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3일 목요일

수면위



  가라 앉아있던 세월호가 23일을 기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나름 만감이 교차했다. 침몰한 지 3년 여 만이고, 인양 공법 변경을 결정한 지 대략 4개월 여 만이고, 인양 시도에 들어 간지 2주 정도 만이다. 지난해 말 인양을 연기하기로 결정한 이후 소조기에 맞춰 인양에 들어 간 것으로 보이나, 마침 박근혜의 스캔들과 탄핵에 맞춰 인용 공법 변경과 인용 시도가 이뤄지면서 마치 박근혜 씨가 사라지자 세월호가 인양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사실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청와대가 세월호에 기겁을 하니 정부부처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박근혜가 스캔들로 사실 상 힘을 잃고, 탄핵국면에서 세월호 이슈가 다시 부각되니, 해수부가 적극성을 보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가격이 싸서 결정됐다는 상하이 샐비지가 결국 자신들이 최초에 주장했던 인양 공법을 포기하고, 다른 업체들이 제시한 공법으로 현재 세월호를 인양에 거의 성공하게 되었다. 주변에 펜스 치느라 해수부가 대략 100억 쯤 더 썼다고 하니, 상하이 샐비지를 선택해서 아낀 돈도 사실 상 퉁친거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리도 어려운 일처럼 보였던 세월호를 수면 위에서 다시 보는 일이 고작 2주 만에, 사실상 작업시작 이틀도 안되어 이루어지게 되니 조금은 어이가 없고 허무하기 까지도 했다. 박근혜정부가 얼마나 무능하고 비정했는지를 다시금 상기시켜주었다. 
  

  광화문에는 노란 세월호 천막이 꽤 오랜 시간 쳐져있었다. 나 또한 때때로 광화문을 지나며 그 천막을 보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세월호와 관련된 사람은 없다.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이 안타깝지만, 당시 내가 앓았던 천식의 고통보다 안타깝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광화문에 설치된 노란 세월호 천막도 지겹다고 종종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어디선가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듣거나 볼 때면, 저 이야기도 작작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밖으로 꺼낸 적도 많다. 대중의 연민은 진정될 수 밖에 없고, 그럴수록 저들만 더욱 비참해져갈 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따위 소리를 늘어놓은 건, 존나 이성적인 척 하는 개쿨병에 쳐걸린 것 반, 저들의 싸움이란 것도 어차피 잊혀져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현실에 대한 증오가 반이 아니었을까 싶다. 
  과학 철학자인 칼 포퍼는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타인의 일에 대해 신경끄라는 이야기를 한 바가 있다. 만약 개인들이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타인의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다면 전체주의에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칼 포퍼의 이야기에 동의한다. 실제 그렇게 자신과 관련이 없는 타인이 느끼는 감정을 자신이 진정성 있게 느끼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나와 가까운 사람이 희생 당사자가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나는 유가족들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딱히 노력하지도 않았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일에 격앙되어봤자, 그것은 위선일 뿐이고, 결국은 모두에게 해가 될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세월호 참사 당시 수없이 나왔던 슬픔에 가득찬 반응과 추모의 소설들에 오히려 반감을 가졌다. 내가 관심있게 본 부분은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처, 사고의 원인 그리고 그것의 개선 가능성, 책임이 어디로 귀착될 것이고, 어디로 귀착되어야하는지 정도에 있었다. 
  
  하지만. 시베리아 기단이 당도한 것만 같이 시원한 이 개쿨함은 접어두고, 어쨌든 슬픈 건 슬픈거다. 아니 단지 슬프다고 표현하다기 보다 울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래, 사고는 날 수 있다. 여객선이 침몰한 사건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더 치명적인 사고도 많이 있었다. 이 사건이 울분을 주는 이유는 어떻게 "국가", "정부"라는 것이 이렇게 무능력하고 비정하게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언젠가 딴지일보 기사에서 본 것 같다. 우리가 정부라는 걸 만든 이유 중에 하나는 불편한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이다.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볼 때, 병원비가 밀려 강제로 퇴원되어야하는 중환자를 볼 때, 어린 가장이 되어 주유소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중학생을 볼 때, 빚쟁이에 쫓겨 자식의 책 값을 줄 수 없는 가장을 볼 때 우리는 울분을 느낀다. 저런 병신같은 꼴을 보는 게 불편해서 그렇다. 연민과 부조리의 감정을 애써 외면한 채, 결국에는 눈과 귀를 닫고 내 자신의 하찮은 삶에만 신경쓰게 될 때 느끼는 그 양심의 가책이 불편해서 그렇다. 그냥 저런 거지같은 꼴이 보기 싫어서, 그것을 보며 느껴지는 양심의 가책이 너무 불편하고 싫어서 우리는 국가를 만들었다고 말이다. 국민 개개인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라고. 국민 개개인이 타인의 불행에 신경끄고 각자의 소시민적 삶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가 대신 열심히 나서서 불행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안타까운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세금까지 내가며 정부를 만들었다고 말이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이다. 소시민의 삶을 간신히 사는 것도 버거운데, 내가 왜 저 어린 학생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불편하게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왜 하찮은 소시민에 불과한 내가 그들의 희생을 막을 수 없었다는 무력감에 시달려야하는가. 저런 참사가 터졌을 때, 나 같은 대다수의 소시민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정부라는 게 모두를 대신해 열심히 나서서 희생이 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막아야하는 것 아닌가. 근데 왜 정부라는 것은 고위 관료의 현장 기념 촬영에 헬기 동원하느라 바쁘고, 대통령의 한량생활을 숨겨주기에 바쁘고, 구조를 돕는 민간인들을 막아서고 재판에 세우느라 바쁘기만 한가. 비굴함에 젖은 밥을 간신히 벌어쳐먹고 살기도 바쁜데, 왜 나와 하등 상관없는 사람들의 불행에 울분까지 느껴야하는가. 국가란 도대체 뭐하는 존재인가.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며 다시금 파면된 박근혜 씨와 그 내각에 대해 분노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검찰이 박근혜 씨 구속을 두고 고심 중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밥이 넘어가다 체할 지경이 되어 결국 뉴스 보는 것을 관뒀다.  



