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5일 수요일

변호인


  최근 개봉한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보러 갈 일이 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 영화의 배경이 되는 부림 사건을 비롯한 80년대 민주화운동에도 꽤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변호인"이라는 영화에도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호평을 하고 있었고, 관객 수 또한 빠른 시간에 쌓이고 있었기에 기대는 더욱 높아져만 갔다. 과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여러 다큐멘터리와 관련 영상들을 보았을 때처럼, 이번에는 극이라는 형태에서 끓어오름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거 없었다. 물론 영화를 다 보고 나오는 동안에도 그런 건 없었다. 주변 사람에게 굳이 추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보면 좋겠지만, 뭐 굳이 안봐도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최근에 보았던 영화 중에 어쩌면 조금은 비슷한 내용을 다룬 "남영동 1985"와 비교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남영동 쪽이 좀 더 완성도가 높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의 기대치가 달라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영동 1985"를 보고 난 후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깊은 무게감을 가진 메시지가 묵직하게 서서히 눌러온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앞으로 더욱 노력하며 살아야하는 지를 느낄 수 있었지만, 이번 "변호인"을 보았을 때는 그다지 그런 걸 느낄 수 없었다. 


  먼저 픽션과 실재의 관계에 대해서 혼란스러웠던 점을 말하고 싶다. 영화의 내용은 부림 사건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도 사실 상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픽션과 실재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러 메시지들이 주는 의미들을 실제에 기반을 둔 채 판단해야하는 것인지, 픽션에 기반을 둔 채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단지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실재와 너무 가까웠고, 실재라고 보기에는 픽션이 많았다. 곽도원이라는 명배우가 연기한 차 경감은 너무나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처럼 느껴졌고, 국밥집이라는 것이 주인공 송변과 부림사건을 이어주는 극적인 장치라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내가 극적인 몰입감을 느끼는 데 부담을 주는 것같기도 했다. 심지어 나는 똑같이 가명이 쓰인 "남영동 1985"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가명의 혼란스러움을 "변호인"에서는 느끼기도 했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인 1987년의 장면은 장면자체는 꽤나 인상적이었지만, 맥락적인 면에서 내게는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로 뜬금없는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두 번째, 기승전결이 잘 느껴지지 않는 전개다. 나는 예고편을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다. 그리고 예고편에서 등장하는 "국가는 국민이다."라는 대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그것이 클라이맥스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것이 클라이맥스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대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다지 어떤 희열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거꾸로 그저 식상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영화에서 "맨 오브 스틸"에서 봤던 것 같은 갑작스런 시간 전개들이 때때로 등장한다. "맨 오브 스틸"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변호인"에서도 여전히 난데없이 점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승전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등기전문변호사 - 사시 준비생 시절 - 세무전문변호사 - 갑작스런 인권 변호사" 이 네 가지의 이야기가 그저 각각 별개인 것처럼 무덤덤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과거 회상 혹은 장면 회상 등은 나의 개인 적인 느낌으로는 극의 몰입도를 퍽퍽 끊어내는 것 같았다. 
  캐릭터의 배치 또한 많이 걸리는 문제였다. 사실 "극"이라는 점에서 나는 갈등의 대치관계가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변호인"에서는 누가 "나쁜놈"인지가 명확치가 않았다. 주인공은 분명하지만, 그 주인공이 맞서고 있는 악역이 분명치가 않았다. 물론 정부와 당시의 시국이라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대치시키고자 하는 것이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그것들을 대변하는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와 주인공과의 갈등관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극의 감정 전달에서 훨씬 좋지 않을까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나쁜놈"이 있긴 있었다. 그것이 곽도원이라는 훌륭한 배우가 맡은 "차경감"이라는 캐릭터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차경감은 주인공 송변과 맞서지 않는다. 극 중 가장 중요한 장소인 법정에서 차경감은 방청객 중 한 명 혹은 증인으로 나올 뿐이고 그가 진우를 고문할 때, 송변은 장면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송변과 차경감이 직접적으로 엮이는 유일한 장면은, 내가 볼 때, 영화 "변호인" 중에서 가장 억지스러운 신이었다. 
 그렇다면 법정에서 대치하게 되는 검사는 어떤가. 악역 연기에서 상당히 인정받은 배우 조민기 씨가 분한 검사는 사실 영화에서 별 비중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법정 장면에서는 대립점이 판사에게 까지 나눠지면서 속된 말로 BGM으로 보일 만큼 비중이 없었다. 게다가 조민기 씨의 발음이 내게는 조금 이질적으로 들리는 느낌이 있었다. 너무나 쾌청하고 끝이 올라가는 그의 대사가 조금은 억지스러워 보였다. 더욱이 실제 재판에서도 그러했을지도 모르지만 송변에 비해, 검사의 변론은 바보스러워 보일 정도로 허무하게 구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저 법정 장면들은 송변 혼자 떠드는 장면들 뿐이었다. 혼자 떠드는 것이 어떤 메시지를 쉽게 전달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다지 감정적 흥분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차경감, 검사, 판사로 나눠진 악역 배치가 송변이 맞서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분명치 못하게 함으로써 몰입된 긴장상태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세 번째는 이 영화의 "주"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영화는 법정 영화다. 법정이 중심이다. 법정에서의 변론, 갈등, 대립, 논리적 공격과 방어들이 중심이다. 그런데 그런 논리적 싸움의 치열함이 법정 장면에서 그다지 드러나지 못한 것 같다. 주인공 송변이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관해 변론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법정의 지적 긴장 상태가 별로 드러나지 못한 것 같다. 너무 주인공 송변의 영웅성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내용 자체가 그다지 긴장을 끌어올리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송변 혼자 잘난 척하는 내용이 "주"인 것 처럼 보였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에 덧붙여져 있는 여러 고문 장면, 수사 장면들이 오히려 혼란을 가져왔다. 법정 영화인데 법정 장면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하다보니, 고문, 수사 장면들이 영화의 "주"에 어른거렸고, 나는 그럼 이 영화가 도대체 고문을 말하고 싶은 건지, 법정싸움을 말하고 싶은 건지 헷갈리기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고문 장면들의 배치 또한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진술서를 맞추던 중에 진우와 그의 친구가 벚꽃 이야기를 하며 울 때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앞서도 말했지만, 가장 어이가 없었던 장면은 송변이 고문 장소에 잠입 액션을 벌일 때였다. 열심히 발품을 판다는 메시지는 이해하겠지만, 공안당국의 고문수사 장소가 저렇게 쉽게 뚫리는 것도 당황스러웠고, 또 거기서 차경감을 만나는 건 정말 어이가 없었다. 차경감이 송변을 내리치고 이런 저런 쓸데없는 훈계를 늘어놓는 건, 영화의 진정성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곽도원 씨의 연기는 훌륭했다. 다만, 그가 내뱉는 대사들이 우스꽝스러웠다. 6.25 때 부모가 학살당했다는 이야기는 억지로 껴맞춘 듯 했고, 차경감이 왜 저렇게 빨갱이에 집착하는지도 사실 별로 감이 안왔다. 오히려 남영동에서 이경영씨의 과묵하게 표현되는 아우라를 가진 캐릭터가 오히려 더욱 와닿았다.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차경감이 감격스러운 듯 가슴에 손을 올리는 장면은 과하게 희화화 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 설정이 철저히 불필요한 설정이라고 확단한다. 감독은 그 설정으로 "그들"을 비웃었다. 그것으로 그렇게 픽션을 강조했던 그의 의도는 위선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내가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는 류수영 씨가 분한 해동건설 회장 아드님의 대사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럴려면 국민소득이 몇배는 더 올라야 한다." 나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건 상관 관계지 인과관계가 아니다. "변호인"을 통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통해 드러나는 메시지 중의 하나가 그것이 아닐까 싶다. 송변은 그의 스카웃제의를 거절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변호에 나선다. 그에 따르면 가난하다고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하게 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이성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상관관계를 극복하려면 대단한 용기와 비용이 든다. 극 중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장된 부를 포기하고 보장된 안락을 포기해야한다. 심지어 그렇게 다 포기한다고 해서 바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포기하고도 끝없이 괴로움과 고난을 겪어야 하고, 추구하는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끊임없이 시달려야한다. 그래서 신념이 필요하고 진정성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점이 나는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자꾸 안녕하지 못하다고 대자보나 써갈겨대는 젊은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렇게 안녕하지 못한 너희들이 그런 용기를 가지고, 그런 비용을 전부 치뤄낼만큼,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물음말이다. 



