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6일 일요일

10 dramatic moments in tennis



  Youtube에서 동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남자 테니스계에서 극적이었던 사건들을 개인적으로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2000년대에 들어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의 US오픈 우승 은퇴나, 2001년 당시 세계랭킹 125위였던 고란 이바니셰비치Goran Ivanisevic가 와일드카드로 출전해서 윔블던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나, 드라마틱하게 컴백해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고령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달성했던 앤드리 애거시Andre Agassi등이 있겠지만, 빅4나 익숙한 내게는 그 사건들은 왠지 낯설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꼽아본 10가지 사건이다. 




10. 2005 French Open,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의 첫 그랜드슬램 우승






  라파엘 나달은 18세 11개월의 나이로 첫 출전한 프랑스 오픈에서 그대로 우승을 차지했다. 준결승에서는 당시 전성기이자 지배자였던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를 3:1로 꺾었고, 결승에서는 선수 황혼기에 느닷없이 그랜드슬램 결승에 진출한 마리아노 푸에르타Mariano Puerta를 3:0으로 가볍게 꺾었다. 대회 직전 몬테카를로와 로마 마스터즈를 우승하며 클레이에서 두각을 드러내나 싶었던 이 유망주는 그랜드슬램마저 우승해버리며, 최고 수준 선수 명단에 18살이라는 나이로 벌써 이름을 올렸다. 물론 세계랭킹 5위에 4번시드를 받고 대회 출전했으니 대단히 드라마틱한 사건은 아닐지모르지만, 앞으로 이어질 5회 연속 우승 및 통산 9회 우승의 첫 시작이라는 점과 나달 이후로 여전히 나오지 않는 10대의 그랜드슬램 우승, 그것도 첫 출전 우승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대단히 드라마틱한 일인 듯하다. 



9. 2016 Rio Olympic, 후안 마틴 델 포트로Juan Martin del Potro 부활






  아마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2016 리우올림픽 1회전에서 탈락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윔블던에서 충격의 탈락을 겪었다고 해도, 올림픽 직전에 열린 로저스 컵을 가볍게 삼킨 조코비치는 리우에서 당연히 금메달을 가져갈 것으로 보였다. 조코비치가 유일하게 가져가지 못한 타이틀은, 2008년에는 나달에 막혀 동메달, 2012년에는 머레이에 막혀 4위에 그치며 좌절했던 올림픽 금메달 뿐이었고, 리우 올림픽 코트장은 그가 그리도 강하다는 하드코트였다. 게다가 경쟁자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1046위였던 후안 마틴 델 포트로는 조코비치가 가진 유일할지도 모르는 금메달 찬스를 7:6(4), 7:6(2)로 짓누르며 조코비치를 1라운드에서 탈락시켰다. 세르비아는 조코비치를 빼면 사실 상 메달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국가였으니, 패배 후 조코비치가 흘린 눈물은 본인의 유일한 커리어 목표가 좌절됐다는 사실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상위 라운드에 올라간 델 포트로는 준결승에서 라파엘 나달Rafael Nadal마저 무너뜨리고 결승에 진출했다. 아쉽게도 결승에서 앤디 머레이Andy Murray에 패배하여 은메달을 차지하는데 그쳤지만, 델 포트로는 부활했다. 2009년 US 오픈 챔피언인 그는 3년이 넘는 시간을 손목부상으로 코트를 떠나있었지만, 결국 돌아와 최강자 노박 조코비치도 부숴버렸고, 라파엘 나달도 무너뜨렸다. 비록 250대회이지만, 스톡홀름 오픈 우승으로 타이틀을 추가했고, 무엇보다 데이비스컵 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영국의 머레이에게 복수하고 자국에 처음으로 데이비스컵을 안겼다.
  2016 US 오픈 QF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Stanislas Wawrinka와의 경기에서 패배하기 직전, 그는 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그 순간이 너무 감격스러웠는지, 아니면 돌아온 그를 격하게 반겨주는 팬들에 감격한 것인지, 눈물을 흘리느라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다. 무적의 조코비치를 올림픽 1라운드에서 탈락 시킨 것 부터, 3년 여 이상을 코트를 떠나있던 델 포트로가 다시 돌아와 1000위권 밖에서 부터 시작해, 본인이 우승했던 US 오픈 8강 무대까지 다시 밟았다는 건 정말 드라마틱한 일들이었다. 



