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6일 금요일

조선자유당기레기



1.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 70년대 풍경 아닌가"라는 멋진 제목을 지닌 글을 게재했다. 요약하면, 일자리에 관심을 가지는 건 참 좋은데, 문재인 정부의 방법론과 방향이 참으로 후진적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보고 있자니 실소가 터져나왔다. 자기들에게나 어울릴법한 "70년대"라는 워딩 선택도 우스웠고, 일자리는 하이테크와 벤처에서 나온다는 주장도 우스웠다. 
 글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타 매체와 차원을 달리하는 조선일보답게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도 명확했고, 글의 요지도 분명했다. 깔끔한 글쓰기는 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기는 이유는 그 글의 주인공이 바로 "조선일보"라는 사실 때문이다. 글의 저자가 누군지 몰랐거나, 그 글이 작성된 시점이 지금이 아니었다면, 나는 대단히 감동하면서 읽었을 것 같다. 하지만, 글의 출처는 조선일보고, 글이 나온 시점은 문재인 정부가 막 들어선 지금이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기조는 현 실업문제가 워낙 심각하니, 일단 가능한 범위에서 공공일자리의 질과 양을 확보하고 늘려가는 방향에서 급한 불을 끄고, 점차 기업을 비롯한 민간 영역 전체의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조선이 씹은 일자리 상황판 이슈는 바로 이와같은 맥락에서 새 정부가 (아무것도 안한 기존 정부와는 달리)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문제 해결에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청년들은 중동으로 꺼지라며 문제 해결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가 이제 막 사라졌다는 걸 감안하면, 조선의 70년대 운운은 지극히 70년대 스타일의 딴지다. 
  게다가, 사설에서 주장한 신기술, 벤처 어쩌고 하는 내용은 지극히 뻔한 내용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사회의 실업문제는 그야말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다. 거기다 대고 신기술, 벤처따위를 왈가왈부하다니. 정부가 당장 내놔야 하는 정책에 인간사회의 장기적 발전 양태를 덧씌우려하다니. 비전과 단기 계획의 구분도 못하는 건가 싶다. 쓰는 본인들도 알거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더 웃기는 건 그렇게 신기술, 벤처 운운하던 박근혜 정부가 만든 "창조경제"니 "미래창조과학부"니 하던 세계적인 미련한 짓거리가 끝난지 불과 얼마나 됐나 싶다. 바로 그 박근혜 정부의 최고 조력자가 바로 조선일보 아닌가. 



2.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언론인"에 대해 일방적인 호의를 갖고 있다. 문제의식, 비판의식으로 가득 찬 그들은 보다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발로 뛰고, 열심히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비꼬는 용어가 된 "조중동"은 그냥 조중동이 그렇다는 거지, 거기에 소속된 "언론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다. 누구든 자신이 "기자"라고 소개한다던가, 언론사에서 일한다고 소개하면, 나는 그에 대해 일방적인 호의적 선입견을 갖는다.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도 기자다. 
  오랜 시간 머릿 속에 자리 잡아온 이러한 개념이 최근 들어서는 조금 흔들리고 있다.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가 문재인 지지자들과 대립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렇고, 새정부가 들어선 이후 비판자를 자처하며 머리를 들이미는 여러 언론사들을 보자니 그렇다. 조중동이야 말할 것도 없다. 방송계는 더욱 심각하다. 종편이 등장한 이래 방송들은 전부 쓰레기가 됐고, 지상파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그냥 보수의 나팔수가 됐다. 그나마 JTBC가 낫다고 하지만, 몇몇 사건을 거치며, JTBC도 오십보 백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개인적으로는 하고 있다. 뭐 FOX뉴스 같은 거 처럼, 원래 저렇게 지들 멋대로 떠드는 게 언론사들의 역할인가 싶기도 하면서도, 뭐 하나 좀 건강하게 볼 게 없나 싶다. 
  새정부가 들어선 이래, 여기저기 다 지랄들이다. 특히 사설들이 가관이다. 좌우,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마치 누가 더 상병신인가를 겨루듯, 서로 멍청한 비판들을 늘어놓고 있다.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것은 물론, 합리적인 평론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에 이른 것 같다. 지금 자신들이 해야할 일은 완전히 잊은 채, 무슨 대단한 사명감이라도 지닌 듯 거만떨고 있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끽소리도 못한 채 어용언론으로 점철되어왔던 언론들이 갑자기 "권력에 대한 비판자"를 자처하고 훈장질하고 앉어 있는 것이다. 그래 그나마 조선일보는 글이라도 깔끔하게 잘쓰지 나머지는 뭔가 싶다. 
  그냥 흔한 기회주의자들인 건지 아니면 누구처럼 유체이탈화법을 쓰는 것 뿐인건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벌써 이명박근혜 시대를 깔끔하게 잊은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언론 탄압같은 걸 안할 것 같아서 그런걸까. 정부가 인기가 너무 많으니, 질투가 나서 어떻게 존재감이라도 어필할려고 깝치는 걸까. 주제파악을 못하는 게 그들이 기레기라고 불리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3. 

