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윔블던 대회 대진이 발표됐다. 대략 관심 포인트는 지난해 우승자인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타이틀방어에 성공할 것인지,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의 9번째 윔블던 우승이 이뤄질 것인지,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 스테파노스 치치파스Stenfanos Tsitsipas 로 대변되는 신예가 얼마나 치고 올라올지 정도가 될 것이다. Tennis TV는 예상 8강 대진으로 다음과 같이 꼽았다.
Novak Djokovic v. Stefanos Tsitsipas
Alexander Zverev v. Kevin Anderson
Rafael Nadal v. Dominic Thiem
Kei Nishikori v. Roger Federer
다분히 예상 가능한 대진이다. 다만 지난해와 올해 프랑스오픈에서 8강에 오른게 전부인 그랜드슬램 병신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가 과연 4R의 벽이나 넘을까하는 의문과 이제는 노화를 걱정해야할 것 같은 니시코리 케이Kei Nishikori가 3R에서나 만날 듯한 호주의 신예 알렉스 드 미노Alex de Minaur나 4R에서 만날 것으로 보이는 빅서버 존 이스너John Isner를 상대로 선전할 수 있을까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회의적으로 보는 것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이다.
Rafael Nadal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12번째 프랑스오픈 우승을 가뿐하게 해내고 가뿐하게 잔디시즌 전부 씹고 출전한 윔블던에서 어떤 성적을 남길 것인가. 지난해에도 나달은 잔디시즌을 전부 씹고 윔블던에 출전해서 SF에 진출했다. 무난한 대진으로 QF까지 순항했으나, QF에서 델포를 만나 혈전 끝에 SF에 올랐다. 그러나 체력의 문제인 듯 조코비치와의 4강 연장 혈투를 끝에 패배하면서 윔블던을 마무리했다. 당시 예정된 결승상대가 무난한 빅서버 케빈 앤더슨Kevin Anderson이었기에 만약 나달이 당시 조코비치를 상대로 승리했다면 3번째 윔블던 우승도 무리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떠할 것인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의 예상대진
1R : 유이치 스기타Yuichi Sukita
2R : 닉 키리오스Nick Kyrgios
3R : 데니스 샤포발로프Denis Shapovalov or 조 윌프레드 쏭가Jo Wilfred Tsonga
4R : 마린 칠리치Marin Cilic
QF : 샘 퀘리Sam Querrey or 쥘 시몽Gille Simon or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
SF :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or 존 이스너John Isner
F :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
일단 나달이 1R를 통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퍼스에서 페더러를 상대로 눈에 띄는 모습을 보였던 스기타지만, 아무리 잔디라 한들 그가 나달을 상대로 선전할 요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서브가 강력한 것도 아니고, 그가 와이드 샷을 쳐내는 타입도 아니다. 그의 랠리 지속 능력은 나달에 비하기에는 공격도 특이점이 없고, 방어에도 특이점이 없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나달의 윔블던에 있어 가장 큰 장애이자 2R 예상상대 닉 키리오스Nick Kyrgios다. 2014년 윔블던 4R에서 나달은 바로 키리오스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2017년 신시내티에서도 마찬가지고, 올해 초 있었던 아카풀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달을 탈락시킨 키리오스
2014 wimbledon 4R
2014 wimbledon 4R
키리오스는 전형적인 악동 천재처럼 경기 한다. 대충 설렁설렁하고, 관중이나 상대 선수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고, 느닷없이 풀파워 샷을 친다거나 뭔가 자기 맘에 들때만 열심히 한다. 그래서 그는 패배를 쉽게 가린다. 정신승리를 쉽게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재능만큼은 확실히 어마무시하다. 그가 경기에 몰입하면 상대하기 결코 쉽지 않다. 3세트 최고 명경기로 꼽히는 2017 마이애미에서의 페더러와의 경기나 2017 레이버컵에서의 페더러와의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역대급 폼을 보인 페더러와 대단한 접전을 펼쳤다. 심지어 ATP 최고의 벽인 조코비치는 아예 그를 상대로 이겨본 일이 없다.그래서 언론이나 다른 선수들이 항상 위협적으로 보는 듯하다. 왠지 키리오스와의 경기는 이겨도 찝찝하고, 지면 개 빡치는 유형이다.
