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TV를 보던 중이었다. 마침 TV에선 민주당 경선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아버지는 안희정 지사가 요즘 좋게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그의 통합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가 크게 와닿는다고 하셨다. 보수세력과는 담을 쌓은 걸 넘어 혐오하시는 분이셨기에 조금 의외였다. 비슷한 연배의 한 어르신과 자리를 함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분 또한 안희정 지사를 지지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안희정 지사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보다 건설적인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도 하셨다. 문재인 전 대표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처럼 격한 갈등으로 시끄러워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나는 안희정 지사가 싫다. 뭐 예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는 노무현의 최측근 중 한 명이고, 노무현을 위해 감옥까지 갔다온 사람이다. 헌신적이고 올곧은 그의 성품은 특히나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안희정 지사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딴지일보와의 인터뷰도 여러 번 읽었고, 충남지사에 출마했을 때에는 내심 응원하기도 했다. 뭐 딱히 그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기 보다는 그냥 "노무현의 사람" 중 한 명이니까 그랬다. 그러나 유력 대선 후보로서 매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그가 나는 싫다.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문재인이나 안희정이나 아무나 돼도 상관없다. 어차피 박근혜는 끝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안희정 지사를 싫어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래서인지 어르신들의 안희정 지사에 대한 호의적인 평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불편할 뻔 했다.
나는 안희정 지사가 위선적이라고 생각한다. 통합과 포용이라는 그의 철학, 21세기의 철학이자 새로운 정치라는 그의 지향을 나는 깊게 이해하고 깊히 지지한다. 하지만 그건 철학일 뿐이다. 그런 류의 수사를, 가식을 대놓고 드러내는 형태가 아닌, 마치 진심인 것처럼 드러내는 사람이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나는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안희정 지사는 대화와 포용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보기에 사실 그는 애초에 상대의 요구를 들어줄 의사가 없을 거라고 본다. 마치 토론과 설득을 끊임없이 이야기했지만, 사실 상대의 요구를 받아줄 생각이 없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말이다.
그가 충남 도정을 얼마나 잘 이끌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들 그렇다길래 나도 그런가보다 했을 뿐이다. 그가 충남에서 어떻게 활약했는지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몇몇 비디오들을 통해 파편적으로 접한게 전부다. 그 영상들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그의 모습을 봤다기 보다는 그냥 자신을 억누르며 수련하는 수도승의 모습을 봤다. 자신에게 큰 소리를 치는 어르신들을 껴안고, 철저희 여권지향적인 시골 어르신들 속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그가 나에게는 포용과 관용의 성정으로 자연스럽게 대화와 통합을 이끌어낸다기 보다는 그냥 대단할 만큼 자기 자신을 억누르며, 철저히 이성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가 칸트가 말했던 실천이성을 그 누구보다 잘 따르는 인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의 작위적인 듯 보이는 행태가 조금은 불편했다. 그가 정말 어느 날 깨달음을 얻어 혁명투사였던 과거를 깔끔하게 잊었을까. 내가 보기에 그는 그렇게 만든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감동하며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과하게 말하면 안 지사 스스로가 예수라도 된 마냥 구는 것 같아 배알이 꼴렸다는 말이다.
선의 논란도 비슷하다. 나는 그가 강연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전부 깊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나 또한 그가 말하는 규범이 인간이라면 반드시 추구해야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MB와 박근혜에 대한 그의 선의 이야기가 한낱 하찮은 농담에 불과하다는 것도 잘 안다. 그 농담을 환기시켜 진정으로 그가 하고자 했던 메세지가 무엇인지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가 "반어법"이라는 멍청한 변명을 내놓았을 때, 나는 내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새삼 선명히 새길 수 있었다.
나는 안희정 지사가 싫다. 나는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강한 강박을 갖고있다. 나는 내가 보는 안희정 지사의 모습처럼 실천이성에 철저히 순응하는 모습을 가지려고 애를 쓴다. 거기에서 나온 질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서 자연스럽지 않아 보이거나, 특히 위선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싫다. 내 스스로가 그렇기 때문이다. 철학은 철학인 거고, 현실은 현실이다. 대화니 통합이니 하는 건 어차피 규범적인 것일 뿐이다. 어차피 행위자로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의지이고, 자기 실현이며, 자기 이익이다. 그런면에서 내게 그는 철저히 가식적으로 보인다. 토론을 봐도 그렇다. 대놓고 짜증내고 있는 이재명 시장이 차라리 인간적으로 보인다. 특히나 안 지사가 친절한 듯 동지를 외치는 모습은 볼 때는 가장 역겨웠다.
그래서 나는 안 지사가 대연정을 이야기하는 건 철학의 발을 빌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지지세를 확장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전술적 차원에서는 대단히 훌륭한 전술일지도 모른다. 반기문 씨 사퇴 이후 일거에 이 시점까지 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향후 실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그가 대연정을 한다면 어떨까. 참여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철저히 대화를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입장을 상대에게 공익, 민주주의, 새정치 따위의 핑계로 강요할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이야 자신이 불리하니 보수진영에 손을 뻗지만, 나중에도 그럴까. 오히려 온갖 갈등으로 점철될 지도 모른다.
그가 실제로 자유당과 같은 친박세력들을 포용한다는 취지로 대연정을 꾸려 이런저런 정치적, 정책적 양보를 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하는 이상과도 맞지 않을 테니 본래 진영의 지지층을 잃게 될 것이고, 그의 통섭의 정치라는 것 또한 냉혹한 정치 현실속에서 질 낮은 타협의 정치에 그쳐버릴 공산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안 지사가 본래 그 자신이 발을 딛고 서있던 이념에서 벗어난 인간이 되어버린 다는 점이다. 친일파-군부독재-야합세력-토목-광신적 박근혜에 대한 온정적 향수로 이어지는 자유당의 존재 기반을 학생운동권 중에서도 전설이자,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꾼인 안 지사가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건, 동시에 안 지사의 존재 이유마저 소거시키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대연정이니, 통섭의 정치니 하는 것이 위선적으로 보인다.
수련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안희정 지사가 짜장면을 먹다 펑펑운 건, 그가 대단히 철학적이고, 논리적이며, 분명한 대의명분이 있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아서가 아니다. 단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좋아해서 그랬다고 스스로가 밝히지 않았는가. 그런 그가 새정치라며 돼도 않은 통합의 철학을 나불거리고 있다. 엊그제는 무슨 문재인씨가 전두환한테 표창장받았다고 난리치더니, 느닷없이 오늘은 또 네거티브 안한다고 선언했다. 뭔 짓거리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가 박근혜의 진심과 선의를 이해해야한다고 말한 것이 철학적 규범을 제시한 것일 뿐이지, 실제로는 그 또한 박근혜 씨와 그 일당들을 경멸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충남의 여러 보수적인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또한 역시 노인들은 말이 안통한다거나, 무식하고 멍청하니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그가 싫다. 마치 철학적 규범을 자신애 덮어써 본성을 가리며 고매한 척하는 저 위선이 정말 싫다. 나는 그래서 안희정 지사가 싫다.
말이 좋다 대연정, 대통합. 갈등이라면 이를 가는 한국사회에 참으로 어울리는 말이다. 박근혜의 "100%"에 비견할 만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구라를 잘 보태면 파시즘에 이어붙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리 통합을 하지못해 안달인가. 부모자식 간 대화도 똑바로 못해서 피하는 것으로 평화의 대통합을 달성하는 동네라서 그런지 그리도 대통합이 중요한가 보다. 그래서 나는 대연정이니 통합이니, 통섭의 21세기 철학이니, 동지니 어쩌니 하는 안희정 지사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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