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5일 목요일

로마끝. 이제 롤랑가로스



  로마 마스터즈 1000은 결국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에게 돌아갔다. 결승에서 맞붙었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사실 결승에 오를만한 폼은 아니었다. 
  마드리드에서 나달에게 패배한 이후, 조코비치의 플레이는 미세하게 살아나는 듯 했다. 지난 몬테카를로나 마드리드에서와 달리 스트레이트 세트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조금 자극을 받은 듯, 그래도 조금씩 샷이 살아났다. 그러나 조코비치의 폼은 여전히 8강, 많이 봐줘야 4강 수준에 불과했다. 


출처:the new indian express


  사실 로마 대회의 사실상 결승전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과 도미닉 티엠Dominic Thiem의 8강전이었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결승에서 이미 맞붙었던 둘은 로마에서 또다시 맞붙었다. 
  경기 이전 부터 나는 사실 티엠이 이기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나달은 몬테카를로 이래 모든 클레이 경기를 이기고 세 대회를 전부 우승했다. 아무리 클레이의 제왕이라지만, 나달의 커리어를 통틀어 몬테카를로-바르셀로나-마드리드-로마-롤랑가로스로 이어지는 클레이 대회를 전부 우승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롤랑가로스를 제외해도 없다. 마스터즈 1000 대회인 몬테카를로-마드리드-로마를 한 시즌에 석권한 것도 2010년이 유일하다. (2005년에도 나달은 몬테카를로, 마드리드, 로마 마스터즈를 석권했으나, 당시 마드리드 마스터즈는 시즌 후반 인도어 코트 시즌에 열렸다. 당시에는 함부르크 마스터즈가 현재 마드리드 마스터즈의 역할을 했고, 나달은 2005년 함부르크 마스터즈에 왼손 부상을 이유로 불참했다. 2009년 부터 마드리드 마스터즈는 봄철 클레이시즌에 열리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기존 마드리드 마스터즈의 자리에는 상하이 마스터즈가 생기면서 대체하게 되었다. 함부르크 마스터즈는 2009년 500대회로 격하되었다.) 현재 아무리 클레이에서 적이 없다지만, 그래도 저 다섯 대회를 전부 우승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중요한 건 롤랑가로스인데, 나달의 나이를 생각했을때 로마까지 우승하면 상승세보다는 오히려 롤랑가로스에서 부담감이 커져 집중력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나달과 티엠의 경기는 자만하는 나달과 독기가 오른 티엠의 대결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나달은 브레이크를 당하면서 크게 밀렸다. 4:1까지 벌어졌던 경기에서 나달은 브레이크를 추가하며 추격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그대로 1세트를 4:6으로 내줬다. 2세트도 뭐 크게 새로울게 없었다. 티엠은 곧바로 브레이크를 해냈고, 경기는 그대로 이어져 3:6으로 끝났다. 나달은 1세트 역전에 실패하면서 집중력이 확실히 떨어진 느낌이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자만하는 느낌이 강했다. 반대로 티엠은 강력했다. 에러를 확실히 줄였고, 나달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King of Clay의 다음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외치는 듯 했다. 