8. 2013,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의 북미 시즌 석권





  무려 222일 간이나 시달렸던 무릎 부상이후 컴백한 나달은 하드코트인 인디언 웰스 마스터즈도 우승하며 천천히 자신감을 회복했다. 하지만, 무려 8번이나 연속으로 우승했던 몬테카를로 마스터즈 결승에서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에게 허무하게 패배했고, 2013 롤랑가로스 준결승에서 조코비치에 고전하면서 위기론이 나왔다. 여기에 윔블던에서 스티브 다르시스Steve Darcis라는 하위권 선수에게 느닷없이 0:3으로 지며 1라운드에서 탈락하자 나달의 격한 테니스스타일이 빠른 하락세를 가져온다며 위기론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또다시 예상을 뒤엎고 나달은 북미 하드코트 시즌의 로저스 컵, 신시내티 마스터즈, US오픈에서 하드코트 강자들인 페더러, 조코비치, 머레이 등을 모두 제치고 전부 우승했다. 하드코트에서 약하다는 나달이 조코비치나 페더러도 해내지 못한 과업을 이뤄낸 것이다. 특히 US오픈 결승, 세트스코어 1:1, 3세트 8번째 게임에서 발이 풀려 뒤로 넘어지면서 찬스볼을 놓친 후, 기어이 15:40 게임을 역전해 내는 장면은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다. 



7. 2017 Australian Open Final, 페더러와 나달의 클래식 라이벌리





  언제 친선경기나 뭐 자선경기나 그런거에서나 한번 같이 경기를 할 줄 알았다던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의 맞대결이 무려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열렸다. 둘 간의 호주 오픈 결승은 2009년 이후 처음, 그랜드슬램 결승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호주오픈 전적은 라파엘 나달이 3:0으로 앞선 상태였으나, 2017년 결승은 로저 페더러의 그랜드슬램 18승으로 끝났다. 나달의 팬들을 제외한다면 모두가 원하는 극적인 결과였다. 올타임 넘버 원 페더러는 본인이 유일하게 갖고 있던 약점이었던 나달에 대한 백핸드 트라우마를 완벽히 벗어제끼며 극적으로 그랜드 슬램 결승 풀세트 접전 승리를 차지했고, G.O.A.T(the Greatest Of All Time)논쟁의 답은 이제 완벽하게 굳혀지게 되었다. 그 자신감인지 페더러는 최근 2019년 바젤 오픈 참석에 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했다. 
  선수생활의 사실상 황혼기나 다름없는 이 두 선수의 클래식 경기는 호주오픈에 전례가 없는 엄청난 흥행을 갖다주었다고 한다. 페더러는 또래 선수들이 이미 5년은 이전에 은퇴했을 정도로 고령 선수이고, 나달 또한 선수 황혼기인 30대에 접어들며, 과거와 같은 활동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이런 이 두 선수가 무려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다시 만났다는 것 자체가 센세이션이다. 한창 라이벌리를 겨룰때는 이미 10여 년 전이기 때문이다. 



6. 2015, French Open Final,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의 눈물







  괴물같은 포스를 뿜어대며 두 번째 전성기를 시작한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2015년 프랑스오픈 QF에서 클레이의 황제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을 7:5, 6:3, 6:1 완승으로 가볍게 물리치며, 자신의 프랑스오픈 타이틀의 유일한 벽이었던 나달을 넘어섰다. SF에서 앤디 머레이Andy Murray에 3, 4 세트를 내주며 5세트까지 가기는 했지만, 애초에 머레이가 어려운 적은 아니었다. 나달이 없어진 당시, 조코비치의 경쟁자는 아무도 없어보였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하게 그는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Stanislas Wawrinka에게 첫 세트를 따고도 내리 세 세트를 내주고 느닷없이 패배했다. 그렇게 조코비치는 나달을 극복하고도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에 실패했다. 2007년 처음으로 RG SF에 등장한 이후, 1차 각성기였던 2011년에는 페더러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사실 상 거의 전부 나달에게 발목 잡혀 강력한 실력을 가지고도 번번히 프랑스 오픈에서 퇴장해야했던 조코비치는 그들이 없는 필립 샤트리에에서도 무관으로 퇴장해야했다. 그는 세레모니에서 눈물을 흘렸다. 



