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4일 일요일

특수화의 끝은 느슨한 죽음 뿐


토쿠사

: 소좌,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왜 나같은 남자를 본청에서 빼온거죠?


쿠사나기 소좌

: 네가 그런 남자이기 때문이야. 부정규 활동 경험이 없는 형사 출신에 더구나 기혼. 전뇌화하기는 했어도 뇌는 잔뜩 남아 있고 거의 생 몸. 전투단위로서 아무리 우수해도 같은 규격품으로 구성된 시스템은 어딘가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게 되지. 조직도 사람도 특수화의 끝에 있는 건 느슨한 죽음 뿐 그것 뿐이야. 



『The Ghost in the Shell』 중에서



2013년 11월 20일 수요일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의 잠언인<너 자신을 알라>는 사실 <너 자신이 병신임을 알라>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인 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진정한 ‘나’를 찾는 게 어려운 거지. 찾는 거는 ‘나’인데 자꾸 병신만 보이니까 내가 아닌 거 같거든.”


더 딴지 - 읽은 척 매뉴얼 <데미안>



You don't see what I mean at all.


  "You ought to go to a boys' school sometime. Try it sometime," I said. " It's full of phonies, and all you do is study so that you can learn enough to be smart enough to be able to buy a goddam Cadillac some day, and you have to keep making believe you give a damn if the football team loses, and all you do is talk about girls and liquor and sex all day, and everybody sticks together in these dirty little goddam cliques. The guys that are on the basketball team stick together, the Catholics stick together, the goddam intellectuals stick together, the guys that play bridge stick together. Even the guys that belong to the goddam Book-of-the-Month Club stick together. If you try to have a little intelligent-"...


... I said no, there wouldn't be marvelous places to go to after I went to college and all. Open your ears. It'd be entirely different. We'd have to go downstairs in elevators with suitcases and stuff. We'd have to phone up every-body and tell'em good-by and send'em postcards from hotels and all. And I'd be working in some office, making a lot of dough, and riding to work in cabs and Madison Avenue buses, and reading news papers, and playing bridge all the time, and going to the movies and seeing a lot of stupid shorts and coming attractions and newsreels. Newsreels. Christ almighty. There's always a dumb horse race, and some dame breaking a bottle over a ship, and some chimpanzee riding a goddam bicycle with pants on. It wouldn't be the same at all. You don't see what I mean at all."


J. D. Salinger,『The Catcher in the Rye』



2013년 11월 19일 화요일

아, 가만, 그런데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맥주 한 잔 하자고 친구를 불러냈다. 진토닉이 마시고 싶다며 칵테일 바에서 한 잔 한 뒤, 바로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특별히 근황을 물을 것도 없었다. 항상 그러던 대로 이런 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로 채웠다. 

  이야기 중에 나는 친구에게 내가 얼마나 술을 먹지 않았는지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술을 멀리하는 얼마나 건강한 생활을 누렸는지를 강조했다. 아, 가만,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번 달 초에 글 쓰는 친구를 만나는 김에 맥주를 마셨다. 
  이야기 중에 나는 친구에게 내가 최근 얼마나 꾸준히 구보를 뛰었는지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아침 공기를 마시는 상쾌함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강조했다. 아, 가만,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구보를 뛰기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된 그저께 부터 추워졌다고 뛰지 않았다. 
  이야기 중에 나는 친구에게 최근 내가 다시 얼마나 웨이트를 꾸준히 하는지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건강한 신체 단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강조했다. 아, 가만,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시작한 지 2주나 됐는지 모르겠다.
  이야기 중에 나는 친구에게 내가 얼마나 독서와 공부에 몰입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보다 정교한 지식과 지혜의 축적이 얼마나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인지 강조했다. 아, 가만, 그런데 생각해보니, 읽는 척을 해온지 한 달도 안된 것 같다. 

  무언가 열심히해왔다고 대단히 착각하게 되는 순간은 그리 오래 걸려 찾아오는 것 같지 않다. 그 만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그러한 꾸준함을 끊임없이 이어온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어떤 여자를 만나는 것이 좋을까?


  친한 형님과 부대찌개를 저녁으로 먹은 날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벤치에 앉은 담배 연기 속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르던 중, "어떤 여자를 만나는 것이 좋을까?"라는 주제가 나왔다. 나는 농담과 과장을 섞어가며 몇 가지 조건을 만들어 형님께 보여드렸다. 


  1. 유흥을 즐기지 않는다.
     i) 술, 담배를 멀리한다. 특히 술을 즐기지 않는다. 
     ii) 복잡한 유흥가 혹은 시가지를 꺼려한다. 