  60년대에나 어울릴 법한 당명을 지닌 자유당. 그들은 정말 미친게 아닐까 싶다. 국무총리 청문회가 이어질수록 그들의 미친 짓거리 또한 누적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청문회 인사보고서 채택을 무산시켰다. 
  당명을 바꾸고 나니까 박근혜를 깔끔하게 잊어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국적인 행보를 나날이 이어가고 있다. 막말을 일삼았던 홍준표 씨를 대선 후보로 세운 걸로는 모자랐는지, 문재인정부 등장 이후에는 정우택을 선두로 하루 하루 헛소리를 늘어놓더니, 결국 기어이 새 정부의 첫 인사인 총리 청문회 마저 개판으로 만들었다. 그래놓고 문자폭탄을 받았다며 칭얼거렸다. 
  언론이고 자유당이고, 국민의당이고, 바른정당이고, 주제파악을 못하게는 게 확실한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 그들이 해야하고 그들에게 요구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 정말로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저러는 건지 싶지만, 저들이 멍청하게 굴고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특히 자유당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산되는 게 맞는 것 같다. 



라코스테Lacoste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의복 후원사를 바꿨다. 니시코리 케이Kei Nishikori와 함께 유니클로Uniqlo 메인으로 활약했던 조코비치는 이제는 라코스테Lacoste의 모델로 활약하게 되었다. 



출처 : http://www.lacoste.com/us/novak-djokovic.html
아.. 조코뱅크.. 안타깝다..


  유니클로 5년 계약이 올해 끝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나이키Nike가 관심을 갖고 있니 마니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국 라코스테로 가게 되었다. 이로써 조코비치는 앤디 머레이Andy Murray와 함께 했던 아디다스Adidas, 2011년에 대박치면서 인센티브가 폭등하는 바람에 물러나야 했던 세르지오 타키니Sergio Tacchini, 그리고 2012년 부터 함께 한 유니클로에 이어 4번째 브랜드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아디다스와 윌슨Wilson의 조합이었던 초창기 조코비치는 프레드 페리의 후원받던 머레이 만큼이나 대단히 촌스러웠다. 아디다스는 특히 머레이는 몰라도 조코비치와는 별로 안어울리는 것 같았다. 세르지오 타키니는 존 메켄로John McEnroe로 유명한 브랜드인데 사실 잘 모른다. 유니클로는 조코비치와 너무 잘어울렸던 것 같아서 아쉽다. 유니클로 특유의 공산품의 이미지와 조코비치의 기계적인 플레이는 더없이 완벽한 조합이 아니었나싶다. 거기에 자꾸 옷을 찢어댔던 조코비치의 버릇을 더하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단색의 심플한 디자인의 카라티는 조코비치의 상징과도 같았다. 
  라코스테는 정현이 후원받는 곳이다. 과거에는 앤디 로딕Andy Roddick이 유명했고, 현재는 바티스타 어굿Bautista Agut, 브누아 페르Benoit Paire, 파블로 쿠에바스Pablo Cuevas 등이 주요 선수로 있다. 올 호주오픈 부터 지겹도록 보는 복장 중 하나가 바로 라코스테의 폴로티였다. (다른 하나는 아디다스의 주황색 티셔츠다.)


