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5일 일요일

Cloud 9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가 기어이 9번째 게리 베버 오픈Gerry-weber open(할레 오픈) 우승을 달성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할레오픈 결승에 올랐던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는 두번째 준우승에 만족해야했다. 
  6-1, 6-3. 고작 단 한번의 브레이크 포인트 상황만을 내줬을 뿐인 페더러의 결승전은 1시간도 안되서 완승으로 끝났다. 빅4에 이어 차기 넘버 원이 될 유력한 후보인 즈베레프는 지난 몬테카를로에서는 king of clay에게 완벽하게 클레이 레슨을 받더니, 할레에서는 황제에게 완벽한 잔디 레슨을 받았다.



출처: atpworldtour.com


  결승에서는 두 가지 점이 눈에 띄었다. 첫째, 페더러는 허리 남짓 적당한 높이로 튀어오르는 잔디코트의 빠른 볼을 그 누구보다 확실히 후려팰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과시했다는 점이다. 즈베레프가 스트록을 날릴때마다 페더러는 포핸드 백핸드 가리지 않고 더 강력한 스트로크로 돌려줬다. 높게 튀지 않고 빠른 잔디 표면위의 공은 페더러의 완벽한 스윙과 무거운 라켓에 걸려 완벽한 컨트롤을 갖춰 되돌아갔다. 즈베레프는 받아치기에 급급하니 베이스라인 뒤로 점점 물러설 수 밖에 없었고, 경기리듬을 완전히 잃었다.
  두 번째는 완벽한 드랍샷과 경기운용능력이다. 페더러는 어느때보다 많은 드랍샷을 선보였다. 즈베레프가 조금만 뒤로 물러난다 싶으면 여지없이 드랍샷을 사용했고, 드랍샷은 거의 모두 완벽한 궤적을 그리며 네트를 살짝 넘어 떨어졌다. 느린 선수는 아닌 즈베레프가 열심히 뛰어와봤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행여 받아 넘긴다 한들 이어지는 건 페더러의 정확한 발리포인트 뿐이었다. 
  그렇게 즈베레프는 서브, 발리, 스트록 그리고 공격은 물론 방어까지 모든 측면에서 페더러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 그는 정신적으로도 승리하기 어려워보였다. 페더러의 강한 스트록에 밀리는 상황에서 드랍샷까지 연타로 날아오니, 공을 받으랴, 코트 앞에 정신없이 뛰어가랴. 즈베레프는 완전히 말렸다. 그가 정신없어 보이는 건 네트를 향해 뛰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만 했고, 그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네 게임이나 딴 것도 대단히 칭찬받을 일이었다. 그만큼 페더러가 강했다. 
  호주오픈 우승 후 페더러가 자신의 기분을 클라우드 나인(cloud nine; 구름위에 있는 것 처럼 들뜨고 행복한 상태)에 있다고 언급해댔어서 그런지 이번 9번째 우승을 여기저기서 cloud 9이라고 불러대고 있는 것 같다. 
  그가 그만큼 기쁘건 어쩌건 그의 이번 대회 우승은 다가올 윔블던에서 사실상 적이 없다는 것을 미리 선언한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앤디머레이Andy Murray가 졸전을 보여주며 에건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탈락하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망할 아디다스



  아디다스Adidas. 전통있는 이 스포츠 브랜드는 왠지 모르게 2류같은 느낌이 있다. 부동의 넘버원 나이키Nike에 비해 왠지 어딘가 딸리는 듯한 바로 그런 느낌 말이다. 북미에서는 이미 언더아머Under Armour에 매출 2위 자리를 내줬다고 한다. 아마도 상품의 질이나, 가격과 같은 문제라기 보다는 마케팅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아디다스의 야심찼던 NBA 빅3 팀 던컨, 케빈 가넷 그리고 티맥. 기량은 대단했지만, 아디다스의 그들은 마케팅적으로는 조던은 커녕, 코비 혼자만을 상대하기에도 벅찼다. 이후 아디다스는 드와이트 하워드, 데릭 로즈, 제임스 하든 등을 내세웠지만, 르브론, KD, 어빙이 버티는 나이키는 커녕, 최근 들어와서는 스테판 커리의 언더아머에게도 버거운 수준이다.



  테니스 스폰서십에 있어서는 어떨까. 86명의 상위 남자 테니스 선수 중 의류를 나이키와 아디다스에서 스폰 받는 선수가 각각 17명과 12명이고, 신발은 각각 25명과 15명이다. 데이터 전체의 1/3에서 절반 가량을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차지하고 있다. 세계랭킹 기준으로 상위 12명의 스폰서십은 다음과 같다. 


※ 랭킹, 선수이름 - 라켓/의복/신발

1. Andy Murray - HEAD/Under Armour/Under Armour
2. Rafael Nadal - Babolat/Nike/Nike
3. Stanislas Wawrinka - Yonex/Yonex/Yonex
4. Novak Djokovic - HEAD/Lacoste/Adidas
5. Roger Federer - Wilson/Nike/Nike
6. Milos Raonic - Wilson/new balance/new balance
7. Marin Cilic - HEAD/FILA/LI-NING
8. Dominic Thiem - Babolat/Adidas/Adidas
9. Nishikori Kei - Wilson/UNIQLO/Nike
10. Joe Wilfred Tsonga - Babolat/Adidas/Adidas 
11. Grigor Dimitrov - Wilson/Nike/Nike
12. Alexander Zverev - HEAD/Adidas/Adidas


  뭐 대단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잔뜩 서설을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그냥 아디다스가 못마땅해서이다. 
  나이키를 보자. 과거에는 존 맥켄로John McEnroe,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 안드레 아가시Andre Agassi, 현재에는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가히 역대급 선수들을 품으며 나이키는 테니스계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만들어왔다. 특히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최상위의 위치에서 각각의 스토리를 갖고 활약하고 있는 페더러와 나달을 브랜드화하면서 그들은 지독하리만큼 이익을 뽑아내고 있다.



출처:nike.com



  반면 아디다스는 나이키의 아성, 페더러와 나달의 아성, 에 도전하기에는 벅차다 싶었는지, 자신들이 후원하던 조코비치와 머레이를 차례로 포기하고, 유망주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방침이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 바로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과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이다. 2017 시즌 들어 그들은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특히 티엠은 클레이 스페셜리스트로 오랜시간 탑10에 머무르며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출처: rolandgarros.com 


출처: atpworldtour.com



  정말 저 망할 녹색 셔츠좀 그만봤으면 좋겠다. 아디다스는 올 초에는 위 사진과 똑같은 디자인에 색깔만 주황색인 셔츠를 모든 선수를 대동해 밀어대더니, 롤랑가로스 부터는 저 망할 녹색 셔츠로 온 선수들의 복장을 통일 시켜놨다. 뭐 선수 한 명, 한 명 커스터마이징 하기는 무리라지만, 적어도 최상위 몇 명은 충분히 커스터마이징 해줄 수도 있지 않은가. 
  아디다스가 후원하는 선수인 도미닉 티엠과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모두 충분한 스타성과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이다. 이번 클레이시즌에서도 충분히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즈베레프는 로마 마스터즈를 가져갔고, 티엠은 king of clay의 적장자로 여겨질법한 놀라운 성장을 보여줬다. 특히 티엠이 클레이에서 보여준 투지넘치는 활동량과 빅4를 무너뜨린 전적들은 테니스스타로서 그의 이미지를 확실히 구축할 수 있는 재료이다. 그의 이야기를 잘만 커스터마이징 해낸다면, 장기적으로는 나이키와 나달도 부럽지 않을 마케팅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게을러 터진 아디다스는 여전히 티엠에게 저 촌스러운 녹색 기성복 셔츠를 입히고 있다. 바뀐게 있다면 바지가 녹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었다는 것 뿐이다. 뭐 취향차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저 디자인이 정말 별로이다보니 유독 더 안타깝다. 아디다스 매장에서 69,000원 씩이나 줘야하는 저 옷은 멀쩡한 사람도 찐따처럼 만드는 마법까지 있다. 그나마 티엠이 입었기에 저정도 매무새인 거다. 
   반면 나이키는 참 이미지 메이킹을 잘한다. 왠지 정말 간지나게 모델들을 내세운다. 애초에도 좀 간지나는 선수들을 골라 영입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들이 더욱 간지나보이게 마케팅을 한다. (10 is RAFA만 봐도 그렇다.) 비록 특별히 섹션을 만들어두고 커스터마이징하는 선수는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뿐이지만, 나이키는 그리고르 디미트로프나, 닉 키르기오스 같은 선수들을 결코 내버려 두는 법이 없다. 보르나 초리치Borna Coric, 카일 에드먼드Kyle Edmund, 카렌 카차노프Karen Kachanov 같은 선수들 또한 나이키는 틀림없이 지켜보고 있다가 상품성이 뜬다 싶으면 여지없이 전면에 내세워 써먹을 것이다.



