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찰스. 보수진영이 개박살난 이후, 보수지지층들이 반기문과 안희정에 이어 선택한 후보다. 민주당 경선이 끝나면서 안희정이 사라지자, 안희정 지지자들은 모두 찰스에 붙었다. 찰스를 지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새정치에 기대하거나, 그의 과거 행적에 기대하거나, 그의 인생 원칙에 기대하거나도 아니다. 그냥 문재인이 싫어서다.
여전히 2011년, 2012년을 달궜던 찰스에 대한 기대가 조금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한 그 기대를 조금 과장해서 현재 지지율로 표현한다면 대략 10% 정도가 아닐까 싶다. 찰스가 호남에서 받는 지지 또한 대부분이 단지 "문재인이 싫어서"니까 말이다. 그동안 내가 만나 본 찰스 지지자 중에 지지 이유를 문재인이 싫어서가 아니라고 대답한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그 분은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의 특정 정책 부분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제외한 모두는 "문재인이 싫어서", "문재인이 되면 시끄러워질 거 같아서" 이 둘 중에 하나였다.
찰스는 보수층의 기대에 부응해 느닷없이 사드 찬성을 들고 돌변했다. 당론도 안 바뀌었는데, 혼자 그렇게 바꿨다. 손학규 선대위원장은 JTBC에 나와서 그 장단에 맞춘 되도않은 짜증만 늘어놓고 사라졌다. 요지는 찰스나 손학규나 동일했다. 그냥 국민의당은 찰스의, 찰스에 의한, 찰스를 위한 당이라는 말이다. 그냥 찰스가 사드 찬성으로 바꾸기로 했으니, 당론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그냥 찰스의 생각대로 바뀔 뿐이라는 자신감말이다. 무슨 친문패권, 친문패권 노래를 쳐불르더니, 자신이 창업한 당이 찰스패권당이라는 걸 광고하는 꼴이다. 아, 본인이 창업했다고 하니, 차라리 안랩처럼 그냥 안당이라고 하지 그랬나 싶다. 본인이 창업했다고 자랑하고 싶으면, 안철수당이라고 멋지게 이름 붙이는 게 낫지 않나. 정말 바보같다.
2.
KBS에서 하는 바보같은 토론은 진정 가관이었다. KBS는 미 대선에서 펼쳐지는 타운홀 미팅같은 토론이 너무 간지나 보였는지, 느닷없이 스탠딩으로 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시간도 전부 똑같이 9분 씩 주고 각자가 말하는 시간에 각자의 시간을 깎는 방식을 제외하면 무규칙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미 대선 2차 토론처럼, 일어서서, 돌아다니며, 온갖 비언어적 의사표현과 끼어들기 논쟁이 난무하는 그런 폭풍 간지 토론을 예상했는지 모르겠지만, KBS의 방식은 후보가 5명이나 된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었고, 간지도 안났다.
먼저 상식적으로 그 방식을 쓰면, 상위 후보에 대한 공격이 몰빵된다는 걸 매우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상위 후보는 공격을 할 시간이 없고, 방어만 해야한다. 좋은 사람은 하위 후보다. 그는 질문을 받을 리가 없으니 온전히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랬다. 지지율 5위인 심상정 후보는 질문을 한 개 도 못 받았고,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는 각각 18개, 14개로 질문이 몰렸다.
그 외에 끼어들기가 허용되고, 자료준비가 불허되는 방식은 사실상 난장판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방식을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시간을 길게 잡아놓고, 리액션이 있는 청중까지 데려다놓고, 서로 각자가 마주 보고 있을때나 재미있는거지, 저렇게 어차피 탁자에 서서 카메라나 쳐다보면서 할 거면 아무 부질 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애초에 서서할 이유도 없었고, 무규칙일 필요도 없었던 토론이었다.
그 외에 끼어들기가 허용되고, 자료준비가 불허되는 방식은 사실상 난장판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방식을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시간을 길게 잡아놓고, 리액션이 있는 청중까지 데려다놓고, 서로 각자가 마주 보고 있을때나 재미있는거지, 저렇게 어차피 탁자에 서서 카메라나 쳐다보면서 할 거면 아무 부질 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애초에 서서할 이유도 없었고, 무규칙일 필요도 없었던 토론이었다.