2017년 3월 22일 수요일

Two handed backhand



  테니스의 백핸드 기술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흔히 원백이라고 하는 한손 백핸드. 그리고 투백이라고 하는 양손 백핸드가 그것이다. 




  먼저 원핸드 백핸드. 바로 그 유명한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께서 쓰시는 방법이다. 한 손으로 휘두르다 보니 휘두르는 스윙 궤적이 몸쪽으로 한정되는 투핸드에 비해 크다. 스윙 궤적이 크니 더욱 와이드한 샷을 때릴 수 있다. 크로스로 때릴 때 특히 큰 각도의 샷으로 상대를 좌우로 크게 흔들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핸드는 잘 맞으면 공이 정말 멋지게 뻗어가고, 스윙 폼이 간지가 난다. 발리나 슬라이스를 쓰기에도 수월해 보통 복식에 유리하다고 여겨진다. 아래에서 위로 쓸어올리는 페더러 식의 원핸드 백핸드는 탑스핀을 주기에도 용이하다고 한다. 단점으로는 한손이다 보니 투핸드에 비해 안정성이 떨어지고, 탑스핀에 취약하며, 높게 튀어오르는 볼을 눌러치기가 곤란하다. 동작이 크다보니 공을 치기 전 준비자세도 커서 반응성이 떨어진다. 팔로우 스윙도 크니, 공을 치고 나서 다음 공을 준비하는 데도 상대적으로 오래 걸린다. 그래서 투핸드에 비해 공을 칠 수 있는 높낮이 범위가 좁은 듯 하다. 원핸드 백핸드로 유명한 선수는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Stanislas Wawrinka, 그리고르 디미트로프Grigor Dimitrov, 리샤르 가스케Richard Gasquet 정도가 있다. 





  다음은 투핸드 백핸드. 원핸드가 조금은 클래식한 기술이라면 투핸드는 비교적 최근에 들어와서 핫해진 방식이다. 아무래도 팔힘이 부족한 여자테니스에서야 오래전 부터 쓰인 것 같지만, 과거 남자테니스에서는 지미 코너스Jimmy Connors, 비외른 보리Björn Borg처럼 투핸드 백핸드를 쓰는 선수가 오히려 희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라켓기술이 발달되면서 서브 앤 발리어들이 침체되고, 스트록 랠리 위주의 베이스라이너들이 득세하게되자, 각도 큰 공격보다 보다 안정적인 랠리 능력이 중요시되어 많은 선수들이 투핸드 백핸드를 선택하고 있다. 보통 한손은 이스턴 혹은 세미 웨스턴 그립, 다른 한손은 컨티넨탈 그립(발리그립)을 잡고 치는 투핸드는 아무래도 양손이다 보니 안정성이 주요 장점이다. 큰 각도의 와이드 샷을 쓰기는 어렵지만, 높은 볼 처리가 수월하고, 공이 밀리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적다. 양손으로 라켓을 잡고 휘두르니 스윙 궤적이 상대적으로 작아 공을 몸쪽에 바짝 붙여 치게 된다. 확실히 힘을 줄 수 있는 임팩트 전후 궤적도 원핸드보다는 투핸드가 짧다. 그러다보니 원핸드에 비해 한발짝 더 가까이서 공을 치게되지만, 보다 작은 반경의 스윙 동작 덕분에 반응성을 매우 높일 수 있다. 보통 어린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테니스를 처음 시작할 때 투핸드를 선택한다. 프로 선수들의 경우에는 80% 이상의 대다수의 선수가 투핸드를 사용하며, 특히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 앤디 머레이Andy Murray는 그 중에서도 투핸드 백핸드 스페셜리스트로 유명하다. 




