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한가로이 대학교 광장에서 와인을 마시는 날이었다. 한가로운 광경을 즐기며 실없는 농담들을 주고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친구들에게 내가 일했던 곳에서 모셨던 분께서 내게 해주셨던 이런 저런 조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대략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치열한 노력과 고통의 과정을 거쳐서 이룩하는 그 어떤 것을 느끼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부모 세대의 잘못이라고 말씀하셨다. 부모세대들은 자신의 부모세대들로 부터 훌륭하고 바른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먹고 살기가 조금 풍요로워졌다는 이유로 자신의 자식 세대에게 올바른 교육보다는 과잉의 관심과 보호만을 제공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이셨다. 뭐 일단 나는 부모세대가 아니기도 했고, 당시에도, 지금에도 내가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만한 특별히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그 이야기가 내게 딱히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분의 지적이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내게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 두 명 중 한 명은 그냥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느끼는 바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거나, 아니면 사실 별 대수롭지없지 않게 흘러가는 이야기 중 하나였거니 하는 분위기였다. 다른 한 명은 굉장히 크게 반발했다. 조금 과장해서, 그 따위 생각들 때문에 지금 사회가 이런 모양새라든가, 이래서 노인들이 사회에 도움이 안된다거나 할 정도로 극렬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이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굉장히 "진보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한 이야기도 아니었으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친구가 왜 그렇게 비난하는 지도 알 것만 같았다. 게다가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아무래도 젊은 세대들에게 희생이라던가, 고통이라던가, 노력이라던가 하는 일종의 것들을 뭔가 조금은 과도하게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일종의 "의지 드립" 때문에, 젊은이들이 크게 반항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나 또한 그런 반항에 발을 담그고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 친구의 말이 결코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마냥 치열함만 가지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거나, 지금의 여러 현실적인 고통들이 단지 무조건적으로 버티거나 견뎌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친구의 그런 극렬한 반응은 어찌보면 아이러니 했다. 녀석은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는 어른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의 윗 자리에 있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명문대 의대생이었다. 녀석이 특별히 현실적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아니었다. 여러 친구들 중에서도 녀석만큼의 경제적 환경을 지닌 친구는 손 꼽을 만 했다. 어찌보면 아이러니하다고 할 만도 했다. 모두가 힘들겠지만, 조금은 객관적으로 녀석이 "어려움"이란 걸 손에 묻혀보기는 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하긴 녀석이 오히려 반대로 말했다면 훨씬 더 재수가 없었을 것 같기는 하다. 다른 친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지 그 친구의 반응에 당황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정말 진정으로 녀석에게 공감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런 세속적인 환경의 차이 따위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참으로 좋아하는 친구이고, 지금도 때때로 재미있게 만나고 하는 친구지만, 나는 녀석을 오랜 시간 봐오면서 녀석이 진정으로 자신 만의 무언가를 위해 노력한다거나, 거기에 따르는 현실적 혹은 추상적인 어려움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 의대에 들어갔겠지만, 녀석이 얼마나 잘 숨겼는지는 몰라도 나는 녀석이 "의대"라는 목표를 위해 적어도 억지로라도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고된 공부의 순간들을 이어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는 모두가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모두가 별로 안 힘들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힘들고 고되 보이는 사람도 사실 살면서 손 꼽을 정도로 밖에 보지 못했고, 그 또한 그 사람의 일생의 어떤 일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분의 이야기에서 바로 그런 것을 느꼈다. 적어도 어린 내가 보기에 그 분은 정말 말도 안되는 많은 과정들을 이를 악물고 버텨오셨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뭐 모든 순간을 이를 악물고 버텨내며 고통스럽게 보내는 건 말도 안되겠지만, 최소한 어떤 꿈이나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 이를 악물고 벼텨내고자 하는, 수 많은 노력과 시도는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나는 그 분의 조언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객관적인 비교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어려웠던 과거의 역사를 지내오신 분이고, 환경이 달라지면서 지금의 젊은이들의 자세나 가치관이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적어도 나와 친구들은 밥 굶을 걱정을 하면서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반드시 꼭 그래야한다고 억지 부리려는 건 아니지만, 우리 본인들 모두가 자신의 가능성의 발현을 위해 고통스러운 정진의 과정과 현실적 어려움들을 더욱 치열하게 버티고 노력하는 것은 충분히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냥 문득 떠올랐다. 그 친구 녀석이 며칠 전 내게 자신은 자신이 지향하는 의지를 혼자 세울 만한 그런 인간이 절대 못된다고 태연하게 단언하던 게 생각나서 말이다. 그렇게 때때로 우리 모두는 우스꽝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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