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왜 고양이는 항상 죽는가.


  어떤 고려대생이 학교에 커다랗게 대자보를 붙였다고 한다. 참으로 정성이 갸륵한 일이다. 주요 내용은 철도 파업으로 4,213명이 직위 해제 된다는 데, 너님들은 어째 잘 먹고 잘 살고 계시냐는 물음이었다. 대자보를 쓴 학생이 경영대 학생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정성이 담긴 그의 글씨체에 한 번 더 놀랐다. 뭐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불평들이었기에 대단히 감명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고민을 담아놓은 것 같아 귀를 기울여보게 되었다. 
  그래서 우스꽝스러운 작금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관심이라도 가져보고자 철도 파업에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은 듯 했다. 첫째, 지금의 파업을 불법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둘째, 정말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민영화로 이어질 것인가. 이 두 가지 쟁점에서 사측과 노동자측은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먼저 과연 지금의 파업을 불법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주로 사측(혹은 파업을 반대하는 입장)은 이번 파업이 철저히 불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먼저 노동자측이 내걸고 있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반대는 파업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는 근로조건개선과는 관계가 먼 단순한 정책 반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정부정책 반대를 이유로 파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국민을 볼모로 한 협박이라고 평가한다. 따라서 이번 파업은 불법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조측(혹은 파업을 지지하는 입장)은 가장 촉망받는 라인이자 장차 훌륭한 캐시카우(cash-cow)가 될 수서발 KTX를 자회사 설립을 통해 분리하고, 포기한다는 것은, 현재 적자에 허덕이는 코레일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며, 이것이 틀림없이 근로조건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관점이다. 따라서 이번 파업은 정당한 파업권의 행사이며, 더 나아가 파업권 행사에 필요한 조건들(파업계획의 사전 공시 등)을 최소한 적으로 갖추었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 정말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로 이어질 것인가.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수서발 KTX는 민영화가 아니다", "민영화가 된다면 철로에 드러누워서라도 막겠다" 라는 호기로운 패기를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의지를 천명했다. 실제 지난 5일 공개된 수서발 KTX 운영안에 따르면 코레일 지분이 41%로 확대되고, 공공자금 참여가 부족 할 경우 필요한 자금은 정부 운영기금이 사용되며, 주식의 양도, 매도 대상이 전부 정부, 지자체로 한정된다. 더 나아가 코레일이 흑자를 거둘 시 코레일의 지분을 꾸준히 늘린다는 것이다. 사측은 민영화가 될 여지를 사전 차단했다고 덧붙였다. 
  노조 측은 일단 별도 법인화 자체가 민영화를 향해가는 과정의 시작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 일단 코레일이 지분을 늘릴 만큼 향후 대단한 흑자가 기대되지도 않을 뿐더러, 코레일의 지분이 늘어났고, 동시에 그외 공공기금이라는 특성 상 정부의 상명에 따른 임의적 의지에 따라 향후 정관이 충분히 변경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6개월 만에 분할 반대에서 분할 찬성으로 바뀐 코레일의 입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최근 박 대통령이 재가한 WTO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에 따르면 이 같은 사업에 국제 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품고 있다. 
  이 같은 치열한 입장의 대치는 더 큰 문제를 가져왔다. 대자보에서 언급한 것처럼, 파업이 지속되자 코레일 사측에서 단호하게 파업 참가 4,213명을 직위해제했고, 방금 1,585명을 추가로 직위해제 할 것이라고 통보한 것이다. 이제 파업 참가자들은 전부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사측은 다시는 이런 협박을 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사례를 남기기 위해 그렇게 한다고 밝혔다. 

