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무투아 마드리드 마스터즈 1000 준결승. 라파엘 나달Rafael Nadal과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50번째 대결을 펼쳤다. 경기 결과는 6:2, 6:4.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King of Clay의 승리였다. 2014년 롤랑가로스 결승 이후 조코비치에게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고 7연패를 당했던 나달의 첫 승리였다. 이로써 나달과 조코비치의 상대전적은 24:26이 되었고, 나달은 조코비치의 마스터즈 1000시리즈 최다 우승기록인 30회에 타이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출처: bbc.com
지난 호주오픈 결승 이후 나달은 자신감을 확실히 되찾은 듯 했고, 올해 클레이 시즌에서는 14-0의 압도적인 전적을 보여주고 있다. 14경기를 치루는 동안 몬테카를로에서 카일 에드먼드Kyle Edmund, 이번 마드리드에서 파비오 포그니니Fabio Fognini에게 각각 한 세트씩 잃었을 뿐이다. 몬테카를로와 바르셀로나에서는 이미 10회 우승을 달성했다.
마드리드 오픈에서 나달의 대진 또한 결코 쉽지 않았다. 이미 첫 경기부터 클레이에서 나달을 괴롭혔던 포그니니와 혈전을 벌였고, 16강 상대는 반등할 뻔한 조코비치를 완전히 짓밟은 선수이자, 올시즌 최고의 폼을 보이는 황제를 가장 괴롭혔던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였다. 8강 상대인 다비드 고팡David Goffin은 올시즌 클레이코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바르셀로나에서 나달을 꽤나 고생시킨 선수였다. 여기에 준결승 상대는 최근 3년동안 나달이 이겨본 적이 없는 노박 조코비치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 경기 전부터 나달의 승리가 점쳐졌다. 앞서 언급한 대로 나달은 굉장한 상승세이고, 조코비치는 정신을 못차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코비치는 시즌 초 충격적인 호주오픈 2회전 탈락 이후, 본인이 잘하는 하드코트에서 자신감을 찾아볼 뻔 하다가, 아카풀코와 인디언 웰스에서 닉 키르기오스를 만나 연패하면서 반등의 기회를 잃었다. 클레이 시즌으로 접어들면서는 조코비치 답지 않게, 펠리시아노 로페즈Feliciano Lopez와의 경기를 제외하면 모든 경기를 풀세트 접전을 거쳤다. 하드코트에서는 조코비치가 하필 키르기오스를 만난 것이 조금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클레이코트에서 조코비치는 아예 감을 잃은 것 같았다.
경기는 예상에 맞춰주기라도 한듯 시작하자 마자 나달이 조코비치를 쥐어패는 모습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조코비치가 브레이크를 두 번이나 당하면서 4:0이 되었다. 조코비치는 에러를 남발했고, 그동안 잘해왔던 나달의 포핸드를 백핸드로 받아치는 것에서도 밀렸다. 장기인 드랍샷은 시원하게 라인을 벗어났다. 게다가 더욱 심각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조코비치의 발리 대시다. 발리가 병신인 걸로 나달과 자웅을 겨루는 조코비치는 별로 좋지도 않은 타이밍에 자꾸 발리를 시도했다. 마드리드는 클레이코트가 아닌가. 게다가 나달은 발리를 무기로 쓰는 선수들에게 매우 강한 선수다. 랠리에서 밀리는 조코비치가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스코어가 보여주듯 딱히 결과는 좋지 않았다.