출처:lacoste.com


  이제 저 촌스러운 폴로티를 입은 조코비치를 봐야한다. 참 조코비치도 안타깝다. 한 인터뷰에서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이 일류라면 자신은 거기서 먼 이류였고,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거의 데뷔 때 부터 지금까지 스포츠 스폰계의 절대 거물 나이키의 몰빵을 받고 있는 그 둘에 비하면 조코비치는 왠지 뭔가 부족해 보이는 감이 없지 않다. 그랜드슬램 12회, 마스터즈 1000 30회, 누적 상금 1위에도 불과하고, 여전히 조코비치는 뭔가 3인자 느낌이 강하다. 나이키가 만든 페더러와 나달의 시그니쳐는 물론, 이제는 언더아머에서 자리잡아가는 머레이의 시그니쳐에 비하면 아디다스의 테니스화인 노박 시리즈에서 출발한 조코비치의 시그니쳐는 조금 안타까워 보일 정도다. 





  나는 나달 팬인데, 자꾸 조코비치를 씹는 얘기를 너무 많이해서 그런가 이제 미운정이 들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페더러, 나달의 아성에 도전하는 선수인데, 시그니쳐 하나 쯤은 좀 멀쩡한 걸로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라코스테라니, 뭔가 좀 안타깝다. 




2017년 5월 25일 목요일

로마끝. 이제 롤랑가로스



  로마 마스터즈 1000은 결국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에게 돌아갔다. 결승에서 맞붙었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사실 결승에 오를만한 폼은 아니었다. 
  마드리드에서 나달에게 패배한 이후, 조코비치의 플레이는 미세하게 살아나는 듯 했다. 지난 몬테카를로나 마드리드에서와 달리 스트레이트 세트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조금 자극을 받은 듯, 그래도 조금씩 샷이 살아났다. 그러나 조코비치의 폼은 여전히 8강, 많이 봐줘야 4강 수준에 불과했다. 


출처:the new indian express


  사실 로마 대회의 사실상 결승전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과 도미닉 티엠Dominic Thiem의 8강전이었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결승에서 이미 맞붙었던 둘은 로마에서 또다시 맞붙었다. 
  경기 이전 부터 나는 사실 티엠이 이기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나달은 몬테카를로 이래 모든 클레이 경기를 이기고 세 대회를 전부 우승했다. 아무리 클레이의 제왕이라지만, 나달의 커리어를 통틀어 몬테카를로-바르셀로나-마드리드-로마-롤랑가로스로 이어지는 클레이 대회를 전부 우승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롤랑가로스를 제외해도 없다. 마스터즈 1000 대회인 몬테카를로-마드리드-로마를 한 시즌에 석권한 것도 2010년이 유일하다. (2005년에도 나달은 몬테카를로, 마드리드, 로마 마스터즈를 석권했으나, 당시 마드리드 마스터즈는 시즌 후반 인도어 코트 시즌에 열렸다. 당시에는 함부르크 마스터즈가 현재 마드리드 마스터즈의 역할을 했고, 나달은 2005년 함부르크 마스터즈에 왼손 부상을 이유로 불참했다. 2009년 부터 마드리드 마스터즈는 봄철 클레이시즌에 열리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기존 마드리드 마스터즈의 자리에는 상하이 마스터즈가 생기면서 대체하게 되었다. 함부르크 마스터즈는 2009년 500대회로 격하되었다.) 현재 아무리 클레이에서 적이 없다지만, 그래도 저 다섯 대회를 전부 우승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중요한 건 롤랑가로스인데, 나달의 나이를 생각했을때 로마까지 우승하면 상승세보다는 오히려 롤랑가로스에서 부담감이 커져 집중력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나달과 티엠의 경기는 자만하는 나달과 독기가 오른 티엠의 대결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나달은 브레이크를 당하면서 크게 밀렸다. 4:1까지 벌어졌던 경기에서 나달은 브레이크를 추가하며 추격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그대로 1세트를 4:6으로 내줬다. 2세트도 뭐 크게 새로울게 없었다. 티엠은 곧바로 브레이크를 해냈고, 경기는 그대로 이어져 3:6으로 끝났다. 나달은 1세트 역전에 실패하면서 집중력이 확실히 떨어진 느낌이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자만하는 느낌이 강했다. 반대로 티엠은 강력했다. 에러를 확실히 줄였고, 나달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King of Clay의 다음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외치는 듯 했다. 