2013년 12월 18일 수요일

해야 할 일이 있다.


  시내에 볼 일이 있었다. 어머님께 친구가 사과를 한 상자 보냈다고 전화로 말씀드리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차가 오토바이를 친 모양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현장에 달려갔고, 나 또한 전화를 끊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기다려야했다. 전화가 많은 모양이었다. 연결이 되고 구조상담원 분이 환자 분이 의식이 있는 지를 묻길래, 나 또한 현장으로 달려가봐야 했다. 다행히 의식이 있으셨다. 어떤 친절한 커플이 쓰러져 계신 아저씨의 안위를 챙기고 있던 중이었다. 쓰러진 아저씨는 어딘가로 자꾸 전화를 걸고 있었다. 친절한 커플이 이미 신고를 했다는 이야기를 조곤히 전하면서 아저씨를 안심시켜드렸다. 큰 길가 한 복판이어서 상황이 복잡했고, 근처에 파출소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나는 곧바로 파출소로 달려가 구조대원 한 분을 모시고 왔다. 구조대원의 지시에 따라 나는 어떤 어르신 한 분과 오토바이를 수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왔다. 상황이 정리되었고, 사람들은 흩어졌다. 
  집에 돌아오면서 문득 쓰러져 계신 분께서 전화를 계속 전화를 걸었던 곳이 혹시나 119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에게 전화를 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 통화하고자 그 상황에서도 힘들게 다이얼를 돌렸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오토바이는 배달용 오토바이였고, 아저씨는 집에 돌아가시는 중이었던 같았다. 그냥, 집에 있는 부인에게, 집에 있는 자식에게,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전화를 하려고 하셨던 건 아닐까. 녹록치 않은 삶 속에, 다치기 까지 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신 건 아닐까. 많이 힘든 삶이지만, 다쳐서 미안하지만, 그저 보고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상이 과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 때 흘려 듣고 있던 노래가 마이클 잭슨의 "We are the World"라는 곡이었다. 그래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너무나 터져나와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병신처럼 흐느꼈다. 모르겠다. 그냥 분명 내가 해야할 일이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해내지도,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는 다는 부끄러움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만큼 안이한 지금을 보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정말 병신처럼 흐느꼈다. 고맙게도 친구는 격려해주었다. 
  그저 어쩌다 지나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1년 후, 5년 후에는 오늘 같은 일이 있었다는 걸 내 스스로가 기억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일이 되면 이런 반성을 또다시 잊어버리고는 쓸데없는 일상사에 대한 불평만 잔뜩 늘어놓는데 집중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저 쓸데없는 망상일 뿐이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각자의 아름다움으로 이 세계를 떠받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고, 그리고 내가 해야할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보다 더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단하고 숭고한 가치들이 내가 놓치면서 살아가는 바로 이 지금 속에 항상 상존해 왔던 건 아닌가 싶다. 



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One America.


  Barack Obama, Mr. President of United States of America, told about hope in DNC 2004. That was awesome. Very impressive. I think sometimes, in South Korea, hope is needed to say by anyone. Obama told, in 2004, "There are patriots who opposed the war in Iraq and there are patriots who supported the war in Iraq." There are very various ways in society. People have thought very differently. Somebody may tell me that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us is squashing up against North Korea and another may talk about importance of getting wealth. The other one may be gonna tell me that we should complete a global economic system as soon as possible. I don't know what's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us in the present time. Maybe we could talk, discuss, have a conference with ourselves at all. But that's gonna be a harsh one. People do not wanna talk, do not wanna trust other ones, do not wanna believe the thing they haven't known. I knew that's gonna be called a fairy or somethin'. But sometimes we need to trust other one even he or she is the most disgusting person to us or has too repulsive ideas to talk about. I understand the fact that a discussion could fully be a stupid thing. Nonetheless, we need to discuss anything important enough to bother us at times, even if that's the greatest crap. Listen to anyone's voice and talk about anything you want. Don't be angry, or everyone's gonna be angry. We are one people. That's the main reason why we must have a talk. In this way, we can and we should elaborate our thoughts, and we are gonna making a good decision. Maybe the decision is not that I do want, but if I fully talk about that, that's gonna be the decision that we do want. Talk about everything you want, but don't be angry and don't be emotional. That's gonna make us have a real nice answer. 



앞으로.


  철도 민영화라는 이슈에 대한 한 현직 철도 기관사의 인터뷰가 있었다. 바로가기 
왜 철도 민영화라는 이슈를 노조측이 포기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내용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자회사 설립은 철도공사 이외의 운영사가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의를 가진다. 첫째는 경영이 악화된 지방선들에 대한 민간개방을 추진하겠다는 국토교통부의 철도산업 발전 방안의 선례로써 중요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코레일의 영업수익이 4천억원 정도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경부선 KTX 노선 빼고 모든 노선이 적자인데다, 수서발 KTX가 생기면 강동, 분당, 성남의 시민들이 수서로 몰리게 되므로 코레일의 운영수익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당연히 코레일은 수지가 맞지 않은 지방 적자노선의 운영을 점차 반납하게 된다. 이 지방 적자 노선들에 대한 민간개방을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 국토교통부의 철도산업 발전 방안이 의도하고 있는 목표다. 
  코레일이 운영을 포기한 지방 노선들에 대해 경쟁 입찰을 추진한다고 해도, 현재 한국에는 입찰에 참여할 만 한 기업들이 없다. 당연히 외국 기업들이 참여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방문 때 한국의 공공부문 시장을 외국기업들에 개방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것과 겹치는 사실이다. 프랑스 쪽에서 당연히 이와 같은 발표를 환영했다. 이미 프랑스의 베올리아사가 지하철 9호선을 통해 성공적으로 진출한 바 있다. 정부 측에서는 우리도 유럽의 철도 산업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애초에 경쟁력에서 게임이 되지 않는 한국 기업이 발전된 유럽 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은 어불 성설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수서발 KTX 자회사 또한 민영화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무리 지분을 100% 공기업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경영진이 파트별로 외주화 하면 민간기업이 활동할 영역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사례가 지하철 9호선이다. 이같은 외국기업의 참여가 점점 더 늘어난다면, 지분 매각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점차 앞으로 우리나라의 KTX 비용이 영국 수준으로 무려 5~6배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 