만약 키르기오스가 티엠 정도의 성적을 거뒀다면 어땠을까.
출처: nike.com 


  티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참 저 멍청한 아디다스 티셔츠를 쳐다보고만 있어도 화가 난다. 그나마 작년 롤랑가로스 때의 얼룩말 무늬 같은 디자인은 나름 매력이라도 넘쳤다. 하지만 올해의 저 바보같은 디자인은 도무지 용서가 안될다. 티엠같이 스타성을 지닌 선수를 써먹을줄 모르는 게으른 아디다스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달이 잠시 주춤하자, 하얀색 뉴 퓨어 스트라이크를 냉큼 티엠과 함께 내세워 라켓을 미친듯이 팔아먹고 있는 바볼랏의 반 만이라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 




출처: www.babolat.us





2017년 6월 17일 토요일

Wimbledon Wimbledon Wimbledon



  유럽 클레이 코트 시즌이 끝났다. king of clay는 자신이 말그대로 king of clay라는 것을 입증했고, 오스트리아의 신예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은 king of clay의 후계자임을 공고히했다. 비록 로마 마스터즈는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가 가져갔지만, 이번 클레이 시즌은 사실 상 위 두 선수가 지배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king of clay의 10번째 롤랑가로스 우승이 끝난 후 2주 후면 윔블던 예선이 시작되고, 3주후면 윔블던 본선이 시작된다. 원래 롤랑가로스가 끝난 후 1주일이면 윔블던 예선이 시작되던 것을 ATP가 올해부터 한 주 더 미뤘다. 선수들에게 휴식과 적응기간을 조금 더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출처: independent.co.uk, getty images



  윔블던 시작 전 3주 동안, 250대회-500대회-250대회 이렇게 세 번의 잔디코트 대회일정이 있다. 500대회에는 할레 오픈Halle Open과 에건 챔피언쉽Aegon Championship이 있다. 이 중 에건 챔피언쉽은 영국의 Queen's club tennis에서 열리는 대회로 윔블던의 워밍업 대회쯤으로 여겨진다.영국에서 열리는 대회 답게 대회 최다 우승자는 앤디 머레이Andy Murray다. 2013년과 2016년에는 윔블던도 함께 우승했다. 현역선수로는 머레이와 함께 라파엘 나달Rafael Nadal(2008년)만이 더블을 달성했다. 
  독일에서 열리는 할레 오픈은 윔블던과 함께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의 본진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그는 이 대회만 8번 이나 우승했는데, 이는 페더러 자신의 단일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이자, 단일 선수의 할레오픈 최다 우승기록이다. 비록 지난해 페더러는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를 4강에서 만나 패하면서 탈락했지만, 이 곳이 그의 본진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잔디 시즌에는 마스터즈 1000 대회가 없어서 윔블던을 제외하면 500대회인 애건 챔피언쉽과 할레 오픈이 가장 큰 대회다. 심지어 500대회로 승격한 것도 불과 2년 전인 2015년이다. 페더러가 나달과 조코비치보다 마스터즈 1000 대회 우승 횟수가 적은 것은 잔디코트를 쓰는 마스터즈 1000 대회가 없어서 일 것이다. 
  그래서 잔디 시즌은 사실상 "윔블던을 누가 우승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모든 관심이 몰린다. 지난해에는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분명한 우승후보였지만, 올 시즌은 조금 복잡해졌다.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롤랑가로스 우승을 차지한 라파엘 나달Rafael Nadal도 유력 후보군에 올랐고, 호주오픈에서 18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들어올린 황제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도 더없이 강력한 우승 후보다. 여기에 올 시즌 부진하고 있지만, 롤랑가로스 4강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여준 디펜딩 챔피언 앤디 머레이Andy Murray도 여전히 유력하다. 




1.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5)

   - 우승 7회(03,04,05,06,07,09,12), 준우승 3회(08,14,15)
   - 최근 3년 : 준우승-준우승-4강
   - 2017 호주오픈 우승 + 나달 트라우마 극복으로 상승세
   - 클레이시즌 건너 뛰면서 충분히 휴식, 윔블던 올인



출처:indianexpress.com


  현재 윔블던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이다. 2014년과 2015년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에 막혀 준우승에 그친 페더러는 지난해에도 4강에 진출했으나, 풀세트 접전을 연타로 거치면서 밀로스 라오니치Milos Raonic에게 아쉽게 패배했다. 그는 윔블던의 상징같은 존재이지만 2012년 이후 윔블던 우승이 없는데다, 윔블던 우승 외에 딱히 노릴만한 목표도 없다. 그래서 그는 그 누구보다 이번 대회 우승에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번 윔블던에서 8번 째 우승을 해낸다면,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7회)를 넘어 윔블던의 완전한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지난 호주오픈 때만큼의 경기력이라면, 윔블던에서 페더러의 적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잔디 코트에서 호성적을 보이는 앤디 머레이Andy Murray 정도가 있지만, 여전히 머레이는 페더러에게 위협은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다. 페더러의 윔블던 우승을 최근 2번이나 저지했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이미 슬럼프에 접어들어 있다. 최근 무서운 기세로 클레이를 평정한 king of clay는 페더러의 강력한 천적이었지만, 최초로 페더러에 대한 연패기록을 갱신하는 중인데다, 이미 올 시즌에만 3패를 기록하고 있다. 잔디보다 느린 하드코트에서조차 나달은 페더러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바운드가 매우 빠른 잔디코트는 서브와 발리를 자유자재로 쓰는 페더러에게 더욱 유리한 조건이라, 나달이 위협이 되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올해 페더러는 아예 클레이 코트 시즌을 건너 뛰었다. 페더러는 과거 인터뷰에서 클레이코트에서 나달에게 패하고 윔블던에 임하는 것이 자신감의 측면에서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나이 든 페더러에게 힘들기만 하고 성적을 내기는 어려운 클레이 시즌을 아예 건너 뛰었으니 윔블던에 대한 준비는 충분히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처럼 느닷없이 빅서버에게 경기 초반을 내주면서 풀세트 경기가 되지 않는 한, 페더러는 최소 4강은 물론 우승도 충분히 해낼 것 같다. 
  페더러의 우승에 유일하게 방해가 될만 한 요소가 있다면 시드 배정일 것이다. 랭킹에 잔디코트 성적을 포함시켜 시드를 배정하는 윔블던 특성상 시드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 페더러의 랭킹대로 5번 시드를 받게 된다면 페더러는 8강에서 머레이나 나달, 조코비치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이 든 그에게는 꽤나 부담이 될 것이다. 


※  너무 오래 쉰 탓인지, 첫 잔디 대회인 슈투트가르드 오픈에서 페더러는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39세 노장 토미 하스Tommy Haas에게 6:2, 6:7(8), 4:6으로 역전패를 당하며 자신의 잔디시즌 첫 경기를 패배로 장식했다. 



2. 앤디 머레이Andy Murray(1)

   - 우승 2회(13,16), 준우승 1회(12)
   - 최근 3년 : 8강-4강-우승
   - 디펜딩 챔피언, 홈 어드밴티지, 올 시즌 1000+ 우승 없어서 동기부여 높음
   - vs Federer, 최근 5전 전패, 잔디 코트 전적 0-2 
  





  작년 말부터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앤디 머레이는 굴욕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까지 그의 올 시즌 우승 타이틀은 500대회인 두바이 오픈이 유일하고, 1000+ 대회에서는 아예 결승에 진출한 적도 없다. 롤랑가로스 4강에 오른 게 최고 기록이다. 1000시리즈에서는 아예 초반부터 탈락하느라 바빴다. 조코비치도 나란히 부진 중이기에 랭킹 1위가 유지되고 있지만, 이번 윔블던에서도 초반 라운드에서 탈락한다면 랭킹 1위 자리도 나달에게 위협받을 판이다. 
  지난해 페더러가 랴오니치에게 탈락해 준 덕에 머레이는 결승에서 랴오니치를 만나 가볍게 3:0으로 승리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는 녹록치 않을 듯 싶다. 페더러가 클레이 시즌까지 건너뛰고 휴식을 충분히 취한데다, 호주오픈 우승으로 자신감도 붙었고, 동기부여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레이는 최근 상승세인 라파엘 나달을 만났을 때, 승리한다고 전망하기도 어렵다. 머레이는 나달과 잔디에서 3번 맞붙어 3번 다 졌다. 전부 윔블던이었다. 머레이는 나달에게 트라우마가 있다고 할만큼 허무하게 패배했다. 머레이는 나달이 윔블던에서 사라진 이후 결승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2011년 준우승 이후 나달의 윔블던 최고 성적이 2014년 4라운드라는 것을 감안하면 나달이 머레이를 쉽게 이긴다는 예상도 어렵지만, 롤랑가로스에서 엄청난 기세를 보여준 것을 감안하면 또 머레이가 쉽게 이긴다고 예상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머레이는 윔블던의 강력한 우승후보다. 롤랑가로스에서 폼을 끌어올렸고, 윔블던 전에 열리는 에건 챔피언쉽에서 선전한다면 윔블던에서의 자신감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누가 뭐라건 윔블던은 머레이의 홈이고, 머레이가 가장 선전하는 코트도 잔디코트다. 머레이의 빠른 백핸드는 여전히 잔디에서 강력하고, 열심히 뛰어다니기에 푹신한 잔디코트는 매우 편안한 곳이다. 머레이가 우승한 그랜드 슬램 3회 중 2회는 윔블던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적어도 4강까지는 무난히 진출할것으로 보인다. 페더러만 잘 피하면 될 듯하다. 





3. 라파엘 나달Rafael Nadal(2) 

   - 우승 2회(08,10), 준우승 3회(06,07,11)
   - 최근 3년 : 4라운드(16강)-2라운드(64강)-불참
   - 2017 클레이시즌에서 La Decima 이루면서 완벽하게 재기
   - 롤랑가로스 무실세트 우승 -> 윔블던 우승, 2008-2010-2017(?)