출처:eurosports


  나달이 탈락한 이상 로마의 우승은 티엠에게 가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티엠의 다음 상대는 이빨빠진 조코비치였고, 반대편 드로는 아예 빅서버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곳에 불과했다.  반대 드로 8강 선수 4명이 각각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 밀로시 랴오니치Milos Raonic, 존 이스너John Isner, 마린 칠리치Marin Cilic였다. 이중 가장 빅서버랑 먼 즈베레프가 결승에 오른 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 즈베레프도 클레이에서는 티엠에게 3번 만나 전부 졌다. 
  그러나 티엠은 나달과의 경기에서 모든 기력을 써서 그런 건지, 아니면 너무 신이나서 전날 광란의 파티라도 벌여서 그런 건지, 조코비치와의 4강에서 정말 말도 안되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1:6, 0:6 이라는 스코어만 봐도 그렇다. 스코어보다 경기자체는 더욱 쓰레기 같았다. 조코비치가 티엠에게 강했긴 했지만, 그건 과거얘기다. 조코비치는 사실 8강 쯤에서 떨어지기 충분한 폼을 지닌 선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티엠은 아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티엠은 공을 치기 위한 준비도 안되있었다. 그는 반응도 느렸고, 움직임도 느렸다. 공에 대한 타점은 아예 못맞추는 것 처럼 보였다. 에러는 사정없이 많았다. 정말 실망스러웠다. 나는 기껏 나달을 무너뜨린 티엠이 조코비치에게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티엠은 탈락했고, 조코비치는 결승에 올랐다. 
  마스터즈 1000 결승에 처음 오른 즈베레프는 대단히 상기된 모습으로 코트에 올랐다. 그는 대단히 집중하는 듯 보였고, 특히나 그의 백핸드가 돋보였다. 사실 조코비치의 기량에 비하면 즈베레프 따위야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지금의 조코비치는 평범한 선수였고, 즈베레프는 스트록으로만 조코비치를 쉽게 무너뜨렸다. 형편없는 조코비치의 경기력은 결승의 빛을 가리는 것 같았다. 로마의 결승은 티엠과 즈베레프가 만났어야했다. 멍청한 티엠은 자신도 못가져본 클레이 마스터즈 1000 타이틀을 애송이인 즈베레프가 가져가는 것을 구경해야만 했다. 즈베레프는 처음으로 탑 10에 진입했다.
  나달의 마스터즈 석권이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애초에 어려운 목표이기도 했고, 차라리 롤랑가로스 우승을 위해서는 잘됐다 싶었다. 휴식도 휴식이고, 로마까지 우승한다면, 부담감이 쌓여 롤랑가로스에서 느닷없이 탈락할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출처:reuters


