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4일 월요일

70-50-10



 세계랭킹 1위 앤디 머레이Andy Murray도 꺾었고, 세계랭킹 8위 마린 칠리치Marin Cilic도 꺾었으며, 신예 루카 폴리Lucas Pouille 마저 가뿐히 제끼고 생애 첫 마스터즈 1000 대회 결승에 올라온 스페인의 알베르트 라모스-비뇰라스Albert Ramos-Vinolas에게 King of Clay를, 그것도 King of Clay의 본진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상대하는 것은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6:1, 6:3. 2017 롤렉스 몬테카를로 마스터즈 1000 대회 결승은 King of Clay의 가벼운 승리로 끝났다. 앤디 머레이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내며 투지를 보였던, 라모스-비뇰라스에게 King of Clay는 무려 단 한차례의 브레이크 포인트도 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Breaking Point Saved 0/0. King of Clay의 10번째 몬테카를로 마스터즈 우승을 막기에 라모스-비뇰라스는 너무 무력했다. 




  당초 몬테카를로의 대진은 King of clay의 우승에 먹구름이 낀 게 아니었나 싶었다. 이미 2회전 상대부터, 요새 상승세를 타고 있는 영국의 신예 카일 에드먼드Kyle Edmund였고, 그 다음 부터는 호주오픈 당시 나달을 심히 괴롭혔던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 그리고르 디미트로프Grigor Dimitrov가 차례로 나달의 대진에 있었다. 게다가 그들을 모두 이긴다고 해도 다음 상대로 세계랭킹 2위이자 나달을 상대로 2014년 프랑스오픈 이후 단 한번도 진적이 없는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기다리고 있을터였다. 
  그러나 막상 대회가 시작하자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흘러갔다. 디미트로프는 자신의 첫 경기에서 Qualifier인 얀-레나드 스트러프Jan-Lennard Struff라는 듣보잡한테 느닷없이 패배했고, 즈베레프는 자신의 생일날 펼쳐진 16강 경기에서 나달을 만나 1:6, 1:6으로 일방적으로 털렸다. 즈베레프가 King of Clay에게 클레이코트 레슨을 받았다는 게 외신의 기사 제목이었을 정도였다. 조코비치는 첫경기부터 이상하게 계속 헤메더니 결국 기어이 다비드 고팡David Goffin에게 역전패 당하면서 짐을 쌌다. 나달의 이번 10번 째 우승 달성에 있어 그나마 부담이 되었던 경기는 오히려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슈워츠먼Diego Schwartzman이라는 조그만 선수와의 경기였다. 하지만 그 경기조차도 스코어는 6:4, 6:4로 깔끔했다. 


출처 : rincon-sports.com


  이번 우승으로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a.k.a King of Clay, 는 오픈 시대 이후 최초로 한 대회를 10회 우승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고,  50회로 클레이코트 대회 단독 최다 우승자가 되었고, 본인의 통산 타이틀 개수 또한 70개로 늘렸다. 마스터즈 1000 대회 우승횟수는 29회로 , 노박 조코비치의 30회를 다시 바짝 추격하게 되었다. 
  이제 나달의 남은 목표는 각각 9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는 바르셀로나 오픈과 롤랑가로스도 우승하는 것이 될 것이다. 몬테카를로-바르셀로나-롤랑가로스라는 나달의 본진을 전부 10으로 채운다면, 이미 올 시즌은 이미 더 이룰 것이 없을 만큼 성공적인 시즌이 될 것임은 물론, 그 자체로 역사적인 기록이 될 것이다. 여기에 현재 올라온 폼이라면, 같은 클레이인 마드리드와 로마 마스터즈도 우승해버려서 마스터즈1000 우승 횟수도 조코비치를 앞질러 버렸으면 하지만 그건 또 너무 과한 욕심인 것만 같다.  