출처:atpworldtour.com



  10번째 롤랑가로스 우승을 압도적인 기량으로 나달이 해내자, 사람들은 나달의 윔블던도 기대해볼만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대략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달은 2008년과 2010년에도 무실세트로 롤랑가로스를 우승했는데, 이 두 해는 바로 나달이 윔블던 우승을 차지한 해이다. 둘째, 나달은 작년 말부터 휴식을 취한 이래, 새로 영입한 코치인 카를로스 모야Carlos Moya(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모야는 나달이 10대 때 부터 긴밀한 관계에 있던 선수다)와 함께 공격적인 플레이를 익혀왔다. 그것이 점점 빛을 발하면서 올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따라서 이미 방어적인 선수일 때도 윔블던에서 꽤나 강했던 나달이 이제 공격적인 플레이까지 펼치니 빠른 코트인 윔블던에서 선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셋째, 현재 나달은 부상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올 시즌 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왔음에도 현재 부상이 없다. 본인도 본인 컨디션이 매우 좋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나달이 윔블던에서 고전한 것은 무릎부상에 시달리면서 윔블던의 낮고 빠른 볼 처리능력이 떨어진 탓이다. 하지만 이제 부상에서 자유로워졌으니 과거 처럼 선전할거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나달은 롤랑가로스 이후 에건 챔피언쉽 출전까지 건너뛰며 윔블던까지 푹 휴식을 취할 것이라는 계획까지 밝혔다. 
  나는 나달의 팬이지만, 나달이 딱히 윔블던에서까지 선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클레이와 잔디의 성향은 완전히 반대다. 클레이는 바운드가 느리고 높지만, 잔디는 바운드가 빠르고 낮다. 그래서 잔디코트인 윔블던에서는 서브앤발리어들과 낮고 빠르고 플랫한 스트록을 치는 선수들이 선전한다. 나달의 서브가 많이 개선되었다지만, 여전히 페더러나 머레이의 그것에 비할바는 아니다. 나달의 탑스핀 스트로크는 그것이 지닌 대단히 많은 이점들을 잔디코트에서 잃기 마련이다.
  잔디코트에서는 나달의 방어력이 지닌 영향력에도 문제가 생긴다. 바운드가 빠르고 낮으니 애초에 공을 달려가 받아쳐낼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줄어든다. 롤랑가로스에서 선전한 주요 요인이었던 서브 리턴 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브레이크를 쉽게 당하는 나달의 특성 상 브레이크를 쉽게 따야되는데 잔디 표면은 나달이 상대의 서브를 리턴해내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고, 나달의 장기인 랠리로 경기를 끌고 가기도 힘들어진다. 게다가 아무리 부상에서 벗어났다 한들 어리지 않은 그가 계속 무릎을 낮추는 것은 꽤나 부담이 될 것이다. 




클레이코트와 잔디코트의 바운드 각과 속도를 보라. 
출처: Unibet #LuckIsNoCoincidence - Tennis Surfaces Explained


  동기 측면에서도 봐도 나달이 큰 성과를 낼 것 같지는 않다. 나달의 올시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롤랑가로스 no. 10이었을 것이다. 투어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하는 것도 기록하는 것이지만, 클레이시즌에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높은 가능성과 높은 기대감을 품은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달성했다. 여기에 윔블던 우승까지 더해, 클레이와 잔디를 동시에 휩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도 굉장한 일이긴 하겠지만, 가능성이 그리 큰 일도 아니고, 딱히 그에게 대단한 의미를 지닌 일도 아니다. 차라리 호주 오픈 우승에 몰빵해 더블 그랜드 슬램 기록하는 게 동기부여가 높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윔블던에 대한 나달의 동기부여는 페더러나 머레이의 그것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나달의 이번 윔블던 목표는 4강 진출 쯤이 아닐까 싶다. 사실 8강만 가도 성공적이다. 그는 2011년 준우승 이후 4라운드 통과조차 해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호주오픈 3라운드 알렉산더 즈베레프와의 경기가 고비였듯, 이번 윔블던 또한 랭킹 10위~30위 사이의 포텐 터진 빅서버나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나 루카 폴리Lucas Pouille 같은 활발한 신예들을 만나게 되는 3-4라운드 쯤이 강력한 위기의 순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윔블던은 아마 나달이 처음으로 삼촌이자 코치인 토니 나달Toni Nadal과 함께하지 않는 대회가 될 것이다. 물통을 나란히 세우고, 라인을 절대 밟지 않으며, 머리 넘기고 코만지고 바지를 빼고 서브 넣는 유명한 루틴을 실행하느라 서브를 늦게 넣어 매번 심판으로부터 경고를 받을 정도로 익숙함에 집착하는 나달이 과연 삼촌이 함께하지 않는 "낯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변수다. 


(많은 사람들이 잊기 마련이지만, 페더러는 클레이에서 생각보다 강하고, 나달은 잔디에서 생각보다 강하다. 페더러는 워낙 다른 코트에서의 성적이 무시무시해서 그렇지, 롤랑가로스에서도 결승 진출만도 5회에 달한다. 나달은 부상으로 불참했던 2009년을 제외하고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윔블던에서만 5회 연속 결승에 올랐다.)



출처:rafaelnadalfans.com











번외)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 (20), 최고성적 QF(2014), 
2016 윔블던 : 4th Round, l. to Andy Murray 5:7, 1:6, 4:6



출처:http://www.craveonline.com



   올 초 하드코트 시즌에서 회생을 노리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를 2번 연타로 무너뜨린 선수이자, 나이키가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을 이을 차기 유망주로 신나게 밀어주고 있는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 내가 이번 윔블던 대회의 다크호스로 보고 있는 선수다. 
  사실 올 시즌만 보면 키르기오스가 이번 윔블던 대회에서 선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고의 신체조건을 갖춘 유망주이긴 하지만, 올 시즌 그는 대략 의욕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 초 호주오픈에서도 고작 2라운드에 노장 안드레아스 세피Andreas Seppi에게 허무하게 무너지며 탈락했고, 하드코트 대회, 클레이코트 대회 가리지 않고, 별다른 활약 없이 탈락만 연속했다. 오히려 복식 대회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 마저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그는 올 초 하드코트 시즌에서 최고의 폼을 보이는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를 마이애미 4강에서 만나 세 세트 모두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올시즌 최고의 3세트 경기를 보여줬고, 호주호픈 탈락 이후 반전의 기회를 노리며 날이 서있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를 두 번이나 연속으로 무실세트로 무너뜨렸다. 키르기오스는 올 초 나달조차 범접할 수 없어보였던 페더러를 괴롭힌 유일한 선수였고, 하드코트 강자 조코비치를 거의 가지고 놀다시피하며 여유롭게 무찔렀던 유일한 선수였다. 
  내가 보기에 키르기오스는 현재 투어에서 활약하는 그 어떤 선수보다 훌륭한 신체능력을 지닌 선수다. 193cm, 85kg의 피지컬은 강력한 서브를 넣기에도 충분하고, 베이스라이너를 하기에도 딱히 부족함이 없다. 그의 손목힘은 가공할만한 수준이고, 유연성은 조코비치의 아성에 도전할만하다. 러닝도 빠르고, 드랍샷을 비롯한 테크닉도 준수하다. 이러한 신체능력을 기반으로 한 키르기오스의 포핸드와 서브는 특히 강력한 무기로 불리운다. 강력한 손목힘을 바탕으로 한 포핸드는 투어선수 중에서도 빠른 속도와 파워로 유명하고, 간결한 동작에서 나오지만 엄청난 속도로 꽃히는 플랫서브는 대단히 위협적이다. 더욱 당황스러운 점은 그가 세컨서브에서도 200km/h대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서브를 느닷없이 내리 꽃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는 황제 페더러 앞에서 네트앞 페이크 샷을 쓸만큼 베짱이 두둑하다. 






  그의 이러한 특장점들은 그를 윔블던의 다크호스로 만들기 충분하다. 빠른 잔디코트에서 그의 서브와 발리대시는 더욱 가공할만한 파워를 가질 것이고, 그의 베이스라이너적인 기량은 그가 상대의 서비스 게임을 쉽게 브레이크 해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가 윔블던의 우승자가 된다던가, 4강에 오른다던가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잘해야 8강 정도 오를 듯하고, 잘해야 빅네임을 한 명 정도 컷오프 시키는데 그칠 듯하다. 그의 피지컬과 기량은 윔블던 우승자가 되는데에 결코 부족함이 없지만, 그의 멘탈과 경기운영능력은 윔블던의 우승자가 되기에 한참은 모자란다. 
그랜드슬램 중에서도 윔블던은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고, 그만큼 경쟁 또한 치열하다. 키르기오스와 같은 수준 떨어지는 멘탈로 우승할만한 그런 만만한 곳이 아니다. 여기에 그의 시드는 20번대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3라운드부터는 높은 시드 배정자들을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한 번은 또 이길지 모르지만, 녹록치않다. 그의 뭔가 엄청나게 부족해 보이는 연습량을 추정해본다면, 클레이에서 잔디로 또다시 바뀐 코트에 그가 잘 적응할 것 같지는 않다. 
  다크호스라고 뽑아놓고 키르기오스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이유들만 늘어놓은 것 같다. 그래도 키르기오스는 분명 탑시드 선수들이 피하고 싶은 선수임이 분명할 것이다. 그가 우승까지 해내건 아니건 어쨌건 그는 분명 우승후보를 한 명쯤은 무너뜨릴 잠재력이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키르기오스가 절대 나달 만은 만나지 않았으면 한다.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10), 최고성적 3rd Round(2016)
2016 윔블던 : 3rd Round, l. to Tomas Berdych 3:6, 4:6, 6:4, 1:6



 출처: atpworldtour.com


  1997년생. 한국나이로 21살. The NextGen Race to Milan 랭킹 1위. 샤샤 즈베레프는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보다 16살 어리고,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보다 11살 어리다. 그런데 벌써 그는 탑 10에 진입했다. 로저 페더러는 탑 10에 한국나이로 22살(2002년 5월, 8위)에 진입했고, 라파엘 나달은 한국나이로 20살(2005년 4월, 7위),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21살(2007년 3월, 10위), 앤디 머레이Andy Murray는 22살(2008년 2월, 10위)에 각각 진입했다. 알렉산더 즈베레프 보다 탑10에 일찍 진입한 빅4는 라파엘 나달이 유일하다. 테니스계는 보통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곳이고, 대기만성의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을 감안하면,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일단 세계랭킹 1위에 오를 기본 자격은 갖춘 것이나 다름없다. 
  빅4 세대 이후 1990년 전후 출생 세대(니시코리 케이Nishikori Kei, 마린 칠리치Marin Cilic, 밀로스 랴오니치Milos Raonic, 그리고르 디미트로프Grigor Dimitrov, 다비드 고팡David Goffin 등등)가 있고, 그 다음 세대인 96년 이전 세대(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 루카 포일Lucas Pouille, 잭 삭Jack Sock,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가 있었다. 이 두 세대 모두 대단히 높은 기대를 받았지만 빅4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칠리치가 US오픈 우승을 이룩하고, 라오니치가 세계랭킹 3위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빅4에 도전하기에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이들 다음에 등장하는 세대가 바로 96년 이후 출생자들인 NextGen 세대이다. 한국의 유망주 정현을 포함하여, 보르나 초리치Borna Coric, 카렌 카차노프Karen Khachanov, 프란시스 티아포Francis Tiafoe들이 이 세대의 선수들이다. 그리고 알렉산더 즈베레프도 바로 이 세대에 속한다. 비록 동년배들과 차원을 달리하고 있지만 말이다. 


