습이 잘 안보일 만큼 여유있게 승리를 챙기며 체력을 아꼈고, 키리오스의 서브를 겪은 만큼 자신감도 차있다. 게다가 나달이 서브게임에 자신감이 있는 만큼 타이브레이크로 가더라도 나달에게 충분히 유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윔블던은 잔디고, 퀘리는 빅서버라는 점은 남아 있다. 퀘리의 서브는 확실히 강력하긴 하다. 물론 현재 나달의 폼이 너무 좋아서 샘 퀘리가 나달의 포핸드를 백핸드로 받기는 어렵지 않을까하고, 나달의 좋아진 서브게임을 퀘리가 브레이크할 수 있을까도 싶다. 경기 초반이 중요하다. 1, 2세트를 연타로 나달이 잡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2세트까지 1:1로 가버리면 나달에게는 체력적 부담이 될 것이다. 이기더라도 다음 상대가 페더러 일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퀘리는 딱 2016년 조코비치와의 경기를 떠올리면서 이미지 트레이닝 하면 될 듯하다. 빅4를 상대로 이런 빅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무조건 한 두 세트는 준다고 봐야된다. 

Kei Nishikori(8) v. Mikhail Kukushikin
6-3, 3-6, 6-3, 6-4

  쿠쉬킨이 커리어 하이인데다 노장이어서 니시코리가 3:0으로 이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 세트를 내줬다. 니시코리가 2연속 윔블던 QF 진출에 성공했다. 무언가 고단했던 2018 윔블던에 비해, 니시코리의 2019 윔블던은 훌륭한 대진운 덕에 무난하게 QF에 올랐다. 평생 재활해야할 듯한 발목 덕에 피로한 경기가 생겨버리면 바로 다운되어버리는 니시코리는 QF에 오르는 동안 세계랭킹 50위 이내 선수를 만난 적도 없고, 세트를 내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주 여유로운 대진 덕에 체력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니시코리의 다음 상대는 황제다. 니시코리는 황제에게 6연패를 당하다가 지난 2018 WTF RR에서 오랜만에 승리했다. 그러나 니시코리에게는 별로 가망이 없어 보인다. 니시코리의 컨디션에 문제가 없고, 니시코리가 황제와의 유일한 그랜드슬램 대결이었던 2017 호주오픈에서 선전하긴 했지만, 이곳은 윔블던이고 윔블던은 황제의 로마다. 잘가라 니시코리.. 아쉽지만 안녕..


Matteo Berrettini(17) v. Roger Federer(2) 
6-1, 6-1, 6-2


유망주 이제 완전 안녕..


  매우 기대했던 경기다. 아예 안보던가 혹은 보다 말다 하며 대충 봤던 다른 경기들에 비해, 황제와 베레티니의 경기는 1분 1초도 놓치지 않고 풀로 지켜봤다. 그리고 굉장한 허망함을 느껴야 했다. 멍청한 베레티니 자식. 녀석은 움베르와 마찬가지로 쫄았는지, 찬스볼도 다 날려먹었다. 그가 잘한 게임은 경기 첫 자신의 서브게임 뿐이었다. 예상대로 그는 페더러의 다양한 공격 방법에 대처하지 못했다. 그렇게 브레이크를 당하기 시작하자, 그는 당연한 듯 황제의 브레이크 숫자를 늘려줬다. 심지어 브레이크 포인트 방어도 못했다. 그는 7번의 브레이크 포인트 찬스를 내줬고 그 중 방어에 성공한 건 단 한 차례 뿐이었다. 오히려 황제가 당황한 듯 했다. 이 새끼 왜 이렇게 쉽게 끝내버리지? 하고 말이다. 
  황제는 다시금 테니스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을 다양하게 보여줬다. 탑스핀, 파워샷, 드랍샷, 드랍발리, 하프발리, 롱 슬라이스, 쇼트 슬라이스, 스매시 등등 아주 여유롭게 스텝을 밟아가면서 단 한 차례도 서두름 없이 편안하게 게임을 운영했다. 아마 땀도 안났을 거다. 조코비치와 마찬가지로 황제는 아주 훌륭한 연습을 센터코트에서 했다. 
  베레티니는 자신이 황제한테 안된다는 것을 너무 빨리 깨달은 듯 했다. 그의 포핸드가 페더러의 발리에 여러차례 발리자 힘이 너무 빠진 듯 했고, 짧은 공 기교 대결에서도 황제의 순발력에 감탄만 하는 듯 했다. 그의 퍼스트 서브는 여러차례 황제의 가벼운 리턴에 주도권을 내줬다. 맞다. 그는 쫄았다. 
  그래도 베레티니에게 희망은 있을 거다. 그의 포핸드는 조준 잡는데 타이밍이 더 필요해서 그렇지, 어쨌건 기본에 충실한 포핸드다. 다만 그 포핸드가 준비자세가 워낙 느린데다, 백핸드도 조금만 무빙하며 샷을 치면 전부 날라가기에, 그는 서브를 확실하게 살리던지, 발리를 확실하게 살리던지 어쨌건 보완이 필요할 듯 하다. 잔디 시즌 끝났으니 이제 그가 재미 볼 시간은 지난 듯 하다. 








N. Djokovic : D. Goffin  =  80 : 20
R. Bautista-Agut : G. Pella  =  70 : 30
S. Querrey : Rafael Nadal  =  25 : 75
Nishikori Kei : Roger Federer =  25 :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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