  처음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원핸드 백핸드를 선택했었다. 그냥 원핸드 백핸드가 더 치기 어렵다니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그때는 원핸드가 더 간지가 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단순히 그냥 투핸드 보다 원핸드가 더 잘쳐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보통은 투핸드가 더 배우기 쉽다던데, 이상하게 나의 투핸드는 땅에 쳐박히기만 했다. 반면에 원핸드는 적어도 네트를 쉽게 넘어 잘 뻗었다. 선생님은 심지어 나의 원핸드 백핸드가 포핸드보다 낫다고 하셨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근데 그건 레슨 공 칠때나 해당되는 얘기고, 실제 게임을 하거나 랠리 연습을 할 때는 백핸드를 거의 안 쳤다. 나달의 포핸드를 따라하느라 몸을 뒤로 젖히고 타점을 뒤에 두는 나의 습관과 타점을 반드시 한 발 앞에 둬야하고 전체적인 동작이 큰 원핸드 백핸드는 내게 왠지 조합이 안 맞는 것 같았다. 백핸드로 오는 공은 거의 돌아서서 포핸드로 치거나, 슬라이스로 처리했다. 백핸드는 찬스볼이 왔거나, 그것과 상관없이 그냥 스스로가 이번 거는 무조건 백핸드로 엄청 세게 쳐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을 때만 썼다. 당연히 백핸드 안 쓴다고 사람들에게 욕만 왕창 먹었다. 선생님은 내가 그나마 나은게 원핸드 백핸드인데 정작 그걸 안 쓴다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렇게 원핸드 백핸드에 정이 안들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투핸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투핸드로 무지 치고 싶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이 투핸드를 쓰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나달의 양손 백핸드는 별로 좋지도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말이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나는 투핸드를 못쳤다. 보통 그래도 원핸드 치는 사람이 몇번 시도하다보면 투핸드 금방 배운다던 데, 나는 정말 거짓말처럼 공을 그물에 지속적으로 쳐박았다. 그러다 보니 항상 그나마 낫다는 원핸드 백핸드에 집중해야하는가 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러나 결국 원핸드를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 같다. 그립만 세 번이나 이리저리 바꿔보고, 스윙하는 폼도 두 번은 바꿔보고, 맨날 동영상 쳐다보고, 맨날 집에서 라켓들고 투핸드 휘둘고 보고, 걸어다닐 때도 맨날 투핸드만 생각해서 그런가 그나마 조금씩 공이 맞아 넘어가기 시작했다. 
  왠지 투핸드를 쳐서 잘 맞으면 기분이 좋다. 뭔가 나달에 가까워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드디어 베이스라인 러너로서 구색을 갖춘 것 같기도 해서 그런가 보다. 한동안 퍼스트 서브가 잘 되길래, 원핸드 백핸드와 엮어 서브앤 발리어가 되가는 건가하며 뭔가 맘에 안들어했는데, 요새는 서브가 완전히 맛이 갔고, 투핸드가 넘어가니 오히려 뿌듯하다. 서브와 발리 연습따윈 하지도 않는다. 그저 투핸드 백핸드나 더욱 잘 쳐졌으면 좋겠다. 


나는 안희정 지사가 싫다.



  아버지와 TV를 보던 중이었다. 마침 TV에선 민주당 경선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아버지는 안희정 지사가 요즘 좋게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그의 통합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가 크게 와닿는다고 하셨다. 보수세력과는 담을 쌓은 걸 넘어 혐오하시는 분이셨기에 조금 의외였다. 비슷한 연배의 한 어르신과 자리를 함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분 또한 안희정 지사를 지지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안희정 지사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보다 건설적인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도 하셨다. 문재인 전 대표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처럼 격한 갈등으로 시끄러워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나는 안희정 지사가 싫다. 뭐 예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는 노무현의 최측근 중 한 명이고, 노무현을 위해 감옥까지 갔다온 사람이다. 헌신적이고 올곧은 그의 성품은 특히나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안희정 지사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딴지일보와의 인터뷰도 여러 번 읽었고, 충남지사에 출마했을 때에는 내심 응원하기도 했다. 뭐 딱히 그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기 보다는 그냥 "노무현의 사람" 중 한 명이니까 그랬다. 그러나 유력 대선 후보로서 매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그가 나는 싫다.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문재인이나 안희정이나 아무나 돼도 상관없다. 어차피 박근혜는 끝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안희정 지사를 싫어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래서인지 어르신들의 안희정 지사에 대한 호의적인 평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불편할 뻔 했다. 
  나는 안희정 지사가 위선적이라고 생각한다. 통합과 포용이라는 그의 철학, 21세기의 철학이자 새로운 정치라는 그의 지향을 나는 깊게 이해하고 깊히 지지한다. 하지만 그건 철학일 뿐이다. 그런 류의 수사를, 가식을 대놓고 드러내는 형태가 아닌, 마치 진심인 것처럼 드러내는 사람이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나는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안희정 지사는 대화와 포용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보기에 사실 그는 애초에 상대의 요구를 들어줄 의사가 없을 거라고 본다. 마치 토론과 설득을 끊임없이 이야기했지만, 사실 상대의 요구를 받아줄 생각이 없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말이다. 
  그가 충남 도정을 얼마나 잘 이끌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들 그렇다길래 나도 그런가보다 했을 뿐이다. 그가 충남에서 어떻게 활약했는지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몇몇 비디오들을 통해 파편적으로 접한게 전부다. 그 영상들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그의 모습을 봤다기 보다는 그냥 자신을 억누르며 수련하는 수도승의 모습을 봤다. 자신에게 큰 소리를 치는 어르신들을 껴안고, 철저희 여권지향적인 시골 어르신들 속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그가 나에게는 포용과 관용의 성정으로 자연스럽게 대화와 통합을 이끌어낸다기 보다는 그냥 대단할 만큼 자기 자신을 억누르며, 철저히 이성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가 칸트가 말했던 실천이성을 그 누구보다 잘 따르는 인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의 작위적인 듯 보이는 행태가 조금은 불편했다. 그가 정말 어느 날 깨달음을 얻어 혁명투사였던 과거를 깔끔하게 잊었을까. 내가 보기에 그는 그렇게 만든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감동하며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과하게 말하면 안 지사 스스로가 예수라도 된 마냥 구는 것 같아 배알이 꼴렸다는 말이다. 
  선의 논란도 비슷하다. 나는 그가 강연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전부 깊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나 또한 그가 말하는 규범이 인간이라면 반드시 추구해야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MB와 박근혜에 대한 그의 선의 이야기가 한낱 하찮은 농담에 불과하다는 것도 잘 안다. 그 농담을 환기시켜 진정으로 그가 하고자 했던 메세지가 무엇인지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가 "반어법"이라는 멍청한 변명을 내놓았을 때, 나는 내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새삼 선명히 새길 수 있었다.  