  2. Facebook을 사용하지 않는다. 
     i) 계정만 있을 뿐, 특별한 활동이 없는 것은 예외로 한다.
     ii) 프로필 사진은 게재되지 않은 것을 최고로 치며, 풍경, 정물 등을 차선으로 친다.

  3.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다. 
     i) 사용한다 하더라도 프로필 사진, 상태메시지, 카카오스토리가 없다. 
     ii) 개인적인 용도의 채팅 갯수가 100개를 넘지 않는다. 
     iii) 피처폰을 사용하는 사람은 최상으로 본다. 

  4. 셀카를 찍지 않는다. 
     i) 찍더라도 개인적으로 소장 할 뿐 여기저기 게재하지 않는다. 
     ii) 공공장소에서 시도하지 않는다. 

  5. 각종 비속어 사용이 없다. 

  6. 자신만의 확고한 커리어와 목표가 있다.

  7. 다른 모든 모든 조건을 합한 것 보다 6번 조건이 우월하다.


  완전히 웃기는 기준이다. 형님은 이 조건을 듣고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셨다. 형님은 내게 그거 참 말이 된다고 하시면서도 동시에 그런 게 어딧냐고 소리치셨다. 자기는 술, 담배도 즐기고, 카카오톡도 사용하는데 그럼 안 되는 거냐고 형님은 내게 따졌다. 그래서 나는 천연덕스럽게 오리발을 내밀었다. 

  "형님, 세상에 절대적으로 맞는 기준 같은 건 없어요.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기준에는 예외가 존재하는 법이죠."

  그렇게 담배연기 속에서 낄낄거리며 형님은 내게 "그런 여자"를 만날 수나 있겠냐고 허심탄회하게 내리쉬었다. 나는 태연자약하게 마지막 한 타를 날렸다.

 "형님. 그런 여자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근데 절대 만날 수 없을 거에요. 왜냐면, 그런 여자들은 전부 안 이쁘거든요."




  그 말을 담배연기 속에 날리고는 형님과 나는 다시 한 번 마주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그렇게 낄낄거리는 담배연기와 함께 하루를 저물었다. 



2013년 11월 14일 목요일

쥐가 사람을 잡는가. 사람이 쥐를 잡는가.


  쥐 덫 박스에 있는 사용방법을 읽었다. "본 트랩은 쥐의 좁은 시야와, 항상 벽에 접근하여 달리려는 습성을 잘 이용하면 유리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좁은 시야와 벽에만 붙어서 달리는 건 비단 쥐 뿐만이 다닐텐데 말이다. 쥐 덫에 걸리는 쥐와 쥐 덫을 놓는 나는 어디서 갈라지는 것일까 궁금했다. 



2013년 11월 9일 토요일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다.


  훈련소 시절이었다. 훈련소에서는 훈련병들에 대한 통제가 굉장히 엄격하다. 모든 시간을 통제했고, 모든 행동을 통제했다. 그렇지 않아도 낯선 환경에서 긴장하고 있는 훈련병들은 그 긴장의 강도를 더욱 높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굉장히 재미있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그 중의 하나는 바로 "화장실 문제"였다. 
  수 백명은 족히 될 만한 많은 숫자의 훈련병들을 하나처럼 통제하려다보니 조교들은 전부 호랑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군대식 예절을 처음으로 배우던 시절이다 보니 모든 것을 FM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든 훈련병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대로 화장실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때때로 조교들은 훈련병들이 저지른 잘못의 대가로 화장실 사용을 통제하기도 했다. 그건 정말 고문이었다.
  막사에서 대기하는 때가 가장 문제였다. 훈련병들은 아직 군대의 체계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항상 긴장 상태에서 대기한다. 바로 이런 때에 화장실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었다. 이런 때에 화장실에 한 번 가려면, 텅 빈 복도를 혼자서 지나, 공포 그 자체인 조교에게,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겠냐는 것을 골자로 한 족히 일곱 문장은 될 만한 대본을 통째로 외워 가야했다. 대본에서 한 글자라도 틀리면, 완벽할 때까지 조교한테 욕을 얻어 들으며 반복 재생을 해야했고, 그 와중에 모든 훈련병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시선도 견뎌야 했다. 물론 화장실에 있는 동안 "집합"이 걸리는 리스크 또한 순전히 본인 몫이다. 
  그래서 항상 훈련병들은 화장실을 가는 일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했다. 작은 일이면 몰라도, 특히나 큰 일이면 정말 제대로 마음의 준비를 해야했다. 손에 쥔 화장지는 의도된 용도(?)보다, 이마의 땀을 닦는데 더 요기났다. 조소가 섞인 조언, 진심이 담긴 조언, 아무 생각 없는 조언 등 주변 훈련병들의 수 많은 조언들이 쓰나미처럼 귓속으로 몰아친다. 머릿 속은 더욱 패닉이 되어간다. 일 중에 "집합"이 걸려서 당황할 모습, "대본"이 틀려서 흘려올 식은땀들, 엄청난 조소와 폭언을 들으며 풀밭으로 뛰어갈 일들, 훈련 도중에 옷에 지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내가 인생에서 손 꼽을 만한 멋진 문장을 들었을 때도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같은 내무실의 내 건너편에 있던 훈련병이 바로 위에 서술된 것과 같은 상황에 있었다. 우리는 전투복과 전투화를 갖춰신고 내무실 침상에 앉아 대기 중이었다. 녀석의 손에 들린 화장지가 서서히 적셔져 가는 것이 보였다. 다른 훈련병들은 녀석에게 온갖 정보와 분석을 바탕으로 쓸데없는 조언들을 수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그 때였다. 바로 내 뒷 번호를 가진, 내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녀석이 한 마디 외쳤다. "야,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제일 빠른 때여~". 그 말을 듣고는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서로 그 말을 따라하기 바빴다. 결국 화장지를 들고 있던 녀석은 재빨리 뛰어나갔고, 집합이 되기 전에 무사히 귀환했다. 녀석은 시원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평소에 운동밖에 모르던, 뭔가 솔직한 정겨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던 녀석의 그 말은 내게 단지 화장실에 가는 것에 관한 말로만 들리지 않았다. 삶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두려움에 맞부딪히게 된다. "늦었다는 생각"이 바로 그러한 두려움의 대표적인 표상일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녀석의 말처럼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이 때"가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 중 항상 가장 빠른 시기다. 아무 것도 늦은 것은 없다. 시작은 언제나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적극성이나 실천성이 유난히도 모자란 나는 요즘도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항상 녀석의 말을 떠올린다. 바로 "지금"이 항상 가장 빠른 시기일 것이라고 말이다.