 250대회인 리옹과 제네바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이제 클레이 시즌은 롤랑가로스만 남았다. 로마에서 탈락한 나달은 다시 집중력이 다듬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가 롤랑가로스 불참을 선언한 지금 여전히 나달의 적은 보이지 않는다. 티엠과 즈베레프가 나달의 도전자가 되지 않겠냐는 말이 있지만, 사실 즈베레프는 택도 없고, 티엠이 조금, 아주 조금 방해가 될 지 모르겠다. 롤랑가로스는 5세트 경기이고 티엠은 체력적으로 검증된 선수가 아니다. 티엠이 선전한다 해도 세트 수가 늘어나면, 티엠의 백핸드 안정성은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변수로 보이는 게 노박 조코비치와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Stanislas Wawrinka 정도다. 조코비치는 여전히 방황하고 계시지만, 어쨌건 기본 기량이 워낙 출중한대다, 체력싸움에서도 나달에게 밀리지 않는다. 다행히 로마에서 티엠이 먼저 자멸해준대다, 결승에서도 허망하게 지는 바람에 또다시 변곡점을 만드는 데 실패했지만, 상위라운드에서 나달과 만나게 된다면 조코비치는 꽤나 귀찮은 상대가 될 것이 틀림없다. 
  바브린카의 경우는 올 시즌 인디언 웰스 마스터즈 1000 결승에 오르긴 했지만, 딱히 폼이 좋은 상황은 아니다. 2015 롤랑가로스 우승 전에는 로마에서 나달을 탈락시키는 이변을 연출하며 좋은 폼을 보였지만, 올 시즌은 그런 것도 없다. 두 번 이기기도 힘들다. 인디언 웰스 결승 이후로, 마이애미 2번, 몬테카를로 1번, 마드리드 0회, 로마 1번이 바브린카가 이긴 횟수 전부다. 클레이 3개 대회에 출전해 각각 1번 씩 이기고 3회전에서 탈락했다. (1회전은 bye) 그러나 바브린카는 자신이 우승한 2015 롤랑가로스 전에도 그렇고, 2016 US 오픈 전에도 그렇고, 별볼일 없다가 그랜드슬램에서 느닷없이 대활약하는 경우가 생겨서 변수다. 특히 작년 US오픈은 바브린카가 우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롤랑가로스의 유력한 우승후보는 나달 외에는 눈에 띄지가 않는다. 작년, 제작년만 해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는데, 참 당황스럽다. 몬테카를로와 바르셀로나에서 결국 "라 데시마"라는 10번 째 우승을 해냈고, 이제는 롤랑가로스만 남았다. 그것만 달성한다면, 나달은 딱히 뭐 더 이룰게 없지 않겠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롤랑가로스는 정말 엄청나게 기대된다. 나달이 꼭 우승해서 정말 클레이의 제왕으로서 완결점을 확실하게 찍어줬으면 좋겠다. 



  

출처:@RafaelNadal



2017년 5월 14일 일요일

잘가라 조코뱅크



  2017 무투아 마드리드 마스터즈 1000 준결승. 라파엘 나달Rafael Nadal과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50번째 대결을 펼쳤다. 경기 결과는 6:2, 6:4.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King of Clay의 승리였다. 2014년 롤랑가로스 결승 이후 조코비치에게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고 7연패를 당했던 나달의 첫 승리였다. 이로써 나달과 조코비치의 상대전적은 24:26이 되었고, 나달은 조코비치의 마스터즈 1000시리즈 최다 우승기록인 30회에 타이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출처: bbc.com


