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5일 토요일

노동자


  우연히 학교에서 대학생-노동자 연합에 관한 대자보를 봤다. 군사정권과 발전국가 과정을 거치면서 대학생과 노동자의 연합은 굉장히 좋은 옵션이었다. 대학생들은 준 지식인이라는 타이틀과 순수함을 담보로 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대학생들이 가지지 못한 현실적 경험과 자기이익적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상조했고, 반정부투쟁에 있어서 그들의 연합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서 대학생-노동자 연합이라는 구호는 지극히 구태의 강령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개인적으로 노총이라던가, 노조 등에 연이 있어, 그들이 하는 연합대회라던가, 대규모 시위와 같은 것들을 조금은 근저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들이 여러 번 있었다. 어디에서든 그랬을테지만, 역시나 나는 그들의 대규모 모임에서 그리 큰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 그저 그들 또한 관습적으로 과거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번은 함께 자리했던 지역노조간부분으로 부터 대회장에 울려퍼지는 투쟁가와 연설들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강력하게 설명들을 기회도 있었다. 빨간색 머리끈과 빨간색 구호가 난무하는 대회장에서 나는 그 분의 설명에 도무지 귀가 기울여지지가 않았다. 나와 같은 대학생들이 보다 이런 투쟁현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변하셨지만, 그 분의 말씀과는 반대로 대학생들이 보다 이런 투쟁현장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될 것 처럼 보였다. 그 분은 요즘 대학생들이 풍요로운 환경에 살다보니, 정작 중요한 것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썩어간다고 비판하셨다. 나는 요즘 대학생들이 풍요로운 환경에 살다보니, 정작 중요한 것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썩어간다는 걸 뻔히 아시는 분들이 왜 그들을 설득 해내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의 대학생들은 과거의 대학생들과 다르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취업과 연애이고, 그들의 일상 생활은 충분한 정치적 자유라는 명목아래 풍요롭게 보장되고 있다. 지금의 노동자들도 과거의 노동자들과 다르다. 발전국가 시절의 경공업, 중공업 발전은 단순 현장 노동 중심의 산업노동자를 양산했고, 그들은 극렬히 탄압받았지만, 지금은 선진국 진입을 위한 서비스 산업 위주로 경제 구조가 재편되고 있고, 이미 충분히 진행되어 왔다. 과거와 같이 철저히 단순반복적 노동의 추세는 상당히 줄었고, 지금은 많은 노동자들이 조금씩 각자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당연히 연대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노동자의 연대성이 훨씬 좋을 수 있는 조건이었던 19세기에도 실패했으니 애초에 노동자 연대라는게 이뤄질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노동자-대학생 연합을 부르짖는 구호가 오히려 노동자-대학생의 분열을 촉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너무나 많은 "다양함"이 난무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다양함"이 충분히 구현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과거의 방법이 여전히 효과적일 만큼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노조를 대하는 정부의 대처방식도 여전히 근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의 행태 또한 여전히 근대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건 지금이 근대 사회는 아니라는 거다 "노동자"와 "대학생"이라는 계급을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목소리와 연합들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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