2013년 11월 8일 금요일

그는 가고 있는가?


2

  참을성 강한 나의 벗들이여, 저 지하에서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를 이 뒤늦은 서문에서 그대들에게 말하겠다. 이 서문 대신에 자칫하면 추도문, 조사가 실릴 뻔 했다. 그러나 나는 돌아왔다. 나는 간신히 빠져 나왔다. 나와 같은 모험을 그대들에게 전한다고는 생각지 말아 달라! 또한 내가 맛본 것과 동일한 고독을 맛보라고 요구한다고도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자신만의 길을 걷는 자는 누구와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의 길'을 가는 데 반드시 따르게 마련인 결과이다. 거기에 그를 도우러 오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닥쳐올 위험, 우연, 악의, 악천후, 그 모든 것을 그는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그는 정말 자기의 길을 혼자서 간다. 그래서 그가 이 '혼자서'라는 것에 대하여 괴로워하고 때때로 화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면 친구들조차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 추측할 수 없고 "뭐라고? 어쨌든 그는 가고 있는가? 그에게 아직 길이 있는가?" 이렇게 때때로 서로 묻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고독해진다. 
  그즈음 나는 아무도 해낼 수 없는 중요한 일을 시도했다. 나는 깊은 곳으로 내려갔고, 바닥에다 구멍을 뚫었다. 우리 철학자들이 수천 년동안 가장 확실한 지반이라고 생각한 낡은 '신념'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파기 시작했다. 철학자들은 어떤 건축물이라도 지금까지 몇 번이고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다 건축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나는 도덕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파엎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대들은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가?


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서문 중에서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곽복록 역, 동서문화사, p.493~494

2013년 11월 6일 수요일

"우리착하고이쁜아들들"



  내게는 아직은 어린 사촌 동생들이 있다. 형제인 녀석들은, 형은 이제 갓 중학생이 되었고, 동생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형은 숙모님을 빼닮았고, 동생은 숙부님을 빼닮았다. 나와는 나이 차가 있기도 하고, 출생부터 지금의 모습까지 내가 빼놓지 않고 보아온 녀석들이어서 그런지, 왠지 모를 그런 정감을 주는 녀석들이다. 녀석들은 아이들을 잘 대할지 모르는 내게도 스스럼이 없다. 그래서 숙부님은 내게 원래 애들이 "성격 더러운 형"을 좋아한다고 놀리곤 했다.