  나는 안희정 지사가 싫다. 나는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강한 강박을 갖고있다. 나는 내가 보는 안희정 지사의 모습처럼 실천이성에 철저히 순응하는 모습을 가지려고 애를 쓴다. 거기에서 나온 질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서 자연스럽지 않아 보이거나, 특히 위선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싫다.  내 스스로가 그렇기 때문이다. 철학은 철학인 거고, 현실은 현실이다. 대화니 통합이니 하는 건 어차피 규범적인 것일 뿐이다. 어차피 행위자로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의지이고, 자기 실현이며, 자기 이익이다. 그런면에서 내게 그는 철저히 가식적으로 보인다. 토론을 봐도 그렇다. 대놓고 짜증내고 있는 이재명 시장이 차라리 인간적으로 보인다. 특히나 안 지사가 친절한 듯 동지를 외치는 모습은 볼 때는 가장 역겨웠다. 
  그래서 나는 안 지사가 대연정을 이야기하는 건 철학의 발을 빌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지지세를 확장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전술적 차원에서는 대단히 훌륭한 전술일지도 모른다. 반기문 씨 사퇴 이후 일거에 이 시점까지 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향후 실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그가 대연정을 한다면 어떨까. 참여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철저히 대화를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입장을 상대에게 공익, 민주주의, 새정치 따위의 핑계로 강요할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이야 자신이 불리하니 보수진영에 손을 뻗지만, 나중에도 그럴까. 오히려 온갖 갈등으로 점철될 지도 모른다.
   그가 실제로 자유당과 같은 친박세력들을 포용한다는 취지로 대연정을 꾸려 이런저런 정치적, 정책적 양보를 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하는 이상과도 맞지 않을 테니 본래 진영의 지지층을 잃게 될 것이고, 그의 통섭의 정치라는 것 또한 냉혹한 정치 현실속에서 질 낮은 타협의 정치에 그쳐버릴 공산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안 지사가 본래 그 자신이 발을 딛고 서있던 이념에서 벗어난 인간이 되어버린 다는 점이다. 친일파-군부독재-야합세력-토목-광신적 박근혜에 대한 온정적 향수로 이어지는 자유당의 존재 기반을 학생운동권 중에서도 전설이자,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꾼인 안 지사가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건, 동시에 안 지사의 존재 이유마저 소거시키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대연정이니, 통섭의 정치니 하는 것이 위선적으로 보인다. 


  수련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안희정 지사가 짜장면을 먹다 펑펑운 건, 그가 대단히 철학적이고, 논리적이며, 분명한 대의명분이 있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아서가 아니다. 단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좋아해서 그랬다고 스스로가 밝히지 않았는가.  그런 그가 새정치라며 돼도 않은 통합의 철학을 나불거리고 있다. 엊그제는 무슨 문재인씨가 전두환한테 표창장받았다고 난리치더니, 느닷없이 오늘은 또 네거티브 안한다고 선언했다. 뭔 짓거리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가 박근혜의 진심과 선의를 이해해야한다고 말한 것이 철학적 규범을 제시한 것일 뿐이지, 실제로는 그 또한 박근혜 씨와 그 일당들을 경멸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충남의 여러 보수적인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또한 역시 노인들은 말이 안통한다거나, 무식하고 멍청하니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그가 싫다. 마치 철학적 규범을 자신애 덮어써 본성을 가리며 고매한 척하는 저 위선이 정말 싫다. 나는 그래서 안희정 지사가 싫다. 
  말이 좋다 대연정, 대통합. 갈등이라면 이를 가는 한국사회에 참으로 어울리는 말이다. 박근혜의 "100%"에 비견할 만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구라를 잘 보태면 파시즘에 이어붙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리 통합을 하지못해 안달인가. 부모자식 간 대화도 똑바로 못해서 피하는 것으로 평화의 대통합을 달성하는 동네라서 그런지 그리도 대통합이 중요한가 보다. 그래서 나는 대연정이니 통합이니, 통섭의 21세기 철학이니, 동지니 어쩌니 하는 안희정 지사가 싫다. 



카스테라, 미친짓거리, 문



1. 겁나 건강하게 사는가

  채널 A의 프로그램인 먹거리 X 파일에서 "대왕 카스테라"에 관한 방송이 논란이 되고 있다. 방송에서는 카스테라 제조과정에서 식용유가 사용된다는 점, 이 밖의 화학 첨가물이 들어간다는 점, 그리고 생크림 재사용, 액상 달걀의 사용 된다는 점 등이 지적되었다. 방송 이후 대왕 카스테라를 만드는 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었고, 소규모 자영업체들 같은 경우에는 90%이상 매출 손실을 기록하며 폐업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에서 주요 문제로 제기한 식용유의 사용이 사실 큰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지적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애초에 식용유를 제빵에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시 될 것이 없고, 대형 카스테라의 경우 그 크기 때문에 녹인 버터를 쓸 경우 오히려 경화되기 때문에 식용유가 이용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화학첨가물로 언급된 베이킹 파우더 같은 경우도, 제빵에 흔히 사용되다 못해 필수적인 재료 중 하나라는 것이다. 여기에 폐업하게 된 점주들이 올린 글들까지 화제가 되며 논란은 매우 커졌다.
  "먹거리 X파일"이라는 포맷의 문제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건강한 먹거리"라는 기지를 내걸어 조금은 충격적이지만 신선한 시도로 알려졌다. 방송의 순기능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너무 과장되거나 지나친 지적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고,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하나의 권력이 된다는 해설도 나왔다. 여기에 해당 프로그램의 PD가 먹거리 사업에 상업적으로 참여하면서 논란의 종지부를 찍으며 사실 상 관심에서 벗어났다가 이번 논란으로 다시 논란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빵에 식용유를 쓰인다는 사실이 있다. 실제로는 흔히 쓰이지만 왠지 건강에 무지 해로울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이 틈을 연출이 파고든다. 대중은 방송을 대체로 신뢰하고 이에 따라 매출이 급감하면서 업자들은 페업을 맞이했다. 이것이 그른가를 찾을 때 어디가 그른 부분인가를 찾아야한다. 주로 과장된 연출이라는 고리가 지적되고, 그 사실이 그를 때, 업자들의 폐업이라는 결과가 올바르지 않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다른 부분에 관심이 갔다. 대중의 의사결정 부분이다. 먹거리 X파일을 보고 카스테라를 안 먹어야겠다고 결정하는 것도 개개인들이다. 방송을 보고 충격을 받아봤자, 얼마나 지나지 않으면 다시 사먹을 뿐이다. 분업화, 표준화, 대량화로 얼룩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뭐 얼마나 건강하게 먹고 살 수 있나 싶다. 도시사회에 쩔어있는 자신들에게 부재한 것들에 대한 향수로 저런 프로그램에 크게 동요되는 게 아닐까. 마치 담배에 쩔어있으면서도 건강 찾는다고 운동하는 사람처럼 우습기도 하다. 



