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일 월요일

얼굴이 희멀건 그 녀석.


  군 복무 시절이었다. 여러 후임 중에 흔히 말하는 "섹드립"에 능한 후임이 있었다. 하긴 녀석이 "드립"에 능했다기 보다 자신의 과거 경험들을 우스꽝스러운 재롱에 섞어서 나이스한 타이밍에 치고 빠지는 것이 능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녀석이 우러러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면 오히려 시기를 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녀석은 일본인 순사가 어울렸을 것 같은 얼굴에, 작은 키에 깡마른 체구, 희멀건 피부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걸 그룹이 나오는 TV에 아래에 바짝 엎드려 치마를 올려다보고 있을 때, 모두는 폭소를 터뜨렸고, 녀석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녀석은 언제나 강력하게 자신은 무조건 "처녀"와 결혼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결혼할 여자가 처녀가 아닌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록 자신은 총각이 아니고 휴가를 나갈 때마다 안마방과 사창가를 전전하지만, 절대 자신의 여자친구 혹은 결혼할 여자는 처녀여야 한다고 과장을 섞어 주장했다. 반드시 자신의 여자의 첫경험은 자신이어야 한다. 그것이 녀석의 모토였다. 녀석과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을 법한 다른 부대원들 마저도 녀석에게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며 힐난했지만, 녀석은 강도를 더 높여 주장했다. 그런 녀석의 반응에 언제나 내가 있는 생활관은 웃음바다였다. 
  나는 녀석의 말이 완전한 진심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녀석이 군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던 캐릭터였고, 그것이 녀석이 군 생활에서 겪었을 스트레스의 해소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에게서 어떤 개인적인 존경이나 애정을 느낄 수는 없었다. "이쁜 여자"가 아니면 절대 안된다는 녀석은 때때로 내게 와서 어떻게 하면 구보를 꾸준히 뛸 수 있는지 묻곤 했다. 자신도 자신의 배가 보기 좋지 않다는 걸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매주 주말이 되면 녀석은 다른 모두들 처럼 침낭을 뒤집어 쓴 채 누워서 TV를 보는 것으로 지냈다. 
  군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제대만 하면 TV에 난무하는 걸 그룹들 처럼 귀엽고 예쁜 여자 후배를 "따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보낸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예외라고 억지부릴 생각은 없다. 그런 생각 자체가 불결하고 저속하다는 고상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의(혹은 우리의) 자신감이 아쉽다. 매일 24시간을 "이쁜 여자"를 만나서 자고 싶다는 이야기만 해대는 그들이(혹은 우리가) 정말 그렇게 "이쁜 여자"를 꼬셔서 자기 위해 자신을 가꾸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 "이쁜 여자"도 틀림없이 사람일 텐데, 게다가 이쁘다는 걸 본인 스스로가 알 텐데, 뭐가 좋다고 덜 떨어진 남자를 만나겠는가. 그것도 저런 불결한 욕망 만으로 가득 찬 인간들을 말이다. 
  농담일 뿐이었겠지만, 그 후임 녀석의 그런 캐릭터에 담긴 생각이 아쉽다. 정말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투자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런 저속한 생각을 갖지도 않게 되겠지만, 그들이 그토록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이쁜 여자"에 꿀리지 않을 만큼 "멋진 남자"가 될 가능성을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침낭 속에 짱박고 있는 것 말이다. 바로 안주(安主)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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