  지난 추석에 잠깐 집에 내려가니 녀석들이 와있었다. 아침 일찍 도착해서 인지 녀석들은 자고 있었다. 숙모님이 내게 인사를 시킨다며 녀석들을 깨웠다. 작은 녀석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형 왔어?" 라는 인사를 건넸고, 큰 녀석은 여전히 자느라 정신없었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작은 녀석은 아침잠이 깨버렸는지 일어난 지 얼마나 안되어 온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녀석은 원래는 큰 녀석의 것이라는 갤럭시 플레이어를 인형처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내가 신문을 보고 있자, 이내 녀석은 내 곁에 와서 "형 뭐해?"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쏟아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갤럭시 플레이어와 와이브로 에그를 함께 쓴다며 내게 자랑했다. 내가 감탄하는 시늉을 하며 이것 저것 더 묻자, 녀석은 더욱 신이 나서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들레었다. 내가 구경해봐도 되겠냐고 묻자, 녀석은 절대 안 된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내가 신문으로 눈을 돌리자 녀석은 내게 숙부님과 독도여행을 갔던 사진을 보여준다며 손수 내게 건네주고 시연해 주었다. 그리고는 카카오톡을 열어 자신들의 친구가 누구, 누가 있는지를 하나 하나 보여주며 설명해주었다. 녀석의 태연함과 천진함이 부러웠다. 
  큰 녀석이 잠에서 깼는지, 나와 작은 녀석이 있는 곳으로 눈을 비비며 왔다. 녀석은 깨서 일어나자마자 숙부님의 스마트폰을 큰 소리로 찾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숙부님의 스마트폰을 찾은 녀석은 우리 주변의 침대 머리맡에 속옷 만 입은 채로 앉아 스마트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OO는 형이 왔는데 인사도 안하냐?~" 라는 나의 물음에 녀석은 "형 왔어? 나 지금 이거 빨리해야 돼."라고 단답 만하고 말았다. 사춘기가 다가왔는지, 게임에 집중하는지, 녀석은 언제인가 부터 나의 호의를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녀석은 작은 녀석이 내게 해주는 설명에 조금이라도 누락된 부분이 있을까하면, 눈은 여전히 작은 화면에 담아두면서도 곧바로 큰소리로 설명해주곤 했다. 그리고 작은 녀석이 들고 있는 갤럭시 플레이어가 자신의 것이며, 자신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번 강조했다. 까칠하면서도 나의 곁을 결코 떠나지 않는 큰 녀석은 마치 사춘기 시절의 나를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는 동안, 숙부님과 숙모님은 돌아가면서 내가 있는 곳에 들르셨다. 숙부님은 독도 여행 사진을 같이 보며 독도 여행이 얼마나 멋진 것이었는지를 자찬하셨고,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우리 OO는 아직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라며 흐뭇해 하셨다. 내가 게임에 몰두하는 녀석을 보며 그냥 하나 사주는 게 어떻겠냐고 묻자, 숙부님은 '우리 OO는 사달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는다. 녀석에게 무언가 큰 선물을 하나 해주어야 겠다.' 라고 다시 한번 흐뭇해 하셨다. 큰 녀석은 숙부님의 말을 복명복창했다. 그리고는 여전히 속옷만 입고, 스마트폰 화면에 담긴 채, DSLR에 쓰이는 어떤 렌즈를 외쳤다.  그러는 동안에도 작은 녀석은 내게 와이브로 데이터의 양과 속도가 얼마나 되며, 이 걸로 어떤 게임이 가능한 지 내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숙모님이 왔을 때는 더욱 가관이었다. 숙모님은 끊임없이 내게 자신의 아들들이 (스마트폰을 쓰지 않아서) 얼마나 훌륭한지를 묘사했고, 자신의 아들들이 얼마나 훌륭한 외모와 체형을 지녔는지를 끊임없이 자과하셨다. 내가 녀석들이 소아 비만의 위험에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묻자, 그 칭찬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모델"을 시켜야겠다고 하셨다. 공부에 관한 이야기는  없는 걸 보니, 동생들이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숙모님은 "우리 이쁜 아들"이라는 말을 우리 집에 있는 내내 끊임없이 반복해서 쓰셨다. 심지어는 동생들에 대한 호칭도 그렇게 쓰셨다. 아들이 정말 너무 좋으신가보다고 생각했다. 

