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5일 일요일

poor zverev..



  2022 Roland Garros SF 
  Rafael Nadal / Alexander Zverev 
  7-6 (8), 6-6, ret.



   나달은 프랑스오픈에서만 14번 째 결승에 올랐다. 대단한데 그 대단한 것에 약간 슬픔이 남게되었다. 나달의 상대인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너무 드라마틱하게 부상당하면서 경기를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승에 가긴 했지만 나달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경기의 시작은 무척 습했다. 경기가 열리는 롤랑가로스에는 비가 왔고 필립 샤트리에 코트는 지붕을 닫았다. 그냥 화면으로 봐도 겁나게 습해보였다. 나달은 1세트 첫 게임에 공 몇개 치지도 않았는데 혼자 땀을 비오듯이 쏟아냈다. 보는 내가 다 찝찝할 지경이었다. 나달은 지난 호주오픈 메드베데프와의 결승전에서 그랬듯이 경기 초반 어딘가 긴장한 듯 보였다. 지나친 습기가 공을 무겁게 할 것에 너무 신경쓰고 있어서 그랬을까. 

  아니나 다를까 나달은 시작부터 뉘어터지고 있었다. 즈베레프의 경기 초반 컨디션은 매우 좋아보였다. 우승후보였던 알카라즈를 밟았다는 자신감이었을까 아니면 물이 줄줄 흐르는 것 같은 습한 공기가 안 그래도 무거운 즈베레프의 공을 더욱 무겁게 만들어서 였을까. 즈베레프는 랠리에서 나달을 완전히 압도했다. 내가 테니스를 본 시간이 짧긴 하지만 지금껏 나달과의 랠리에서 그것도 클레이에서 저 정도의 파괴력을 보인 선수가 있었나 싶다. 나달은 간신히 백핸드 랠리만 할 뿐 장기인 포핸드를 칠 기회조차도 별로 없었다. 행여 치더라도 즈베레프의 파워 투백 앵글샷에 밀렸다. 당연히 브레이크는 즈베레프의 몫이었고 그가 경기를 리드했다. 나달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개떡같이 받아 낸 실투 찬스볼을 즈베레프가 바보같이 날려먹기를 기대하는 것 뿐이었다. 그만큼 즈베레프의 1세트 초반 경기력은 파괴적이었다. 