  지난 호주오픈 결승 이후 나달은 자신감을 확실히 되찾은 듯 했고, 올해 클레이 시즌에서는 14-0의 압도적인 전적을 보여주고 있다. 14경기를 치루는 동안 몬테카를로에서 카일 에드먼드Kyle Edmund, 이번 마드리드에서 파비오 포그니니Fabio Fognini에게 각각 한 세트씩 잃었을 뿐이다. 몬테카를로와 바르셀로나에서는 이미 10회 우승을 달성했다. 
  마드리드 오픈에서 나달의 대진 또한 결코 쉽지 않았다. 이미 첫 경기부터 클레이에서 나달을 괴롭혔던 포그니니와 혈전을 벌였고, 16강 상대는 반등할 뻔한 조코비치를 완전히 짓밟은 선수이자, 올시즌 최고의 폼을 보이는 황제를 가장 괴롭혔던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였다. 8강 상대인 다비드 고팡David Goffin은 올시즌 클레이코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바르셀로나에서 나달을 꽤나 고생시킨 선수였다. 여기에 준결승 상대는 최근 3년동안 나달이 이겨본 적이 없는 노박 조코비치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 경기 전부터 나달의 승리가 점쳐졌다. 앞서 언급한 대로 나달은 굉장한 상승세이고, 조코비치는 정신을 못차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코비치는 시즌 초 충격적인 호주오픈 2회전 탈락 이후, 본인이 잘하는 하드코트에서 자신감을 찾아볼 뻔 하다가, 아카풀코와 인디언 웰스에서 닉 키르기오스를 만나 연패하면서 반등의 기회를 잃었다. 클레이 시즌으로 접어들면서는 조코비치 답지 않게,  펠리시아노 로페즈Feliciano Lopez와의 경기를 제외하면 모든 경기를 풀세트 접전을 거쳤다. 하드코트에서는 조코비치가 하필 키르기오스를 만난 것이 조금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클레이코트에서 조코비치는 아예 감을 잃은 것 같았다. 
  경기는 예상에 맞춰주기라도 한듯 시작하자 마자 나달이 조코비치를 쥐어패는 모습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조코비치가 브레이크를 두 번이나 당하면서 4:0이 되었다. 조코비치는 에러를 남발했고, 그동안 잘해왔던 나달의 포핸드를 백핸드로 받아치는 것에서도 밀렸다. 장기인 드랍샷은 시원하게 라인을 벗어났다. 게다가 더욱 심각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조코비치의 발리 대시다. 발리가 병신인 걸로 나달과 자웅을 겨루는 조코비치는 별로 좋지도 않은 타이밍에 자꾸 발리를 시도했다. 마드리드는 클레이코트가 아닌가. 게다가 나달은 발리를 무기로 쓰는 선수들에게 매우 강한 선수다. 랠리에서 밀리는 조코비치가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스코어가 보여주듯 딱히 결과는 좋지 않았다. 


출처:madrid-open.com


  2세트, 또다시 브레이크를 당하면서 0:2로 밀린 조코비치는 나달의 서브 게임인 4번째 게임에서 나름 반전의 기회를 맞이한다. 0-15에서 조코비치는 짧았던 나달의 백핸드를 받아치면서 또 발리대시를 하는 게 아니었나 싶었지만 뒤로 물러 스트록 랠리를 지속했고, 나달이 회심의 포핸드를 치고 피니시하려고 네트 쪽으로 들어오자 백핸드 다운더라인으로 포인트를 땄다. 나달을 그리도 괴롭혀왔던 나달 포핸드-조코비치 백핸드 다운더라인 공식이 제대로 나타난 장면이었다. 이게 조코비치의 베스트 샷이었다. 이후 나달 포핸드, 조코비치 백핸드 랠리 싸움에서 조코비치는 조금씩 밀리면서 이대로 게임을 잃나 싶었으나, 포핸드 리턴으로 듀스를 만들고, 엄청난 각도로 뻗어나가는 백핸드 크로스 샷으로 어드밴티지를 따냈다. "This is more like him." 해설자는 헤메던 조코비치의 본 모습을 기다렸다는 듯이 외쳤다. 이어 이와 완전히 비슷한 모양새로 또다시 서비스라인을 찍고 빠져 나가는 큰 각도의 백핸드로 2세트 게임스코어를 2:2 동점으로 만들었다. 스트록 대결에서 밀렸지만, 나달이 쳐낸 슬라이스 한 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조코비치의 선전은 여기까지였다. 바로 다음 조코비치의 서비스 게임을 나달은 포핸드 패싱샷과 큰 각도의 포핸드 크로스 샷으로 브레이크했다. 나달은 이후 다시 경기를 주도했고, 조코비치의 발리 대시는 늘어났다. 마지막 게임에서 조코비치가 더블 매치 포인트를 기어이 듀스와 어드까지 만들며 혹시나 브레이크에 성공해 5:5 싸움이 되나 싶었으나, 나달은 훌륭한 드랍샷으로 다시 듀스를 만들었고, 이어 서브포인트로 다시 매치포인트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포인트는 또 발리 대시하던 조코비치가 나달의 백핸드를 받다가 공을 날려보내면서 결정되었다. 사실 조코비치가 발리 시도하기 전에 쳤던 포핸드가 워낙 세서, 발리대시가 나쁘지는 않았으나, 상대는 물오른 King of Clay였다. 