  가장 멋진 일은 내가 녀석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었을 때 일어났다. 작은 녀석에게 "학교는 재밌어? 요새 무슨 재미있는 일 해봤어?" 라고 묻자, 녀석은 쿨하게 "나는 스키타는 게 너무 좋아." 라는 말을 시작으로 지난 겨울에 스키타러 간 일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스키를 타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하루 종일 스키만 탔으면 한다며 내게 스키를 타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계속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은 꼭 스키 선수가 될 거라고 말했다. 선수가 되기가 어렵다면 스키 강사라도 꼭 할 것이라고 되뇌었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스키를 타는 흉내를 내며 내게 자신의 꿈을 호방하게 쏟아내는 녀석에게 나는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멋진 이야기였다. 녀석은 고작 초등학생이었다. 아니, 녀석이 고작 초등학생이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건 녀석의 너무나도 멋지고 개성 넘치는 꿈은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녀석이 부러웠는지, 나도 녀석에게  "OO야, 나중에 꼭 형을 찾아와 임마. 내가 스키 장비를 사다주던, 스키 시즌권을 사다주던 할테니까 임마. 형이 널 위해서 뭐라도 해줄께. 꼭 찾아와라. 두 번 찾아와." 라고 호기를 내어놓았다. 나는 녀석에게 정말로 감동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멋진 일은 바로 다음에 이어졌다. 
  "스키강사는 별로 돈 못벌어." 게임을 하던 큰 녀석이 너무나도 멋지게 작은 녀석의 꿈을 짓밟았다. 작은 녀석은 별 개의치 않았지만, 나는 불편했다. 불편함을 감추고 나는 큰 녀석에게 물었다. "그럼 넌 뭐가 되고 싶어?", "연금 나오는 거.", "왜 그냥 하고 싶은 거 없어?", "어, 몰라 그냥 돈 버는 거.". 숙모님이 들어오신 건 바로 그 때였다. 내가 숙모님께 따지듯이 "숙모, OO는 스키강사가 되고싶데요!" 라고 말하자, 작은 녀석이 혼자 속삭였다. "아, 이런 거 엄마한테 말하면 안되는데...". 내가 다시 "OO(큰 녀석)은 뭐가 되고 싶다는 지 잘 모르겠다는데요?" 라고 말하자, 숙모는 정말, 너무 나도, 진짜로, 정말, 다시 한번 진짜로 너무나도, 말도 안될 정도로 태연한 얼굴로 "아냐~ 우리 착한 아들들은 틀림없이 전문직이나 공무원 같이 월급 착실히 나오고 연금나오는 안정적인 일을 「시킬 거야」. 그렇지?~ 아들들아?~"... "우리 착한 아들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머리를 강하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참담했다. 이 세계는 이미 내가 사는 세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숙모님은 명문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합격했다는 나의 다른 사촌 동생에게 부탁하여 "우리 착한 아들들"을 데리고 명문대 투어를 했다고 자랑했다. "우리 착한 아들들"은 고작 이제 초등학생, 중학생에 불과하지만, 숙모님은 "우리 착한 아들들"도 반드시 그런 학교에 들어갈 것이라며 강조했다. 나는 허탈한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실존적으로 자조했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한 내면 탐구가 필요함을 느꼈다. 나는 작은 녀석이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숙모님과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갤럭시 플레이어만 쳐다보고 있다는 걸 위안 삼았다. 작은 녀석에게 몰래 이야기했다. "형 꼭 찾아와 임마. 알겠지?". 그리고 우리는 모두 식사를 하러 거실로 나갔다. 



  녀석들이 여섯살이나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나들이를 나갔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녀석들을 차 안에 두고 문을 닫고 창문으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놀린 적이 있다. 녀석들은 울어버렸고, 나는 당황해서 바로 차 문을 열고 미안하다며 녀석들을 얼렀다. 큰 녀석이 내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잘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분명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만약 나한테 칼이 있다면, 이렇게 형의 가슴팍을 퍽퍽 쑤시고 이렇게 돌려서 파내버릴 거야..". 엄청나게 섬뜩한 얘기였다. 나는 놀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고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 일이 있기 며칠 전에는 더욱 섬뜩한 일이 있었다. 나는 한가로이 웹서핑을 하고, 녀석들은 내 뒤의 침대에서 마주보고 앉아 무언가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큰 녀석이 작은 녀석에게 사람을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는 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심장 쪽을 칼로 찌르면 죽는다거나, 목을 조르면 죽는다거나 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하다가도 깜짝 놀래 뒤를 돌아보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물었고, 녀석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도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이야기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는다. 특히나 숙모님은 "우리 착한 아들들이 절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 너가 잘 못 들었겠지."라고 단호하게 단정지으신다. 하기는 지금 생각해도 그런 섬뜩한 이야기를 나 스스로도 믿기 어렵기는 하다. 게다가 동생들이 너무나도 순수한 외모를 지녔기에 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개연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저 나 혼자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아무 저항없이 현실에 부지런히 적응해나간다는 비합리성이 개인들에게는 이성보다도 더 이성적으로 보인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중에서




2013년 11월 5일 화요일

말하고자 하는 것.


