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0일 수요일

테니스에서의 남녀차별



  TV 중계가 여자테니스만 보여준다고 불만을 쏟아내는 게 많은 듯하다. 중계화면을 송출받아서 중계할 뿐인 JTBC가 잘못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다른 해외 방송사에서도 마찬가지의 화면이 나오니까 말이다. 5세트인 남자 테니스에 비해 3세트인 여자 테니스 경기는 상대적으로 빨리 끝난다. 덕분에 여자테니스 경기를 중계한 후에도 남자테니스 중계를 이어서 할 수 있다. 4R 정도면 그리 중요도가 대단한 경기도 아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달의 풀 경기를 재방송으로 봐야했기에 나 또한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나름 테니스에서는 유독 남녀 평등을 위해 꽤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윔블던은 드디어 Miss, Mrs. 라고 부르던 호칭을 없애기로 했고, 상금 액수가 동액이 된지는 꽤 됐다. 여자 테니스 선수들은 젠더 차별 문제에 대해 다른 종목에 비해서 꽤 자주 언급하는 편이다. 세레나 윌리엄스는 남자 선수들이 더 거지같은 언행을 더 많이 하는 거 같은데 왜 자기한테만 엄격하게 구냐고 오랜 시간 항의해왔고, 알리제 코르네는 코트에서 옷갈아 입다가 경고를 먹고 왜 여자라서 경고를 주냐고 항의해서 화제가 됐다.
  그들의 주장들이 이유가 없는 건 아니라 할 것이다. 우리의 넘버 원 조코비치는 아주 옷을 찢어놓고도 경고 없이 경기 잘했고, 조코비치의 플레이어 박스에 대고 미친 사람 처럼 닥치라고 말한 페더러 또한 경고따위 먹지 않았다. 아예 과거 레전드 존 메켄로는 심판한테 지랄하는 아이콘이 되어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메켄로가 경고를 먹지 않은 건 아니다. 그의 경고, 실격 실적은 화려하다.) 확실히 남자 선수들에 비해 여자선수들에 대해서는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일반 관중이 볼 때도 왠지 여자 선수들의 강한 리액션들에 대해서는 더 안좋게 보는 것 같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마냥 여자 선수들이 편견에 시달린다고 보기도 그렇다. 세레나가 경고를 먹었을 때도 충분히 경고를 먹을 만 했다. 그 정도 지랄이면 남자 선수고, 영국 왕세자여도 경고를 먹을 여지가 다분했다. 세레나의 불만과 징계 자체는 논점을 달리한다고 봐야한다.
  꽤나 심난한 이슈였던 옷을 갈아입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자 선수들이 코트 한복판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도 아니고, 남녀를 떠나 보통 옷을 갈아입는 일은 코트 체인지 브레이크 타임 동안 코트 사이드 자기 자리에 앉아서 갈아입으니 말이다. 당시 경고조치를 내린 USTA도 여자가 옷을 갈아입은 게 문제가 아니라, 코트 사이드가 아닌 코트 베이스라인 한복판에서 갈아입은 게 문제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사안의 민감함을 고려하여 벌금을 물린 것도 아니고, 따로 출전금지 같은 징계를 내리지도 않고, 그냥 경고 정도로 끝냈다며 항변했다. 

  이번 윔블던에서도 이슈가 나왔다. 연습 코트에서 라켓 부수며 코트 바닥 조진 세레나에게 벌금이 10,000$이 나왔는데, 자신에게 째깐한 14번 코트를 배정했다며윔블던에 폭탄이나 떨어지라며 2차대전 드립으로 저주를 퍼부은 포그니니에게는 3,000$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우리의 징계왕 키리오스는 1R 경기로 3,000$, 2R에서 5,000$이 나왔다. 물론 심판에 대한 지랄 덕분이었다. 우리의 키리오스는 통산 상금액수보다는 통산 징계액수를 구하는 게 의미 있을 것 같다.) 코트 바닥 조진 세레나에게 너무 과한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이게 여자 선수들에 대한 차별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명백하게 보기 어렵긴 하지만, 세레나에 대한 과한 차별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키리오스의 개지랄이 두 경기를 합쳐서 8,000$에 그쳤는데, 라켓 한번 바닥에 내리 조진 세레나에게 10,000$이나 내는 건 사실 좀 과하다 싶긴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협회측에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윔블던의 잔디는 1년내내 개 빡세게 관리된다. 사실 대회 때 말고는 쓰는 일이 없다. 센터코트 같은 경우는 윔블던 본선 빼고는 아예 그냥 논다고 봐야한다. 윔블던이 잔디의 전통에 집착하다보니 잔디 훼손에 대단히 민감하다. 게다가 세레나에 대한 일종의 괘씸죄도 있어보인다. 세레나는 대단한 스타이기도 하지만 심판 및 대회 주최 측과 사이가 결코 좋을리가 없는 선수로 네임드이기도 하다. 그녀는 불만을 엄청나게 격하게 표출하고, 자신에게 불합리하다 싶으면 보이콧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협회측이 주로 끌려다니는 입장이 된다. 하필 대단한 스타이다 보니 경기 코디네이터들도 세레나의 불만에 끌려다니는 장면이 여러번 연출된다. 또한 그 14번 코트가 자신에게는 연습코트일지 모르지만, 다른 수 많은 선수들에게는 본선 경기장이 아닌가. 포그니니나 키리오스와 비교해도 그렇다. 그들의 문제가 단지 발언의 문제였다면, 세레나는 시설물 훼손 같은 거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조금 과한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포니니의 드립은 왠지 그냥 협회 측에서도 조금 코트배정으로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폭탄 드립이 해석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건 그냥 분노의 표출이라고 해석했던 것 같으니 말이다. (물론 포니니도 여러차례 징계로 유명한 선수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게 젠더이슈로 까지 이어질 만 한 문제인가는 조금 의아스럽다. 