2. "한병철 교수의 기행奇行"

  "피로사회". 각종 글거리에서 수없이 봐왔던 책이다. 만나는 사람들로 부터도 수없이 인용되어 그 책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난 그 책을 보지 않았지만, 이미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 알고 있는 것만 같을 정도다. 바로 그 책의 저자이자 독일의 슈퍼스타인 한병철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가 지난 15일 광화문 교보문고 출간 강연에서 꽤나 웃기는 기행을 펼쳤다. 
  저자의 사정으로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앞당겨놓고, 정작 본인은 30분 늦게 도착했다. 피아노를 갖다놓고 혼자 치다가 역시 야마하 피아노가 후지다고 불평했고, 자신의 책을 번역해 출간해준 문학과 지성사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책은 번역해 내지 않는다고 욕하고, 자신의 책의 역자에게는 독일어 테스트를 했다고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청중들이 기행의 이유를 묻자 청중에게 화를 내며 참가비 1000원을 돌려줄테니 나가라고 했고, 나가는 관객들에게는 소리치며 비난했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한 교수의 이 컨셉이 그 자신의 철학의 핵심이자, 출간되는 책인 "타자의 추방"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점입가경이다. 결국 문학과 지성사는 사과문을 내걸었고, 한 교수가 편두통에 시달리는 등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타자의 추방이라니.. 한 교수의 박사 논문이 하이데거에 관한 것이었고, 데리다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했다는 설명을 보니, 이 상황을 조금은 이해하는 척 할 수 있었다. 그냥 고도의 철학 연구에 담긴 현학성에 잠겨 있는 학자의 흔한 미친 짓거리가 아니었는가 싶다. 그 광기가 학문적 우수함과 반드시 결부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학문적 우수함과는 별개로 단순히 그 교수의 정신적 나약함이 교수의 명성을 딛고 나타난 것인 것 뿐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타자의 추방이고 나발이고를 떠나 흔한 미친 짓거리라는 점일 것이다.
  교수의 논문 주제 중 하나였다는 자크 데리다의 책들을 군대 시절에 부지런히 읽은 척 했었다. 해체주의라는 주제에 걸맞게, 개념 하나 하나 읽다보니 미쳐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뭐 그게 반드시 미친짓거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원래 사람들은 모두 각기 개개인 만의 미친 성정이 있는데, 그게 명성에 의해 혹은 편견에 의해 용납되어 드러나는 것 뿐인 듯하다. 뭐 꼭 천재라고 미친 짓거리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3. 전두환과 MBC

  MBC 민주당 경선 토론에 나온 문재인 전 대표가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순간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특전사 복무시절 사진을 들고 나왔다. 그것을 설명하면서 특전사 시절 받은 표창을 바로 그 "전두환"에게 받았다는 설명을 하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본인의 의도는 분명 자신의 빡센 군생활에 대해 설명하여, 중도, 보수층의 지지를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었을테다. 그러나 안희정 지사, 이재명 시장 등은 이 언급이 부적절했다며 비판했고, "전두환"의 이름이 언급된 이후, 22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지역 지지율이 10여 %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안희정 지사와 그 캠프는 본인의 "선의 논란"이 생각났는지, 맹렬하게 비판했다. 본인은 그 민정당의 후신인 자유당과 연정하겠다더니, 군 생활에 받은 표창에 전두환 이름이 찍혀있는 건 잘못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본인이 대세니 경선 토론에서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노리는 것이 문 대표의 전략이겠지만, 그에게 따르는 논란은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는 그냥 좀 멍청해 보인다. 굳이 전두환의 이름을 언급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전두환을 언급하면 보수층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까. 오히려 이름 운운하며 아양떠는 것 같아 보였다. 
  게다가 바로 그 MBC토론에서는 대놓고 MBC를 비판했다. 관영방송이 되있다는 것이다. 방금 전에 전두환을 언급해놓고, 저건 무엇을 노린 걸까. 중도보수층을 노린다면 그런 언급을 대놓고 할 필요가 없었지 않을까.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만 언급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어차피 알테니 말이다. 그런데 괜히 MBC를 대놓고 언급해서 쓸데없는 구설수까지 만들었다. 보수진영이 가장 경계하는 문재인의 모습이다. 
  그의 아들에 관한 이슈는 이제 자기소개서까지 인터넷에 나도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병풍과 비슷한 컨셉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싶다. 여기에 함께 노무현 측근으로 일컬어지는 안희정 지사와의 대립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동지라더니. 개뿔 같은 소리다. 
  어눌하게 회피하기에 바쁜 문재인 대표, 법인세만 주구장창 칭얼대는 이재명 시장, 그 놈의 대연정 대통합만 읊어대는 안희정 지사, DJ와 제 고향 광주 빼고는 기억나는 게 없는 최성 시장. 차라리 자유당 토론 보는 게 더 즐거울 것 같다. 



