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자치단체 공천제, 안철수 등으로 우리나라에 말이 많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여전히 야권에 쓸데없는 정쟁을 그만두고 민생에 집중하라고 나날이 재촉하고 있다. 정치권은 매일 시끄럽다. 경제신문들은 정당들이 경제 발전과 규제 완화에 집중하지 않고, 이권싸움만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근데.
유명한 애니메이션인 에반게리온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인류보완계획"이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모든 인류가 하나의 존재로 합치고자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모든 인류는 LCL 용액이라는 가상의 액체가 되어 버린다. 그걸 LCL용액이라고 부를지, 인류라고 부를지야 너님들 맘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는 갈등과 분열이 심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은 두 명만 모여도 싸운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것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는 몰라도(아니면 박정희 대통령이 너무 훌륭해서 그랬던 건지는 몰라도),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갈등은 나쁜 것이며, 항상 단일한 목적을 향해 모두가 똑같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갈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갈등이라고 부르는 건 그저 등돌리거나 목소리 높여 싸우는 것 밖에 없다. 그것 또한 재산, 연령, 사회적 지위 등 몇몇 지표들로 개인들 간의 갈등은 거의 대부분 매우 쉽게 해결된다. 자기 이익을 쫓는 것은 철저히 이기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국회에서 어떤 법안 통과를 두고 한 번만 대치해도, 대다수의국민들은 국회가 시끄러운 곳이라고 비난한다. 진보적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조차, 국회를 없애자는 구호에 박수를 보낸다. 심지어 대학교라는 순수한 곳에서 벌어지는 세미나들에서도 조금만 반론이 일어날만 하면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나는 우리나라가 갈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9번 이기다가 1번 지면 진 것만 생각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워낙 갈등이 부족하다보니, 갈등이 한 번 생기면 오로지 온 국가가 시끄러운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갈등이라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르다. 마치 체형과 얼굴이 다른 것 처럼, 생각도 다르고, 하고 싶은 것도 다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다른 사람들이 자꾸 같아지려 한다는 것이다. 갈등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국회라는 건 싸우라고 뽑아놓은 곳이다. 그들이 안싸우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의 다른 이익들을 공론장에서 경연하라고 뽑아놓은 사람들이 같은 이익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건 틀림없이 어떤 특정한 권력자의 의지에 헌신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쩌면 더 싸우라고 권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지금 우리가 이미 끝임없이 주변 사람들과 갈등하고 있어야 할 지도 모른다.
물론 갈등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 국회가 바보같아 보이는 건 시민들이 바보같기 때문이다. 갈등을 철저히 회피하려는 인간들이 갈등을 하는 척 하려다보니 바보같아지는 것이고, 마치 그들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들을 바보같다고 비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현대 사회이다. 중세처럼 신이 지배하는 사회도 아니고, 근대처럼 자본이나 군대가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 사회는 각자의 가능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다. 당연히 각자의 개성이 부딪히는 갈등이 중요해지는 사회다. 그리고 그 끝없는 갈등 속에서 갈등에 대처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그것을 통해 단순 획일적인 한 가지의 메시지가 아니라, 추상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타협적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사회다.
인류가 될 지, LCL 용액이 될 지, 선택하는 건 너님들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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