2017년 4월 23일 일요일

Goffin



출처: atpworldtour.com
  

  다비드 고팡David Goffin
  세계랭킹 13위, 1990년생, 180cm, 68kg, 오른손잡이 투핸드

  지난 2017 몬테카를로 마스터즈 1000 SF에서 고팡은 the King of clay를 만나 3:6, 1:6으로 가뿐하게 패배했다. 결과만 보면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몬테카를로는 클레이 코트고, 몬테카를로에서만 이미 8번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해 9번째 우승에 이어, 이제는 10번째 우승에 도전하고 있는 king of clay가 상대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king of clay는 올 시즌 우승은 없지만, 페더러를 제외하면 딱히 비할바가 없을 만큼 상승세다. 
  하지만 맥락을 보면 조금 다르다. king of clay에게 패배하기 하루 전 고팡은 QF에서 세계랭킹 2위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를 6:2, 3:6, 7:5로 물리쳤다. 이미 5번 만나 5번 전부 패배했던 조코비치에 대한 고팡의 첫 승리였고, 탑3를 상대로 한 고팡의 커리어 첫 승리였다. 게다가 3세트에서도 밀리던 걸 기어이 역전해내 일궈낸 승리였으니 대단히 드라마틱 했다. 그 상승세를 몰아 고팡은 king of clay를 1세트 초반부터 강력하게 몰아붙였다. 2번째 리턴 게임만에 브레이크를 성공해내 3:1로 세트를 리드했다. 나달의 경기력이 그렇게 딱히 나쁠 것도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선전이었다. 
  5번째 게임이자, 3번째 나달의 서브 게임을 내준 뒤, 6번째 게임, 3:2, 고팡의 서비스 차례. 40-0에서 추격하려는 나달에 의해 듀스와 어드밴티지까지에 이르고, 그것이 아슬아슬하게 반복하고 있던 중, 사건이 터졌다. 고팡의 어드밴티지 상황에서 나달의 포핸드가 아웃이 선언됐다. 그런데 갑자기 체어 엠파이어인 세드릭 모리에Cedric Mourier가 의자를 박차고 내려왔다. 아웃이 아니라는 거다. 고팡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호크아이 판독도 명백히 아웃이라고 보여주었지만, 몬테카를로 등 클레이 코트에서는 공 자국이 비교적 선명하게 남기에 단지 참고용으로만 쓰일 뿐이었다. 결국 체어 엠파이어는 IN을 선언했고, 노플레이가 선언됐다. 이후 고팡은 선전했지만, 미세한 집중력 차이로 결정적인 에러를 범하며 나달에게 브레이크를 내줬다. 게임스코어는 3:3 동점이 되었다. 


출처 : bbc.com


  그 다음부터는 사실 상 볼 필요가 없는 경기였다. 경기는 내내 야유로 점철됐다. 세드릭 모리에의 결정적인 오심 이후 고팡이 따낸 게임은 1게임에 불과했다. 과거 군대 활동복 같은 주황색 카라티를 입은 조그만 고팡은 불쌍해보일 정도였다. 지난 로테르담 오픈 결승에서도 조 윌프레드 쏭가Joe Wilfred Tsonga를 상대로 선전하다가 급 멘탈이 박살나며 형편없는 경기를 했던 고팡은 몬테카를로에서도 힘없이 무너졌다. 경기를 포기하고 아예 태업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king of clay는 그렇게 깨어진 집중력으로 요행을 바랄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 
  고팡은 경기가 끝나고 체어 엠파이어에 대한 악수를 거부하고 경기장을 떠났다. 비록 인터뷰에서 고팡은 "I have nothing against Cedric, he's a very nice guy"라고 쿨하게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고팡으로서는 대단히 아쉬운 경기였을 것이다. 상대였던 나달은 오심에 관한 질문을 받자, 자신은 in인지 out인지 볼 수 없었고, 그걸 결정하는 것이 심판이다라는 정도의 단순한 코멘트를 내놓았다. 결국 고팡에게도 아쉬운 경기가 되었고, 10번째 우승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코앞에 둔 나달로서도 영 찝찝한 경기가 되었다. 
  왠지 고팡의 경기를 보면 영 짠하다. 190대 선수들이 난무하는 투어에서 고팡은 대단히 작은 편에 속하고, 거기에 비쩍 말라서 그런지, 마치 대학생과 중학생의 경기를 보는 것 같을 정도다. 비슷한 신장인 니시코리는 또 그런 느낌까지는 아닌 데, 고팡은 유난히 돋보이는 것 같다. 조코비치에게 승리를 거두고 환호하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그런지, 내가 나달의 팬 임에도 고팡이 안타까웠다. 비록 챌린지 제도가 몬테카를로에는 없긴 했지만, 나달이 그냥 아웃판정을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 싶어 영 더욱 찝찝하다. 