  군 복무 시절이었다. 오랜 후임병 시절을 보내고, 몇몇 분대후임병을 거느린 선임병이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취침시간에 막 접어들 때, 나는 권위의 맛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는지 자려는 후임병들을 붙잡고 말을 꺼냈다. '아무리 인격적으로 훌륭한 선임병이라고 해도 계급이라는 구조가 존재하는 한, 후임병에게는 틀림없이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가능한 한 불만이 생기는 대로 말해주면 좋겠다. 면전에서의 욕설 사용만 자제한다면 어떠한 이야기든지 들어줄 용의가 있다.'. 후임병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알겠다고 대답했고, 나는 만족스럽게 잠이 들었다. 내가 군 생활을 마칠 때까지, 적어도 우리 분대에서 내게 먼저 다가와 직접적으로 불만을 이야기 한 후임병은 아무도 없다. 

  어떤 공직자와 일을 할 때였다. 자신감이 넘치는 매력적인 목소리와 압도적인 외국어 실력으로 굉장한 위압감을 주변에 흩뿌리는 그런 분이었다. 그는 어린 내게 직접, 어떠한 사항이던 불만이 느껴지거나, 인정하기 어려운 내용에 대해서 언제든 지적하거나 비판해도 좋다고 말했다. 자신은 열린 마음가짐을 가졌으니, 건설적 비판은 언제나 환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런 이야기들을 다른 곳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과 수준 이하의 말도 안되는 비판은 삼가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그는 창쾌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내가 그 분과 더 이상 공간을 공유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나는 그 분께 어떠한 지적이나 비판을 전한 적이 없다.  



2013년 11월 3일 일요일

그 친구는 지금 월급쟁이가 되었다.


  "A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어느 사람들에게 사기를 쳤다. 그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물론 아무도 A가 사기를 쳤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렇다면 A는 사기를 친 것인가, 사기를 치지 않은 것인가?"


  기억도 희미한 어느 늦가을 저녁, 열람실 생활을 공유하던 친구와 저녁을 먹는 내내 물고 늘어졌던 이야기이다. 저녁을 먹고 나와서도 우리는 공부를 뒤로한 채 이야기를 나눴고, 집에 돌아가서도, 다음 날 아침까지도 계속 되었다. 나는 사기가 맞다고 주장했고, 친구는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야기의 요지는 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간단하다. 친구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사기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고, 그것이 사기라고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피해자가 그걸 사기로 받아들이지 않고(혹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기를 쳤다."라는 객관적 사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아무도 모르면 그건 사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이야기에서도 A의 사기는 사기를 친 것이 아니다.
  나는 반대의 입장에 섰다. 나의 입장은 더욱 간단했다. 이미 첫 번째 문장에서 "A는 .. 사기를 쳤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피해자가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면 사기를 친것이 아니다." 라는 정의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미 저 문장이 나타내고 있는 세계관-내가 존재하는 현실세계와는 별개인-에서는 첫 번째 문장에서 이미 객관적으로 규정된 조건이 등장하므로-즉, 이미 저 문장을 읽고 있는 다른 차원의 사람이 사기의 유무를 알고 있으므로"- 사기를 친 것이 맞다. 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친구와 나는 저 문장에 따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존재하면서 저 세계관에 대해 방관적으로 내다보며 객관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 제시된 조건절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는 것이다. 


  앞서 다뤘던 칼 포퍼의 책을 보는 동안 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위에 제시된 저 문장들은 그저 모순이다. 사기를 쳤다는 걸 모른다. 그런데 사기를 쳤다는 걸 안다. 이 두 개의 모순된 문장을 동일한 차원의 사실 관계 안에서 묶으려 했던 우리의 시도 자체가 어찌보면 무의미하기도 하고 우스운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A가 사기를 친 건지, 안 친 건지 모르겠다. 다만 그런 쓸데없는 논쟁을 하면서 헤메일 수 있었던 상상의 그 시절이 그립다. 함께 하던 그 친구는 지금 월급쟁이가 되어 있다. 



"This sentence is false."



수호자는 수호자인가?


  "자, 그러면 자네도 나와 의견이 같은지 어떤지를 보아주게."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목수가 구두를 만들고 제화공이 목수일을 할 경우, 나라에 무엇인가 큰 해를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ㅡ "큰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ㅡ "그러나 본래 노동자이거나 돈벌이계급에 속한 자가 전사계급으로 들어가려고 한다든가, 전사가 그러한 자격도 없으면서 수호자계급으로 들어간다든가 하면, 이런 종류의 변화와 음모는 나라의 멸망을 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ㅡ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ㅡ "그렇다면 국가에는 세 개의 계급이 있는데, 이들 계급 간의 상호변화나 음모는 국가에 대해 큰 죄악이며 또 지극히 사악한 짓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지? ㅡ "확실히 그렇습니다." ㅡ "그런데 자신의 국가에 대한 가장 사악한 행위는 부정의라고 자넨 주장할 것이 아닌가?" ㅡ "그렇습니다." ㅡ "그러면 그게 곧 부정의일세. 그리고 우리는 거꾸로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네. 국가의 모든 계급이, 즉 돈벌이계급과 보조자 계급과 수호자 계급이 자신의 일에 열중할 경우, 이것이 곧 정의일 것이다." 

