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6일 수요일

"우리착하고이쁜아들들"



  내게는 아직은 어린 사촌 동생들이 있다. 형제인 녀석들은, 형은 이제 갓 중학생이 되었고, 동생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형은 숙모님을 빼닮았고, 동생은 숙부님을 빼닮았다. 나와는 나이 차가 있기도 하고, 출생부터 지금의 모습까지 내가 빼놓지 않고 보아온 녀석들이어서 그런지, 왠지 모를 그런 정감을 주는 녀석들이다. 녀석들은 아이들을 잘 대할지 모르는 내게도 스스럼이 없다. 그래서 숙부님은 내게 원래 애들이 "성격 더러운 형"을 좋아한다고 놀리곤 했다.

  지난 추석에 잠깐 집에 내려가니 녀석들이 와있었다. 아침 일찍 도착해서 인지 녀석들은 자고 있었다. 숙모님이 내게 인사를 시킨다며 녀석들을 깨웠다. 작은 녀석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형 왔어?" 라는 인사를 건넸고, 큰 녀석은 여전히 자느라 정신없었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작은 녀석은 아침잠이 깨버렸는지 일어난 지 얼마나 안되어 온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녀석은 원래는 큰 녀석의 것이라는 갤럭시 플레이어를 인형처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내가 신문을 보고 있자, 이내 녀석은 내 곁에 와서 "형 뭐해?"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쏟아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갤럭시 플레이어와 와이브로 에그를 함께 쓴다며 내게 자랑했다. 내가 감탄하는 시늉을 하며 이것 저것 더 묻자, 녀석은 더욱 신이 나서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들레었다. 내가 구경해봐도 되겠냐고 묻자, 녀석은 절대 안 된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내가 신문으로 눈을 돌리자 녀석은 내게 숙부님과 독도여행을 갔던 사진을 보여준다며 손수 내게 건네주고 시연해 주었다. 그리고는 카카오톡을 열어 자신들의 친구가 누구, 누가 있는지를 하나 하나 보여주며 설명해주었다. 녀석의 태연함과 천진함이 부러웠다. 
  큰 녀석이 잠에서 깼는지, 나와 작은 녀석이 있는 곳으로 눈을 비비며 왔다. 녀석은 깨서 일어나자마자 숙부님의 스마트폰을 큰 소리로 찾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숙부님의 스마트폰을 찾은 녀석은 우리 주변의 침대 머리맡에 속옷 만 입은 채로 앉아 스마트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OO는 형이 왔는데 인사도 안하냐?~" 라는 나의 물음에 녀석은 "형 왔어? 나 지금 이거 빨리해야 돼."라고 단답 만하고 말았다. 사춘기가 다가왔는지, 게임에 집중하는지, 녀석은 언제인가 부터 나의 호의를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녀석은 작은 녀석이 내게 해주는 설명에 조금이라도 누락된 부분이 있을까하면, 눈은 여전히 작은 화면에 담아두면서도 곧바로 큰소리로 설명해주곤 했다. 그리고 작은 녀석이 들고 있는 갤럭시 플레이어가 자신의 것이며, 자신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번 강조했다. 까칠하면서도 나의 곁을 결코 떠나지 않는 큰 녀석은 마치 사춘기 시절의 나를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는 동안, 숙부님과 숙모님은 돌아가면서 내가 있는 곳에 들르셨다. 숙부님은 독도 여행 사진을 같이 보며 독도 여행이 얼마나 멋진 것이었는지를 자찬하셨고,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우리 OO는 아직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라며 흐뭇해 하셨다. 내가 게임에 몰두하는 녀석을 보며 그냥 하나 사주는 게 어떻겠냐고 묻자, 숙부님은 '우리 OO는 사달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는다. 녀석에게 무언가 큰 선물을 하나 해주어야 겠다.' 라고 다시 한번 흐뭇해 하셨다. 큰 녀석은 숙부님의 말을 복명복창했다. 그리고는 여전히 속옷만 입고, 스마트폰 화면에 담긴 채, DSLR에 쓰이는 어떤 렌즈를 외쳤다.  그러는 동안에도 작은 녀석은 내게 와이브로 데이터의 양과 속도가 얼마나 되며, 이 걸로 어떤 게임이 가능한 지 내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숙모님이 왔을 때는 더욱 가관이었다. 숙모님은 끊임없이 내게 자신의 아들들이 (스마트폰을 쓰지 않아서) 얼마나 훌륭한지를 묘사했고, 자신의 아들들이 얼마나 훌륭한 외모와 체형을 지녔는지를 끊임없이 자과하셨다. 내가 녀석들이 소아 비만의 위험에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묻자, 그 칭찬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모델"을 시켜야겠다고 하셨다. 공부에 관한 이야기는  없는 걸 보니, 동생들이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숙모님은 "우리 이쁜 아들"이라는 말을 우리 집에 있는 내내 끊임없이 반복해서 쓰셨다. 심지어는 동생들에 대한 호칭도 그렇게 쓰셨다. 아들이 정말 너무 좋으신가보다고 생각했다. 

