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3일 일요일

그 친구는 지금 월급쟁이가 되었다.


  "A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어느 사람들에게 사기를 쳤다. 그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물론 아무도 A가 사기를 쳤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렇다면 A는 사기를 친 것인가, 사기를 치지 않은 것인가?"


  기억도 희미한 어느 늦가을 저녁, 열람실 생활을 공유하던 친구와 저녁을 먹는 내내 물고 늘어졌던 이야기이다. 저녁을 먹고 나와서도 우리는 공부를 뒤로한 채 이야기를 나눴고, 집에 돌아가서도, 다음 날 아침까지도 계속 되었다. 나는 사기가 맞다고 주장했고, 친구는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야기의 요지는 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간단하다. 친구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사기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고, 그것이 사기라고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피해자가 그걸 사기로 받아들이지 않고(혹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기를 쳤다."라는 객관적 사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아무도 모르면 그건 사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이야기에서도 A의 사기는 사기를 친 것이 아니다.
  나는 반대의 입장에 섰다. 나의 입장은 더욱 간단했다. 이미 첫 번째 문장에서 "A는 .. 사기를 쳤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피해자가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면 사기를 친것이 아니다." 라는 정의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미 저 문장이 나타내고 있는 세계관-내가 존재하는 현실세계와는 별개인-에서는 첫 번째 문장에서 이미 객관적으로 규정된 조건이 등장하므로-즉, 이미 저 문장을 읽고 있는 다른 차원의 사람이 사기의 유무를 알고 있으므로"- 사기를 친 것이 맞다. 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친구와 나는 저 문장에 따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존재하면서 저 세계관에 대해 방관적으로 내다보며 객관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 제시된 조건절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는 것이다. 


  앞서 다뤘던 칼 포퍼의 책을 보는 동안 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위에 제시된 저 문장들은 그저 모순이다. 사기를 쳤다는 걸 모른다. 그런데 사기를 쳤다는 걸 안다. 이 두 개의 모순된 문장을 동일한 차원의 사실 관계 안에서 묶으려 했던 우리의 시도 자체가 어찌보면 무의미하기도 하고 우스운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A가 사기를 친 건지, 안 친 건지 모르겠다. 다만 그런 쓸데없는 논쟁을 하면서 헤메일 수 있었던 상상의 그 시절이 그립다. 함께 하던 그 친구는 지금 월급쟁이가 되어 있다. 



"This sentence is fa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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