 더 큰 쟁점은 전 세계랭킹 1위인 아자렌카로 부터 나왔다. 그녀가 현 여자 세계랭킹 1위인 애슐리 바티Ashleigh Barty의 4R 경기와 2018 우승자 안젤리크 케르버Angelique Kerber 2R 경기가 2번 코트에 배정되었다는 것이 불평등을 보여주는 것이라 지적한 것이다. 지난 프랑스오픈에서의 여자 준결승전이 두 경기 모두 필립 샤트리에에서 벌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의 연장이었다.
  이에 대해 바티는 2번 코트든 센터 코트든 내 알 바 아니라는 남극점 같은 반응을 내놨고, 바티의 경기 당시 센터코트에서 경기를 치뤘던 나달은 내가 하든 바티가 하든 상관없지만, 뭐 배정자입장에서는 골치아프지 않겠냐며, 남자 랭킹 1위인 노박이 센터코트에서 전 경기를 치르는 것도 아니고(조코비치는 2경기는 센터코트, 2경기는 1번 코트에서 경기를 치뤘고, 로저 페더러는 3경기를 센터코트, 1경기를 1번코트에서 치뤘다. 나달 또한 3경기를 센터코트, 1경기를 1번코트에서 치뤘다.) 자신도 롤랑가로스 경기를 수잔 랭글랜에서 치르지 않았냐고 답했다. 
  여자 선수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다. 세계 랭킹 1위인데 1번코트도 아니고 2번코트로 밀렸으니 말이다. 2번코트가 약간은 한급 낮은 남자선수(예를 들면 니시코리 케이라든가, 니시코리 케이라든가, 니시코리 케이라든가..)의 단식이나, 화제가 될법한 복식이나 혼합복식 경기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영국 최고의 자국 스타인 앤디 머레이의 복식 경기가 펼쳐졌던 곳이 2번 코트였다는 걸 보면 뭐 좀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자 선수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게 사실일 듯하다.

