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4일 토요일

갑을관계.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듣거나 보게 되면 어떤 비슷한 경향성을 느낄 수 있었다. 관계는 보통 남성들에 의해 시작된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남성이 여성의 외모적인 측면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성을 일종의 "Object"로 인식한 남성은 그 여성의 호감을 사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한다. 우연을 가장한 수많은 만남을 시도하고, 평소에는 하등 관심없던 여성의 관심사에 대해 잘 알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언행에 굉장한 신중을 기하고, 때때로는 과한 선물 공세를 펼치기도 한다. 그러한 노력에 보통 여성은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남성이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연인이 된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일정의 허니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남성은 여성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직업, 자신의 동성 혹은 이성 친구들, 자신의 관심사 등을 신경쓰기 시작한다. 반대로 여성은 자신의 삶을 모두 남성에게 맞추게 된다. 자신의 관심사, 자신의 안위는 버린 채 남성의 모든 것에만 신경을 쓰게 되고, 동시에 남성이 자신에게 똑같이 해주기를 기대한다. 남성은 답답함을, 여성은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갈등은 쌓여가고, 결국 굉장히 사소한 어떤 일이 트리거가 되어 그들은 결정적인 갈등을 갖게 되고, 그들의 관계는 끝이 난다. 

  면접은 영어로 interview이다. 모두가 다 알 듯, 수 많은 연예기사에서 나오는 인터뷰가 그 단어이고, 수 많은 신문기사에서 나오는 인터뷰가 바로 그 단어이다. 필자가 서구인이 아니다 보니 서구에서 면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알턱이 없다. 다만 이런 저런 직간접적 경험 등을 통해 대충 떠올릴 뿐이다. 거기서 받았던 느낌은 서구 사회가 얼마나 선진적이고 평등한 사회인지는 몰라도, interview가 꽤나 동등한 입장에서 쿨(cool)하게 이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면접자와 피면접자가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회사에 대해 혹은 피면접자에 대한 질문들을 서로 주고 받으며 서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회사인지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느낌이 분명했다. "시험"이라기 보다는 "만남"에 가까워 보였다. 떨어져도 그리 아쉬울 것이 없는 느낌이다. 단지 이 자리(position)에 얼마나 적합한가를 따지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특히 대기업 면접장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많이 펼쳐진다. 그건 interview가 아니라 test에 가까웠던 것 같다. 대다수의 면접장에서 면접관들은 마치 국가적 권위를 지닌 것 마냥 우월한 아우라를 가지고 멀리 탁자 뒷 편에 팔짱을 끼고 앉아있다. 반대로 피면접자들은 법정의 피고인 마냥 허술한 의자에 몸을 지탱한 채 덜덜 떨고 있다. position에 관한 구체적인 description이 없는 만큼이나, 면접의 내용들은 전혀 알맹이가 없다. 면접에 참여하는 피면접자들의 숫자도 많을 뿐더러 그들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수준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당연히 면접자들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면접에 찌들어야 할 뿐더러 그들의 두뇌와 질문 수준 또한 천편일률적일 뿐이다. 대답을 하기 애매한 질문에 애매한 대답이라도 해내면 피면접자들은 오줌을 지린 것 만큼이나 죄책감에 휩싸인다. 면접관(혹은 시험관)들은 애매한 대답이나 들었다 싶으면 피면접자가 자신이 헌신해온 회사의 명예를 모욕한 것 만큼이나 거칠게 표정을 찌뿌린다. 면접은 시험처럼 합격자와 불합격자로 나뉜다. 
  면접이 끝나면 더 멋진 일이 일어난다. 적게는 30개 부터 많게는 150개의 회사에 지원하는 피면접자들은(그렇게나 많은 회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들의 폭넓은 아량이 놀라울 따름이다.) 복수의 회사에 합격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들은 그렇게 주눅들었던 회사들의 권위를 껌버리듯 거칠게 싸서 버린다. 그리고는 선택한 1개의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들은 2년이 채 되지 않아서 열심히 이직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이유도 다양하다. 결국 그들은 공기업, 공무원, 전문직 등을 쫓아 이직 준비를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굉장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회사가 그들을 버리기 전에 그들이 박차고 나간다는 건 비용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선발하고, 가르치고, 적응시키는 비용은 회사가 고스란히 떠앉게 된다. 그리고 회사는 또다시 새로운 면접장에서 얼어있는 피면접자를 털어내기 위해 다시 한번 탁자 뒤편에 있는 권위의 아우라에 몸을 숨긴다. 그 면접자들이 언제 회사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하찮은 톱니바퀴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건 덤이다. 

  한 때, 갑을 관계라는 용어가 유행을 탄 적이 있다. 계약서를 쓸 때 자주 사용한 갑과 을에서 따온 용어다. 위계서열과 권위주의가 역사적으로 점철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갑을 관계가 사회문화적 현상이 된다는 건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을은 언제나 갑에게 고개를 숙여야하고, 을은 갑의 말도 안 되는 여러 횡포들에 대해서도 머리를 수그리면서 버텨야한다. 갑은 마치 자신의 권력이 진시황의 그것인양 자만에 빠진다. 연애와 취직,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가장 핫한 관심사일 이 두 가지를 떠올리며, 나는 이 두 가지 또한 갑을 관계의 연장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어찌보면 우스운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 게, 행위자들이 갑을 관계라는 것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갑을 관계라는 상황의 가장 큰 맹점은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갑이 언제까지 갑질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을이 언제까지 을질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상황은 언제나 바뀌기 때문이다. 
  연애도 그렇다. 사귀기 전까지는 보통 여성이 갑이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남성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 속에서 행복해한다. 그리고 이 남자가 자신 밖에 모른다는 대단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사귀고 나면 남성이 갑이 되기 시작한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여자친구로 부터 모든 것을 제공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여자가 자기 밖에 모른다는 대단한 착각에 빠진다. 취직시장도 그렇다. 피면접자들은 취직만 시켜준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군다. 면접자들은 그들의 관심에 취해 자신이 마치 위대한 사람이라도 된 마냥 거만 떨기 시작한다. 취직이 되고 나면 상황은 바뀐다. 피면접자들은 항상 도망갈 궁리, 다시 말해 항상 회사에 손해를 끼칠 궁리만 한다. 면접자들은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고 감시하는 궁리만 한다. 서로 참 대단한 에너지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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