그래 부지런히 해서 정신차려라, 노박
출처:Marid-open.com


  조코비치에게 드디어 승리하며, 이제 나달은 자신감은 커녕 이제 자만감을 걱정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프랑스오픈을 앞두고도 사실 나달의 상대가 잘 안 보인다. 페더러가 아무리 잘한다 한들, 클레이는 클레이고, 그나마 위협적으로 보였던 즈베레프나 키르기오스 마저 나달에게 허망하게 박살나는 것을 보니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클레이의 나달에게 그나마 위압감을 줬던 선수도 조코비치를 제외하면 전무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드리드 오픈 결승에서 나달이 도미닉 티엠Dominic Thiem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다면, 마스터즈 1000 통산 우승 기록은 30회로 나달과 조코비치가 동률이다. 게다가 다음 대회인 로마 마스터즈 또한 클레이라 나달이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상하게도 올 시즌은 페더러와 나달을 제외하면, 상위랭커들이 전부 헤메고 있다. 차라리 작년이 더 치열해 보일지경이다. 
  마음 같아서는 나달이 마드리드, 로마, 롤랑가로스를 전부 석권했으면 좋겠다. 전무후무한 클레이 석권을 보여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욕심이 아닐까 싶다. 근데 사실 진짜 나달이 느닷없이 탈락하는 게 아니면, 누가 위협적인 선수가 될 지 도무지 감이 안온다. 바브린카Stanislas Wawrinka도 딱히 경기력이 별로인 것 같고, 니시코리 케이Kei Nishikori는 이미 올해 시작과 동시에 나가떨어졌다. 빅서버들이 클레이에서 못하는 건 유명하고, 앤디 머레이Andy Murray는 하드고 클레이고 가리지 않고 탈락이 잦아 랭킹 1위가 안어울린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역시 조코비치가 이번에 나달에게 져서 갑자기 정신차려 부활하는 게 아니라면 도무지 모르겠다. 





2017년 5월 11일 목요일



1. 

  충무로 근처였던 것 같다. 친구와 걷다가 어느 호텔 앞 리무진 버스에서 내리는 백인 관광객들을 보았다. 나는 좁은 식견으로 그들을 멋대로 "미국인"으로 규정짓고 함께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양키들은 진짜 좋겠다."
 "왜?" 
 "쟤들은 대통령이 오바마잖아."


  함께 걷던 친구는 내가 내놓은 대답이 딱히 무슨 뜻인지 더 묻지 않은채 시원하게 웃었다. 그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2. 