5. 앤디 머레이Andy Murray의 2012 윔블던Wimbledon







  "I'm gonna try this and it's not gonna be easy." 앤디 머레이Andy Murray가 2012년 윔블던 결승에서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에게 결국 패배하고 한 인터뷰의 첫 마디다. 사실, 이 포스팅을 쓰게 만든 건 이 장면이었다. 
  경제학 용어에는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외국자본이 국내시장을 잠식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 용어는 1936년 프레드 페리Fred Perry 이후, 영국인이 자국에서 열리는 윔블던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데서 연유한 개념이다. 대영제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점철된 영국인들에게 최고의 전통과 명예를 자랑하는 자국의 테니스 대회인 윔블던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우승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상당한 굴욕이었다. 팀 헨만Tim Henman이 결국 4번의 준결승 진출에만 그쳐 영국인들의 아쉬움이 더욱 올라있을 무렵, 앤디 머레이가 등장했다. 비록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이었지만, 영국의 주류인 잉글랜드인들은 윔블던 우승에 대한 기대에 출신성분 따위 무시해버리고 머레이를 열렬히 응원했다. 비록 2009년에는 앤디 로딕Andy Roddick, 2010년과 2011년에는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에 가로 막혀 3년 연속 준결승 진출에 만족해야 했지만 드디어 2012년, 머레이가 윔블던 결승에 진출 해낸 것이다. 윔블던 센터코트에는 머레이의 우승을 보기위해 온 영국인이 다모였다. 
  하지만 결승에서 머레이는 로저 페더러를 상대로 첫 세트를 따내며 선전했지만, 이후 내리 세 세트를 내주며 패배했다. 그리고 내놓은 인터뷰의 첫마디가 계속 도전할 거지만 어려울 것이라는 위의 구절이었다. 그는 저 문장을 힘들게 내어놓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가족과 애인은 물론 코트를 찾은 모든 관중, 경기장 밖에 모여 경기를 지켜보던 영국인 모두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영국인들 전체가 보여주는 기대에 깊은 부담을 항상 안고 있었을 머레이의 소회였기 때문이다. 
  머레이는 그렇게 2012 윔블던을 보내고, 직후 열린 런던 올림픽 결승에서 머레이는 자신이 눈물을 흘렸던 바로 그 경기장에서, 바로 그 눈물의 패배를 자신에게 안겨줬던 바로 그 페더러를 3:0으로 압살하고 금메달을 차지한다. 페더러의 금메달을 사실상 영원히 좌절시킨 머레이는 이어 US오픈에서는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를 5세트 혈전 끝에 누르고 첫 그랜드슬램 우승을 이뤄낸다. 그리고 드디어 이듬해 2013 윔블던 결승에서 조코비치를 누르고, 1936년 이후 무려 77년만에 윔블던을 우승한 영국선수가 된다. 2012년의 패배가 앤디 머레이를 진정으로 각성시킨 것이다. 



4. 2009 Wimbledon Final,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 앤디 로딕Andy Roddick