  가장 멋진 일은 내가 녀석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었을 때 일어났다. 작은 녀석에게 "학교는 재밌어? 요새 무슨 재미있는 일 해봤어?" 라고 묻자, 녀석은 쿨하게 "나는 스키타는 게 너무 좋아." 라는 말을 시작으로 지난 겨울에 스키타러 간 일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스키를 타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하루 종일 스키만 탔으면 한다며 내게 스키를 타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계속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은 꼭 스키 선수가 될 거라고 말했다. 선수가 되기가 어렵다면 스키 강사라도 꼭 할 것이라고 되뇌었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스키를 타는 흉내를 내며 내게 자신의 꿈을 호방하게 쏟아내는 녀석에게 나는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멋진 이야기였다. 녀석은 고작 초등학생이었다. 아니, 녀석이 고작 초등학생이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건 녀석의 너무나도 멋지고 개성 넘치는 꿈은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녀석이 부러웠는지, 나도 녀석에게  "OO야, 나중에 꼭 형을 찾아와 임마. 내가 스키 장비를 사다주던, 스키 시즌권을 사다주던 할테니까 임마. 형이 널 위해서 뭐라도 해줄께. 꼭 찾아와라. 두 번 찾아와." 라고 호기를 내어놓았다. 나는 녀석에게 정말로 감동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멋진 일은 바로 다음에 이어졌다. 
  "스키강사는 별로 돈 못벌어." 게임을 하던 큰 녀석이 너무나도 멋지게 작은 녀석의 꿈을 짓밟았다. 작은 녀석은 별 개의치 않았지만, 나는 불편했다. 불편함을 감추고 나는 큰 녀석에게 물었다. "그럼 넌 뭐가 되고 싶어?", "연금 나오는 거.", "왜 그냥 하고 싶은 거 없어?", "어, 몰라 그냥 돈 버는 거.". 숙모님이 들어오신 건 바로 그 때였다. 내가 숙모님께 따지듯이 "숙모, OO는 스키강사가 되고싶데요!" 라고 말하자, 작은 녀석이 혼자 속삭였다. "아, 이런 거 엄마한테 말하면 안되는데...". 내가 다시 "OO(큰 녀석)은 뭐가 되고 싶다는 지 잘 모르겠다는데요?" 라고 말하자, 숙모는 정말, 너무 나도, 진짜로, 정말, 다시 한번 진짜로 너무나도, 말도 안될 정도로 태연한 얼굴로 "아냐~ 우리 착한 아들들은 틀림없이 전문직이나 공무원 같이 월급 착실히 나오고 연금나오는 안정적인 일을 「시킬 거야」. 그렇지?~ 아들들아?~"... "우리 착한 아들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머리를 강하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참담했다. 이 세계는 이미 내가 사는 세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숙모님은 명문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합격했다는 나의 다른 사촌 동생에게 부탁하여 "우리 착한 아들들"을 데리고 명문대 투어를 했다고 자랑했다. "우리 착한 아들들"은 고작 이제 초등학생, 중학생에 불과하지만, 숙모님은 "우리 착한 아들들"도 반드시 그런 학교에 들어갈 것이라며 강조했다. 나는 허탈한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실존적으로 자조했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한 내면 탐구가 필요함을 느꼈다. 나는 작은 녀석이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숙모님과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갤럭시 플레이어만 쳐다보고 있다는 걸 위안 삼았다. 작은 녀석에게 몰래 이야기했다. "형 꼭 찾아와 임마. 알겠지?". 그리고 우리는 모두 식사를 하러 거실로 나갔다. 



  녀석들이 여섯살이나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나들이를 나갔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녀석들을 차 안에 두고 문을 닫고 창문으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놀린 적이 있다. 녀석들은 울어버렸고, 나는 당황해서 바로 차 문을 열고 미안하다며 녀석들을 얼렀다. 큰 녀석이 내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잘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분명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만약 나한테 칼이 있다면, 이렇게 형의 가슴팍을 퍽퍽 쑤시고 이렇게 돌려서 파내버릴 거야..". 엄청나게 섬뜩한 얘기였다. 나는 놀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고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 일이 있기 며칠 전에는 더욱 섬뜩한 일이 있었다. 나는 한가로이 웹서핑을 하고, 녀석들은 내 뒤의 침대에서 마주보고 앉아 무언가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큰 녀석이 작은 녀석에게 사람을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는 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심장 쪽을 칼로 찌르면 죽는다거나, 목을 조르면 죽는다거나 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하다가도 깜짝 놀래 뒤를 돌아보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물었고, 녀석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도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이야기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는다. 특히나 숙모님은 "우리 착한 아들들이 절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 너가 잘 못 들었겠지."라고 단호하게 단정지으신다. 하기는 지금 생각해도 그런 섬뜩한 이야기를 나 스스로도 믿기 어렵기는 하다. 게다가 동생들이 너무나도 순수한 외모를 지녔기에 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개연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저 나 혼자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아무 저항없이 현실에 부지런히 적응해나간다는 비합리성이 개인들에게는 이성보다도 더 이성적으로 보인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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