2017년 3월 13일 월요일

새 바람




http://imnews.imbc.com/replay/2017/nwdesk/article/4232045_21408.html

보수 세력 광장으로 이끈 '태극기 집회'…"새 바람"
mbc 뉴스데스크 3월 10일자




  근래에 여러 병신같은 뉴스들을 봤지만, 땡전 뉴스 이후로 가장 병신같은 뉴스가 아닌가 싶다. 도대체 저 뉴스 꼭지를 만든 인간들은 어느 나라 인간들인지 궁금하다. 병신계의 넘버원 상병신이자, 병신계의 아이폰이고, 병신계의 아인슈타인이랄 만큼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상병신 뉴스였다. 
  데모계의 새바람에서는 어르신들이 벌써 3명이나 돌아가셨고 그와중에도 주도자는 헌재에 들이 받으라고 선동하느라 바빴다. 웃기는 건 저 새바람 집회에서 돌아가신 분들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돌아가신 것도 아니라는 거다. 무려 팀킬로 희생됐다. 주도자는 자신이 무사히 도망쳤다고 SNS에 인증까지 하는 창조적으로 병신같은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고령자들이 대다수라 인명피해가 너무나도 쉽게 예상되는 저런 극단적인 상황을 슬퍼하고 우려하기는 커녕, 1천 5백만의 새로운 장이라니. 저걸 보도한 MBC 백연상 기자도 기사문을 쓰면서도, "이런짓거리까지 해가면서 빌어쳐먹고 살아야되나"라는 고뇌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분명 내가 어렸던 시절만 해도 뉴스는 MBC를 봐야한다는 왠지 모를 강박이 있었다. 그만큼 MBC는 문제의식과 비판의식으로 가득 찬 훌륭한 언론이었다. 그 유명한 PD수첩은 물론, 2580,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백분토론 등의 시사 프로그램들 모두 MBC였다. 가장 훌륭한 언론인으로 손꼽히는 JTBC 손석희 사장 또한 MBC 아나운서 출신이 아닌가. 
  MB가 방송가를 병신들로 가득 채우면서 부터였을까, MBC에 김재철 사장이 들어온 즈음  부터인가, 최근 나는 MBC가 아직도 뉴스데스크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놀랐을 만큼 MBC는 그냥 어용 언론이자, 멍청한 방송이 되어있었다. MBC를 이끌고 채워왔던 여러 뛰어난 언론인들을 아이스링크 관리자로 쫓아내고, 계약직 프리랜서들로 채운 시사, 뉴스 프로그램들은 언론으로서 가져야 할 소신따위는 하수구에 쳐박아버린 채 정권의 나팔수이자, 쇼비니즘의 선전장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정말, 아무리 그래도 정말 저런 상병신같은 뉴스를 저렇게 염치도 없이 방송할지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차라리 TV조선이나 MBN같은 종편이 MBC보다는 나을 판이다.  저 쓰레기같은 보도를 보고 나니, 한국사에서 배웠던 태극기에 대한 소중함과 순국선열에 대한 존경은 이제 극우적이고 박근혜적인 노인들에 대한 구토로 바뀌어 가는 것 같다. 친구 하나가 말했었다. 멍청한 이 곳의 유일한 해결책은 "자연사"라고 말이다. 



2017년 3월 12일 일요일

뭐 저런게 다있나




1.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3월 1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 당시, 머리에 헤어롤을 꽂은 상태로 아침 출근길에 나서 화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측은 바쁜 와중에 실수로 그러신 것 같다며 애써 이정미 재판관을 감쌌지만, 그건 별로 의미없는 일이 되었다. 헌재가 우려하는 대로 그 장면이 희화화되거나, 헌법재판소의 권위가 손상을 입거나, 재판관 개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 따위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역사적인 선고를 앞두고, 머리에 꽂은 헤어롤을 잊어버릴 정도의 재판관의 노고가 드러나는 것 같아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결정적으로는 세월호가 침몰하여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헝클어진 머리를 연출한다며 미용사들을 불러 두 시간 동안 머리손질을 받았다는 박근혜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장면이었다. 깊은 감동과 존경심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2.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 소추가 인용되어 급 민간인이 된 박근혜가 3월 12일에 청와대에서 퇴거했다. 박근혜는 탄핵 판결이 나온 후 즉시 청와대 관저에서 나와야 함에도 사저에 보일러 공사가 안되었다는 이유로 이틀이나 더 관저에 머물렀다. 이 하찮은 민간인 박씨는 12일 오후 내내 나간다, 나간다, 나간다, 속보만 잔뜩 내더니, 해가 다지고 청와대를 나섰다. 
  그리고 강남구 삼성동의 사저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린 박 씨는 무려 웃음을 지었다. 웃었다. 박사모를 향해 손을 흔들며 웃었다. 웃었다. 정말 레알 웃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무슨 서태웅이라도 보는 줄 알았다.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첫 파면된 대통령 주제에, 심지어 혁명도 아니고, 정권 전복도 아니고 쿠데타를 당한 대통령도 아니고, 무려 헌법과 법률에 써진 절차대로 파면된 대통령 나부랭이 주제에, 무려 사저에 내려 웃었다. 충격적이었다. 
  박 씨가 관저에서 퇴거당하면서, 그래도 동정표가 여론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예상들이 있었다. 하지만 박 씨는 사저 앞에서 쪼개는 모습을 보인데다, 헌재 판결에 대한 입장표명을 본인이 밝히는 것도 거부했다. 게다가 그녀의 손발 중 하나인 자유당 민경욱 의원이 밝힌 박 씨의 메시지는 사실 상 판결에 불복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진실이 밝혀질 거란다. 이 하찮은 민간인 박 씨는 자신이 동정받을 여지마저 가볍게 우주로 날려버렸다. 집 앞에 나와 있는 박사모를 보고 역시 자신의 지지층은 견고하다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뉴스특보를 보는 내내 어이없는 웃음이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2017년 3월 4일 토요일

니네나 똘똘 뭉쳐라




1.


