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째 신문사 사설들은 사드THAAD 보복 때문에 난리다. 롯데가 성주 골프장 부지를 제공하면서, 중국은 롯데에 대한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중국의 관영지인 인민일보에 비하면, 조금은 더 나아간 반응을 내놓곤 하는 환구시보는 최근 대놓고 사설 등을 통해 한국 정부와 롯데를 강하게 지탄했다. 중국 공산당의 지시를 어기기 어려운 기업들이 한한령에 따른 방침들을 내놓는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한국의 사드 배치에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까지 커지게 된다면 이는 단순한 양국간의 외교적 문제를 넘어 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 신문들은 며칠 째 사설과 오피니언 란에서 중국에 대해 온갖 비난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욕만하다 지쳤는지, 3월 4일자에는 지혜와 인내로 대응하자(한국일보)라거나, 북한 송유관을 끊으면 사드 문제가 해결된다며 중국에 해결책을 친절히 가르쳐준다거나(조선일보), 똘똘 뭉치자거나(문화일보), 당당하게 맞서자거나(연합뉴스) 등등 이제는 자위의 단계에 돌입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미 작년 가을, 그토록 미뤄 미뤄왔던 사드 도입이 박근혜 정부에 의해 결정된 이래로 "한한령" 혹은 "금한령"이라는 단어는 이미 낯선 단어가 아닌 것이 되었고, 중국 관광객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으며 동대문 의류 상가는 느슨하게 망해가고 있다는 보도를 백 번은 본 것 같은데, 여전히 규탄만 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첫 경선 토론에는 아예 사드 배치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는 시간이 정해져있었다. 바른당의 유승민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가 사드 배치 결정을 재고해봐야 된다고 말했다고 씹어대기 바쁘다. 이제 사드 배치 지지는 안보의식이 있는 거고, 사드 배치 재고는 안보의식이 없는 걸로 명쾌하게 나뉘었다. 우습다 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2.
한 때 친했던 형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때 였다. 일을 하면서도 대학원에서 국제안보까지 전공하며, 안보를 중시하는 확고한 우파라고 스스로를 지칭하셨던 그 분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치, 역사적 위치가 대단히 복잡한 상황이며, 열강들 사이의 소국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대국의 브레인들의 뒤통수를 때릴만큼의 치열하고 창의적인 묘수로 그들을 따돌리는 수 밖에 없다 없다고 열변하셨었다. 개인적으로 가치관은 달랐지만, 어린 마음에 그 분이 대단히 존경스러워 보였다.
국제정치의 대가인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의 신현실주의neorealism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국제관계가 철저히 자국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철저히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대략 상식만 잘 더듬어 봐도 알기 쉽다. 고려 말 이성계가 괜히 사불가론의 첫번째로 以小逆大, 一不可, 즉, 소국이 대국을 거스를 수 없다는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다. 당연히 외교관계는 강국의 이익에 따라 흘러가기 마련이다.
3.
뭐가 그리 우스웠을까. 한 세 가지로 꼽아봤다. 먼저 한국정부의 멍청한 행태이다. 박근혜 정부는 본인의 스캔들로 곧 망해가는 와중에도 기어이 사드 배치를 처리했다. 작년 2월 만 해도 복잡한 논의와 대립으로 계속 미뤄질 것으로 보였던 사드 배치가 느닷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크게 경계 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중국은 미국도 미국이지만, 어쨌든 배치는 한국에 하니, 한국에 당연히 불같이 화낼 것이고, 덤탱이는 한국이 다 쓸 것이다. 미국은 당연히 중국과의 직접 대립을 피할 것이고,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게다가 중국은 일당독재국가이다. 그놈의 경제를 한없이 중얼거리더니, 결국은 경제를 희생해가며 애국심 팔이하는 저들이 참으로 한심해 보인다.
두번째로는 사드 배치가 안보의 상징이 되는 이 현실이 우숩다. 사드는 고고도 미사일에 대비한 것이다. 그냥 그것만 감안해도 미국이 중국과 북한의 ICBM, SLBM 등의 대륙 간 탄도미사일 등 장거리 미사일로 부터 본토 및 해외 주둔 기지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차피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는 차고 넘친다. 남한의 수도가 국경에서 고작 200km도 안되는 곳에 있는데, 뭐 하러 그런 고고도 무기들을 쓰겠는가. 사드가 핵무기를 요격한다고 해도 뭐 미국이나 좋을 일이지 엄청나게 가까운 남한에는 요격이 되도 문제다. 심지어 더 웃기는 것은, 중국이 지금 이 난리를 치는 직접적인 이유가 사드의 레이더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한국에 배치되는 사드가 대 중국 요격이 가능할 만한 사정거리도 안되지만, 레이더는 중국 본토까지 꿰뚫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이 무역재재에 나선 주 이유이다. 그런데 지금 사드 이슈는 그냥 안보냐 아니냐로 나뉘어있다. 그 안보가 미중대립을 의미하는 것이면 모르겠는데, 딱히 하등 상관도 없는 북한의 공격에 대한 남한의 방어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면 그냥 좌익빨갱이가 되고, 찬성하면 애국과 안보를 생각하는 것이 된다. 웃기는 짓거리다.
마지막으로 민족정론지들의 사설들이다. 무슨 애국심이 그리도 도졌는지, 중국을 격하게 씹느라 바쁘다. 사드 배치 논의 때는 북한의 핵위협이라는 되도않은 안보이유를 들어 격하게 찬성을 밀더니, 당연히 이어질 중국의 태도를 격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냥 Pathetic하고 멍청한 비난인 것 같다. 국제사회는 무정부사회다. 자국의 이익뿐이고, 힘 뿐이다. 이성계가 바보라서 요동정벌을 안했는가. 그 놈의 자유경제, 시장경쟁을 지껄이던 정론지들이 왜 그리 중국에 앵알거리는 지 모르겠다. 거대한 중국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쪼그만 소국인 한국을 짓누르는 일 따위는 매우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그 대국이 우리에게 사드 배치하면 긴장해야될 거 라고 친절하게 미리 경고까지 해주지 않았는가. 이제와서 우리가 신나게 힐난한다고 중국이 귓등으로라도 들을까. 만약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우리 또한 당연히 중국처럼, 혹은 중국보다 더 강경한 대처를 내놓지는 않았을까. 사드배치를 그리도 멍청하게 급하게 결정한 정부관료와 외교관료 등을 혹독하게 비판하지는 못할 망정, 중국만 공허하게 씹다가 이제는 정신승리에 단계에 까지 접어들어있는 정론지들이 실로 우습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왜 저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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