출처:eurosports


  나달이 탈락한 이상 로마의 우승은 티엠에게 가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티엠의 다음 상대는 이빨빠진 조코비치였고, 반대편 드로는 아예 빅서버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곳에 불과했다.  반대 드로 8강 선수 4명이 각각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 밀로시 랴오니치Milos Raonic, 존 이스너John Isner, 마린 칠리치Marin Cilic였다. 이중 가장 빅서버랑 먼 즈베레프가 결승에 오른 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 즈베레프도 클레이에서는 티엠에게 3번 만나 전부 졌다. 
  그러나 티엠은 나달과의 경기에서 모든 기력을 써서 그런 건지, 아니면 너무 신이나서 전날 광란의 파티라도 벌여서 그런 건지, 조코비치와의 4강에서 정말 말도 안되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1:6, 0:6 이라는 스코어만 봐도 그렇다. 스코어보다 경기자체는 더욱 쓰레기 같았다. 조코비치가 티엠에게 강했긴 했지만, 그건 과거얘기다. 조코비치는 사실 8강 쯤에서 떨어지기 충분한 폼을 지닌 선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티엠은 아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티엠은 공을 치기 위한 준비도 안되있었다. 그는 반응도 느렸고, 움직임도 느렸다. 공에 대한 타점은 아예 못맞추는 것 처럼 보였다. 에러는 사정없이 많았다. 정말 실망스러웠다. 나는 기껏 나달을 무너뜨린 티엠이 조코비치에게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티엠은 탈락했고, 조코비치는 결승에 올랐다. 
  마스터즈 1000 결승에 처음 오른 즈베레프는 대단히 상기된 모습으로 코트에 올랐다. 그는 대단히 집중하는 듯 보였고, 특히나 그의 백핸드가 돋보였다. 사실 조코비치의 기량에 비하면 즈베레프 따위야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지금의 조코비치는 평범한 선수였고, 즈베레프는 스트록으로만 조코비치를 쉽게 무너뜨렸다. 형편없는 조코비치의 경기력은 결승의 빛을 가리는 것 같았다. 로마의 결승은 티엠과 즈베레프가 만났어야했다. 멍청한 티엠은 자신도 못가져본 클레이 마스터즈 1000 타이틀을 애송이인 즈베레프가 가져가는 것을 구경해야만 했다. 즈베레프는 처음으로 탑 10에 진입했다.
  나달의 마스터즈 석권이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애초에 어려운 목표이기도 했고, 차라리 롤랑가로스 우승을 위해서는 잘됐다 싶었다. 휴식도 휴식이고, 로마까지 우승한다면, 부담감이 쌓여 롤랑가로스에서 느닷없이 탈락할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출처:reuters


 250대회인 리옹과 제네바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이제 클레이 시즌은 롤랑가로스만 남았다. 로마에서 탈락한 나달은 다시 집중력이 다듬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가 롤랑가로스 불참을 선언한 지금 여전히 나달의 적은 보이지 않는다. 티엠과 즈베레프가 나달의 도전자가 되지 않겠냐는 말이 있지만, 사실 즈베레프는 택도 없고, 티엠이 조금, 아주 조금 방해가 될 지 모르겠다. 롤랑가로스는 5세트 경기이고 티엠은 체력적으로 검증된 선수가 아니다. 티엠이 선전한다 해도 세트 수가 늘어나면, 티엠의 백핸드 안정성은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변수로 보이는 게 노박 조코비치와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Stanislas Wawrinka 정도다. 조코비치는 여전히 방황하고 계시지만, 어쨌건 기본 기량이 워낙 출중한대다, 체력싸움에서도 나달에게 밀리지 않는다. 다행히 로마에서 티엠이 먼저 자멸해준대다, 결승에서도 허망하게 지는 바람에 또다시 변곡점을 만드는 데 실패했지만, 상위라운드에서 나달과 만나게 된다면 조코비치는 꽤나 귀찮은 상대가 될 것이 틀림없다. 
  바브린카의 경우는 올 시즌 인디언 웰스 마스터즈 1000 결승에 오르긴 했지만, 딱히 폼이 좋은 상황은 아니다. 2015 롤랑가로스 우승 전에는 로마에서 나달을 탈락시키는 이변을 연출하며 좋은 폼을 보였지만, 올 시즌은 그런 것도 없다. 두 번 이기기도 힘들다. 인디언 웰스 결승 이후로, 마이애미 2번, 몬테카를로 1번, 마드리드 0회, 로마 1번이 바브린카가 이긴 횟수 전부다. 클레이 3개 대회에 출전해 각각 1번 씩 이기고 3회전에서 탈락했다. (1회전은 bye) 그러나 바브린카는 자신이 우승한 2015 롤랑가로스 전에도 그렇고, 2016 US 오픈 전에도 그렇고, 별볼일 없다가 그랜드슬램에서 느닷없이 대활약하는 경우가 생겨서 변수다. 특히 작년 US오픈은 바브린카가 우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롤랑가로스의 유력한 우승후보는 나달 외에는 눈에 띄지가 않는다. 작년, 제작년만 해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는데, 참 당황스럽다. 몬테카를로와 바르셀로나에서 결국 "라 데시마"라는 10번 째 우승을 해냈고, 이제는 롤랑가로스만 남았다. 그것만 달성한다면, 나달은 딱히 뭐 더 이룰게 없지 않겠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롤랑가로스는 정말 엄청나게 기대된다. 나달이 꼭 우승해서 정말 클레이의 제왕으로서 완결점을 확실하게 찍어줬으면 좋겠다. 



  

출처:@RafaelNa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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