후보들이 내용이라도 알차게 채웠다면 모르겠다. 후보들은 모두 토론을 하는 이유가 뭐고 각자가 토론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유승민 후보부터 바보같았다. 그는 첫질문부터 북한 얘기를 꺼냈다. 유승민 후보가 접근해야할 지지층은 현재 찰스에게 몰려있는 중도보수지지층이다. 지난 토론 이후 유승민 후보의 지지층이 오른 건, 조리있던 유승민 후보에 비해 찰스가 너무 후져 보였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로 문재인 후보를 잘 공격한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현재 홍준표 후보에게 쏠려있다. 대북문제에 민감할 그들은 애초에 유승민과 바른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유승민 후보가 문재인을 때려봤자 그가 얻을 게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문제와 국민연금 문제로 문재인을 닦달하는 그의 이미지는 그냥 "똑똑한 실무자" 정도에 그칠뿐이다. 그가 큰 비중을 두고 집중했어야 하는 모습은 찰스의 학제 개편에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이지, 문재인과 북한문제로 씨름하는 모습이 아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대단히 안타까웠다. 문재인 후보에게 국가보안법 폐지할거냐, 말거냐, 사드 배치 할거냐 말거냐라고 몰아세우는데, 왜 저러나 싶었다. 지난 총선 정당투표에서 더민주의 득표가 국민의당에게 밀렸던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지역구는 더민주 후보를 지지하지만, 비례에서 정의당으로 정당투표하는 유권자가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이미 후보 본인 스스로도 이번 선거는 야권이 무조건 이길 것이니, 자신에게 투표하는 것을 주저말라고 홍보했지 않은가. 그런데 심 후보는 바보같이 문재인을 물고 늘어졌다. 문재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는 뜻인 건지, 자신이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란 걸 어필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문재인을 윽박지르는 모습은 결코 본인의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재인의 당선이 압도적이거나 확실해 보일때 비로소 겹쳤던 진보층이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한다. 어차피 문재인이 될 것이니,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의도에서 의미라도 살려볼려고 심상정 후보에 표를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심상정 후보가 했어야 할 일은 찰스에게 붙어있는 진보진영 표를 조금이라도 털어내는 일이거나, 오히려 찰스가 보수진영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 보수지지층이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홍준표도 아니고, 유승민도 아닌,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에게 국보법으로 시비를 걸었고, 자신이 딱히 합리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걸 입증했다.
홍준표 후보나 찰스는 딱히 별 다른 게 없었다. 찰스는 멍청하기 짝이없는 개그를 치거나, 자기 딸래미 교육도 한국에서 해보지도 않아놓고 학제 개편을 운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였을 뿐이다. 홍준표 후보는 그야말로 후보들 중 유일하게 본인의 포지션 안에서 본인에게 요구되는 것을 정확히 해냈다.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보다 어리다는 것만 부각되지 않는다면, 그런 술취한 어르신 같은 모습은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남은 건 문재인 후보다. 이 대세라는 후보는 다른 후보들의 지적대로 이미 대통령이 다 된 것 같은 이미지만 연출한 듯 싶다. 신중한 답변을 보다 그 때 그 때 잘 설명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망설였고, 때때로는 질문의 핵심을 벗어난 소리를 늘어놨다. 피로감이 쌓인 듯 보였고, 보는 사람들에게도 피로감을 선사했다. 당신의 지지층은 견고하니 딱히 큰 문제는 없겠지만,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국보법에 관한 질문이나 사드에 관한 질문에 각각 상황적 적실성이나 전략적 모호 입장의 필요성이라는 대답을 효과적으로 설명해내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국민연금 대체율에 관해서는 합의를 들먹이며, 세수 확보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감추려 애썼을 뿐이다. 문자 폭탄에 관한 찰스의 시비는 깔끔하게 쌩까다가, 홍준표 후보로 부터 나 보지 말고 니네 끼리 대화나 좀 해라라는 배려까지 받았다. 확실히 1차 토론에 비해 그는 이번 KBS토론에서 보다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3.
3.
자꾸 요새 신문이고 방송이고 네가티브 자제하고 정책 경쟁이 됐으면 좋겠다고 지껄여 대는데, 무슨 결벽증인가 싶다. 그 네거티브 똑바로 안해서 박근혜가 다 말아쳐먹는걸 미리 막지 못한 거 아닌가. 박근혜 씨가 자신이 내세운 공약이나 정책이 안좋아서 그렇게 나라를 말아쳐드셨나. 정책경쟁도 정책경쟁이지만, 자질이나 개인사에 관한 네거티브 검증이 똑바로 됐으면, 최순실이고 나발이고 전부 드러났을 게 아닌가. 뭐 그리 정책, 정책 떠드나 모르겠다. 언제부터 선거 경쟁이 그리도 아름다웠다고 말이다.
정책 경쟁이란 말도 우습다. 정책이란게 머리 복잡한게 한 둘이 아니다. 게다가 다들 비슷한 정책들 내기 마련이다. 대단히 획기적인 정책이나, 거시적으로 아예 획을 달리하는 정책 이야기가 아니라면, 정책 경쟁 같은 건 대선 후보보다는 당이나 정책실무자들끼리 싸우는 게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토론에서 홍준표 후보가 한 말이 시원했다. 뭐 기재부 국장들도 아닌데, 뭐 그런 짜잘한 걸로 서로들 따지고 있냐고 말이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후보가 얼마나 정의와 원칙에 충실한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후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내거는 비전이 어떤 것인지, 그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질문이라고 본다. 그런 걸 들여다보는 아주 좋은 방법이 우리가 흔히 네거티브라고 하는 공격들이다. 무슨 네거티브라고 하면 다들 기겁하면서 오버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이해가 안된다. 선비들 같이 좋은 말만 늘어놓고 백날 정책 경쟁하면 뭐하나 그 정책을 지킬만한 인간인지부터가 의심스러운데.
싸우기는 스파르탄들 만큼이나 좋아하는 것 같은 코리안들은 뭐 그리 싸우는 거에 질색하는 지 모르겠다. 그들이 그리도 우러러 보는 양키들은 슈퍼팩까지 써가며 천 배는 더럽게 싸우는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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