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2일 일요일

뭐 저런게 다있나




1.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3월 1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 당시, 머리에 헤어롤을 꽂은 상태로 아침 출근길에 나서 화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측은 바쁜 와중에 실수로 그러신 것 같다며 애써 이정미 재판관을 감쌌지만, 그건 별로 의미없는 일이 되었다. 헌재가 우려하는 대로 그 장면이 희화화되거나, 헌법재판소의 권위가 손상을 입거나, 재판관 개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 따위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역사적인 선고를 앞두고, 머리에 꽂은 헤어롤을 잊어버릴 정도의 재판관의 노고가 드러나는 것 같아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결정적으로는 세월호가 침몰하여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헝클어진 머리를 연출한다며 미용사들을 불러 두 시간 동안 머리손질을 받았다는 박근혜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장면이었다. 깊은 감동과 존경심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2.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 소추가 인용되어 급 민간인이 된 박근혜가 3월 12일에 청와대에서 퇴거했다. 박근혜는 탄핵 판결이 나온 후 즉시 청와대 관저에서 나와야 함에도 사저에 보일러 공사가 안되었다는 이유로 이틀이나 더 관저에 머물렀다. 이 하찮은 민간인 박씨는 12일 오후 내내 나간다, 나간다, 나간다, 속보만 잔뜩 내더니, 해가 다지고 청와대를 나섰다. 
  그리고 강남구 삼성동의 사저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린 박 씨는 무려 웃음을 지었다. 웃었다. 박사모를 향해 손을 흔들며 웃었다. 웃었다. 정말 레알 웃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무슨 서태웅이라도 보는 줄 알았다.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첫 파면된 대통령 주제에, 심지어 혁명도 아니고, 정권 전복도 아니고 쿠데타를 당한 대통령도 아니고, 무려 헌법과 법률에 써진 절차대로 파면된 대통령 나부랭이 주제에, 무려 사저에 내려 웃었다. 충격적이었다. 
  박 씨가 관저에서 퇴거당하면서, 그래도 동정표가 여론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예상들이 있었다. 하지만 박 씨는 사저 앞에서 쪼개는 모습을 보인데다, 헌재 판결에 대한 입장표명을 본인이 밝히는 것도 거부했다. 게다가 그녀의 손발 중 하나인 자유당 민경욱 의원이 밝힌 박 씨의 메시지는 사실 상 판결에 불복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진실이 밝혀질 거란다. 이 하찮은 민간인 박 씨는 자신이 동정받을 여지마저 가볍게 우주로 날려버렸다. 집 앞에 나와 있는 박사모를 보고 역시 자신의 지지층은 견고하다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뉴스특보를 보는 내내 어이없는 웃음이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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