  요약하자면, 국토교통부의 계획에 따르면, 수서 KTX 자회사 설립으로 수익이 악화된 코레일은 지방 적자 노선 운영을 포기하게 되고, 이것을 민간에 개방하게 된다. 국내외 여건 상 개방된 노선의 운영은 당연히 해외 기업들이 맡게 될 것이다. 해외 기업들은 결국 다양한 루트로 수서발 KTX 자회사 운영에 까지 점진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는 지분 매각으로 인한 해외 기업의 국내 철도 운용으로 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몇 가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먼저 코레일이 공기업이라는 특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지경영이라는 것에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굳이 정부기관에서 코레일이라는 공기업으로 분리한 것 자체가 수익 추구 및 경영 효율화라는 목적에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한 것은 그 코레일이 자체적인 결정이 아닌, 국토교통부라는 정부부처로 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으며, 그에 따라 결정이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공기업화 시킨 것 자체가 의문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중요한 의사결정 구조는 정부의 의지에 달려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화 함으로써 어떤 효율성과 공익이 발생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법하다.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볼 때 다시 한 번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자체가 "철도 민영화"라는 궁극적인 주장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먼저 "철도 민영화"라는 어구는 자체가 굉장히 추상적이라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일종의 추상적 공포와 맞닿아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철도 민영화"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이 수렴된 것도 아닐 것이고, 그것이 있다고 해도 앞으로 진행될 과정의 형태가 정확히 그것과 일치하는 지는 확단하기 어렵다. 마치 코레일이 국토교통부에 절대적으로 좌지우지 되고 있는 현 상태에서, 그것이 과연 정말 추상적인 "공기업"의 형태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지에 대한 의문과 뜻을 같이한다고 본다. 그나마 "직접적인" 민영화의 영향력은 위의 내용으로 볼 때도, 지방 적자 노선들이지, 수서발 KTX 자회사 자체는 아니다. 위의 내용에서조차 수서발 KTX 자회사 자체는 점차 혹은 잠재적으로 해외 자본의 개입이 있게 될 것이라는 우려 정도였다. 역시나 "잠재성"이라는 특징만을 내보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지방 적자 노선들은 어떠할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국토교통부의 지방 적자 노선들은 그저 관리를 포기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닌가 싶다. 그저 없어도 되는 것이라는 판단 하에 공공 사업 공개라는 명분만 챙기고자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지방 적자 노선들이 해외 자본에 공개된다고 하면, 세 가지 경우의 수를 볼 수 있다. 첫째, 지방 적자 노선들에 해외 자본이 들어와서 수익을 보게 되는 경우, 둘째, 지방 적자 노선들이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어떤 해외 자본들도 들어와서 사업을 하지 않는 경우, 셋째, 지방 적자 노선들에 해외 자본이 들어와서 여전히 적자를 보지만, 그 적자를 메꿔주는 것에 더불어 흑자까지 공공자금으로 지원이 이뤄지는 경우다. 첫째의 경우는 만약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오히려 공익의 측면에 도움이 되는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죽어가는 노선을 해외 자본이던, 정부이던 일단 살려놨으니 매우 긍정적인 사례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의 경우는 일단 해외 자본의 참여 자체가 없을 것이고, 기존 수요자들의 반발이 있겠지만, 다른 교통수단이든, 다른 노선이든 어떤 것으로 수렴될 것이니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세 번째의 경우다. 우리나라에 있어왔던 여러 민자 사업의 경우, 민간 자본 참여 장려라는 명분 하에 실패가 뻔히 보이는 경우에도, 과도한 수요량 예측을 하고, 실패의 경우 발생하는 비용과 이익까지 전부 공공자금의 메꾸는 경우가 많이 있어왔다. 바로 그런 문제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될 것이다. 사실 지방 적자 노선 관리 또한 굳이 타협점을 찾자면 세 번째에서 사항을 조율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남은 문제는 9호선의 사례에서 보 듯, 점진적인 해외 자본의 공공시장의 참여 증대이다. 먼저 베울리아사가 9호선에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경험적으로 떠올린 사실은, 일단 9호선의 요금이 영국 수준으로 비싸지 않다는 것이었다. 올해 초 9호선 요금을 1550원으로 올리려고 했다가, 여론의 엄청난 비난을 받고, 박원순 시장이 직접 나서 요금을 동결시킨 적이 있다. 9호선이 다른 호선들에 비해 조금 다르게 생긴 것은 있지만, 사용 시 특별한 불편함이나 편안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열차가 다니는 횟수가 너무 적다는 반발이 있어 그것 또한 서울시가 나서서 개선했다는 기억도 있다. 그것을 감안할 때, 급진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 공공교통요금이 굉장히 저렴한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경로의존적인 성향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여론이 공공교통요금에 굉장히 민감하다. 따라서 앞으로 점차 얼마나 변화할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여론이 그것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경쟁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은 어쨌건 매우 동감한다.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짠 하고 등장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해외 시장에서 어떤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는 것은 립서비스에 불과할 것이다. 공공시장 개방에서도 국내 기업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굳이 코레일을 그렇게까지 밀어붙일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일종의 가치관의 문제다. 여기서 "민영화"라는 정치적인 어구가 의미를 찾는다. 애초에 문제의 시작이 국토교통부가 의도하는 적자노선정리라는 것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여기다. "굳이 그렇게 적자노선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가?", "굳이 그렇게 경영효율화를 쫓을 필요가 있는가?". 나는 이번 철도 민영화 논쟁의 핵심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철도 노조가 패배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하고 효과적인 논리가 그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낳은 것은 (1) 고수익을 창출하는 자회사가 해외자본에 흘러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 (2) 수서발 KTX 이익이 분리됨으로써 코레일의 수지가 악화될 것이라는 불안감 (3) 수지가 악화된 코레일에 대해 적자노선 포기 종용과 이에 대한 해외 자본에 의한 잠식이라는 불안감. 이 세 가지가 바로 "민영화"라는 논조의 배경이다. 이러한 배경들을 양산한 근본적인 기제는 내가 보기엔 결국 경영 효율화라는 "가치관"이다. 국토교통부가 자회사 설립을 푸쉬하게 되는 공식적인 이유가 바로 적자 노선의 소거, 곧 경영 효율화다. "자회사 설립"이라는 형태가 보편적으로 가지는 의미 또한 작은 경영, 분리 경영, 흑자 경영, 결국 경영효율화다. 그럼 왜 경영 효율화가 코레일에 필요하고, 철도 운용에 필요한 것일까? 왜 굳이 박 대통령은 프랑스에 가서까지 공공사업 개방을 통해 "경영효율화"를 하겠다고 한 것이며, 왜 국토교통부는 그렇게까지 나서서 적자노선 철폐로 "경영효율화"를 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이 설명되어야한다. 철도 민영화 라는 선전 어구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가치관"의 문제다. 논란을 수렴시키기가 어렵고, 설득을 위한 논리가 되기도 어렵다. 