감이 되겠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거 대선 후보가 되었을 때, 그는 부산에 행한 연설에서 이렇게 자문했다. "감이 되겠나?" 당연히 대답은 "감이 된다."였다. 이유는 당시 부산 선대위를 지휘하던 문재인 씨가 자신의 친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던 시절 나의 아버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덕분에 지금은 전설로 회자되는 노무현의 민주당 광주 경선 승리를 나는 라이브로 볼 수 있었다. 사실 당시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잘 몰랐고, 단지 호남 출신인 아버지가 영남 출신인 노무현의 승리에 환호한다는 사실에 의아했을 뿐이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언젠가 아버지는 당시 노무현의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씨를 눈여겨 봐보라고 내게 조언했었다. 승부사적이고, 다분히 다혈질적으로 보였던 노무현 씨가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그나마 버티고 해낼 수 있는 것은 문재인이라는 침착하고 합리적인 동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네가 미래에 어떤 성정을 지니게 될 것이라면, 노무현 씨보다는 문재인 씨와 같은 성정을 지니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하셨다.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된 문재인 씨가 대통령이 되건 말건, 나는 그 사람이 대단히 부럽다. 나보다 나이는 적지만 존경하고 믿음직한 문재인이가 자신의 친구여서 대통령감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부럽고, 자신이 친구여서 대통령감이 된다고 말하는친구를 가진 문재인 후보가 부럽다.








2017년 4월 20일 목요일

찰스와 키르키스탄 바운싱 신드롬 토론



1.


  찰스. 보수진영이 개박살난 이후, 보수지지층들이 반기문과 안희정에 이어 선택한 후보다. 민주당 경선이 끝나면서 안희정이 사라지자, 안희정 지지자들은 모두 찰스에 붙었다. 찰스를 지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새정치에 기대하거나, 그의 과거 행적에 기대하거나, 그의 인생 원칙에 기대하거나도 아니다. 그냥 문재인이 싫어서다. 
   여전히 2011년, 2012년을 달궜던 찰스에 대한 기대가 조금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한 그 기대를 조금 과장해서 현재 지지율로 표현한다면 대략 10% 정도가 아닐까 싶다. 찰스가 호남에서 받는 지지 또한 대부분이 단지 "문재인이 싫어서"니까 말이다. 그동안 내가 만나 본 찰스 지지자 중에 지지 이유를 문재인이 싫어서가 아니라고 대답한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그 분은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의 특정 정책 부분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제외한 모두는 "문재인이 싫어서", "문재인이 되면 시끄러워질 거 같아서" 이 둘 중에 하나였다. 
  찰스는 보수층의 기대에 부응해 느닷없이 사드 찬성을 들고 돌변했다. 당론도 안 바뀌었는데, 혼자 그렇게 바꿨다. 손학규 선대위원장은 JTBC에 나와서 그 장단에 맞춘 되도않은 짜증만 늘어놓고 사라졌다. 요지는 찰스나 손학규나 동일했다. 그냥 국민의당은 찰스의, 찰스에 의한, 찰스를 위한 당이라는 말이다. 그냥 찰스가 사드 찬성으로 바꾸기로 했으니, 당론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그냥 찰스의 생각대로 바뀔 뿐이라는 자신감말이다. 무슨 친문패권, 친문패권 노래를 쳐불르더니, 자신이 창업한 당이 찰스패권당이라는 걸 광고하는 꼴이다. 아, 본인이 창업했다고 하니, 차라리 안랩처럼 그냥 안당이라고 하지 그랬나 싶다. 본인이 창업했다고 자랑하고 싶으면, 안철수당이라고 멋지게 이름 붙이는 게 낫지 않나. 정말 바보같다.