  앞서 언급한 앤디 머레이Andy Murray는 그래도 2012 윔블던 패배 이후, 나름 성취를 얻어냈다. 하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앤디 로딕Andy Roddick은 그렇치 못했다.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보다 한 살 어린 로딕은 2003년 하반기에 로저스컵과 신시내티 마스터즈 1000과 US 오픈을 전부 휩쓸면서 라이벌이었던 페더러보다 먼저 세계랭킹 1위에 오른다. (북미 하드코트 시즌은 2004년 부터 통합, 조직되었다.) 
  원래 페더러의 라이벌은 또래였던 로딕으로 알려졌었지만 3-21이라는 일방적인 상대전적과 페더러의 지나치게 압도적인 성취는 라이벌리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로딕의 강한 서브와 포핸드가 페더러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미숙한 백핸드가 페더러의 우아한 싱글 핸드 백핸드에 비교당하며 부족함만 강조되었다. 2004~2005 윔블던과 2006년 US오픈 결승에서 페더러에게 패배했고, 그렇게 그는 더이상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3년 만에 윔블던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그리고 로딕은 또다시 페더러를 만났다. 
  1세트를 따냈지만, 2세트와 3세트를 타이브레이크로 내준 로딕은 4세트를 6:3으로 따내며 경기를 5세트로 끌고 갔다. 5세트는 무려 30게임이나 펼쳐진 혈전이었다. 14:15 마지막 게임에서 로딕의 미숙한 백핸드는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았고, 긴장감이 너무 컸는지 2개의 정말 바보같은 포핸드 에러로 자신의 서브게임을 페더러에게 내주며 경기를 패배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페더러가 자신도 작년에 나달에게 아쉽게 패배해 로딕의 감정을 잘 안다고 이야기하자 로딕은 "You already won 5."라고 외치며 관중들의 웃음을 이끌었다. 하지만 로딕에게는 정말 슬픈 이야기다. 로딕은 가장 빠른 표면인 잔디 코트에 강점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랜드 슬램 결승 5회 진출 중 3회가 윔블던이었다.(나머지 2회는 빠른 하드코트로 유명한 US 오픈이다.) 게다가 그 5회 중 자신이 우승한 2003 US 오픈을 제외하고 전부 페더러에게 패배했다. 그래서 2009 윔블던은 더욱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로딕이 윔블던 우승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순간이기도 하고, 심지어 그 결승전에는 윔블던 7회 우승자이자 미국의 테니스 황제인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가 관중석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로딕은 더이상 그랜드슬램 결승 무대를 밟지 못했고, 2012년 US 오픈 4라운드에서 후안 마틴 델 포트로Juan Martin del Potro에 패배한 것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3. 2009 Australian Open Final,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라파엘 나달Rafael Nadal






  나는 개인적으로 2009년 호주오픈 결승 경기를 가장 좋아한다.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이 서로가 각각 강한 잔디와 클레이의 중간인 하드코트 경기장에서 펼친 이 경기는 그들 각각이 지닌 플레이 스타일이 가장 최상의 수준으로 맞붙었던 경기였던 것 같다. 경기는 7:5, 3:6, 7:6(3), 3:6, 6:2, 나달의 승리로 끝이 났다. 
  나달은 처음으로 호주오픈 결승에 진출했고, 이미 페르난도 베르다스코Fernando Verdasco와 풀세트 혈전을 거친 상태였다. 페더러는 US오픈에서 우승하며, 통산 그랜드슬램 우승 횟수를 13회로 만든 직후였다. 이제 1번만 더 우승하면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게 되는 진짜 황제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페더러는 2008년 윔블던에서 자신을 좌절시켰던 그 나달을 또 만나게 된 것이다. 
  결국 페더러는 또다시 나달에게 패배했다. 윔블던을 내주고, 호주오픈도 나달에게 내주며, 역사적인 그랜드 슬램 14회 우승 달성이 좌절되어서 그런지, 페더러는 세레모니 연설에서 결국 오열하고 말았다. 스물 세살의 나달은 트로피를 받고나서 페더러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그를 위로했다. 그리고 나달은 "Well, everybody, first of all, Roger, Sorry for today." 라며 우승 스피치를 시작했다. 대단히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2. 2009 French Open,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의 커리어 그랜드 슬램