  사실 내가 이래저래 뭐라 논평할 입장은 못된다고 생각한다. 파업의 불법성이야 공명정대한 법관님들이 판단할 일이고, 철도 민영화의 경제적 파급력은 머리회전 빠른 경제연구원님들이 판단하실 일이다. 그래도 굳이 관심을 가져보라고 대자보에서 호소하길래 그래도 생각이라도 해보려고 한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볼 때, 최소한 정치적 명분은 노조 측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수서발 KTX의 자회사 설립이 근로조건에 미칠 영향은 절대 구체적이거나 직접적인 형태의 것이 아니다. 간접적이고 잠재적이어서 추측 이나 우려의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불법적 파업이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근로조건개선과의 연관성을 설명해야하는 의무가 노조 측에게 갈 뿐더러, 그것을 설명해내는 것은 이야기가 복잡해지고 길어진다. 이것은 제대로 대중에 전달하기도 힘든 내용일 것이다. 내가 볼 때는 그것이 문제가 될 것 같다. 실제로 연관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입증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게다가 코레일 측이 구체적인 운영안을 공개하면서 철도 민영화 반대라는 구호가 단순히 정말 구호로만 남을 가능성까지 안게 되었다. 현재로써는 그 운영안이 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단하기가 어렵다. 자회사라고는 하지만 철저히 공적자금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획안까지 나온 상태다. 그리고 자회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는 그것이 코레일의 운영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물론 다른 사례들이 있겠지만, 이번 대단위 파업을 정당화 할 만큼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해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노조 입장이 곤란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관을 바꾸던, 해외자본참여가 허용되던, 대통령 말에만 따르던, 그것은 전부 "잠재성"을 가진 이야기일 뿐이고, 그 잠재성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직은 실현되지 않았고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이다. 아무리 심증이 가득하다고 해도, 그건 언제나 심증일 뿐이다. 이것은 "민영화"라는 정치적 구호를 실체도 없이 사용했다는 여론의 비난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는 코레일이 재빠르게 직위해제를 단행한 것도 노조측이 지닌 명분이 그리 단단하지 못하다고 보아서 일 것이라고 본다. 그나마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언론에서도 철도 파업의 정치적 명분 혹은 정당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을 나는 때때로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대단위 파업이지만, 열차 운행에 큰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도 아니며, 그 만큼 대단한 여론의 관심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거기에 철도에 드러누워서라도 민영화를 막겠다거나 (물론 립서비스이겠지만)부모의 심정으로 임직원들을 기다리겠다는 언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코레일 사장은 그나마 남은 여론의 동향마저 단호하게 기울인 것 같다. 더 나아가 엄청난 단위로 직위해제를 추진하면 노조측의 단합력이 스스로 붕괴되고, 그 갈 곳 없는 잔재들을 어차피 자신들이 "좋은 조건"에서 충분히 재흡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측이 판단했을 것 같다. 
  파업이란 건 치킨 게임이다. 어차피 장기적으로 갈 수 없다. 나는 이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산별 노조 식의 파업 게임이 제왕적 대통령 중심 혹은 국가중심의 우리나라 사회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전국연합노조 따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그냥 개인적으로 판단한다면, 꼭 민영화는 아니더라도 민영화 그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되가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노조 측이 느끼는 불안감에 충분히 공감한다는 이야기다. 간단히 말하자면 저렇게 훌륭한 먹이감을 자본들이 결코 놓칠 수 없고, 그 자본들이 내어놓는 "수치"라는 것에 정치인들이 매혹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 정도 랄까. 아무리 그들이 그런 불안감을 설득하려고 해도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사측의 이야기에는 너무나 단호하게 막힐 수 밖에 없다. 어쨌건 쟁점이 되는 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체적이고 단호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여론에게 매혹적이다.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건 언제나 정적일 수 밖에 없으니 그럴 것이다. 
  노조 측이 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구체적인 사실에 지고, 다음의 순간에는 조용히 결국 그 불안감이 현실화가 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밀려온다. 결국 노조들이 내놓고자 하는 메세지는 국가와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 손의 뽑고, 우리 손으로 떠받들고 있는 정부와 국가를 바로 우리가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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