  그러나 즈베레프가 투어에 데뷔 한 이래 왜 여전히 그랜드슬램 우승 없이 해메고 있었을까. 나달은 어떻게 13번이나 프랑스오픈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을까. 1세트 후반은 그 이유가 뭔지를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1세트 중반을 지나면서 나달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랠리 컨디션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서브 앤 발리, 슬라이스, (개떡같은) 드랍샷 등 다양한 샷을 늘리며 어떻게든 게임을 흔들어 보려고 하고 있었다. 여전히 게임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균열이 생겼고 브레이크 포인트 찬스도 얻어내고 있었다. 반면 즈베레프는 기본적인 베이스라인 랠리에서는 세계 최상위급 실력을 보여주면서도 그 외의 볼 처리에 있어서는 마치 테니스 입문반 같은 허접한 실력을 보여줬다. 공이 짧으면 짧은대로 네트에 쳐박았고 공이 높으면 높은대로 베이스라인 밖으로 때려 댔다. 발리는 뭐 동전던지기 확률이었다. 그의 네트플레이 성공률은 50%를 간신히 조금 넘었다. 베이스라인 러너들의 네트 대쉬 발리가 사실상 대부분 피니쉬 기술이라는 것을 볼 때 즈베레프는 그냥 아예 자기 점수를 포장해서 상대에게 배달해준 셈이었다. 결국 나달은 브레이크에 성공했고, 5-4 즈베레프 서브 게임에서는 끊임없이 밀어붙여 한번 더 브레이크를 해내며 거의 세트를 끝낼 뻔 했으나, 즈베레프는 이를 간신히 방어해냈다. 그들은 타이브레이크에 진입했고 그 때가 이미 세트 시간이 80분을 넘겼을 때였다. 
  땀이 온 몸에 흐른 나달은 옷 한번 갈아입지 못하고 땀 한번 시원하게 닦아 내지 못한 채 타이브레이크 초반 즈베레프의 랠리에 일방적으로 털렸다. 자신의 서브 기회 2번을 즈베레프의 파괴적 스트로크에 내줬고 점수는 순식간에 2:6 이 되었다. 즈베레프에게 세트포인트가 적어도 3개는 있는 상황이었다. 첫 세트포인트가 나달의 서브였지만 즈베레프는 이어지는 두 번의 서브 상황에서 한 번만 성공해도 1세트를 가져가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쯤 그냥 나달이 1세트 내주고 분노의 추격을 개시해 세트스코어 1:3으로 나달이 이기겠지라며 희망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1세트는 즈베레프가 가져가겠구나라고 확신했다. 같잖은 오산이었다. 
  나달은 첫 세트포인트를 서브 에이스로 지워냈다. 다음 세트포인트는 즈베레프의 발리 예능쇼로 털어졌다. 그리고 4:6 상황, 여전히 세트포인트는 즈베레프에게 남아있었고, 서브권 역시 즈베레프에게 있었다. 즈베레프의 퍼스트 서브가 나달의 백핸드 깊숙히 찍혔다. 이를 나달이 잘 리턴해냈지만 이어져오는 것은 서비스 라인을 찍는 즈베레프의 날카로운 포핸드 크로스 앵글 샷이었다. 나달은 거의 경기장 사이드 끝까지 팔을 뻗은 한 손 슬라이스로 공을 즈베레프의 백핸드 쪽으로 간신히 짧게 넘겼다. 그러자 즈베레프가 이번에는 예능없는 백핸드를 나달의 애드 코트 포핸드 쪽 구석으로 날카롭게 보내면서 세트를 끝내려고 했다. 사실 누가봐도 피니쉬 샷이었다. 그러나 king of clay는 그걸 반대쪽 끝에서부터 달려 네트에 붙은 즈베레프의 백핸드 사이드를 완전히 지나치는 엄청난 러닝 포핸드 패싱샷을 때려냈다. 과거 2012년 호주오픈 준결승에서 페더러를 상대로 보여줬던 것과 같은 패싱샷이었다.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낸 나달은 태연하게 한쪽 구석에서 수건으로 팔과 얼굴을 닦았다. 스코어는 6:5가 되었고 여전히 즈베레프에게는 세트포인트 상황이었지만 서브권은 나달에게 돌아왔다. 사실상 경기를 원점으로 돌린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후 몇 번의 대치 끝에 나달은 마치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듯한 포핸드 다운더 라인 패싱샷을 두 차례를 더 보여주면서 타이브레이크를 역전해냈다. 7-6 (8)그렇게 나달은 1세트를 가져왔다. 즈베레프의 예능쇼가 있었기에 분명 더 쉽게 가져올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역시나 나달은 절대 쉽게 이기는 법이 없다. 1세트가 끝나는 데 걸린 시간은 98분이었다. 



