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0일 월요일

반어법이라니




  안희정 충남지사가 오늘(20일) 부산대학교 강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를 언급하며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우리 없는 사람들과 국민들을 위해서 좋은 정치하시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 됐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발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는 "불의에 대한 분노가 없다"며 안 지사를 비판했고, 안철수 전 대표는 "밑바닥을 드러냈다"고 비난했다. MBC나 TV조선 같은 관영 매체는 이를 두고 "야권 분열 혹은 야권 내분" 같은 표현을 쓰며 보도했다. 비난이 일자 안 지사는 그것이 일종의 반어법이며,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이해했다고 변명했다. 

  뭐 안 지사가 밝힌 맥락은 뭐 이렇듯 싶다. 분명한 듯 하다. 본인 스스로가 밝혔듯 진정한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상대의 발언이나 행동을 나의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가 도덕적으로 유리한 입장, 즉,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내가 전제하여 받아들임으로써 상대와의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MB도 국가경제 부흥이라는 "선한 의지"로 4대강을 한거고, 박근혜도 동계올림픽을 잘 치르겠다는 "선한 의지"로 미르재단 등 최순실 게이트를 일으켰다고 우리가 바라봐야, 그들 그리고 그들의 지지자들과 통합을 위한 진정한 대화가 될 거라는 거다. 

 선비같은 안 지사의 이미지와 그가 오랫동안 주창해왔던 이야기들과는 부합하지만, 그의 높아진 지지율은 그에게 이 발언과 관련하여 두 가지 비판을 남겼다. 첫째는, 그럼 상대의 행위는 다 선의일 것이니, 의심하고 비판하는 건 진정한 대화를 무조건 방해하는 것이냐는 비판. 둘째는, 대연정으로 중도층, 우파층 중심 지지율 상승이 불거지며, 명백한 불법행위들이 드러난 박근혜와 그 일당들을 선의로 해석해 포섭하자는 거냐는 비판이다. 뭐 두 비판 모두 나름의 의미를 가졌고,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름 비약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기도 하고, 안희정 지사의 지지율이 높아지다보니 큰 문제는 아닌데 더욱 비판이 격렬히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안 지사의 발언이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이야기와 맥이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원문 자체가 논어나 맹자에 나올법한, 워낙 원론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 또한 원문이 제시하고 있는 자세가 규범적으로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MB와 박근혜가 구체적으로 지칭되었다 하더라도 크게 반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불편했던 점은 "반어법"이라고 한 안 지사의 변명이다. 본인도 본인스스로가 말하는 그 원론적이고 규범적인 발언을 "반어법"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격하시켰다. 박근혜도 선의를 가지고 그랬을 거다 라고 추측한게 반어라면 그는 박근혜를 비웃는 동시에 자신이 현재 내세운 그 자신의 그 철학까지 동시에 비웃는 것이나 다름없다. 겉으로는 진정한 대화와 통합을 외쳐도 사실 속으로는 대화를 하는 상대가 선할 것이라고 믿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선한 의도로 그랬으리라고 받아들이라면서 구체적 실례에서는 반어법이었다는 그의 변명은 실로 초라해보인다. 그가 이때껏 충청도 노인들을 쫓아다니며 했던 일들이 그냥 한방에 가식이나 위선에 불과할 수도 있게 되버렸다. 그 노인네들의 입장을 그들의 선의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겠다고 백번 말하고 행동했더라도 속으로는 상대를 반어적으로 비웃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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