출처: newindianexpress.com


  로마 마스터즈 결승에서 조코비치를 상대로 승리하며 첫 마스터즈 1000 우승을 달성한 즈베레프는 롤랑가로스 시작 직전 king of clay의 the ten을 방해할 선수로 꼽혔다. 나는 그런 전망과는 달리 즈베레프가 클레이 코트에는 별로 강한 선수라고 아니라고 보았고, 실제로 즈베레프는 1라운드에서 페르난도 베르다스코Fernando Verdasco를 만나 가뿐하게 탈락했다. 그의 로마 마스터즈 우승이 대단한 기록이긴 하지만, 그는 빅서버들로 점철된 대박터진 대진과 정신못차리는 조코비치라는 행운 덕에 기록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롤랑가로스와는 달리 윔블던에서는 즈베레프가 대단히 선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앞서 꼽은 닉 키르기오스와 필두로 탑시드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선수일 것이며, 피해야하는 선수일 것이라고 본다. 
  지난 호주오픈 나달과 즈베레프의 경기를 복기해보자. 나달이 즈베레프에게 고전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바운드가 빠른(과거 보다 더 빨라진) 로드레이버 아레나의 하드코트에서 즈베레프의 높은 타점에서 찍는 플랫서브는 물론, 탑스핀 세컨 서브까지도 나달이 리턴해내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여기에 즈베레프의 낮고 빠른 스트록, 특히 각도 큰 투핸드는 손쉽게 위너로 이어졌다. 이는 공격적인 즈베레프가 더욱 공격을 쉽게 만들었고, 랠리를 완전히 주도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몬테카를로에서 다시 만난 그들의 경기는 어땠는가. 바운드가 느린 클레이에서 즈베레프는 밀리다 못해 아예 간단한 상대가 되어버렸다. 그의 스트록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맞받아 때리기 좋은 공이 될정도였다. 위협적인 그의 서브 또한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클레이코트는 과거 황제이자 서브 대마왕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에게 조차 그랜드슬램 결승무대를 허용하지 않은 곳이다. 심지어 즈베레프는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의 정현에게조차 허무하게 경기를 내줄 정도였다. 
  윔블던의 잔디코트는 내내 언급해왔던 것처럼 바운드가 낮고, 빠르다. 큰 키에 서브가 강한 선수가 유리하다. 탑스핀 스트로크가 상대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낮고 빠른 플랫 스트로크를 치는 선수가 유리하다. 부드러운 지반 탓에 부상 위험이 덜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방어형 선수에게 유리한 건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가 재미없다는 의견을 들어 (바운드가 보다 높고 느려질 수 있게 끔)요새 모래를 많이 뿌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잔디는 잔디다. 즈베레프가 왜 선전할 것인지는 다 나왔다. 즈베레프는 큰 키와 강력한 서브를 가지고 있으며, 낮고 빠른 스트로크를 기반으로한 공격적 스트로크를 펼치며, 큰 키치고 가벼운 탓에 상당히 준수한 방어력을 보여주는 선수이다. 이쯤되면 즈베레프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게 이상해보일 정도이다. 
  여기에 즈베레프는 비록 롤랑가로스에서는 1회전에서 탈락했지만, 로마 마스터즈를 거치며 나름 상승세다. 조코비치를 이기면서 자신감까지 붙었다. 그는 페더러를 그의 안방인 할레 오픈에서 패배시킨 적도 있다. 그는 점차 탑랭커이자 차기 랭킹 1위로서 훌륭히 성장해 나가는 궤도에 있다. 아직 어린 탓에 멘탈적인 측면이나, 경기 운영 능력이 성숙된 선수는 아니지만, 패기와 상승세라는 변수도 있다. 비록 잔디 시즌 첫 대회인 리코 오픈에서 노장 쥘 뮐러Gilles Muller에게 준결승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준수한 잔디 플레이어인 줄리앙 베네통Julien Benneteau에게 베이글 스코어까지 선서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키르기오스에 대해서는 4강은 무리고, 잘해야 8강이라고 평했지만, 왠지 즈베레프는 상승세만 제대로 탄다면 결승진출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연륜이 쌓인 탑시드 선수들이 결코 호락호락한 선수들은 아니지만, 그의 공격력이 매우 뛰어나기에 흐름만 받쳐준다면 빅4를 탈락시키는 일도 나올 것 같다. 그는 이번 윔블던의 다크호스가 되기에는 매우 충분한 선수라고 확신한다. 






※ 기타etc.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 스탄 바브린카Stan Wawrinka,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 그리고르 디미트로프Grigor Dimitrov, 니시코리 케이Kei Nishikori, 밀로스 라오니치Milos Raonic 등등. 
  그냥 평타 정도 평범하게 칠 것 같은 선수들이다. 조코비치는 롤랑가로스가 끝난 후 윔블던 까지 휴식에 들어갔다. 휴식에서 돌아온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클레이시즌을 망친 조코비치는 잔디시즌이라고 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동기부여에 문제가 있다. 이제는 자신감까지 무너져가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그는 첫 전성기의 시작이었던 2011년 3월 이후 처음으로 2위 아래로 떨어졌고, 2009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4위에 랭크됐다. 윔블던에서 회복하기에는 페더러와 나달의 상승세가 두렵고, 머레이의 동기부여가 두렵다. 클레이시즌에서 완전히 공치는 타점을 잃은 듯한 플레이를 보이면서, 장기인 백핸드가 완전히 박살나버린 조코비치는 윔블던에서 더 큰 멘붕을 당하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꾸준함이 그의 장기였기에, 호주오픈 준우승으로도 상당히 큰 반전이 되었던 나달과 달리, 조코비치는 윔블던에서 우승이라도 하지 않는 한 반전이라고 평하기도 애매하다. 만약 이번에도 3, 4라운드 쯤에서 탈락한다면, 그의 하향세는 걷잡을 수 없을 듯하다. 
  롤랑가로스 준우승자인 스탄 바브린카의 경우도 그리 주목이 가지 않는다. 바브린카는 원래도 잔디에서 약했다. 서브도 좋고 공격적인 선수이긴 하지만, 참으로 이상하리만큼 잔디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서브 앤 발리어보다는 베이스라인 러너에 가까운 그는 장기전에 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상하게 윔블던에서만은 예외였다. 그는 무려 10번째 도전만인 2014년에 와서야 윔블던 8강에 진출했고, 한창 분위기 좋았던 2015년에도 롤랑가로스 우승 후 8강에서 리샤르 가스케Richard Gasquet에게 풀세트 접전 끝에 패배했다. 가스케의 폼이 딱히 좋을 게 없었던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의외의 결과였다. 지난해에는 더욱 참혹했다. 4번시드로 출전한 그는 하필 재수가 없게도 부상에서 돌아와 막 분위기 타고 있던 후안 마틴 델포트로Juan Martin del Potro를 만나 2라운드에서 만났다. 하드히터들 간의 대결에서 그는 델포트로에게 세트스코어 1:3으로 패배하며 짐을 싸야 했다. 올해도 딱히 다르지는 않을 듯 하다. 롤랑가로스에서 하필 King of clay를 만나 압도당하면서 그랜드슬램 결승 승률 100% 기록이 깨진 그는 자신감보다는 오히려 자괴감을 얻었을 터이니 더욱 그렇다. 8강만 가도 바브린카로서는 성공이다. 
  차기 클레이의 제왕인 티엠의 윔블던 전망도 그리 밝지는 않다. 8강 진출에만 성공해도 티엠에게는 대단한 성공이 아닐까 싶다. 무지막지한 탑스핀을 치는 그는 정확히 작년 이맘때인 슈투트가르트 오픈에서 무려 페더러를 잔디에서 물리치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덕분에 그는 작년 앤디 머레이와 함께 잔디와 클레이 그리고 하드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클레이 스페셜리스트인 티엠은 king of clay가 잔디에서 상대적으로 고전하는 것과 같은 비슷한 이유로 잔디에서 고전한다. 지난해 롤랑가로스 4강까지 올랐음에도, 윔블던에서는 시드도 받지 못했던 지리 베슬리Jiri Vesely에게 3연속 타이브레이크 끝에 0:3으로 지고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뛰어다니기에 부상위험이 덜한 덕에 잔디에서 조금이나마 선전했지만, 윔블던에서 그의 탑스핀은 결코 위력적인 무기가 아니다. 그의 장기인 한 손 백핸드도 빅서버들의 랠리 주도에 약점에만 그칠 수 있다. 롤랑가로스의 티엠은 무시무시했지만, 윔블던의 티엠은 4라운드가 그의 목표가 아닐까싶다 .
  나머지는 뭐 딱히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니시코리와 디미트로프는 멘탈 잘 챙겨야 될 것 같고, 라오니치는 더 큰 선수로 거듭나기위해서는 아무래도 랠리 능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백핸드는 에러도 많은 데다 밋밋하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그는 무겁고 쿵쿵대며 뛰어다니기에 체력적인 문제도 고려해야할 것 같다. 
  