2. 


  KBS에서 하는 바보같은 토론은 진정 가관이었다. KBS는 미 대선에서 펼쳐지는 타운홀 미팅같은 토론이 너무 간지나 보였는지, 느닷없이 스탠딩으로 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시간도 전부 똑같이 9분 씩 주고 각자가 말하는 시간에 각자의 시간을 깎는 방식을 제외하면 무규칙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미 대선 2차 토론처럼, 일어서서, 돌아다니며, 온갖 비언어적 의사표현과 끼어들기 논쟁이 난무하는 그런 폭풍 간지 토론을 예상했는지 모르겠지만, KBS의 방식은 후보가 5명이나 된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었고, 간지도 안났다. 
  먼저 상식적으로 그 방식을 쓰면, 상위 후보에 대한 공격이 몰빵된다는 걸 매우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상위 후보는 공격을 할 시간이 없고, 방어만 해야한다. 좋은 사람은 하위 후보다. 그는 질문을 받을 리가 없으니 온전히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랬다. 지지율 5위인 심상정 후보는 질문을 한 개 도 못 받았고,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는 각각 18개, 14개로 질문이 몰렸다. 
  그 외에 끼어들기가 허용되고, 자료준비가 불허되는 방식은 사실상 난장판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방식을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시간을 길게 잡아놓고, 리액션이 있는 청중까지 데려다놓고, 서로 각자가 마주 보고 있을때나 재미있는거지, 저렇게 어차피 탁자에 서서 카메라나 쳐다보면서 할 거면 아무 부질 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애초에 서서할 이유도 없었고, 무규칙일 필요도 없었던 토론이었다. 
  후보들이 내용이라도 알차게 채웠다면 모르겠다. 후보들은 모두 토론을 하는 이유가 뭐고 각자가 토론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유승민 후보부터 바보같았다. 그는 첫질문부터 북한 얘기를 꺼냈다. 유승민 후보가 접근해야할 지지층은 현재 찰스에게 몰려있는 중도보수지지층이다. 지난 토론 이후 유승민 후보의 지지층이 오른 건, 조리있던 유승민 후보에 비해 찰스가 너무 후져 보였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로 문재인 후보를 잘 공격한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현재 홍준표 후보에게 쏠려있다. 대북문제에 민감할 그들은 애초에 유승민과 바른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유승민 후보가 문재인을 때려봤자 그가 얻을 게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문제와 국민연금 문제로 문재인을 닦달하는 그의 이미지는 그냥 "똑똑한 실무자" 정도에 그칠뿐이다. 그가 큰 비중을 두고 집중했어야 하는 모습은 찰스의 학제 개편에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이지, 문재인과 북한문제로 씨름하는 모습이 아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대단히 안타까웠다. 문재인 후보에게 국가보안법 폐지할거냐, 말거냐, 사드 배치 할거냐 말거냐라고 몰아세우는데, 왜 저러나 싶었다. 지난 총선 정당투표에서 더민주의 득표가 국민의당에게 밀렸던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지역구는 더민주 후보를 지지하지만, 비례에서 정의당으로 정당투표하는 유권자가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이미 후보 본인 스스로도 이번 선거는 야권이 무조건 이길 것이니, 자신에게 투표하는 것을 주저말라고 홍보했지 않은가. 그런데 심 후보는 바보같이 문재인을 물고 늘어졌다. 문재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는 뜻인 건지, 자신이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란 걸 어필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문재인을 윽박지르는 모습은 결코 본인의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재인의 당선이 압도적이거나 확실해 보일때 비로소 겹쳤던 진보층이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한다. 어차피 문재인이 될 것이니,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의도에서 의미라도 살려볼려고 심상정 후보에 표를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심상정 후보가 했어야 할 일은 찰스에게 붙어있는 진보진영 표를 조금이라도 털어내는 일이거나, 오히려 찰스가 보수진영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 보수지지층이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홍준표도 아니고, 유승민도 아닌,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에게 국보법으로 시비를 걸었고, 자신이 딱히 합리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걸 입증했다. 
  홍준표 후보나 찰스는 딱히 별 다른 게 없었다. 찰스는 멍청하기 짝이없는 개그를 치거나, 자기 딸래미 교육도 한국에서 해보지도 않아놓고 학제 개편을 운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였을 뿐이다. 홍준표 후보는 그야말로 후보들 중 유일하게 본인의 포지션 안에서 본인에게 요구되는 것을 정확히 해냈다.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보다 어리다는 것만 부각되지 않는다면, 그런 술취한 어르신 같은 모습은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남은 건 문재인 후보다. 이 대세라는 후보는 다른 후보들의 지적대로 이미 대통령이 다 된 것 같은 이미지만 연출한 듯 싶다. 신중한 답변을 보다 그 때 그 때 잘 설명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망설였고, 때때로는 질문의 핵심을 벗어난 소리를 늘어놨다. 피로감이 쌓인 듯 보였고, 보는 사람들에게도 피로감을 선사했다. 당신의 지지층은 견고하니 딱히 큰 문제는 없겠지만,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국보법에 관한 질문이나 사드에 관한 질문에 각각 상황적 적실성이나 전략적 모호 입장의 필요성이라는 대답을 효과적으로 설명해내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국민연금 대체율에 관해서는 합의를 들먹이며, 세수 확보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감추려 애썼을 뿐이다. 문자 폭탄에 관한 찰스의 시비는 깔끔하게 쌩까다가, 홍준표 후보로 부터 나 보지 말고 니네 끼리 대화나 좀 해라라는 배려까지 받았다. 확실히 1차 토론에 비해 그는 이번 KBS토론에서 보다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3. 