  뭐 엄밀히 따지면 작금의 배정이 그리 부조리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면도 있다. 상위코트일 수록 입장권이 디질라게 비싼 걸 고려하면, 코트 배정은 보통 화제성을 고려해서 배정한다. 많은 관중이 관심을 가질만 한 경기를 많은 좌석이 있는 코트에 배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 화제성에는 당연히 세계랭킹이라던지 명성이라던지 최근 상승세라던지 그런 걸 따지게 될 것이다. 관중들은 그런 선수에 관심을 가질 테니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티나 케르버는 자연스럽게 센터코트에서 밀리게 되는 건 자연스럽다. 안 그래도 세레나를 제외하면 춘추전국인 여자테니스에서 지난 프랑스오픈에서 처음으로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하고 갓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애쉴리 바티나 그랜드슬램 3회 우승자이긴 하지만 꾸준한 성적을 내지 못한 안젤리크 케르버가 테니스 역사를 좌지우지 하는 선수이자 윔블던의 황제 로저 페더러나, 그 라이벌이자 그랜드슬램 18회 우승자이자 바로 그 페더러를 윔블던에서 무찔렀던 라파엘 나달이나, 현 세계랭킹 1위이자 그랜드슬램 15회 우승에 윔블던만 4번 먹었던 노박 조코비치에 비하기에는 화제성 측면에서 과하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자테니스에서 빅4에게 맞대할 만한 선수는 세레나 윌리엄스를 제외하면 없는 거나 다름없다. 
  다른 사례를 봐도 그렇다. 앤디 머레이Andy Murray와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iams의 혼합복식은 혼.합.복.식. 주제에 전부 센터코트에서 경기했다. 단식이 사실상 메인 이벤트인 테니스에서 사실상 친선전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혼합복식이 센터코트를 차지한 것이다. 또한 세레나는 10번 시드라는 듣보잡 시드에도 불구하고 1회전을 센터코트에서 치뤘고, 현재까지 치른 5경기 중 2경기는 센터코트, 3경기는 1번코트에서 치뤘다. 바티가 2번코트에서 4R 경기를 치르는 동안 콘타와 크비토바의 경기가 센터코트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 최대 화제의 선수이자 10번, 11번 코트에서 퀄리파잉 경기를 한게 전부인 15살짜리 애기인 코리 거프Cori Gauff는 4R까지 네 경기를 치르는 동안 센터코트에서 1경기, 1번코트에서 3경기를 펼쳤다. 심지어 센터코트에서 거프의 3R가 벌어지는 동안 세레나의 3R는 1번 코트에서 열렸다. 이쯤 되면 남녀의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세레나나 거프에 대한 특별대우를 논해야 할 지경이 아닌가. (코리 거프가 1R를 1번코트에서 치른 것은 사실 상대가 비너스 윌리엄스였기 때문이다. 거프가 그 비너스를 이기고 감격해하는 것이 대단히 감동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으로 여겨져서 그녀가 화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 
  아자렌카의 문제제기는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아자렌카는 왜 다같이 땡볕에 서서 고생하는 데 남자 선수들의 소득이 훨씬 더 많은지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는데, 그냥 아 여자테니스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럼 여자테니스는 왜 차별받나? 뭐 놀라울 것도 없다. 여자 테니스는 별로 재미가 없어서다. 로저 페더러의 경기보다 노박 조코비치의 경기가 더 재미없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에서 재미없다. 테니스 경기를 같이보는 여자 사람들도 종종 내게 말하곤 한다. "난 여자테니스는 재미없어서 관심없어". "왜 여자 테니스는 박진감이 없을까?"
  나는 그냥 여자테니스 선수들의 복장이 치마여서 그렇다고 말했다. (저 멍청한 원피스 치마 같은 유니폼만 안입어도 훨씬 박진감 넘쳐보일 거다. 차별을 논하기 전에 2차대전 시절에나 입을 것 같은 유니폼이나 좀 바꿨으면 좋겠다. 청순한 하얀 원피스를 입고 허리를 굽힌채 공을 치려고 달리는 모습 자체가 내게는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사실 다른 스포츠들에 비하면 여자 테니스는 꽤나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월드컵 결승만 봐도 그렇다. 여자 축구 월드컵은 다들 언제하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사실 여자선수들에 대한 차별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주 얘기하는 스포츠도 테니스가 유일해 보일 정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뭔가 차별을 위해 차별이 발생한다기 보다는 다른 수많은 이유들로 인해 결과적으로 차별이 발생하는 것 같다. 가장 눈에 띌 법한 이유라면, 테니스라는 스포츠 경기에서 관중들이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냐 일 것이다. 여자 피겨스케이팅 대회는 그렇게도 수많은 사람이 보면서 남자 피겨스케이팅 대회는 텅텅 비어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과연 그것을 사회적 차별이라고 부를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결과적인 현상이라고 볼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대회를 함께 치른다는 이유로 윔블던에서 남자선수들과 여자선수들에 대하여 동등한 대우를 하고자 하는 주최 측의 노력도 사실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여자선수들이 5세트 경기를 하지 않는 것이나, 상금을 똑같이 받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지 않은가. 
  궁극적으로는 당연히 여자 선수들이 스포츠에 있어서 "여성적 차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맞을 것이다. 관습인 차별들이다. 예컨대 여자는 무조건 치마를 입어야 한다던지, 여자는 무조건 상금을 남자 선수보다 적게 줘야된다던지, 여자 선수는 자켓을 입을 수 없다던지, 뭐 그런 바보같은 차별들 말이다. 이러한 관습의 굴레를 넘기위해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고, 충분히 변화되어 가고 있다고 본다. 
  다만 자본주의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적인 차별은 어쩔 수 없기도 할 것이다. 과거 세레나가 나이키로부터의 자신이 받는 스폰액이 다른 남자 선수들에 비해서 적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레나의 상품성이 떨어져서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운동복에 관심이 덜하기 때문이고, 덜 사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로저 페더러나 라파엘 나달을 보고 나이키를 사지, 세레나를 보고 나이키를 구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아자렌카의 지적이나 다른 여러 사건들에서 나온 지적이 바보같은 소리라거나 헛된 비판이라고 할 생각은 없다. 여전히 우리 모두의 의식, 무의식 속에서는 남녀를 차별적으로 보는 의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비판들이 사실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라하더라도 여자 테니스 선수들이 차별을 느끼고 있고, 불만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받아들여야 할 정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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