  며칠 째 신문사 사설들은 사드THAAD 보복 때문에 난리다. 롯데가 성주 골프장 부지를 제공하면서, 중국은 롯데에 대한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중국의 관영지인 인민일보에 비하면, 조금은 더 나아간 반응을 내놓곤 하는 환구시보는 최근 대놓고 사설 등을 통해 한국 정부와 롯데를 강하게 지탄했다. 중국 공산당의 지시를 어기기 어려운 기업들이 한한령에 따른 방침들을 내놓는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한국의 사드 배치에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까지 커지게 된다면 이는 단순한 양국간의 외교적 문제를 넘어 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 신문들은 며칠 째 사설과 오피니언 란에서 중국에 대해 온갖 비난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욕만하다 지쳤는지, 3월 4일자에는 지혜와 인내로 대응하자(한국일보)라거나, 북한 송유관을 끊으면 사드 문제가 해결된다며 중국에 해결책을 친절히 가르쳐준다거나(조선일보), 똘똘 뭉치자거나(문화일보), 당당하게 맞서자거나(연합뉴스) 등등 이제는 자위의 단계에 돌입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미 작년 가을, 그토록 미뤄 미뤄왔던 사드 도입이 박근혜 정부에 의해 결정된 이래로 "한한령" 혹은 "금한령"이라는 단어는 이미 낯선 단어가 아닌 것이 되었고, 중국 관광객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으며 동대문 의류 상가는 느슨하게 망해가고 있다는 보도를 백 번은 본 것 같은데, 여전히 규탄만 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첫 경선 토론에는 아예 사드 배치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는 시간이 정해져있었다. 바른당의 유승민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가 사드 배치 결정을 재고해봐야 된다고 말했다고 씹어대기 바쁘다. 이제 사드 배치 지지는 안보의식이 있는 거고, 사드 배치 재고는 안보의식이 없는 걸로 명쾌하게 나뉘었다. 우습다 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2.


  한 때 친했던 형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때 였다. 일을 하면서도 대학원에서 국제안보까지 전공하며, 안보를 중시하는 확고한 우파라고 스스로를 지칭하셨던 그 분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치, 역사적 위치가 대단히 복잡한 상황이며, 열강들 사이의 소국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대국의 브레인들의 뒤통수를 때릴만큼의 치열하고 창의적인 묘수로 그들을 따돌리는 수 밖에 없다 없다고 열변하셨었다. 개인적으로 가치관은 달랐지만, 어린 마음에 그 분이 대단히 존경스러워 보였다. 
  국제정치의 대가인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의 신현실주의neorealism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국제관계가 철저히 자국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철저히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대략 상식만 잘 더듬어 봐도 알기 쉽다. 고려 말 이성계가 괜히 사불가론의 첫번째로 以小逆大, 一不可, 즉, 소국이 대국을 거스를 수 없다는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다. 당연히 외교관계는 강국의 이익에 따라 흘러가기 마련이다. 
  



3.


 뭐가 그리 우스웠을까. 한 세 가지로 꼽아봤다. 먼저 한국정부의 멍청한 행태이다. 박근혜 정부는 본인의 스캔들로 곧 망해가는 와중에도 기어이 사드 배치를 처리했다. 작년 2월 만 해도 복잡한 논의와 대립으로 계속 미뤄질 것으로 보였던 사드 배치가 느닷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크게 경계 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중국은 미국도 미국이지만, 어쨌든 배치는 한국에 하니, 한국에 당연히 불같이 화낼 것이고, 덤탱이는 한국이 다 쓸 것이다. 미국은 당연히 중국과의 직접 대립을 피할 것이고,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게다가 중국은 일당독재국가이다. 그놈의 경제를 한없이 중얼거리더니, 결국은 경제를 희생해가며 애국심 팔이하는 저들이 참으로 한심해 보인다. 
  두번째로는 사드 배치가 안보의 상징이 되는 이 현실이 우숩다. 사드는 고고도 미사일에 대비한 것이다. 그냥 그것만 감안해도 미국이 중국과 북한의 ICBM, SLBM 등의 대륙 간 탄도미사일 등 장거리 미사일로 부터 본토 및 해외 주둔 기지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차피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는 차고 넘친다. 남한의 수도가 국경에서 고작 200km도 안되는 곳에 있는데, 뭐 하러 그런 고고도 무기들을 쓰겠는가. 사드가 핵무기를 요격한다고 해도 뭐 미국이나 좋을 일이지 엄청나게 가까운 남한에는 요격이 되도 문제다. 심지어 더 웃기는 것은, 중국이 지금 이 난리를 치는 직접적인 이유가 사드의 레이더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한국에 배치되는 사드가 대 중국 요격이 가능할 만한 사정거리도 안되지만, 레이더는 중국 본토까지 꿰뚫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이 무역재재에 나선 주 이유이다. 그런데 지금 사드 이슈는 그냥 안보냐 아니냐로 나뉘어있다. 그 안보가 미중대립을 의미하는 것이면 모르겠는데, 딱히 하등 상관도 없는 북한의 공격에 대한 남한의 방어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면 그냥 좌익빨갱이가 되고, 찬성하면 애국과 안보를 생각하는 것이 된다. 웃기는 짓거리다. 
  마지막으로 민족정론지들의 사설들이다. 무슨 애국심이 그리도 도졌는지, 중국을 격하게 씹느라 바쁘다. 사드 배치 논의 때는 북한의 핵위협이라는 되도않은 안보이유를 들어 격하게 찬성을 밀더니, 당연히 이어질 중국의 태도를 격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냥 Pathetic하고 멍청한 비난인 것 같다. 국제사회는 무정부사회다. 자국의 이익뿐이고, 힘 뿐이다. 이성계가 바보라서 요동정벌을 안했는가. 그 놈의 자유경제, 시장경쟁을 지껄이던 정론지들이 왜 그리 중국에 앵알거리는 지 모르겠다. 거대한 중국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쪼그만 소국인 한국을 짓누르는 일 따위는 매우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그 대국이 우리에게 사드 배치하면 긴장해야될 거 라고 친절하게 미리 경고까지 해주지 않았는가. 이제와서 우리가 신나게 힐난한다고 중국이 귓등으로라도 들을까. 만약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우리 또한 당연히 중국처럼, 혹은 중국보다 더 강경한 대처를 내놓지는 않았을까. 사드배치를 그리도 멍청하게 급하게 결정한 정부관료와 외교관료 등을 혹독하게 비판하지는 못할 망정, 중국만 공허하게 씹다가 이제는 정신승리에 단계에 까지 접어들어있는 정론지들이 실로 우습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왜 저러나 싶다. 