출처:madrid-open.com
2세트, 또다시 브레이크를 당하면서 0:2로 밀린 조코비치는 나달의 서브 게임인 4번째 게임에서 나름 반전의 기회를 맞이한다. 0-15에서 조코비치는 짧았던 나달의 백핸드를 받아치면서 또 발리대시를 하는 게 아니었나 싶었지만 뒤로 물러 스트록 랠리를 지속했고, 나달이 회심의 포핸드를 치고 피니시하려고 네트 쪽으로 들어오자 백핸드 다운더라인으로 포인트를 땄다. 나달을 그리도 괴롭혀왔던 나달 포핸드-조코비치 백핸드 다운더라인 공식이 제대로 나타난 장면이었다. 이게 조코비치의 베스트 샷이었다. 이후 나달 포핸드, 조코비치 백핸드 랠리 싸움에서 조코비치는 조금씩 밀리면서 이대로 게임을 잃나 싶었으나, 포핸드 리턴으로 듀스를 만들고, 엄청난 각도로 뻗어나가는 백핸드 크로스 샷으로 어드밴티지를 따냈다. "This is more like him." 해설자는 헤메던 조코비치의 본 모습을 기다렸다는 듯이 외쳤다. 이어 이와 완전히 비슷한 모양새로 또다시 서비스라인을 찍고 빠져 나가는 큰 각도의 백핸드로 2세트 게임스코어를 2:2 동점으로 만들었다. 스트록 대결에서 밀렸지만, 나달이 쳐낸 슬라이스 한 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조코비치의 선전은 여기까지였다. 바로 다음 조코비치의 서비스 게임을 나달은 포핸드 패싱샷과 큰 각도의 포핸드 크로스 샷으로 브레이크했다. 나달은 이후 다시 경기를 주도했고, 조코비치의 발리 대시는 늘어났다. 마지막 게임에서 조코비치가 더블 매치 포인트를 기어이 듀스와 어드까지 만들며 혹시나 브레이크에 성공해 5:5 싸움이 되나 싶었으나, 나달은 훌륭한 드랍샷으로 다시 듀스를 만들었고, 이어 서브포인트로 다시 매치포인트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포인트는 또 발리 대시하던 조코비치가 나달의 백핸드를 받다가 공을 날려보내면서 결정되었다. 사실 조코비치가 발리 시도하기 전에 쳤던 포핸드가 워낙 세서, 발리대시가 나쁘지는 않았으나, 상대는 물오른 King of Clay였다.
그래 부지런히 해서 정신차려라, 노박
출처:Marid-open.com
조코비치에게 드디어 승리하며, 이제 나달은 자신감은 커녕 이제 자만감을 걱정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프랑스오픈을 앞두고도 사실 나달의 상대가 잘 안 보인다. 페더러가 아무리 잘한다 한들, 클레이는 클레이고, 그나마 위협적으로 보였던 즈베레프나 키르기오스 마저 나달에게 허망하게 박살나는 것을 보니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클레이의 나달에게 그나마 위압감을 줬던 선수도 조코비치를 제외하면 전무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드리드 오픈 결승에서 나달이 도미닉 티엠Dominic Thiem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다면, 마스터즈 1000 통산 우승 기록은 30회로 나달과 조코비치가 동률이다. 게다가 다음 대회인 로마 마스터즈 또한 클레이라 나달이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상하게도 올 시즌은 페더러와 나달을 제외하면, 상위랭커들이 전부 헤메고 있다. 차라리 작년이 더 치열해 보일지경이다.
마음 같아서는 나달이 마드리드, 로마, 롤랑가로스를 전부 석권했으면 좋겠다. 전무후무한 클레이 석권을 보여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욕심이 아닐까 싶다. 근데 사실 진짜 나달이 느닷없이 탈락하는 게 아니면, 누가 위협적인 선수가 될 지 도무지 감이 안온다. 바브린카Stanislas Wawrinka도 딱히 경기력이 별로인 것 같고, 니시코리 케이Kei Nishikori는 이미 올해 시작과 동시에 나가떨어졌다. 빅서버들이 클레이에서 못하는 건 유명하고, 앤디 머레이Andy Murray는 하드고 클레이고 가리지 않고 탈락이 잦아 랭킹 1위가 안어울린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역시 조코비치가 이번에 나달에게 져서 갑자기 정신차려 부활하는 게 아니라면 도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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