  이상 이번 윔블던을 대비한 우승후보와 관심 가져야할 선수 그리고 기타(?) 몇몇 선수에 대한 잡설이다. 2007년 윔블던 결승 매치업은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이었다. 2017년 결승이 또다시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 안될 것만 같지만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 된다면 정말 2017년 한 해는 테니스 역사에 있어 보기드문 되감기의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US오픈에서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쯤 되는 매치업이 이뤄지면 더 신이 날 것 같은데. 한 번 대단히 기대하면서 지켜봐야겠다. 설렌다. 윔블던. 




출처:wimbledon.com





2017년 6월 15일 목요일

10 is RAFA



2017 Roland Garros Final
Rafael Nadal(4) d. Stanislas Wawrinka(3)
6:2, 6:3, 6:1




바브린카가 이겼으면 저 시상대 어쩔뻔했냐
rolandgarros.com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한 king of clay에게 적수는 없었다. 상대는 그랜드슬램 결승에 3회 진출하여 3회 모두 우승을 차지한 선수이자, 전성기 노박을 무너뜨린 유일한 선수인 Stan the Man이지만, 라 데시마를 눈 앞에 둔 King of clay에게는 그냥 에러 많은 선수에 불과했다.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은 그렇게 자신의 10번째 롤랑가로스 결승에서 자신의 10번째 머스킷티어스컵을 들어올렸다.
  이로써 king of clay의 롤랑가로스 통산 전적은 79승 2패(승률 97.5%), 결승 전적은 10승이 되었다. 2008년과 2010년에 이어 세 번째로 무실세트 우승을 차지한 나달은 고작 총 35게임만 잃었는데, 이는 스웨덴의 비외른 보리Bjorn Borg가 1978년 롤랑가로스에서 기록한 32게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적은 숫자이다. 또한 이번 우승으로 통산 그랜드 슬램 우승 15회를 기록한 나달은 드디어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14회)를 제치고 역대 통산 그랜드슬램 우승 단독 2위에 오르게 되었다.


rolandgarros.com


  경기 시작 후, 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나달은 몸이 조금 덜 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에러가 없기로 유명한 나달이 에러가 많기로 유명한 바브린카와 에러 숫자를 비슷하게 가져갔다. 나달의 스트로크는 축발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불안한 상태에서 이뤄졌다. 찬스볼에서 포핸드 조차 라인을 벗어나 버리곤 했다. 아무래도 상대가 공격왕 상남자 바브린카다 보니 의식적으로 공격적인 스트로크를 치려다 리듬을 좀 잃은게 아닌가 싶었다.
  1세트 2:1 나달 리드, 바브린카의 서비스 게임인 네 번째 게임이 첫 중요 지점이었다. 듀스를 6번이나 갔다. 바브린카의 퍼스트 서브는 주로 나달의 백핸드를 노렸고, 세컨 서브는 코트 밖으로 깊숙히 나가는 킥 아웃 탑스핀 서브를 종종 섞었다. 하지만 나달의 리턴은 이번 대회내내 상당히 좋았다. 리턴이 날카롭거나 강력한 건 아니지만 서비스 쪽이 3구 마무리를 하기에는 깊숙하고, 어정쩡하게 들어갔다. 그렇게 일단 랠리가 이어지면 나달 쪽이 주도했다. 서브가 좋은 바브린카가 서브로 주도를 못하니 그는 서비스 게임에서 상당히 고전했다. 
  나달은 4000rpm에 이르는 포핸드 어프로치 샷 이후 스트로크가 회복되는 듯 했으나, 결국 정확도가 완전히 차오르지는 못했고, 바브린카는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1세트는 거기까지 였다. 나달의 몸은 다 풀렸고, 이후 이어진 네 게임은 전부 나달이 챙겼다. 나달의 백핸드에 가끔 미스가 나오기는 했지만, 바브린카가 그것으로 주도권을 가져가기에는 나달의 폼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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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트 시작과 동시에 나달은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가볍게 따고, 그대로 바브린카의 첫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해냈다. 바브린카도 그제서야 몸이 좀 풀린 듯, 본인의 장기인 한손백핸드를 제대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달은 아예 여유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마치 백핸드 연습이라도 하듯이 그는 바브린카의 공을 집요하게 백핸드로 쳤다. 충분히 돌아서서 포핸드로 받아칠 여유가 있는 볼까지도 전부 백핸드로 처리했다. 심지어 크로스와 다운더라인을 번갈아치며 바브린카를 공격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아마도 바브린카의 위협적인 각도 큰 백핸드 크로스 샷이 혹시라도 나오면 포핸드로 받아치기 위한 전술인가보다 생각했지만, 나달의 표정이 너무 여유롭다보니 상대를 놀리려고 일부러 백핸드를 고집하는 것처럼 보였다.
  2세트 3:0 상황 이후, 나달은 조금 이완된 모습을 보였다. 나달의 백핸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공이 짧고 상대적으로 약했고, 바브린카의 찬스 상황으로 종종 이어졌다. 이를 놓치지 않고 바브린카의 백핸드가 살아났다. 나달도 딱히 바브린카의 서비스 게임을 다시 브레이크 시키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렇게 서비스게임을 각자 챙겼다. 
  2세트의 결정적 순간은 5:3에서 맞이한 나달의 서비스 게임이었다. 바브린카는 바로 이전 자신의 서비스 게임 0-30으로 몰린 상황에서 네 포인트를 연속 따내며 기세를 탔다. 만약 그 기세를 몰아 나달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해낸다면 경기는 크게 요동칠 참이었다.
  하지만 나달이 불안해지기전에 바브린카는 두 개의 에러를 범했다. 30-15, 나달의 강한 포핸드 피니쉬가 네트를 맞으면서 바브린카의 찬스볼이 되었다. 세게 때린 바브린카의 공격을 나달이 발리로 받아내긴 했지만, 공은 크게 바운드 됐다. 다시 찬스볼이다. 바브린카가 한번만 더 정확하게 때린다면, 게임 초반 두 개의 에러로 내준 흐름을 되찾을 기회였다. 하지만 바브린카의 공은 멀리 나가버렸다. 다음 포인트에서도 바브린카는 멀리 나가는 백핸드 리턴으로 자멸했다. 그렇게 게임은 끝났고, 2세트 마저 나달이 가져갔다. 경기 시작 후 1시간 30분이 안되었을 때였고, 바브린카는 라켓을 부쉈다. 경기는 사실상 나달에게 넘어갔다.