  가장 많은 테니스 팬들을 이끌고 있는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는 2009년 드디어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함과 동시에 14회로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와 그랜드 슬램 우승 횟수에서 공동 1위를 달성했다. 오픈 시대 이후 앤드리 아가시Andrey Agassi에 이어 두 번째였다. 페더러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2009년 프랑스오픈 우승은 그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회 연속으로 프랑스오픈을 우승했던 클레이의 제왕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은 2009년에는 4라운드에서 스웨덴의 로빈 쇠덜링Robin Soderling에게 패배하며 프랑스 오픈 31연승을 마감했다. 2015년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에게 패배하기 전 까지, 2009년 나달의 패배는 프랑스오픈 통산 유일한 패배였다. 피로의 누적, 무릎 부상 등 여러 이유들이 제시되었지만, 어쨌건 확실한 건 엄청난 이변이라는 사실이다.
  나달의 탈락은 페더러로서는 엄청난 찬스였다. 클레이 코트에서조차 나달을 제외하면 페더러의 경쟁자가 없다는 건, 그의 3회 프랑스오픈 연속 결승 진출, 4회 연속 준결승 진출로 이미 밝혀졌다. 페더러는 프랑스오픈만 우승하면 모든 코트와 모든 그랜드 슬램에서 정상에 설 수 있었다. 후안 마틴 델 포트로Juan Martin del Potro와의 준결승, 두 세트를 내주고 시작했던 토미 하스Tommy Hass와의 4라운드가 가장 강력한 위기였지만 페더러는 그것을 극복하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는 나달을 꺾었던 바로 그 쇠덜링이었다. 23번 시드의 쇠덜링은 이미 강자였던 니콜라이 다비덴코Nikolay Davydenko와 강력한 포핸드의 페르난도 곤잘레즈Fernando Gonzalez를 이기고 결승에 올라왔다. 클레이에서 나달을 이겼다는 자신감인지 그의 상승세는 강력했다.(그는 이듬해인 2010년에도 프랑스오픈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페더러는 유일한 프랑스오픈 우승 기회일지도 모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6:1, 7:6(1), 6:4로 완승을 거두며 본인의 그랜드슬램 장식장을 모두 채웠다. 이는 페더러로서는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자, 모든 테니스팬들에게도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1. 2008 Wimbledon Final





  2006, 2007년에 이어 또다시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이 윔블던 결승에서 맞붙었다. 언제나 그랬듯, 당연히 로저 페더러의 윔블던 6회 연속 우승이 점쳐졌다. 로저 페더러는 무실세트로 결승에 올라왔고, 라이벌 라파엘 나달은 어네스트 걸비스Ernest Gulbis에게 단 한 세트만 내주고 결승에 올라왔다. 그렇게 결승에서 만난 그들의 경기는 역대 베스트 넘버원 경기로 언제나 꼽힌다.
  경기는 6:4, 6:4, 6:7(5), 6:7(8), 9:7로 라파엘 나달의 승리로 끝났다. 이 경기가 역대급이었던 이유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 경기를 나달이 승리함으로써 페더러의 세계랭킹 연속 1위기록과 윔블던 연속우승, 윔블던 연승이 각각 237주, 5회, 41연승으로 마감되었다는 점. 둘째, 페더러와 나달의 Surface 대결이 결국 나달의 승리로 종결되며 나달이 새로운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는 점. 마지막으로 경기 자체가 굉장히 극적이었다는 점이다. 
  1세트를 따낸 나달은 2세트에서 1:4까지 밀리지만, 그대로 다섯 게임을 따내며 2세트 마저 가져간다. 이렇게 허망하게 나달의 승리로 끝나나 싶던 승부는 페더러가 타이브레이크 끝에 3세트를 따내고, 4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도 나달의 5:2 리드와 두 번의 챔피언쉽 포인트를 결국 저지해내면서,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경기 분위기는 페더러가 가져갔다. 브레이크가 나오지 않으면서 5세트는 연장게임에 접어들었으나, 결국 페더러의 서브게임인 15번째 게임, 나달의 브레이크 포인트 상황에서 페더러가 포핸드 에러를 범하며 나달에게 브레이크를 내주고 말았다. 다음 게임인 나달의 서브 게임에서도 페더러는 나달의 챔피언쉽 포인트를 방어해내며 듀스를 가지만, 결국 페더러의 포핸드가 네트에 걸리며 나달의 첫 윔블던 우승이 결정된 것이다. 경기 시작한지 4시간 48분 만이었다. 
  Infectious mononucleosis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는 페더러의 극적인 선전 또한 감동적이었고, 그것을 또다시 기어이 반전시키는 나달의 근성 또한 감동적이었다. 이 경기는 테니스계에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주었고, 언제나 역대 베스트 경기 1위에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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