라켓을 부술 줄도 모르는 나달이 꺼려하는 몇 안되는 선수 중 한 명이 키리오스다. 상대전적은 3:3으로 동률이지만, 나달이 승리한 세 경기 중 두 경기는 클레이에서 였고, 나머지 한 경기는 키리오스가 경기 시작 부터 챌린지 시비로 버렸던 2017 베이징이었다. 키리오스는 윔블던에서 승리했고, 신시내티에서는 거의 장난치듯 나달을 갖고 놀았으며, 아카풀코에서는 언더서브 시비까지 일으키면서 역전승했다. 왠지 나달 입장에서는 이겨도 기분나쁜 전적이다.
이번 대회에서 만약 나달과 키리오스의 대진이 이루어진다면 키리오스가 승리할 확률이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키리오스는 확실히 엄청나게 강하고 날카로운 서브를 갖고 있다. 빅서버들의 파워와는 약간은 다르고, 페더러의 다양한 코스를 파고드는 서브와도 다르다. 그의 서브는 마치 엄청나게 빠른 면도날이 타이슨의 펀치처럼 파고드는 서브다. 많이 튀어오르지도 않는 그의 플랫서브는 상대를 공으로 때리기 위한 서브와도 같다. 그의 간결한 서브 동작은 이 효과를 더욱 강화한다. 게다가 그는 세컨 서브로도 그렇게 내려 때려댄다. 그의 무지막지한 손목힘을 바탕으로 하는 이러한 서브는 상대선수의 브레이크를 매우 어렵게 만든다. 브레이크 귀신인 나달이 클레이가 아닌 곳에서 키리오스의 서브에 고전했다는 것, 리턴 올타임 넘버원인 노박이 키리오스를 상대로 이겨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보증한다.
또한 키리오스는 터치와 네트플레이가 좋다. 이는 나달에게 역상성이다. 나달은 코트 좌우 이동에 특화되어 있지 코트 전후 이동에는 약간은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나달의 로브는 구리다. 2015 윔블던에서 상대한 브라운과 같이 네트 플레이, 드랍샷, 로브 등을 위주로 한 기교 플레이어에게 나달은 상당히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키리오스도 마찬가지다. 키리오스는 분명 이런 장난 같은 플레이를 지속할 것이다. 언더서브를 포함해서 말이다.
키리오스의 공격력도 분명 특기할 점이다. 손목힘이 엄청난 그는 튀어오르는 공의 높이가 과하지 않으면 그냥 손목만으로 파워샷을 후려친다. 레이저 샷, 빨랫줄 샷이란 건 키리오스의 공을 가리키는 것을 테다. 심지어 그는 테이크 백도 거의 없이 샷을 때린다. 언제까지 그 손목힘으로 버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그는 아직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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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해서 후두려패는 키리오스의 포핸드
ㄱ로 접혀보일 정도로 굽힌 팔과 웨스턴 그립 탑스핀
점프해서 후두려패는 키리오스의 포핸드
ㄱ로 접혀보일 정도로 굽힌 팔과 웨스턴 그립 탑스핀
그의 백핸드도 까다롭다. 그의 백핸드에 정확도가 있다거나, 파워가 있다거나 한다고 까지는 못하겠다. 그의 백핸드는 흔한 백핸드들처럼 약점이다. 그러나 상대가 강한 공격을 했을 때 그는 짧은 스윙 궤적으로 밀어치는 백핸드에 능하고, 그것에 각도를 주는 것에 여유롭다. 낮게 살짝 네트를 넘어 서브라인 근처에서 사이드로 빠지는 백핸드 혹은 낮게 넘어와 거의 튀지않은 플랫볼을 쳐내는 것은 베이스라인에서 그의 파워샷을 대비하는 상대를 곤란하게 한다. 물론 그는 거기에 준수한 드랍샷이라는 옵션도 함께 가지고 있다.