2015년과 달리 이번에는 자신이 라켓을 부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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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세트는 지난 티엠과의 준결승 3세트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래도 바브린카는 나달의 백핸드가 짧을 때를 노려 한 게임을 따냈다는 것 정도 밖에 없었다. 3세트 첫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당한 이후 바브린카의 두번째 서비스 게임에서 바브린카는 나달의 짧은 백핸드를 공격하면서 한 게임을 따냈다. 
  그 다음 바브린카의 서비스 게임이 3세트의 분수령이었다. 게임 스코어 3:1에서 바브린카는 강력한 서브로 주도권을 잡았다. 여기에 나달이 찬스 상황을 두 개 정도 놓치면서 바브린카가 게임을 따낼 기회를 얻었다. 듀스를 4번이나 거치고, 경기장에서 바브린카 응원이 나올 만큼 바브린카는 마지막 파이팅을 보였지만, 결국 그는 나달과의 랠리를 이겨내지 못했고, 에러를 연타로 범하며 3세트 두 번째 브레이크를 마저 내주고 만다. 여기까지였다. 그대로 나달은 자신의 서브게임과 바브린카의 서브 게임을 차례로 따내고 필립샤트리에의 클레이에 대자로 뻗었다. 10번째였다. 오픈 시대 이후 유일한 단일 대회 10회 우승 기록이며, 앞으로 두 번 다시 나오기 어려운 위대한 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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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브린카는 아마도 나달과의 결승을 치르면서 차라리 그냥 준결승에서 머레이한테 지고 떨어졌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을듯하다. 그만큼 king of clay의 경기력은 무시무시했고, 차원을 달리하는 것 같았다.
  스탄 더 맨. 도무지 상대가 없어 보이던 무적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를 무려 두 번이나, 그것도 그랜드 슬램 결승에서 무너뜨린 선수다. 두 번 다 3:1 역전 승이었다. 특히 2015년 롤랑가로스에서는 king of clay마저 꺾고 무결점의 절정에 올라 우승이 당연시 되었던 조코비치에게, 무려 클레이 코트에서, 공격테니스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며 그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1년 뒤로 미뤄버린 선수였다.
  하지만 컴백한 king of clay에게 바브린카는 애당초 공격을 해볼 기회조차 별로 없었다. 서브도 안통하고 백핸드도 안통했다. 랠리는 짧든, 중간이든, 길든 전부 나달이 앞섰다.
 바브린카의 서브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나달의 백핸드를 향해 정확하게 들어갔지만, 나달의 백핸드 리턴는 예상을 넘어섰다. 바브린카의 깊게 때리는 킥서브는 나달의 포핸드로 가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후려치는 포핸드가 넘어왔다. 바브린카는 서브로 랠리 주도권을 가져올 수가 없었다.
  바브린카의 백핸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바브린카의 백핸드는 꽤 여러 번 정말 멋지게 들어갔었다. 마치 지난 호주오픈 페더러를 보는 듯한 각도 깊은 백핸드도 있었다. 하지만 클레이 코트 위의 나달은 그걸 단 한번도 위너가 되게끔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떻게든 달려가서 포핸드로 받아넘겼다.
  애초에 백핸드 공격이 자주 시도되지도 못했다. 랠리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브린카는 거의 단 한 번도 랠리를 주도하지 못했다. 살아난 나달의 스트로크는 바브린카가 받기에는 너무 거친 공이었다. 강한 회전을 지닌 나달의 탑스핀 스트로크는 꽤나 많은 숫자가 길게 들어갔고, 이것은 아웃도어 클레이코트의 특성과 겹쳐 바브린카가 꽤나 처리하기 힘든 공이 되었다. 높이 튀어오르는 데다, 바운드 각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코트 가운데를 기준으로 포핸드로 처리해도 될 공까지도 백핸드로 자주처리하는 바브린카에게 그와 같은 공들은 매우 곤혹스러운 공이다. 한손 백핸드는 나달의 그처럼 높이 튀는 공을 처리하기 매우 까다롭다. 공격으로 전환하기에는 공이 높아 자세가 제대로 나오기가 어렵고, 공이 적당한 높이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바운드 후 정점에 올랐다가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공을 수평으로 쳐내야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한 손 백핸드로 처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적당히 받아쳐 넘겨주는 식으로 처리하면 상황은 더욱 곤란해진다. 어설프게 넘겨진 공은 나달 같은 베이스라이너가 딱 때리기 좋은 공이 된다. 여지없이 나달은 마음놓고 스트록을 후려댔다. 방어로 승부보는 타입이 아닌 바브린카가 커버하기에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이런 랠리 딜레마는 바브린카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더욱 크게 주었을 것이다.  바브린카가 공을 입에 문다던가, 라켓을 부순다던가 하는 모습은 이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혹시라도 공격이 들어간다고 해도 나달이 다 받아내버린다. 바브린카의 빠른 공은 바운드가 느려지는 클레이에서는 받아칠수만 있다면 딱 감아치기 좋은 공이된다. 강한 스핀을 주기 위해 감아치는 타법은 보통 파워를 잃기 쉬운데, 상대가 친 공이 빠르고 강하면, 그 힘을 역이용하여 부족한 파워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달처럼 반응력과 풋워크가 빠르고, 감아 치는 데에 특화된 선수에게는 더없이 좋은 상황이 된다.
  어쨌건 위와 같은 이유들로 바브린카는 제대로 자신의 테니스를 보여줄 기회도 갖지 못한 채 경기를 내줬다. 나달은 차원을 달리했다. 조코비치에게 허무하게 털리고 탈락했던 2015년 롤랑가로스가 엊그제 같은데. 몬테카를로 우승을 해냈지만, 마드리드와 로마에서 각각 머레이와 조코비치에게 순서대로 패배하며 탈락했던 작년이 엊그제 같은데. 나달은 이제 끝났다는 이야기들이 사실상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지만, king of clay는 또다시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돌아왔다.
  올 시즌은 정말 마법같은 시즌이다.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가 호주오픈에 선샤인더블을 더하면서 돌아왔고,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은 롤랑가로스에 클레이 시즌을 석권하며 돌아왔다. 흥미롭게도 지난 15, 16시즌을 지배했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와 앤디 머레이Andy Murray가 나란히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위 둘의 대단함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제 시즌의 절반이 지나갔다. 이제 윔블던 잔디시즌, 북미 하드코트 시리즈, 그리고 월드투어파이널을 향해 달리는 인도어 코트 시즌이 남았다. 황제 페더러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윔블던 우승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머레이와 조코비치 또한 하드코트에 강한 만큼 이대로 시즌을 하향세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라파엘 나달의 하반기 성적은 좋은적이 많지 않다. 나달에게 남은 목표라면, 월드투어파이널 우승이나, 내년 호주 오픈 우승 정도가 될 것이다. 결국 나달은 롤랑가로스 10회 우승을 해냈으니, 사실 위 두 목표를 해내지 않아도 딱히 아쉬울게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달의 우승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뭔가 나달이 보낸 슬럼프 시기를 내 삶의 암흑기와 겹쳐 보내며 참 안타까운 나날 들이었는데, 이번 나달의 우승을 보며 참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나달이 남은 시즌을 어떻게 보낼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뭔가 내 삶도 잘 풀릴 것만 같고, 테니스도 편안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난해부터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에 관한 자료를 모아서 분석해보는 글을 써보려고 했었는데 결국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티엠은 벌써 차기 클레이의 제왕이 되어버렸다. 나달도 나달이지만, 이제는 티엠에도 본격적으로 관심 좀 가져야겠다. 하. 참 신난다. Ten 이라니.







One is difficult. Two is impressive. Ten is Rafa. 
from @nike




2017년 6월 11일 일요일

La Decima



2017 Roland-Garros




copyright, rolandgarros.com




1st Round (Round of 128), Suzanne-Lenglen
Rafael Nadal(4) def. Benoit Paire
6:1, 6:4, 6:1

2nd Round (Round of 64), Philippe-Chatrier
Rafael Nadal(4) def. Robin Hasse
6:1, 6:4, 6:3

3rd Round (Round of 32), Philippe-Chatrier
Rafael Nadal(4) def. Nikoloz Basilashvili
6:0, 6:1, 6:0

4th Round (Round of 16), Suzanne-Lenglen
Rafael Nadal(4) def. Roberto Bautista Agut(17)
6:1, 6:2, 6:2

Quarter-Final, Philippe-Chatrier
Rafael Nadal(4) def. Pablo Carreno Busta(20)
6:2, 2:0 retired

Semi-Final, Philippe-Chatrier
Rafael Nadal(4) def. Dominic Thiem(6)
6:3, 6:4, 6:0

Final, Philippe-Chatrier
Rafael Nadal(4) def. Stanislas Wawrinka(3)
6:2, 6:3, 6:1



Total games won : 116
Total games lost : 35
Total Sets lost : 0










2017 Clay Court Season records

Monte-Carlo Rolex Masters 1000 : won(10th)
Barcelona Open Banc Sabadel : won(10th)
Mutua Madrid Masters 1000 : won(5th)
Internazionali BNL'd italia, Rome Masters 1000 : QF
Roland Garros : won(10th)

5-1, tour win-loss

24-1, match win-loss 





2017년 6월 10일 토요일

Roland Garros, Semifinals



1. 

  Roland Garros, Semifinals
  Stanislas Wawrinka(3) def. Andy Murray(1)
  6:7(6), 6:3, 5:7, 7:6(3), 6:1


  2017 롤랑가로스 준결승 대진은 바브린카:머레이/나달:티엠이다. 지난해 롤랑가로스 준결승 대진에서 정확하게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로만 교체된 대진이다. 앤디 머레이Andy Murray와 스탄 바브린카Stan Wawrinka는 지난해에도 롤랑가로스 준결승에서 만났고, 그 때는 6:4, 6:2, 4:6, 6:2로 머레이가 승리했다. 초반부터 머레이가 경기를 주도했고, 바브린카는 경기중반 잠시 반짝 했다가 그대로 패배했던 경기였다. 
  바브린카는 무실세트로 4강까지 올라왔고, 머레이는 뭔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올라왔다. 바브린카의 8강은 가뿐했지만, 머레이는 니시코리와 힘든 4세트 경기를 치르고 올라왔다. 클레이에서는 3번 붙어서 바브린카가 2번 이겼다. 장기전은 전성기 조코비치도 발라먹은 5세트 대마왕 바브린카가 유리하지 않겠나 싶지만, 머레이의 디펜스 플레이에 말리면 장기전으로 가도 바브린카가 에러를 남발하며 자멸할 거라는 게 예상이었다. 
  3세트가 끝날 때만 해도 머레이가 4세트도 가져가며 3:1로 결승에 진출하겠구나 싶었다. 바브린카는 이상하게 분위기를 탈 법하면 놓치고, 탈 법하면 놓치는 걸 반복했다. 공격형 선수로써 그런 파동은 결코 좋지 않은 일이다.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 보다, 그대로 무너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4세트 들어갈때만 해도 머레이의 체력은 그리 문제가 없어 보였다. 뛰어다니는 양이 바브린카보다 꼬박꼬박 대략 5~10%정도 많았지만, 큰 차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세트가 생각보다 길게 진행됐다. 바브린카의 공격도 생각보다 꾸준했고, 머레이의 방어능력도 여전히 빛을 발했다. 그렇게 두 선수는 브레이크는 커녕 브레이크포인트 한 번 없이 타이브레이크에 진입했다. 
  타이브레이크는 백핸드 대결이 눈에 띄었다. 바브린카의 한 손 백핸드가 머레이의 양손 백핸드를 누르는 모양새였다. 바브린카의 포핸드 에러가 끊임없이 발목을 잡았지만, 결국에는 머레이가 집중력을 잃고 두 포인트를 연타로 내준 뒤, 바브린카의 포핸드로 4세트를 바브린카가 잡아내면서 풀세트에 돌입했다. 머레이의 체력이 끝나간다는 표시가 타이브레이크에서 나타난듯 했다. 머레이는 4세트가 끝나면서 체력을 전부 소진한 듯 했고, 5세트는 바브린카의 쉬운 승리로 끝났다. 그렇게 4시간 반에 달하는 혈전 끝에 바브린카가 결승에 먼저 진출했다. 


출처: telegraph.co.uk


  나는 경기를 보면서 상남자 테니스로 불리우는 바브린카의 초파워 스트로크 플레이도 대단했지만, 그걸 다 받아 넘기는 머레이도 대단해보였다. 니시코리와의 경기 때도 그랬지만, 머레이의 방어능력은 나달과는 또다른 차원인 듯 했다. 하지만 어쨌건 머레이는 탈락했고, 그는 올해 세계랭킹 1위에 올라 있는 동안 그랜드슬램과 마스터즈 1000 시리즈에서 우승은 커녕 결승진출에도 전부 실패했다. 호주오픈은 4라운드, 롤랑가로스는 SF에서 마무리했다. 작년 몬테카를로 4강, 마드리드 준우승, 로마 우승, 롤랑가로스 준우승이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냈던 머레이는 올해는 마스터즈 3개 대회에서 2승 3패, 롤랑가로스 4강이라는 대단히 어설픈 성적으로 클레이 시즌을 마무리했다. 