2013년 12월 14일 토요일

I'm a fan of Liverpool F.C.


  I'm a fan of Liverpool Football Club. I don't know Liverpool f.c. very well, but somethings in its history could be reasons why I decided to call me as an one of the kopites. The most famous event in recent years is maybe "2005 UEFA Champions League Final". In 2004-2005 season, Liverpool F.C. and its fans had a lot of confusing moments. Right before that season, They had to change their manager, Gerard Houllier, to Rafael Benitez who had been managing F.C. Valencia before then. In addition, they had to lose their star player, Michael Owen, who had gotten Fifa Ballond'or once before, to Real Madrid. And new players, Xabi Alonso, Luis Garcia, Djibril Cisse and so, are joined the team newly. Of course, they had Steven Gerrard but many fans of Reds couldn't hide their worried look. Really, in that season, Liverpool F.C. had not a great form to play. In Premier League, Chelsea F.C., Manchester United and even Merseyside rival, Everton F.C. were having a great abillity to be champion of the league enough. The Reds had a lot of troubles.
  But in the European Cup, though they almost came close to losing their chance to gotta a tournament ticket, they had a hero had a truly marvelous right foot. Steven Gerrard made the team go to Tournament in 8th December, 2004. In Champions League Tournament, they had to gotta real strong competitors, Bayer 04 Leverkusen, Juventus, and Chelsea F.C.. Each game was so close and so hard to watch as a fan of Reds. But finally they were allowed to gain entry in the 2004-2005 European Cup Final. However, the last competitor of big-ears is the A.C. Milan the best team in the Europe. In that times, Milan is the very best team in all European football club. they had Shevchenko one of the best scorers in football history, Kaka, yeah that Kaka as you known, Paulo Maldini, one real hero of Italian football, the combination of Gattuso, Pirlo and Brazilian goal keeper Dida. The squad of Milan is a real fear as itself. 
  According to anticipations many experts expected, when half-time whistle was blown up, Milan already got 3 points. Three-null. That was just a half-time result of final. People began to say that it was only huge that Liverpool F.C. had got a chance to play a final game with Milan. It's ridicule. But I don't know what happened in half-time break. In  moment that could never be a long time, in almost 5 minutes, the Reds got three goals and the game was tied in a flash. A real hero of the Reds, Steven Gerrard, made the first and third goal of Liverpool and showed a goal ceremony that most people know Liverpool F.C. can never forget in the first goal moment. The game were in extra-time and in penalty shoot-out. In the end, the goal keeper of Reds, Jerzy Dudek, blocked shooting of Shevchenko, the Liverpool F.C. got big-ears. 
  Never be a forgotten one that match and those stories. This drama made me a huge fan of the Reds. I love that Liverpool F.C. is not always a strong team. The Reds always have hard-to-look games and they've been failed in many games. But sometimes they may gotta win. I think that part is the important one why I'd like to be a kop. Still my google has said to me that when is gonna be the game night of Liverpool. I'd love to. And also I'm gonna get checking football broadcasting calender.



2013년 12월 13일 금요일

An apparent one.


  A few days ago, I watched a movie, Namyeong-dong 1985. That movie said about putting a person, a famous one now, to the torture in various ways. It described scenes of torturing very minutely. So, I think it could be kind of a cruel thing to feeble people. But, it could be not a crazy one, just a realistic one. 
  Although, I'm not a man from the time of Namyeong-dong, I can feel it indirectly from my father who have been interrogated in that time. The fact that I can say anything I do wanna say is really important and grateful I think. Though just a simple thing, we needed a very long to get a chance to do that. Sometimes we've really forgotten that past too easily. I know not forgetting that is not a easy one. That's so to me, too. Maybe everyone did that, I had a thought that if I were in there, how many days I could hold that kind of tortures. Just 1 hour or just 2 hours?
  I'm not just wanna say thanks to people in past. What can I do for this time? This is my question for me. I don't know well. The movie was cruel, and I'm shocked but I have nothing to answer that kind of questions. The thing only I have is a just blur one. Maybe my job I have to do is changing that blur one to more apparent one. 



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Ten years, that's damn long to me.


  When I was in a company, one of my managers, appreciated as a very excellent expert in my team, said to me that who's gonna get a success. His idea was simple. According to him, the most crucial ingredient of success is in the moment that being anxious to try anything in really long time. In short, wanna get a success, must do hard in very long time. He said, that time has to be at least 10 years. He talked to me "Anything do really hard for 10 years, you can get an any result that could be called a success."
  Frankly speaking, the moment that I heard his idea about success, I absorbed it just abstractly. I really agreed with that idea, but it's a just rational thing and that's all. True part of myself really didn't reach to the genuine value of his idea in that time. Maybe still, too. However, the times that recent days, I do admit and understand his idea a little bit more. It really does. Something, consisted of truly valuable endeavor and has been accomplished in a very long time, is the most difficult and important thing in the world. To do whatever in the world, really I have to prepare for that fully and gotta sincere willingness for that, too. I don't know maybe the fact that I've got failures and troubles in a row recently, could be a reason that I've recalled his best idea of success yet again. But anyway I really have much time to think about an idea that he said to me, today.



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왜 고양이는 항상 죽는가.