분명 2-6이었다. 분명 2-6이었다.
솔직히 비인간적이다. 나쁜노무자식..ㅠ
출처: Eurosports, tvn sports


  1세트가 그래도 굉장한 랠리, 끝없는 수싸움, 승리를 향한 집념 등이 버무러진 대단히 찐한 세트였다면 2세트는 그저 좀 허전한 세트였다. 조금 과하게 말하면 이게 그랜드슬램 4강 경기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의 병신력 대결이었다. 
  물론 그 전에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엄청난 습도로 뒤덮힌 필립 샤트리에는 2세트 중반쯤이 되서야 지붕이 1/3~1/2 정도 열렸던 것 같다. 안 그래도 관중도 콩나물처럼 들어차있는 마당에 지붕까지 덮어져 있었으니 경기장 자체가 숨쉬기 곤란할 정도의 찜통같았다. 나달은 아예 그냥 땀으로 샤워를 한 상태였고 즈베레프도 마찬가지였다. 랠리가 길어질 때면 선수들은 지쳐서 그냥 공을 대충 넘기는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그들은 그 긴장된 1세트를 그런 찜통 속에서 98분동안 했다. 98분이면 마스터즈같은 3세트 경기 기준으로 빠르면 경기 끝나고 시상식이 한창일 시간이다. 찐이란 찐은 다 빼고 나달과 즈베레프는 이제 고작 1세트를 마친 것이다. 아마 나달의 프랑스오픈 혹은 클레이코트에서의 최장세트 시간일 것이다. 이 페이스면 5세트 한다고 하면 8시간이 넘는다. 선수들에게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2세트 즈베레프 서브로 시작한 첫 게임을 나달이 브레이크하자 나는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즈베레프가 체력적 멘탈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일수 밖에 없다고 방ㅆ다. 따라서 즈베레프는 이대로 무너지고 경기는 3:0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또한 대단한 오산이었다. 다음 게임에서 나달 또한 마찬가지로 브레이크 당했다. 차라리 즈베레프의 서브게임이 나달의 서브게임보다 우수했다. 2세트에서 그들은 서로 브레이크를 의좋게 한 차례씩 주고 받으며 각각 4번의 브레이크를 해냈다. 너무 피곤했나보다. 그들의 서브게임은 전부 엉망진창이었다. 즈베레프는 2세트 들어서는 더블폴트 테러쇼를 선사했고, 나달은 자신의 포핸드를 전부 네트에 골인 시켰다. 경기장의 높은 습도가 불편하다는 일종의 데모 같아보였다. 이쯤되면 뭐 거의 정신력 좀비 대결이었다. 경기해설자는 계속 '포커페이스' 얘기를 반복했다. 지금 둘 다 체력 바닥인데 서로 쌩쌩한 척 연기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즈베레프는 체력 문제인지 1세트에 비해 랠리 파괴력이 확실히 떨어졌다. 즈베레프의 서브는 대부분 리턴되었고 나달은 1세트에 비해 확실히 적극적으로 랠리에 나섰다. 포핸드 공격을 하는 경우도 늘었다. 나달은 경기 내내 말을 잘 듣지 않던 포핸드 에러를 신경쓰면서 나름 이번 대회 엄청난 활약 중인 백핸드를 바탕으로 랠리에서 즈베레프를 밀어붙이려 했다. 즈베레프는 점점 베이스라인 뒤로 물어나면서 방어적인 태세를 띄었다. 즈베레프의 예능쇼도 여전했다. 다만 나달의 포핸드 아웃쇼도 비슷한 리스크로 상존했다. 
  즈베레프가 드디어 먼저 서브게임을 홀드해내면서(?) 2세트를 가져가나 싶었다. 그러나 나달 또한 이에 지지 않으며 자신도 서브게임을 홀드해 내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자신의 랠리에서의 체력이 즈베레프보다 앞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타이브레이크로 진입하는 마지막 게임포인트를 포핸드 다운 더 라인으로 따내며 Vamos를 외쳤다. 경기가 일그러진 건 바로 그 때였다. 


바닥 탓하기도 어렵다. 저건 순전히 피로해서다.
지친 다리가 그를 따라가지 못했을 뿐이다.
출처 : the Guardian



  즈베레프는 오른쪽 발목이 꺾였다. 나달의 포핸드 다운 더 라인 샷을 받아치기 위해 사이드 스텝을 밟다가 오른발이 먼저 클레이 바닥에 살짝 밀렸고 이어 샷이 메이드 된 후 오른발이 착지하는 과정에서 자리를 못잡고 그대로 밀려 발목이 꺾인채로 착지가 되고 말았다. 즈베레프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져 울부짖었다. 부상은 경기를 지속하기 어려운 정도로 보였다. 인대 손상이나 골절이 의심되었다. 향후 몇 개월은 재활에만 매진해야 할 심각한 부상일 것이었다. 경기장 요원들은 즈베레프에게 달려와 상태를 확인했다. 나달 또한 포인트를 획득한 것을 충분히 기뻐하지도 못한 채 심각한 얼굴로 쓰러져있는 즈베레프에게 다가갔다. 즈베레프는 홀로 일어서지 못했고 결국 휠체어를 탄 채로 응급처치를 위해 코트를 떠나야 했다. 나달은 어색한 듯 홀로 경기장에 남아있었지만 경기가 재개될 지는 미지수인 상황이었다. 
  경기 생중계 덕에 즈베레프의 부상 장면 자체가 너무 선명하게 남아버렸다. 하필 또 그의 거대한 키와 길죽한 팔 다리 덕에 발목이 꺾이는 장면은 더욱 역동적으로 찍혀버렸다. 누가봐도 멀쩡할 수가 없을 드라마틱한 부상장면이었고 이어진 즈베레프의 비명과 울부짖음은 경기장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 정도였다. 나 또한 비슷한 부상을 당했던 적이 있기에 즈베레프의 고통이 더 크게 다가왔다. 