2.

  Roland Garros, Semifinals
  Rafael Nadal(4) def. Dominic Thiem(6)
  6:3, 6:4, 6:0


  경기 전 나오는 이야기들은 대략 이러했다. '올해 클레이 시즌에서 나달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겨준 선수는 도미니크 티엠이 유일하다.', '티엠은 이미 조코비치를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완파하고 4강에 진출했다.', '티엠은 차기 클레이의 황제로 불리울 만큼 클레이에서 훌륭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이번 롤랑가로스에서 나달의 경기력이 좋기는 하지만, 위협적인 선수와의 대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달보다 빠르고 강력한 스핀을 보여준 티엠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간다면 나달이 상당히 고전할 수도 있다.' 
  실제 경기 중 나온 통계에 따르면, 나달의 포핸드와 백핸드 평균 RPM은 각각 3486, 2568이고, 티엠의 포핸드와 백핸드는 각각 3435, 3008이었다. 속도의 경우에는 나달의 포핸드가 평균 시속 127km/h, 백핸드가 121km/h였고, 티엠은 각각 140km/h와 131km/h였다. 티엠은 나달보다 대략 10킬로 정도 더 빠른 스트록을 쳤고, 나달과 비슷한 수준의 포핸드 탑스핀 rpm을 만들어냈고, 나달보다 500rpm이 더실린 백핸드를 쳐냈다. 티엠이 무려 나달보다 강력한 탑스핀 스트로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출처: rolandgaross.com


  하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에는 맹점이 있다. 바로 테니스에는 아웃이 있다는 거다. 아무리 세고, 빠르고, 강하게 감기는 공을 칠 지 언정, 그 공은 라인 안에 들어와야한다. 또 다른 측면도 있다. 나달이 방어형 선수라면, 티엠은 공격형 선수라는 점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고 위의 통계를 보면 나달보다 강력한 스트로크를 쳤던 티엠이 왜 가뿐하게 3:0으로 깨졌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이번 롤랑가로스에서 나달의 경기력과 상승세가 워낙 엄청나다보니 다른 선수들이 묻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그와중에 관심받았던 선수가 바로 도미니크 티엠이다. 그는 이미 올 초 클레이 대회인 리우 오픈에서 스페인 베이스라인러너들을 무너뜨리며 타이틀을 차지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는 결승까지 올라 나달을 상대하기도 했다. 로마에서는 아예 그 나달을 무너뜨리며 나달의 18연승을 저지했다. 그것이 올 시즌 클레이에서 나달의 유일한 패배였다. 이번 롤랑가로스에서는 4강까지 무실세트로 가뿐히 올라왔다. 그가 그렇게 무너뜨린 선수에는 무려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포함된다. 티엠은 자신과 함께 King of Clay의 10번째 롤랑가로스 우승을 견제하는 유이한 장애물로 여겨졌던 선수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노박을 자신의 손으로 탈락시키고, 2년 연속 롤랑가로스 4강 진출 기록을 세웠고, 다시 한 번 King of Clay에 그의 본진에서 도전하게 되었다. 이 경기가 사실상 롤랑가로스 결승이라고 불리운 이유다. 



출처: rolandgaross.com


 아무리 그래도 티엠이 한 세트는 딸 줄 알았다. 


  롤랑가로스에서 나달이 엄청난 경기력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위협적인 선수와의 경기는 이번 경기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내 개인적인 예측은 티엠이 1세트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어린 티엠이 로마에서의 승리와 이번 조코비치를 상대로 한 승리로 상승세를 타고 있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력한 화력으로 1세트를 티엠이 잡아내지만, 체력 저하와 경기운영에서 나달에 밀려 역전당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3:0이었다. 특히 3세트는 티엠이 불쌍해보일 정도였다. 
  나달의 서비스로 시작된 경기는 첫 게임부터 브레이크로 시작했다. 나달이 아직 감이 안잡힌듯 에러 셋, 더블 폴트 하나로 티엠에게 브레이크를 손쉽게 내줬다. 그게 티엠이 기록한 이번 경기 유일한 브레이크였다. 나달은 곧바로 다음 게임을 브레이크 해내며, 금방 동률을 만들었다. 나달도 나달이지만, 티엠도 뭔가 좀 긴장하는 것처럼 쉬운 에러를 범했다.  
  승부처는 1세트 네 번째 게임이었다. 그들의 지난 경기들을 돌아보면, 1세트 승부가 사실상 경기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1세트는 항상 아슬아슬한 브레이크 한번 싸움이었다. 티엠의 두 번째 서브 게임은 연속으로 포인트를 내주며 0-40로 밀렸다. 이후 티엠은 엄청난 파워를 보여주며 연속 세 포인트를 따내 듀스를 만들지만, 그는 또 브레이크를 내주고 말았다. 중요한 순간에 힘이 들어가니 공격이 에러가 되었다. 나달의 두 번째 브레이크 이후 1세트는 그대로 6:3으로 끝났다. 


출처: rolandgaross.com


  2세트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2세트 첫 포인트를 탑스핀인지, 로브인지 뭔지 모르겠는, 말도 안되는 샷으로 포인트를 따낸 나달은 티엠이 상승세를 탈 기회 자체를 주지 않았다. 티엠은 상대의 백핸드 쪽을 노리는 탑스핀 서브가 장기였지만, 상대는 왼손잡이 나달이었다. 바운드가 높다 한들 그냥 바로 포핸드 직격이다 보니 딱히 재미를 보지 못했다. 퍼스트 서브는 주로 나달의 백핸드를 향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 내내에서 보여지듯, 나달은 백핸드 리턴은 상당히 좋았다. 세컨 서브의 경우에는 더욱 얄짤없었다. 무조건 랠리가 이어졌고, 대회 통계가 보여주듯, 랠리가 길어지면 나달이 포인트를 가져갔다.
  2세트 첫 서비스 게임에서 부터 고전했던 티엠은 이후 이어진 나달의 서비스 게임에서 멋진 발리를 보여주며 더블 브레이크 포인트 상황을 얻었다. 그러나 나달의 서비스는 강력했고, 리턴에서 브레이크 포인트를 전부잃었다. 브레이크 찬스를 잃은 티엠은 다음 자신의 서비스 게임에서 분발하긴 했으나, 듀스를 3번쯤 간 끝에 결국 나달에게 브레이크 당했다. 티엠의 스트록이 정말 강력하긴 하지만, 나달이 그것을 전부 받아냈고, 랠리 안정성이 떨어지는 티엠이 혹시나 슬라이스라도 한번 치면, 그것은 그대로 나달의 위너로 돌아왔다. 그렇게 2세트도 끝났다. 브레이크 한 번이었다. 
  1세트에서는 둘 다 조금 상기되어, 몸이 덜 풀린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면, 2세트는 확실히 본 실력이 나오는 것 같았다. 경기 템포는 빨랐고, 양 선수 모두 엄청난 스핀과 파워가 실린 샷들을 보여줬다. 차이가 있다면 나달은 에러가 적었고, 티엠은 에러가 많았다는 것이다. 나달은 1세트에서 티엠보다 위너는 더 많고(나달9, 티엠6), 언포스드에러는 더 적었다(나달10, 티엠13). 2세트에서 나달의 위너는 티엠의 반(나달7, 티엠13)이었지만, 언포스드 에러도 티엠의 반(나달6, 티엠12)에 불과했다. 공격형 선수는 티엠인데, 뛴 거리는 티엠이 더 많으니, 나달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기량을 보여줬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티엠은 자신의 서브가 나달을 상대로 전혀 효과가 없다보니 당황하는 것 같아 보였다. 
  3세트는 별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냥 티엠은 king of clay의 연습 파트너였다. 첫 두 게임 이후로는 이제 더이상 체력도 없고, 멘탈도 없고, 정신도 없는 것 같았다. 반면 나달은 이제 막 경기 시작한 선수같은 활력을 보였다. 혼자 사방을 달려다니며 말도 안되는 엄청난 샷들을 날려대다가 아웃이라도 되면 혼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어떻게 하면 한 포인트도 놓치지 않고 상대를 더욱 처절하게 부술까 고민하는 사람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티엠이 좌절감을 크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6:0으로 끝났다. 마지막에 혹시라도 한 게임 내주나 싶었더만, King of clay는 매몰차게 경기를 마무리 지어버렸다. 롤랑가로스만 9번을 헤쳐먹은 King of Clay는 무시무시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후계자를 손수 교육시켰다. 그렇게 King of Clay는 자신의 10번째 롤랑가로스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출처: rolandgaross.com


올해 클레이 시즌. 나달 덕분에 여럿 불쌍해진다. 진짜. 
  