  어떤 고려대생이 학교에 커다랗게 대자보를 붙였다고 한다. 참으로 정성이 갸륵한 일이다. 주요 내용은 철도 파업으로 4,213명이 직위 해제 된다는 데, 너님들은 어째 잘 먹고 잘 살고 계시냐는 물음이었다. 대자보를 쓴 학생이 경영대 학생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정성이 담긴 그의 글씨체에 한 번 더 놀랐다. 뭐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불평들이었기에 대단히 감명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고민을 담아놓은 것 같아 귀를 기울여보게 되었다. 
  그래서 우스꽝스러운 작금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관심이라도 가져보고자 철도 파업에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은 듯 했다. 첫째, 지금의 파업을 불법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둘째, 정말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민영화로 이어질 것인가. 이 두 가지 쟁점에서 사측과 노동자측은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먼저 과연 지금의 파업을 불법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주로 사측(혹은 파업을 반대하는 입장)은 이번 파업이 철저히 불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먼저 노동자측이 내걸고 있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반대는 파업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는 근로조건개선과는 관계가 먼 단순한 정책 반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정부정책 반대를 이유로 파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국민을 볼모로 한 협박이라고 평가한다. 따라서 이번 파업은 불법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조측(혹은 파업을 지지하는 입장)은 가장 촉망받는 라인이자 장차 훌륭한 캐시카우(cash-cow)가 될 수서발 KTX를 자회사 설립을 통해 분리하고, 포기한다는 것은, 현재 적자에 허덕이는 코레일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며, 이것이 틀림없이 근로조건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관점이다. 따라서 이번 파업은 정당한 파업권의 행사이며, 더 나아가 파업권 행사에 필요한 조건들(파업계획의 사전 공시 등)을 최소한 적으로 갖추었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 정말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로 이어질 것인가.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수서발 KTX는 민영화가 아니다", "민영화가 된다면 철로에 드러누워서라도 막겠다" 라는 호기로운 패기를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의지를 천명했다. 실제 지난 5일 공개된 수서발 KTX 운영안에 따르면 코레일 지분이 41%로 확대되고, 공공자금 참여가 부족 할 경우 필요한 자금은 정부 운영기금이 사용되며, 주식의 양도, 매도 대상이 전부 정부, 지자체로 한정된다. 더 나아가 코레일이 흑자를 거둘 시 코레일의 지분을 꾸준히 늘린다는 것이다. 사측은 민영화가 될 여지를 사전 차단했다고 덧붙였다. 
  노조 측은 일단 별도 법인화 자체가 민영화를 향해가는 과정의 시작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 일단 코레일이 지분을 늘릴 만큼 향후 대단한 흑자가 기대되지도 않을 뿐더러, 코레일의 지분이 늘어났고, 동시에 그외 공공기금이라는 특성 상 정부의 상명에 따른 임의적 의지에 따라 향후 정관이 충분히 변경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6개월 만에 분할 반대에서 분할 찬성으로 바뀐 코레일의 입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최근 박 대통령이 재가한 WTO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에 따르면 이 같은 사업에 국제 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품고 있다. 
  이 같은 치열한 입장의 대치는 더 큰 문제를 가져왔다. 대자보에서 언급한 것처럼, 파업이 지속되자 코레일 사측에서 단호하게 파업 참가 4,213명을 직위해제했고, 방금 1,585명을 추가로 직위해제 할 것이라고 통보한 것이다. 이제 파업 참가자들은 전부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사측은 다시는 이런 협박을 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사례를 남기기 위해 그렇게 한다고 밝혔다. 

  사실 내가 이래저래 뭐라 논평할 입장은 못된다고 생각한다. 파업의 불법성이야 공명정대한 법관님들이 판단할 일이고, 철도 민영화의 경제적 파급력은 머리회전 빠른 경제연구원님들이 판단하실 일이다. 그래도 굳이 관심을 가져보라고 대자보에서 호소하길래 그래도 생각이라도 해보려고 한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볼 때, 최소한 정치적 명분은 노조 측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수서발 KTX의 자회사 설립이 근로조건에 미칠 영향은 절대 구체적이거나 직접적인 형태의 것이 아니다. 간접적이고 잠재적이어서 추측 이나 우려의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불법적 파업이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근로조건개선과의 연관성을 설명해야하는 의무가 노조 측에게 갈 뿐더러, 그것을 설명해내는 것은 이야기가 복잡해지고 길어진다. 이것은 제대로 대중에 전달하기도 힘든 내용일 것이다. 내가 볼 때는 그것이 문제가 될 것 같다. 실제로 연관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입증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게다가 코레일 측이 구체적인 운영안을 공개하면서 철도 민영화 반대라는 구호가 단순히 정말 구호로만 남을 가능성까지 안게 되었다. 현재로써는 그 운영안이 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단하기가 어렵다. 자회사라고는 하지만 철저히 공적자금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획안까지 나온 상태다. 그리고 자회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는 그것이 코레일의 운영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물론 다른 사례들이 있겠지만, 이번 대단위 파업을 정당화 할 만큼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해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노조 입장이 곤란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관을 바꾸던, 해외자본참여가 허용되던, 대통령 말에만 따르던, 그것은 전부 "잠재성"을 가진 이야기일 뿐이고, 그 잠재성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직은 실현되지 않았고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이다. 아무리 심증이 가득하다고 해도, 그건 언제나 심증일 뿐이다. 이것은 "민영화"라는 정치적 구호를 실체도 없이 사용했다는 여론의 비난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는 코레일이 재빠르게 직위해제를 단행한 것도 노조측이 지닌 명분이 그리 단단하지 못하다고 보아서 일 것이라고 본다. 그나마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언론에서도 철도 파업의 정치적 명분 혹은 정당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을 나는 때때로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대단위 파업이지만, 열차 운행에 큰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도 아니며, 그 만큼 대단한 여론의 관심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거기에 철도에 드러누워서라도 민영화를 막겠다거나 (물론 립서비스이겠지만)부모의 심정으로 임직원들을 기다리겠다는 언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코레일 사장은 그나마 남은 여론의 동향마저 단호하게 기울인 것 같다. 더 나아가 엄청난 단위로 직위해제를 추진하면 노조측의 단합력이 스스로 붕괴되고, 그 갈 곳 없는 잔재들을 어차피 자신들이 "좋은 조건"에서 충분히 재흡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측이 판단했을 것 같다. 
  파업이란 건 치킨 게임이다. 어차피 장기적으로 갈 수 없다. 나는 이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산별 노조 식의 파업 게임이 제왕적 대통령 중심 혹은 국가중심의 우리나라 사회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전국연합노조 따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그냥 개인적으로 판단한다면, 꼭 민영화는 아니더라도 민영화 그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되가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노조 측이 느끼는 불안감에 충분히 공감한다는 이야기다. 간단히 말하자면 저렇게 훌륭한 먹이감을 자본들이 결코 놓칠 수 없고, 그 자본들이 내어놓는 "수치"라는 것에 정치인들이 매혹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 정도 랄까. 아무리 그들이 그런 불안감을 설득하려고 해도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사측의 이야기에는 너무나 단호하게 막힐 수 밖에 없다. 어쨌건 쟁점이 되는 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체적이고 단호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여론에게 매혹적이다.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건 언제나 정적일 수 밖에 없으니 그럴 것이다. 
  노조 측이 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구체적인 사실에 지고, 다음의 순간에는 조용히 결국 그 불안감이 현실화가 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밀려온다. 결국 노조들이 내놓고자 하는 메세지는 국가와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 손의 뽑고, 우리 손으로 떠받들고 있는 정부와 국가를 바로 우리가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2013년 12월 10일 화요일

Gravity, not about the movie.