 휠체어타고가서 목발짚고 돌아온 즈베레프
출처 : rolandgarros.com


  결국 즈베레프는 목발을 짚고 코트에 돌아왔다. 그는 이미 충분히 쏟아낸 눈물이 훤히 보이듯한 슬픈 눈을 하고 심판과 관중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상대인 나달의 포옹과 격려를 받은 후 다시 목발을 짚은 채로 코트를 떠났다.  스코어는 7-6 (8), 6-6 ret. 나달은 통산 14번째 프랑스오픈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이미 10대 때 발목 피로 골절로 고생 꽤나 한데다가 현재도 뮐러-와이즈 병이라는 만성적 발 부상으로 은퇴까지 고민하고 있는 나달에게 즈베레프의 부상이 마냥 반가울 리가 없었다. 나달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즈베레프의 부상이 너무 안타깝고 보기 힘든 일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즈베레프가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얼마나 원했는지 잘 안다며 오늘과 같은 퍼포먼스라면 즈베레프가 분명 다시 돌아와 여러 번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해낼 것이라며 즈베레프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너가 염원하던 그노무 그랜드슬램 1번보다 더 많이(much more) 우승할 거다 샤샤.."
출처: rolandgarros.com



  그렇게 어딘가 찝찝하게 경기는 마무리 되어버렸다. 프랑스 오픈 조직위의 특히나 병신같았던 이번 대회 운영도 문제였을테고 즈베레프의 거대한 신장과 팔다리가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새삼 나달이 무시무시해 보였다. 그 지리멸렬한 경기를 해내는 것 자체가 즈베레프에게는 체력적인 도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이 글 내내 예능쑈라 비웃었지만 상대가 모든 공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죽도록 최선을 다해 받아 쳐낸다는 나달인데 과연 즈베레프에게 쉬운 공이 쉬운 공이었겠는가. 그를 상대하는 즈베레프에게 공 하나 하나에 수없는 고민과 머뭇거림과 불안감이 있지 않겠는가. 즈베레프에게는 한 공 한 공이 평소보다 극도로 피로해지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높은 습도와 관중들의 일방적 응원은 물론 아득한 5세트까지 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막막한 상황이라면 즈베레프가 받았을 체력적 부담은 상상이상이었을 것이다. 즈베레프의 부상은 이런 점에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상황을 강요하는 나달이 정말 새삼스럽게 무섭고 피곤한 선수처럼 보였다.  
  한편 그 애송이 같던 즈베레프가 무섭게 성장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달과 데이비스컵에서 클레이 경기를 처음했을 때만 해도 타점 못잡고 에러쇼 남발하면서 레슨 받았던 즈베레프가 이제는 클레이에서 랠리로 나달을 압도하는 지점에 까지 닿았다니. 격세지감이다. 



And final..


  어쨌든 나달은 8시간이 될지도 모를 경기(?)를 피하고 고작(?) 3시간 경기 만에(고작 두 세트도 다 못했는데) 결승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유례없는 개 같은 대진의 최종 생존자가 조코비치도 알카라즈도 즈베레프도 아닌 발 부상의 라파엘 나달이 된 것이다. 진짜 누군가 말 대로 필립 샤트리에에는 무슨 나달의 수호신이라도 있나보다. 결승전 상대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캐스퍼 루드Casper Ruud로 결정났다. 이젠 노장이 되버린 마린 칠리치Marin Cilic의 회춘은 4강 1세트에서 마무리되었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였을 뿐이었다. 클레이 원툴 캐스퍼 루드의 가뿐한 역전승이었다. 


페러 형의 투어 부활인가..