   아는 후배가 물었던 적이 있다. 문재인을 찍었냐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기가 정치도 잘 모르고, 세상도 잘 모르지만, 박근혜는 진짜 아니지 않냐고 내게 말했다. 당시 나는 그 친구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내게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안심했다. "다행이다. 녀석은 나와 한 편이구나" 오랜시간 말을 아끼며 조심히 대했던 나는 그 친구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풀었다. 나는 쉴새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만약 방한하여, 대통령이 된 건설사 사장 나부랭이나 독재자의 딸 따위를 만난다면, 한국이란 나라를 얼마나 같잖게 생각할 것인지. 자본가들이 왜 독재자들을 다루기 쉽다고 여기는지.
  반면 자본가들이 "인권변호사"라는 경력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특전사 출신이면서 동시에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고,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국회의원 출마를 거부하며 청와대 수석자리 마저 내던진 인물이며, 가장 울분에 차있을 때 정적에게 예의를 갖추는 인간이 대통령이 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생기고 간지나는 대통령을 가진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내게 문재인 찍었냐고 물었던 그 후배와 봤던 개표방송은 결국 단 한 번도 역전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박근혜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4년 후, 바로 그 "독재자의 딸"은 탄핵당했다. 



3. 

  겨울이 막 시작될 때 였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위해 내가 살던 집 근처에 왔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내가 그녀에게 뭔가 화가 나있어 찾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오르막이 싫다고 집 근처 오르막 아래 가만히 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선 후보 포스터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던 벽 가로등 아래 그녀는 그렇게 가만히 서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화 따위는 진즉에 풀렸다. 그녀와 가로등 아래 한참을 서있었다. 막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박원순 서울시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던 그녀는 대선 포스터들을 보니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그녀는 박근혜가 별로라고 했다. 포스터에 비친 빨간 코트부터 표정까지 전부 별로라고 했다. 덧붙여 자신이라면 포스터를 이따위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박근혜에 가지는 일종의 본능적 혐오감에 비하면 평범한 비호감 정도였다.
  그녀는 문재인도 별로라고 했다.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대선에서 누굴 찍어야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선거캠프원이라도 된 마냥 문재인을 찍어야 하는 이유를 그녀에게 거창하게 늘어놨다. 추운 겨울밤 어느 골목길 가로등 아래, 대선포스터 하나 놓고, 나와 그녀는 수 시간을 떠들었다. 흔한 담배 한 개피도, 따뜻한 커피 한잔도 없이 마냥 그렇게 서서 떠들었다. 
   


4.
  
  문재인 대통령. 너무 오랜시간 문 전 대표, 문 후보 따위로 불러서 그런지 도무지 어색하다. 그는 당을 중심에 두고 선거를 치뤘고, 누군가와 단일화를 하지도 않았다. 5자 구도속에 그는 40%이상의 상당한 득표율을 얻었고, 역대 가장 큰 표수차를 내고 당선되었다. 보궐이기 때문에 그는 인수위도 없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고, 내 삶 또한 아무것도 변한 건 없다.
  그런데 4년 전,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양키들을 부러워했다. 단지 그들의 대통령이 간지가 나서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반대를 느끼고 있다. 자신들의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인 미국인들은 이제 나를 그리고 우리를 부러워할게 틀림없다. 그리고 트럼프를 뽑은 저 선진국의 바보들을 나는 한없이 비웃을 거다. 
  특전사, 인권변호사, 민주화 운동, 노무현의 친구, 네팔 봉사활동, 홍은동 산골 빌라, 예의, 원칙, 경청, 명왕, 잘생긴 외모, 멋진 백발 등등. 이야기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냥 이틀 밖에 안됐지만, 왠지 즐겁다. 저렇게 간지나는 사람이 내 대통령이라니. 그노무 아베에게 쿨하게 고노담화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니.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2012년 대선 때 부터 외쳐왔고, 이번 취임사에도 포함되었다. 문재인 대통령. 이 호칭이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고 동시에 여전히 믿기지가 않는다. 나랑 하등 연관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에 불과하지만, 괜히 숨만 쉬어도 뿌듯하다. 참 많은 추억들이 흘러지나간다. 그걸 다시 되짚어보는 지금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픈 기분이 든다. 





문재인은 대통령이 됐으니, 이제 나달이 프랑스오픈만 우승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