  자꾸 요새 신문이고 방송이고 네가티브 자제하고 정책 경쟁이 됐으면 좋겠다고 지껄여 대는데, 무슨 결벽증인가 싶다. 그 네거티브 똑바로 안해서 박근혜가 다 말아쳐먹는걸 미리 막지 못한 거 아닌가. 박근혜 씨가 자신이 내세운 공약이나 정책이 안좋아서 그렇게 나라를 말아쳐드셨나. 정책경쟁도 정책경쟁이지만, 자질이나 개인사에 관한 네거티브 검증이 똑바로 됐으면, 최순실이고 나발이고 전부 드러났을 게 아닌가. 뭐 그리 정책, 정책 떠드나 모르겠다. 언제부터 선거 경쟁이 그리도 아름다웠다고 말이다.  
  정책 경쟁이란 말도 우습다. 정책이란게 머리 복잡한게 한 둘이 아니다. 게다가 다들 비슷한 정책들 내기 마련이다. 대단히 획기적인 정책이나, 거시적으로 아예 획을 달리하는 정책 이야기가 아니라면, 정책 경쟁 같은 건 대선 후보보다는 당이나 정책실무자들끼리 싸우는 게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토론에서 홍준표 후보가 한 말이 시원했다. 뭐 기재부 국장들도 아닌데, 뭐 그런 짜잘한 걸로 서로들 따지고 있냐고 말이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후보가 얼마나 정의와 원칙에 충실한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후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내거는 비전이 어떤 것인지, 그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질문이라고 본다. 그런 걸 들여다보는 아주 좋은 방법이 우리가 흔히 네거티브라고 하는 공격들이다. 무슨 네거티브라고 하면 다들 기겁하면서 오버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이해가 안된다. 선비들 같이 좋은 말만 늘어놓고 백날 정책 경쟁하면 뭐하나 그 정책을 지킬만한 인간인지부터가 의심스러운데.  
  싸우기는 스파르탄들 만큼이나 좋아하는 것 같은 코리안들은 뭐 그리 싸우는 거에 질색하는 지 모르겠다. 그들이 그리도 우러러 보는 양키들은 슈퍼팩까지 써가며 천 배는 더럽게 싸우는 데 말이다. 