키리오스가 클레이에서 삽질을 거듭하고, 잔디와 빠른 하드 코트에서 여유있게 경기하는 것은 이 같은 특성 탓이다. 다만 그도 문제를 가지고는 있다. 그의 랠리 지속능력은 좋다고 보기 어렵고, 그의 멘탈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나달이 2R에서 키리오스를 만난다면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결론 부터 말하면 3:1 정도로 키리오스의 승을 예상하겠다. 2017년이라면 모르겠지만 2019년의 나달의 폼은 잔디에서 선전할 만큼 좋은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고, 무릎은 여전히 짐이다. 서브와 백핸드가 좋아졌다지만, 그것만으로는 햄스트링이 걱정되보일 정도로 좌우로 뛰는 것이 예전만큼 민첩하지 않은 나달의 승리가 안도되는 건 아닐 것이다. 나달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포핸드로 각을 주는 샷을 치기보다는 포핸드를 가능한 베이스라인 근처로 길게 보내면서 키리오스를 뒤로 물러서게 하면서 가능한 빠른 타이밍에 네트에 전진하여 드랍 발리로 피니쉬하는 식의 플레이를 보여야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달이 브레이크를 안당하는 것이 중요하다. 키리오스의 서브게임이 워낙에 강력하니 나달입장에서는 버티기만 한다면 키리오스가 혼자 맛탱이가 가서 멘붕할 것이다.
키리오스를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4R 칠리치 혹은 QF의 샘 퀘리가 문제다. QF의 샘 퀘리가 사실 QF까지 올라올지도 의문이고, 올라온다 하더라도 나달이 칠리치와 풀세트 접전을 한 것만 아니라면, 빅서버에 적응된 나달로 부터 여유있게 털릴 것으로 보인다. 샘 퀘리가 2016년도에 빅서버 킬러 노박을 셋업한 빅서버라지만, 당시의 백핸드는 본인 커리어 역대급 백핸드였기에 가능했을 뿐이다.
마린 칠리치Marin Cilic는 조금 골치아픈 상대다. 2014 US오픈 챔피언, 2017 윔블던, 2018 호주오픈 파이널리스트인 칠리치는 1.98m의 거대한 신장에 강서버인 주제에 백핸드 랠리를 꽤나 잘 버텨내는 선수다. 폼 올라왔던 2018년의 칠리치는 호주오픈에서 나달을 상대로 5세트를 버티고 중도기권 시킨바 있고, 잔디코트인 퀸스클럽에서 조코비치를 물리치고 우승하는 이변도 일으켰던 선수다. 올해는 그작그작이지만, 그래도 칠리치는 빅4와의 충분한 대결 경험이 있고, 잔디코트가 그에게 유리하다는 건 매우 명백하다. 그의 백핸드가 에러를 폭발시키지만 않는다면 그의 서브게임은 충분히 지켜질 수 있고, 이는 나달을 충분히 피곤하게 할 수 있다.
그래.. 나달.. 윔블던에서는 라켓을 머리 위보다는 오른팔로 향하자..
어쨌든 내 예상에는 나달의 2R 혹은 4R에서 탈락할 것으로 보인다. 준결승에 올라간다 하더라도 윔블던을 대놓고 노리고 있는 페더러를 상대로 선전할 가망은 거의 안보인다. 윔블던에서 만큼은 페더러보다는 차라리 조코비치가 더 수월한 상대다. 하지만 여전히 나달에게 윔블던은 중요하다. 2017년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던 나달의 자신감이 유일하게 덜 채워진 듯한 곳이 바로 윔블던이다. 2017년 QF, 2018년 SF 진출로 충분히 성적을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승이 아쉬운 곳이다. 만약 윔블던에서 우승을 한다면 확실히 나달의 성취감이 확실히 채워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나달의 기량을 평가하는 아주 좋은 지표가 그가 윔블던에서 어떤 성적을 올렸냐이기 때문이다. 조코비치가 작년에 윔블던 우승으로 본 기량을 회복했고, 자신감을 끌어올렸다는 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힘내라 Jordan Thompson... 너 올해 3R도 찍어봤잖아... 너도 이제 스물 여섯인데 이제 빛 볼 때 됐어... 너 보기에도 키리오스 재수없을 텐데.. 힘내라 톰슨...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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