2017년 3월 3일 금요일

Acapulco



1.

  세계랭킹 2위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자신이 첫 출전한 ATP 멕시코 Acapulco Open QF에서 세계랭킹 17위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에게 6-7(9), 5-7로 패배했다. 1번시드였던 조코비치의 대진이 2번시드인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에 비해 까다로워 결승진출의 난항이 이미 예상되기는 했지만, 난항의 한 축이었던 후안 마틴 델 포트로Juan Martin del Potro에 4:6, 6:4, 6:4 역전승을 거두며 그래도 조코비치는 결승에 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여지없이 또다른 난항으로 예상되었던 키르기오스에게 완패 한 것이다.


출처: www.atpworldtour.com


  95년생 키르기오스는 테니스 최고의 악동으로 유명하다. 그의 기행과 비신사적인 일들을 열거하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193cm, 85kg의 훌륭한 피지컬을 지닌 그는 손목 힘만으로 160km/h대 포핸드를 날릴정도의 엄청난 잠재력과 함께 정말 거지같은 멘탈로 유명한 선수이다. 이미 2014 윔블던 4라운드에서 나달을 탈락시킨 바 있던 그는 2015 마드리드 마스터즈 32강에서는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를 세 세트 전부 타이브레이크를 가는 혈전 끝에 탈락시켰던 데다 이번에는 조코비치를 처음 만나 완승을 거두며, 그의 잠재력이 그의 정말 거지같은 멘탈만 아니라면 진작에 세계 랭킹 1위에 올랐을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 시켜줬다.
  경기는 역시 베이스라인 랠리 위주의 경기였고, 키르기오스의 장난질이 한번씩 등장하는 경기였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랠리를 주도하는 것으로 유명한 조코비치가 주도권을 반쯤 내줬다는 것이고, 이것은 조코비치의 포핸드가 고장나면서 나온 양상이라는 것이다. 과거에 종종 지적되었던 조코비치의 포핸드가 이번 경기에는 눈에 띌만큼 약해졌다. 찬스볼 상황에서도 포핸드는 짧거나, 가운데로 몰렸고, 포핸드 에러 또한 눈에 띄게 많았다. 조코비치의 전성기가 확실히 끝난 건가 싶을 만큼 전혀 강력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반면에, 키르기오스는 확실히 참 재수는 없지만 피지컬과 운동능력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구나 싶었던 경기다.




2. 

 2번시드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은 일본의 유망주 요시히토 니시오카Yoshihito Nishioka를 7:6(2), 6:3으로 승리하고 4강에 올랐다. 왼손잡이에 신장 170cm의 단신인 이 일본 선수는 처음 상대한 나달을 상대로 경기 초반 상당히 선전했다. 나달의 깊은 포핸드가 니시오카의 왼손 포핸드로 향했고, 그는 상당히 빠른 타이밍에 잘받아쳤다. 심지어 경기초반 나달로부터 브레이크를 뺐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 까지였다. 


출처: https://twitter.com/hashtag/nadal


  1세트 중반부터 이 일본선수는 상당히 힘들어보이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브레이크를 다시 내줬다. 나달의 스트록에 탑스핀이 제대로 걸리기 시작하면서, 아직은 그런 몬스터 탑스핀에 익숙치 않은 듯, 신장이 작은 니시오카는 베이스라인에서 멀찍이 뒤로 물러서서 방어하는 것을 선택했다. 탑스핀 공격을 좌우로 맘편히 때려대는 나달을 상대로 니시오카는 뛰어다니기 바빴고, 받아쳐내도 확실한 찬스볼이 되기 일 수였다. 그렇게 2세트에서는 니시오카가 브레이크를 두 번이나 내주면서 경기는 끝났다. 
  이 경기를 보면서 나는 평소에 느꼈던 두 가지를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하나는 엄청난 스핀이 걸려 각이 크고 높이 튀어오르는 탑스핀 볼은 정말 받아치기 까다롭다는 것, 다른 하나는 나보다 기량이 뛰어난 상대와 칠 때, 랠리만 잠깐 해도 무지 힘들다는 것이다. 그 일본 선수도 이 두 가지를 경기 내내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