  이번 롤랑가로스에서 열리는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의 경기를 보고있자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정말 공포감이 느껴질 정도다. 솔직히 어떻게 표현해야될지도 잘 모르겠다.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의 플레이를 보고있자면 "와 정말 우아하게 잘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의 경기에 대해서는 "정말 기계적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나달의 이번 클레이시즌, 특히 이번 롤랑가로스에서의 플레이를 보면 그냥 무섭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경기가 두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 막 경기를 시작한 마냥 고개 흔들어가면서 혼자 잔발 뛰고 있는 나달을 보고 있자면, 공포감을 넘어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다. 끊임없이 다 받아내는 방어력이야 원래도 강점인데 여기에 공격성까지 가미되어 무시무시하게 후려대는 포핸드와 백핸드를 보고 있자면, 헛웃음이 나온다. 상대가 불쌍해보일 지경이다. 행여나 나달에게 세트를 따낸다 하더라도 경기가 길어지면 오히려 상대가 괴로울 것 같다. 
  이번 티엠과의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티엠이 상대가 안되는 것 같았다. 티엠이 온몸을 던져가며 때리는 공격 스트크와 나달의 스트록이 비슷한 수준이다. 에러는 나달이 더 적다. 위기에 몰려도 당황하는 기색도 없다. 브레이크를 당해도 뭐 새롭지도 않다. 그게 상대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준다. 8강에서는 아예 상대에게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어굿은 자신의 서비스게임ㅍ하나 지키는 것도 힘들었다. 4강까지 오는 동안 평균 경기 시간은 1시간 반도 채 되지 않았다. 여기에 8강까지 잃은 게임 숫자는 총 22게임이다. 경기당 잃은 게임 숫자가 고작 4게임정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8강이 2세트도 안되서 끝났다는 걸 감안해도 이는 엄청나게 적은 숫자다. 티엠과의 4강에서 잃은 게임도 고작 7게임이다. 2라운드 로빈 하스Robin Hasse와의 경기에서 잃은 게임 수 보다 적다. 경기 시간은 2시간에 불과했다. 나달의 평균 경기 시간보다 고작 30분 더 했다. 상대가 상승세인 티엠인데 말이다. 나달과 티엠의 경기라는 것을 모르고 경기 데이터만 본다면, 대충 1, 2라운드 경기 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정도로 지금의 나달의 엄청나게 무섭다. 




3. 

2017 Roland Garros, Final
Stanislas Wawrinka(3) vs Rafael Nadal(4) 




출처: rolandgaross.com


 결승 대진이 정해졌다. King of Clay와 Stan the Man이다. 2013년 QF에서 만난 이후 롤랑가로스 첫 맞대결이다. 당시에는 당연히 바브린카가 King of Clay에게 일방적으로 털리고 끝났다. 이후 바브린카는 2014년 충격의 1라운드 탈락 이후, 2015년 우승, 2016년 4강에 이어 올해도 결승에 진출해 프랑스오픈 강자임을 천명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딱히 어려운 상대 없이 무실세트로 잘 올라오다가, 준결승에서 랭킹 1위 머레이를 만나 4시간 반 풀세트 혈전을 벌였다. 지난 호주 오픈에서는 준결승에서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에게 5세트 끝에 패배했고, 인디언 웰스에서도 페더러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마이애미에서는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에게 "또" 패배하면서 트라우마 생기는 게 아닌가 싶었다. 몬테카를로, 마드리드, 로마 클레이 마스터즈에서는 합계 2승 3패로 머레이와 함께 삽질의 자웅을 겨루는 수준에 머물렀다. 너무 멘붕했는지, 롤랑가로스 직전에 열린 250대회인 제네바 오픈에 급히 참가해서 기어이 우승하고 롤랑가로스에 합류했다. 
   바브린카의 플레이는 이른바 상남자 테니스로 불리우는 초특급 전원 공격, 무조건 공격, 풀파워 공격 테니스다. 특히 그의 파워 한 손 백핸드는 역대 넘버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게 공격형 선수로 구분되는데도 딱히 체력 이슈가 있는 선수는 아니다. 5세트 대회에서 오히려 선전하는데다, 철강체력왕 조코비치와 초장기전을 여러번 펼친 적도 있다. 2014년 호주 오픈 때는 조코비치와 장기전을 펼치고 이긴 다음 아예 우승까지 해냈다.
  그리고 바브린카는 조코비치의 절정기 시절 그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두 번이나 무너뜨린 유일한 선수다. 두 번 다 무려 역전승이었다. 그만큼 본인이 불리한 상황이나 배경에서 힘을 더욱 발하는 타입이다. 2014 호주 오픈, 2015 프랑스오픈, 2016 US오픈 순으로 그랜드슬램을 각각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해 모두 처음으로 우승을 해냈다. 윔블던 만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인데, 아무래도 빠른 코트에서 약점을 보이는 바브린카가 윔블던을 우승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최전성기의 조코뱅크를 두 번이나 박살냈던 목욕탕바지
출처:foxnews.com


  나달과 바브린카는 18번 경기를 펼쳐, 바브린카가 딱 3번 이겼는데, 그 3번이 전부 상대적으로 최근이다. 한 번이 2014년 호주오픈 결승이고, 두 번은 나달의 암흑기인 2015년 로마 마스터즈와 상하이 마스터즈에서의 승리이다. 가장 최근 대결은 작년 몬테카를로 8강이고 그냥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듯, 가볍게 나달이 이겼다. 인도어, 아웃도어, 잔디, 하드, 클레이 뭐 가리지 않고 나달이 다 이긴 걸 보면, 딱히 상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확실히 예전과는 달리 바브린카가 이제는 빅네임급으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고, 프랑스오픈에서 3년 연속 4강 진출을 할만큼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내 개인적인 전망으로는 당연히 나달이 편안하게 이길 것 같다. 뭐 아무리 바브린카가 5세트의 사나이고, 초절정기 조코비치를 두 번이나 무너뜨린 선수고,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진적이 없는 선수고, 이미 2014 호주오픈 결승에서 나달을 무너뜨린 적도 있는 선수고, 역전의 명수고 어쩌고 하지만, 여긴 나달의 홈인 롤랑가로스다. 게다가 나달은 현재 믿기 어려운 포스를 뿜어내고 있다. 바브린카가 클레이 병신인 머레이를 만나 헤멘 것만 봐도 그렇다. 
  뭐 다른 걸 감안해 봐도 나달이 지는 모양새가 보이지 않는다. 일단 바브린카는 4강 머레이와의 혈전으로 이미 피로면에서 꽤 손해를 봤다. 반면 나달은 한 경기에 1시간 반 정도 쓴 꼴이다. 티엠과의 경기는 고작 2시간 걸렸다. 여전히 무실세트이다. 
  바브린카의 풀파워 상남자 테니스는 에러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머레이와의 경기에서도 볼 수 있듯, 거의 포인트들 바브린카 혼자 다 만들고 있는 차원이다. 또한 공격 테니스는 멘탈이 흔들리면 에러가 지수적으로 상승한다. 최근의 바브린카와 나달을 놓고 보자면, 둘 중 누군가 멘탈이 무너진다면 그건 바브린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한 손 백핸드의 문제이다. 바브린카가 백핸드가 강점이지만, 그의 백핸드는 나달의 포핸드로 향한다. 이것이 바브린카가 그동안 나달에게 고전해왔던 이유다. 나달의 포핸드에 스핀이 제대로 실리면 바브린카의 백핸드가 받아치기 정말 까다로워진다. 바브린카의 승부는 바브린카의 공격이 얼마나 먹혀드느냐의 싸움이기에 애초에 공격을 가하기 까다로운 공을 보내는 나달이 바브린카로서는 대단히 피곤한 상대인 것이다. 
  그렇다고 포핸드가 잘되기도 어렵다. 4강 경기에서 바브린카의 포핸드는 반쯤 버리고 써야하는 수준이었다. 페이스를 끌어올리려고 할때마다 포핸드는 에러를 범하며 발목을 잡았다. 반대로 나달의 백핸드는 요새 맛들리고 있는 지경이다. 나달은 카를로스 모야Carlos Moya가 코치로 온 이후 지난 호주 오픈에서 부터 공격적 백핸드에 맛붙이고 있다. 이번 롤랑가로스에서는 3회전 이후 조금 덜한 것 같지만, 여전히 백핸드에 자신감을 붙인 듯하다. 
  덧붙여, 바브린카의 파워샷은 나달이 칠 수만 있다면, 감아쳐서 카운터로 보내기 참 좋은 공이다. 티엠의 공보다 오히려 치기 편한 공이라는 말이다. 공궤적의 곡률이 티엠에 비해 확실히 적으니, 잘 갖다대기만 해도 넘어간다. 바브린카의 공격력이 나달을 상대로 오히려 자신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아무래도 바브린카가 그렇게 빠른선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설마?...
출처:ibtimes.com


  나달이 패배하고 바브린카가 우승할 가능성이 없는 것 아니다. 특히도 나는 지난 티엠과의 경기를 전망하던 것처럼, 여전히 나달이 너무 선전해서 불안하다. 너무 압도적이어서 오히려 예상치 못한 패배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지난해 US오픈에서도 바브린카는 여러 피곤한 경기들을 거치며 결승에 진출했다. 2회전이후 3세트 경기는 없었고, 3세트 경기를 포함해서도 모든 경기가 대단히 피곤하게 치뤄졌다. 반면 조코비치는 기권승 3번에, 어려운 상대도 없었다. 모두가 조코비치의 우승을 예상했다. 그러나 바브린카는 보란듯이 조코비치를 3:1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평론가들은 바브린카가 5세트 경기, 접전들을 거치면서, 몸이 확실히 풀려서 그렇다고 해설했다. 
  2014년 호주오픈 결승 직전까지 나달과 바브린카의 상대전적은 나달의 12전 전승이었다. 비록 나달이 등부상 등, 여러 부상에 시달리면서 컨디션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다수가 나달의 우승을 예상했다. 나달이 이미 준결승에서 무려 페더러를 3:0으로 스윕했고, 바브린카는 결승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바브린카의 3:1 승리로 끝났다.
  왠지 그런 과거의 전례들 때문에 불안하다. 나달이 결코 질 것 같지 않아서 질 것 같다는 그런 불안이다. 이제 당장 금방이다. 방금전에 끝난 여자 부에서는 애송이인 옐레나 오스타펜코Jelena Ostapenko가 우승했다. 바로 이런 불안함이다. 나달과 바브린카의 경기에서는 그런 예외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한 경기다. 나달이 꼭 승리해 역사적인 프랑스 오픈 10회 우승을 달성하기를 바란다. 참으로 금방이다. 내가 다 긴장된다. 



La Decima. 이제 한 경기만.
출처: rolandgaro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