  I've watched the movie "Gravity". It was great. Awesome. Runnin' time of the movie was so interesting to me. Any way, that was awesome. But I'm not about to talk about that movie. I just wanna say something about gravity little differently, not an astronomical one. Maybe that's gonna be a confused one because I would talk some meanings of "gravity", not in a dictionary, just in my simple metaphor.
  Sometimes - yeah, right, sometimes again. -, I've got aware of gravity somethin', that's not a physical thing, definitely a personal thing. That's laziness. Every time when I've waken up, it has been horrible, I really have not wanna wake it up. In every little time of my days and nights I really don't wanna do anything but just staying or laying quietly. I don't wanna do my homework, do my laundry, wash the dishes, go to a store, study or read something, and at all. But I really have to do those works. So, frequently, I really want to have a servant or a lot of money and there is a somebody to take my all jobs and he get done with all those things excellently. I think that kind of thoughts are like gravity. Once I got lost my conscious in a little bit, that kind of gravity would took me and laid me down. 
  If I wanna be doing something, I really have to grab my conscious or my will power intensely. Otherwise, I would be tugged laziness hell. That's a horrible place I don't wanna go. If I don't wanna go there, I really should get my own orbit. And to make that, I should use my inner energy only. As though, a space ship should speed up to 11.2km/s to get out the earth gravity, I should get that velocity by my will power, too. So, out of sudden, I've got an idea that maybe laziness could be one kind of gravity in my mind. That's all. Not is that a special thought, I know. But today, like other days, I've got some crappy things miscellaneous.



Barack Obama, Speech at 2004 DNC.


  Now, don't get me wrong. The people I meet - in small towns and big cities, in diners and office parks- they don't expect government to solve all their problems. They know they have to work hard to get ahead, and they want to. Go into the collar counties around Chicago, and people will tell you they don't want their tax money wasted, by a welfare agency or by the pentagon. Go into any inner city neighborhood, and folks will tell you that government alone can't teach our kids to learn; they know that parents have to teach, that children can't achieve unless we raise their expectations and turn off television sets and eradicate the slander that says a black youth with a book is acting white. They know those things. 

  자,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시골과 도시에서, 작은 식당과 큰 연회장에서, 제가 만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들을 정부가 전부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열심히 일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다. 시카고 주변의 칼라 카운티들(the Collar Counties)에 가보십시오. 그곳의 사람들은 복지기관이던, 국방부이던 간에 자신들의 세금이 낭비되기를 결코 원치 않는다고 말해줄 것입니다. 시내 한복판에도 가보십시오. 그곳의 사람들은 정부 혼자서 자신들의 아이들이 공부에 열중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없다고 말해줄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아이들이 가진 기대를 높이지 않은 채로, TV를 끄지 않은 채로, 흑인 아이들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백인 흉내 내는 것이라는 비방을 근절하지 않고서는 아이들이 어떤 것도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것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People don't expect government to solve all their problems. But they sense, deep in their bones, that with just a slight change in priorities, we can make sure that every child in America has a decent shot at life, and that the doors of opportunity remain open to all. They know we can do better. And they want that choice.

  사람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선 순위에서의 작은 변화가 미국의 모든 아이들이 모두에게 열려있는 기회의 문을 향한 제대로 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확신을 그들은 뼛속 깊은 곳에서 부터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더욱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그런 선택을 원하고 있습니다. 



  John Kerry believes in America. And he knows that it's not enough for just some of us to prosper; for alongside our famous individualism, there's another ingredient in the American saga, a belief that we're all connected as one people. If there is a child on the south side of Chicago who can't read, that matters to me, even if it's not my child. If there is a senior citizen somewhere who can't pay for their prescription drugs, and having to choose between medicine and the rent, that makes my life poorer, even if it's not my grandparent. If there's an Arab American family being rounded up without benefit of an attorney or due process, that threatens my civil liberties. 

  존 케리는 미국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단지 우리의 어떤 사람들만을 풍요롭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우리의 개인주의와 함께 미국의 영광을 만들어 낸 또 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국민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시카고 남쪽에 읽을 수 없는 아이가 한 명 있다면 그것은 제게 문제가 될 것입니다. 심지어 저의 친자식이 아니라도 말입니다. 만약 어딘 가에 처방된 약을 살 돈이 없거나, 약 값과 집세 중에 선택해야만 하는 노인이 한 분 계신다면, 그건 제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 분이 저의 친조부모가 아니라도 말입니다. 만약 변호사의 도움이나 정당한 절차도 없이 피검된 한 아랍 가족이 있다면, 그것은 저의 시민적 자유를 위협할 것입니다. 

  It is that fundamental belief : I am my brother's keeper, I am my sister's keeper that makes this country work. It's what allows us to pursue our individual dreams and yet still come together as one American family. 

  저는 저의 형제들을 지키는 사람이고, 저의 자매들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것이 이 나라가 돌아가는 방식입니다. 그것은 매우 근본적인 믿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들이 지닌 각자의 꿈들을 추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를 하나의 미국 가족으로 모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The pundits, the pundits like to slice-and-dice our country into Red States and Blue States; Red States for Republicans, Blue States for Democrats. But I've got news for them, too. We worship an "awesome God" in the Blue States, and we don't like federal agents poking around in our libraries in the Red States. We coach Little League in the Blue States and yes, we've got some gay friends in the Red States. There are patriots who opposed the war in Iraq and there are patriots who supported the war in Iraq. We are one people, all of us pledging allegiance to the stars and stripes, all of us defending the United State of America. 

  전문가들, 바로 그 전문가들은 우리 나라를 빨간 지역, 파란 지역으로 잘게 썰어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빨간 지역은 공화당원들을 위한 곳이고, 파란 지역은 민주당원들을 위한 곳입니다. 하지만 저도 그들을 위한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파란 지역에서 우리의 위대한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빨간 지역에서 우리는 우리의 도서관들을 헤집는 정부 요원들을 싫어합니다. 우리는 파란 지역에서 아이들 리그 시합의 코치를 맡고, 우리는 빨간 지역에서 동성애자인 친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애국자들도 있고, 이라크전을 지지하는 애국자들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같은 한 국민입니다. 우리 모두는 국기에 대해 충성을 맹세했고, 우리 모두는 분명 힘을 합해 우리 조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I'm not talking about blind optimism here - the almost willful ignorance that thinks unemployment will go away if we just don't think about it, or the health care crisis will solve itself if we just ignore it. That's not what I'm talking about. I'm talking about something more substantial. It's the hope of slaves sitting around a fire singing freedom songs; the hope of immigrants setting out for distant shores; the hope of a young naval lieutenant bravely patrolling the Mekong Delta; the hope of a mill worker's son who dares to defy the odds; the hope of a skinny kid with a funny name who believes that America has a place for him, too. 

  저는 눈 먼 낙관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실업률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거나, 그저 건강보험위기를 무시하기만 하면 그것이 스스로 해결될 것이라는, 그런 억지스러운 무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좀 더 의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닥불 가까이에 둘러 앉아 자유의 노래를 부르는 노예들이 지닌 것과 같은 희망이고, 멀리 떨어져 있는 해안가를 향해 출발하는 이민자들이 지닌 것과 같은 희망이며, 그것은 메콩 강 삼각주를 용감하게 순찰하는 젊은 장교가 가진 희망이고, 감히 모두의 예상을 넘어선 공장 노동자의 아들이 지닌 희망이고, 특이한 이름을 지닌 깡마른 소년이 바로 이 미국의 땅에 자신이 있을 곳이 틀림없이 있다고 믿는 바로 그런 희망입니다.  