  캐스퍼 루드Casper Ruud는 나달 아카데미에서 훈련한 적이 있는 선수로서 아마도 투어 선수 중 나달과 가장 많은 연습을 했을 선수 중 하나다. 그는 클레이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이며 이미 여러 클레이 타이틀을 수집한 선수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그랜드슬램 파이널에 오를만한 실력의 선수라고 생각치는 않는다. 
  비록 그가 이미 랭킹 탑 10 안에 들어와 있긴 하지만 그가 따낸 타이틀이 대체로 클레이 위주에 250 대회나 500대회 수준이고, 정작 폼이 좋다는 올해조차도 본격 클레이시즌인 몬테카를로,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로마에서 타이틀 없이 그작 그런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특히 마이애미에서 즈베레프를 꺾었던 것을 제외하면 딱히 상위랭커들을 상대로 좋은 성적이 없다. 경험있는 선수들에게 쉽게 패배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이번 프랑스 오픈에서도 그는 유례없는 개꿀대진의 효과를 본 듯하다. 그가 결승전 포함 치르는 프랑스오픈 7경기 중 Top 10 또는 주요 랭커와의 경기는 결승전에서 5번 시드 나달이 처음이다. 그가 속한 대진의 가장 탑 시더인 치치파스Stephanos Tsitsipas는 홀거 룬Holger Rune이라는 알카라스 동갑내기인 10대 선수의 이변에 휘말려 탈락했다. 이미 그 10대 선수 룬Rune과 경기를 치룬 경험이 있었던 루드는 그 때에 이어 또다시 가뿐하게 룬을 꺾었다. 그가 이번 롤랑가로스에서 가장 힘들게 치른 경기는 클레이 평타리스트라 부를 수 있는 32번 시드 로렌조 소네고Lorenzo Sonego와의 경기다. 그는 무려 고작 소네고와 풀세트 접전 끝에 역전 경기로 겨우 4라운드에 진출했었다. 

  캐스퍼 루드의 경기를 보면 다비드 페러David Ferrer가 떠오른다. 하위 랭커에게 미친듯이 강한 포스를 보여주지만 상위랭커에게는 전투력 측정기 신세였던 스페인의 클레이스페셜리스트. 어딘가 조금 부족한 하드웨어. 딱히 큰 강점이 잘 안보이는 샷 스타일. 속도는 빠른데 압박감은 없는 평범한 플랫 서브.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근성과 앵글샷. 생각보다 빠른 타점의 포핸드와 백핸드. 톱스핀보다는 빠른 타이밍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스타일. 그게 막히면 상대방에게 평범한 선수이자 샌드백이 되버리는 선수. 
  뭐 당연히 이번 결승 예상은 그냥 나달의 3 : 0 승리다. 뭐 나달의 나이, 발 부상, 굉장한 습도, 경기의 중단 등등의 외적인 요인 외에는 캐스퍼 루드가 뭐 인생샷 인생게임 인생경기가 터진 다는 뭐 그런 종교적 믿음 정도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아무리 봐도 딱히 어디서 루드가 나달을 상대로 이점을 가져올 수 있을지가 보이지가 않는다. 
  2013년 프랑스 오픈, 절정의 포텐을 찍고 있던 다비드 페러가, 준결승에서 조코비치를 상대로 4시간 37분 짜리 초접전 혈투를 벌이고 올라온 나달에게 결승에서 사뿐하게 0 : 3으로 털리던 장면이 반복될 것 같다는 느낌 밖에 들지가 않는다. 




And 22..


  2022 Roland Garros F 
  Rafael Nadal / Casper Ruud 
  6-3, 6-3, 6-0


RAFA 22!
출처: rolandgarros.com


  결승이 끝났다. 예상대로 세트스코어 3 : 0의 가뿐한 나달의 승리. 나달이 너무 자만했던지 2세트 4번째 게임이자 자신의 서브게임을 더블폴트 + 러브게임으로 장식하며 브레이크를 내줬지만 이내 정신차리고 루드를 후두려 패기 시작했다. 이외 딱히 눈에 띄는 장면도 없었다.
  루드가 보여준 건 근성과 가끔 터지는 카운터 앵글샷 정도였다. 애시당초 기량차가 너무 많이 났다. 랠리에서 게임이 안됐다. 나달의 모습은 마치 연습코트에서 보여주는 모습같았다. 그냥 나달이 하고 싶은대로 다쳤다. 오히려 뭔가 도전할 만한 것이 느껴지지 않아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나오는 언포스드 에러가 그나마 문제라고 할 만큼 경기자체가 너무 싱거웠다. 나는 대략 6-3, 6-4, 6-0 으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같이 경기를 본 친구는 그래도 마지막 세트가 6-1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달은 2세트에서 브레이크를 한 번 더 해냈고 경기는 6-3, 6-3, 6-0 이었다. 사실 나달이 평소 결승처럼만 집중했다면 6-1, 6-1, 6-0의 스코어로 마무리됐을 것이다. 그 정도로 경기는 싱겁게 끝났고 나달은 22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이자 14번째 롤랑가로스 우승을 이뤄냈다. RAFA 22


 
나의 RAFA21 티셔츠는 고작 4개월 만에
유효기간이 끝나버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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