2017년 4월 16일 일요일

더 플랜



1. 기록된 시간으로 비교해볼 때,  대략 전체의 10% 정도 선거구의 개표결과가 개표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발표되었다. 

2. 개표 내내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순위는 바뀌지 않는다.

3. 당선 유력과 당선 확실이 대단히 빨리 등장한다. 

4. 대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의 표가 박근혜 후보보다 단위시간 당 표가 앞선 상태로 개표가 종결된다. 

5. 개표기가 분류해내지 못한 미분류표 비중이 3%이다.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미분류표의 비중이 1%이내인 것에 비하면 이는 대단히 큰 수치이다. 

6. 통계적으로, 미분류표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득표 비중은 전체 득표 비중과 거의 유사해야한다. 전체 득표율이 51 : 49 라면, 미분류표에서의 비중도 51 : 49에 대단히 가깝게 수렴해야한다. 그런데 모든 지역의 미분류표에서 나타나는 득표 비중은 6 : 4로 수렴된다. 

7. k =  (미분류표 중 박근혜 후보 득표수 / 미분류표 중 문재인 후보 득표 수) / (분류표 중 박근혜 후보 득표수 / 분류표 중 문재인 후보 득표수)

8.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선거라면 k값이 1에 가까운 값이 나와야한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여러 지역을 표본으로 k값을 구한다면 그 k값의 분포는 1을 기준으로 정규분포가 나와야한다. 

9. 그런데 18대 대선 전체 지역에서 나타난 k값을 구하면 1.5를 기준으로 정규분포가 나온다. 즉 k=1.5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확률은 통계적으로 매우 적다. 

10. 위와 같은 결과는 개표기를 해킹하는 것으로 매우 쉽게 내보일 수 있다. 총 300kb도 안되는 파일 3개 만 덮어씌우는 것으로 위와 매우 유사한 결과를 보일 수 있다. 

11. 10000표(박근혜 4950표, 문재인 4950표, 기타 50표, 무효 50표)를 해킹된 개표기에 넣어 실험하자, 결과는 박근혜 5167표, 문재인 4738표가 나왔다. 박근혜 득표율은 51.67%라고 나왔으며, 미분류표에서의 k값은 1.44가 나왔다. 문재인 표를 더 많이 넣어 실험을 하건, 아예 문재인 표만 가지고 실험을 하건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12. 결국 개표기의 해킹 자체도 대단히 손쉬우며, 개표기의 해킹으로 위와 같은 결과를 대단히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실제로 해킹을 해서 대선 투표결과를 조작했는지, 안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하기가 대단히 쉬울 것이라던가, 그렇게 하기 대단히 쉬운 배경이 있었다던가 라는 것이 실제로 개표를 조작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니까. 영화에서도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단지 투표조작이 대단히 쉽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이루어진 조작이 현실에 나타난 데이터나 상황들을 대단히 쉽게 설명해준다는 것에 그쳤다. 저 영화가 가치를 가진다면 조금은 생각하기 어려운 지점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는 것일 것이다. "기계"라고 여겨지는 개표기가 저렇게 노골적으로 결과를 조작할 수 있는데, 그 오류를 찾아낼 방법이 사실상 없었고, 당연히 기계를 믿고 넘어가게 되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뭐라 딱히 할 말도 안 나왔다. 그렇다고 이 모든 질서를 부정하고 뛰쳐나가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고, 지난 대선이 무효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냥 저 주장에 지적할 수 있는 가능한 반론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애를 썼다. 한겨례 김보협 기자는 저럴수 있다면, 뭐하러 국정원이 댓글공작까지 시행해가며 노력했겠는가 라는 의문을 내걸었지만, 정말 멍청한 질문에 불과해보였다. 막 여기저기 보여주며, "이것 봐, 세상이 이렇게 썩었어, 너도 보고 수개표 운동에 동참해"라고 떠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내 자신이 이런 주장과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부터 고심해야할 일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건 뭐 썩 유쾌한 기분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