  이제 이 논증을 살펴보면 (a) 엄격한 계급제도를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는 것은 분명히 국가의 멸망을 초래한다는 사회학적 가정, (b) 국가에 해가 되는 것은 부정의라는 첫 번째 논증의 끓임없는 반복과, (c) 그 반대가 정의라는 추론이 나타난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플라톤의 이상이 사회적 변화를 저지하는 것이고, 그는 사회적 변화를 초래하는 그 어떤 것도 '해롭다'고 설명하는 고로, 사회학적 가정 (a)를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변화는 엄격한 계급제도에 의해서만 저지될 수 있다는 것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더 나아가서 부정의의 반대가 정의라는 추론(c)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관심사는 (b)로, 플라톤의 논증을 일별해 보면, 그의 사상의 전 추세가 이것은 국가에 해로운가, 많이 해로운가, 아니면 거의 해롭지 않은가 하는 질문에 좌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국가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것은 도덕적으로 사악하고 부정의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이 국가의 이익이라는 단 한 가지 궁극적인 기준만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이든지 국가의 이익을 신장시키는 것은 선량하고 덕 있고 정의로우나 무엇이든 그것을 위협하는 것은 나쁘고 사악하고 불의이다. 국가의 이익에 봉사하는 행위는 도덕적이고, 그것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비도덕적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플라톤의 도덕법전은 엄격한 공리주의로, 집단주의자나 정치적 공리주의의 법전이다. 도덕성의 기준은 국가의 이익이다. 도덕은 다름 아닌 정치적 건강법이다.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I, 이한구 역 p177~178



  요약하자면, 플라톤은 계급이동은 국가 안정에 해를 끼치고, 국가 안정에 해를 끼치는 것이 부정의이므로, 계급이동을 막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칼 포퍼는 이러한 정의론이 "국가의 이익"에만 오로지 결정적인 전체주의적 입장이라고 비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은 전혀 동떨어진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이라는 캐릭터의 입을 빌려 시도한 위와 같은 논증은 순전히 사변적인 것에 불과한 논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본래", "그러한 자격도 없으면서" 이 두 가지 표현에 의해서 강조되고, 노동자, 상인, 수호자, 전사 등등의 계급으로 표현된 대상들. 이러한 사전적인 정의로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는 것이 과연 동어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 라던가 "글라우콘"이라던가, "칼 포퍼"라던가 하는 실제적인 조건이 아니라, 위와 같이 "수호자", "상인", "전사" 따위로 표현된 것들은 당연히 표현 그 자체에서 이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수호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수호자"를 떠올리지, "처칠"을 떠올리지 않는다. 플라톤에게서 내내 강조되는 "이데아"의 개념처럼 만큼이나 "수호자"라는 표현에는 이미 "수호"라는 기능을 위한 조건들이 모두 갖추어져있다. 따라서 "수호자"가 "상인"의 역할을 한다거나, "상인"이 "수호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가 논증할 필요도 없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된다. 여기에 "본래", "그러한 자격도 없으면서" 등의 표현이 덧붙여지면, 더 말할것도 없다. 따라서 플라톤의 논증은 그 자체만을 놓고는 반박할 수 없다. 동어반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계급이 각 계급의 일을 한다." 라는 지극히 사변적이고 동어반복적인 명제는 그것이 명확하게 "정의"를 가리키는 명제인지, 아닌 지-이것이 포퍼가 책에서 다뤘던 내용이다-는 차치하고서라도, 내용 자체는 결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명제가 된다. 다시 말하면, 플라톤의 논증이 정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서 일단은 무조건 "맞는" 얘기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치 종교와 같다. 나처럼 플라톤에 대해 알 수 없는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진리처럼 추앙할 것이고, 그게 아닌 사람들은 "그냥 당연한 말 아닌가." 라며 지나쳐버릴 것이다. 

 
  책 전반을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며, 위에서 발췌한 부분의 핵심 내용은 물론 플라톤의 논증에서 드러나는 국가 중심적 정의론, 조금 과장해서 전체주의적 경향에 대한 칼 포퍼의 비판이다. 잔뜩 인용해놓고 보니, 편린에 집중한 것 같아 멋적다. 어쨌든, 즐겁게 읽고 있다. 