  Hope in the face of difficulty. Hope in the face of uncertainty. The audacity of hope.

  어려움에 마주선 희망이고, 불확실함에 마주선 희망이며, 바로 가장 담대한 희망 입니다. 

  In the end, that is God's greatest gift to us, the bedrock of this nation. A belief in things not seen. A belief that there are better days ahead.

  결국 바로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훌륭한 선물이자 이 나라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더 나은 날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I believe that we can give our middle class relief and provide working families with a road to opportunity. I believe we can provide jobs to the jobless, homes to the homeless, and reclaim young people in cities across America from violence and despair. I believe that we have a righteous wind at our backs and that as we stand on the crossroads of history, we can make the right choices, and meet the challenges that face us. 

  저는 우리가 우리의 중산층에게 안정을 줄 수 있고, 일하는 가정에 기회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우리가 실직자들에게 직장을 제공해 줄 수 있고, 노숙자들에게 집을 제공해 줄 수 있으며, 폭력과 절망으로 부터 우리의 젊은이들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우리가 등 뒤로 올바른 바람을 받으며 역사의 갈림길에서 올바른 선택을 해낼 수 있고, 우리 앞에 닥친 과제들을 충분히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from Barack Obama
2004 keynote address at the Democratic National Convention
in Boston

Script : AmericanRhetoric.com
Translated by carl
주요 부분 발췌 및 의역
Click to Obama 2004 Youtube video



때때로 우리는 우스꽝스러워진다.


  친구들과 한가로이 대학교 광장에서 와인을 마시는 날이었다. 한가로운 광경을 즐기며 실없는 농담들을 주고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친구들에게 내가 일했던 곳에서 모셨던 분께서 내게 해주셨던 이런 저런 조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대략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치열한 노력과 고통의 과정을 거쳐서 이룩하는 그 어떤 것을 느끼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부모 세대의 잘못이라고 말씀하셨다. 부모세대들은 자신의 부모세대들로 부터 훌륭하고 바른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먹고 살기가 조금 풍요로워졌다는 이유로 자신의 자식 세대에게 올바른 교육보다는 과잉의 관심과 보호만을 제공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이셨다. 뭐 일단 나는 부모세대가 아니기도 했고, 당시에도, 지금에도 내가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만한 특별히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그 이야기가 내게 딱히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분의 지적이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내게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 두 명 중 한 명은 그냥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느끼는 바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거나, 아니면 사실 별 대수롭지없지 않게 흘러가는 이야기 중 하나였거니 하는 분위기였다. 다른 한 명은 굉장히 크게 반발했다. 조금 과장해서, 그 따위 생각들 때문에 지금 사회가 이런 모양새라든가, 이래서 노인들이 사회에 도움이 안된다거나 할 정도로 극렬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이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굉장히 "진보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한 이야기도 아니었으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친구가 왜 그렇게 비난하는 지도 알 것만 같았다. 게다가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아무래도 젊은 세대들에게 희생이라던가, 고통이라던가, 노력이라던가 하는 일종의 것들을 뭔가 조금은 과도하게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일종의 "의지 드립" 때문에, 젊은이들이 크게 반항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나 또한 그런 반항에 발을 담그고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 친구의 말이 결코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마냥 치열함만 가지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거나, 지금의 여러 현실적인 고통들이 단지 무조건적으로 버티거나 견뎌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친구의 그런 극렬한 반응은 어찌보면 아이러니 했다. 녀석은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는 어른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의 윗 자리에 있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명문대 의대생이었다. 녀석이 특별히 현실적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아니었다. 여러 친구들 중에서도 녀석만큼의 경제적 환경을 지닌 친구는 손 꼽을 만 했다. 어찌보면 아이러니하다고 할 만도 했다. 모두가 힘들겠지만, 조금은 객관적으로 녀석이 "어려움"이란 걸 손에 묻혀보기는 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하긴 녀석이 오히려 반대로 말했다면 훨씬 더 재수가 없었을 것 같기는 하다. 다른 친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지 그 친구의 반응에 당황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정말 진정으로 녀석에게 공감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런 세속적인 환경의 차이 따위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참으로 좋아하는 친구이고, 지금도 때때로 재미있게 만나고 하는 친구지만, 나는 녀석을 오랜 시간 봐오면서 녀석이 진정으로 자신 만의 무언가를 위해 노력한다거나, 거기에 따르는 현실적 혹은 추상적인 어려움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 의대에 들어갔겠지만, 녀석이 얼마나 잘 숨겼는지는 몰라도 나는 녀석이 "의대"라는 목표를 위해 적어도 억지로라도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고된 공부의 순간들을 이어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는 모두가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모두가 별로 안 힘들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힘들고 고되 보이는 사람도 사실 살면서 손 꼽을 정도로 밖에 보지 못했고, 그 또한 그 사람의 일생의 어떤 일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분의 이야기에서 바로 그런 것을 느꼈다. 적어도 어린 내가 보기에 그 분은 정말 말도 안되는 많은 과정들을 이를 악물고 버텨오셨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뭐 모든 순간을 이를 악물고 버텨내며 고통스럽게 보내는 건 말도 안되겠지만, 최소한 어떤 꿈이나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 이를 악물고 벼텨내고자 하는, 수 많은 노력과 시도는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나는 그 분의 조언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객관적인 비교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어려웠던 과거의 역사를 지내오신 분이고, 환경이 달라지면서 지금의 젊은이들의 자세나 가치관이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적어도 나와 친구들은 밥 굶을 걱정을 하면서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반드시 꼭 그래야한다고 억지 부리려는 건 아니지만, 우리 본인들 모두가 자신의 가능성의 발현을 위해 고통스러운 정진의 과정과 현실적 어려움들을 더욱 치열하게 버티고 노력하는 것은 충분히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냥 문득 떠올랐다. 그 친구 녀석이 며칠 전 내게 자신은 자신이 지향하는 의지를 혼자 세울 만한 그런 인간이 절대 못된다고 태연하게 단언하던 게 생각나서 말이다. 그렇게 때때로 우리 모두는 우스꽝스러워진다. 



2013년 12월 9일 월요일

A stupid thing.


  It may be euphemistic to say "Know Thyself", a famous aphorism in ancient Greece, instead of saying "Know stupid yourself. So, it's damn hard to find genuine myself. The thing what I've truly found is genuine myself, but only thing I've seen is a stupid, It seems not the way it is.  


  "Know Thyself", an ancient Greek aphorism, actually may be an euphemistic expression for "Know how stupid you are". That's the reason why it's hard to get real myself. The thing what I've found is real myself but the only thing I've found is a stupid idiot not seemed to be myself. 



I feel like I got some shortages.