2013년 11월 2일 토요일

자네는 뭐하는 친구인가?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쉬고 있었다. 바람도 쐴 겸, 글 쓴다는 친구가 있는 시골에 잠깐 내려갔다. 친구가 지내고 있는 곳은 녀석의 후배네 부모님 댁이었다. 나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지만,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셨다. 미리 전해 들었던 친구 녀석의 말 그대로였다. 도착하자마자 앉어 있을 겨를도 없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고추밭에 나섰다. 그렇게 며칠을 거기서 묵었다. 낮에는 일을 했고, 밤에는 친구 녀석이 쓰는 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 곳에서의 길지 않은 시간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 곳의 아무도 내가 무얼하는 사람인지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아버님, 어머님, 삼촌, 동네 할머님들, 옆집 아저씨, 건넛집 아저씨들.. 모두 내가 몇 살인지, 이름이 뭔지, 무슨 일을 하는 지, 얼마나 돈을 잘버는 지, 어디 학교를 나왔는지, 왜 여기에 왔는지, 고향이 어디인지,, 그런 것들 따위를 전혀 묻지 않으셨다. 그저 거기서 나는 "OO의 친구"이자 그저 "젊은 일꾼" 일 뿐이었다. 어머님과 산책을 하는 동안에도, 아버님과 술잔을 비울 때도, 삼촌과 담배연기를 나눌 때도, 그들에게 나는 정말로 그저 눈앞에 서있는 "나" 그대로 일뿐이었다. 
  그들 앞에서 내가 가진 허례와 허물들은 거짓말처럼 증발해버렸고, 그들 앞에서 나는 오로지 순수한 나 자신만 남았다. 얼마나 멋진 경험인가? 오랜 고난과 번뇌 속에서 그토록 찾고자 했던 바로 그 자유로움이 너무나도 쉽게 내게 찾아왔다. 그렇게 그런 젊은 "일꾼"의 일원으로서 나는 다른 "일꾼"들과 노동의 감각을 공유했고, 새참의 미각을 나눴다. 


  우리 아버님께 친구를 소개하면 아버님은 항상 물으신다. "그 친구는 뭐하냐 애냐?", " 그 애는 어디 학교 나왔다냐?". 친구의 세속적 지위나 상황에 따라 가려 사귀라는 그런 천박한 이야기를 하고자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것은 아니다.  아버님께서 묻는 그런 질문들은 그저 이 사회에 상존하는 가장 간단한 스테레오 타입을 통해 그 친구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슬프다.
  아버님에게 배운 건지 나 또한 새로운 친구에 대해 들을 때면, 습관적으로 "그 친구는 뭐하는 애냐?" 라고 묻곤 한다. 내가 물은 것이 분명 그 친구가 취미로 나무를 깎는 일을 한다던지,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애라던지, 따위는 아닐 것이다. 단지 녀석의 세속적 지위가 궁금했을 뿐인 거다. 물론 녀석도 나에 관해 똑같이 물을 것이다. 계속 시달려야 한다. 나이가 차면 찰수록 민감해진다. 항상 어떤 그럴듯한 타이틀을 계속 만들어둬야 한다. 그리고 수십번, 수백번 씩 되내이면서 살아야한다. 그들이 물을 때 마다, 결국 내가 내 자신에게 물을 때마다. 
  그래서 슬프다. 나의 꿈과 비전을 멋들어지게 늘어놓을 만큼 호기롭지도, 성숙하지도 못하다. 끝없이 반복되는 질문 속에 스스로는 계속 작아지고 지쳐간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모든 상대를 살피고 같이 끝어내리고자 한다. 나만 내려 갈 수 없다. 나도 상대들에게 묻는다. 이 모든 건 끝없이 재생산 된다. 슬픔은 계속해서 돌고 돈다. 나와 당신, 모두가 이 슬픈 대기를 만든다.
  도시에서의 느낌은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언제나 남이 무엇을 하는지 신경쓰며 살고, 언제나 남이 나를 어떻게 볼 지 두려워하며 산다. 그런 무거움과 지겨움은 차근차근 짓눌러온다. 벗어나는 건 간단하다. 하지만 동시에 전혀 간단치 않다. 자만감도 독이 되고 열등감도 독이 된다. 칭찬도 공격이고, 비난도 공격이다. 서로가 서로를 상처입히면서 살아간다. 


  시골에서의 경험은 그런 속박에서 벗어나 볼 수도 있다는 걸 느낀 일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여전히 그저 잠시 왔다간 "OO의 친구"에 불과하다. 그들은 나를, 그들의 눈 앞에서 직접 마주치고, 부딫히고, 느낀 그대로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그다지 엮일 일이 없는 외부인이었기에 느낄 수 있었던 일시적인 느낌이라하더라도, 그 느낌은 정말 진정한 자유의 냄새가 느껴지는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