  Enough is great. That would be a state desired by every person. Unfortunately, that's a state that no one could reach. Maybe that's the reason why we wanna get enough all the time. But sometimes, I feel little different. Sometimes, definitely sometimes, I had got an idea when I got a smoke or something. A state of "Not Enough" may be a good thing for everyone. If I'm in enough, I don't do anything. There is no reason made me do something. Probably, just fine. I need nothing to make what might be a great one. I think it's boring. I think sometimes, definitely sometimes, couch-potato may not be an always good one. Same state, same condition, same song and every little part of life being always same is so damn boring. So if someone realize that he or she is in a state "not enough", "shortage", "lack" or kind of those things, surely he or she is gonna try somethin' to reach the enough situation. I think that's gonna be the most interesting moment in the world. The process to make something is always marvelous and memorable. So sometimes, definitely sometimes, falling in a situation called "not enough" or feeling the emotion of "not enough" could be a good thing for anyone "enough". 



2013년 12월 8일 일요일

Movies are always great.


  Movies are always great. They always represents good things, for example, happiness, laugh, overcoming brutal conditions whatever they got, self-conquest, and also many other things. The time when I watched movies, I felt a lot of emotions, definitely in a better way. But also I got a sadness. Because I'm not great, I'm not happy, and I couldn't get over the many problems I had. I think many of you guys feel same thing at all. But we cannot share those feelings. There are so many obstacles and so far a way that I couldn't see any of you guys and you too. So, though the movies make me crazy or sad, movies always gotta be great and always happy or something. In this way, certainly, you guys can talk about the movies, I can hear that, and we can gotta talk, hang out, or share anything good stuff. I'm afraid so, that's the way it is. So movies are always great. Although I'm sad, I could talk and I wanna listen. I like those movies of good things.


That must be kind of crap in English. But I'm practicing, practicing now. That sucks, but I've got to and I'd like it in a degree. I've thought I'm freakin' ridiculous.



2013년 12월 2일 월요일

얼굴이 희멀건 그 녀석.


  군 복무 시절이었다. 여러 후임 중에 흔히 말하는 "섹드립"에 능한 후임이 있었다. 하긴 녀석이 "드립"에 능했다기 보다 자신의 과거 경험들을 우스꽝스러운 재롱에 섞어서 나이스한 타이밍에 치고 빠지는 것이 능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녀석이 우러러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면 오히려 시기를 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녀석은 일본인 순사가 어울렸을 것 같은 얼굴에, 작은 키에 깡마른 체구, 희멀건 피부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걸 그룹이 나오는 TV에 아래에 바짝 엎드려 치마를 올려다보고 있을 때, 모두는 폭소를 터뜨렸고, 녀석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녀석은 언제나 강력하게 자신은 무조건 "처녀"와 결혼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결혼할 여자가 처녀가 아닌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록 자신은 총각이 아니고 휴가를 나갈 때마다 안마방과 사창가를 전전하지만, 절대 자신의 여자친구 혹은 결혼할 여자는 처녀여야 한다고 과장을 섞어 주장했다. 반드시 자신의 여자의 첫경험은 자신이어야 한다. 그것이 녀석의 모토였다. 녀석과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을 법한 다른 부대원들 마저도 녀석에게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며 힐난했지만, 녀석은 강도를 더 높여 주장했다. 그런 녀석의 반응에 언제나 내가 있는 생활관은 웃음바다였다. 
  나는 녀석의 말이 완전한 진심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녀석이 군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던 캐릭터였고, 그것이 녀석이 군 생활에서 겪었을 스트레스의 해소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에게서 어떤 개인적인 존경이나 애정을 느낄 수는 없었다. "이쁜 여자"가 아니면 절대 안된다는 녀석은 때때로 내게 와서 어떻게 하면 구보를 꾸준히 뛸 수 있는지 묻곤 했다. 자신도 자신의 배가 보기 좋지 않다는 걸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매주 주말이 되면 녀석은 다른 모두들 처럼 침낭을 뒤집어 쓴 채 누워서 TV를 보는 것으로 지냈다. 
  군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제대만 하면 TV에 난무하는 걸 그룹들 처럼 귀엽고 예쁜 여자 후배를 "따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보낸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예외라고 억지부릴 생각은 없다. 그런 생각 자체가 불결하고 저속하다는 고상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의(혹은 우리의) 자신감이 아쉽다. 매일 24시간을 "이쁜 여자"를 만나서 자고 싶다는 이야기만 해대는 그들이(혹은 우리가) 정말 그렇게 "이쁜 여자"를 꼬셔서 자기 위해 자신을 가꾸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 "이쁜 여자"도 틀림없이 사람일 텐데, 게다가 이쁘다는 걸 본인 스스로가 알 텐데, 뭐가 좋다고 덜 떨어진 남자를 만나겠는가. 그것도 저런 불결한 욕망 만으로 가득 찬 인간들을 말이다. 
  농담일 뿐이었겠지만, 그 후임 녀석의 그런 캐릭터에 담긴 생각이 아쉽다. 정말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투자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런 저속한 생각을 갖지도 않게 되겠지만, 그들이 그토록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이쁜 여자"에 꿀리지 않을 만큼 "멋진 남자"가 될 가능성을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침낭 속에 짱박고 있는 것 말이다. 바로 안주(安主)말이다.



Earth song.








  마이클 잭슨의 1996년 내한 공연 때 일이다. 그가 Earth Song이라는 곡을 열창할 때, 팬 한 명이 무대 위로 뛰쳐올라와 그를 껴안았다. 마침 무대 위를 가로지르는 공연 장치 위에 있을 때라, 보안 요원들은 그를 제지하지 못했고, 2분 여의 시간 동안 그 팬은 잭슨을 껴안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Earth Song 라는 곡에서 분명하게 알아들었던 부분은 "I used to dream. I used to glance beyond star." 밖에 없었다. 사실 가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곡 내내 이어지는 잭슨의 절규와 호소만 보아도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 것만 같았다. 
  내한 공연에서 잭슨은 뛰어들어오는 팬을 막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단지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예정된 이벤트 였던 것 처럼 그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공연 장치에서 행여 팬이 떨어지지 않을까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꽉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팬의 허리를 꼭 감싸쥐었다. 공연장치가 지상으로 내려 왔을 때, 잭슨의 손을 잡고 절대 놓지 않으려했던 그 팬의 심정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연 후 보안 문제를 가지고 옥신각신 다투고 있을 때, 잭슨이 "우리가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었던 기막힌 쇼였다." 다며 오히려, 감사를 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나는 그와 같은 시대를 공유하였다. 그에게는 역사적이고 특별한 시간들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범상한 시간들이었을 뿐이다. 이집트 혁명이 한창 발발하고 있을 때, 긴박한 시간들이 조여오며 그들에게 흐르고 있을 때, 나는 태평하게 열람실 한 구석에 앉아 시답지 않은 전공시험공부나 붙잡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이 역사적인 메시지들을 공연을 통해 전 세계에 보내고 있을 때, 나는 그를 외면한 채, 어떤 평범하고 바보같은 시도들에 매몰되어 있었을까. 부끄러운 하루하루의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