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클레이 코트 시즌이 끝났다. king of clay는 자신이 말그대로 king of clay라는 것을 입증했고, 오스트리아의 신예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은 king of clay의 후계자임을 공고히했다. 비록 로마 마스터즈는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가 가져갔지만, 이번 클레이 시즌은 사실 상 위 두 선수가 지배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king of clay의 10번째 롤랑가로스 우승이 끝난 후 2주 후면 윔블던 예선이 시작되고, 3주후면 윔블던 본선이 시작된다. 원래 롤랑가로스가 끝난 후 1주일이면 윔블던 예선이 시작되던 것을 ATP가 올해부터 한 주 더 미뤘다. 선수들에게 휴식과 적응기간을 조금 더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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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 시작 전 3주 동안, 250대회-500대회-250대회 이렇게 세 번의 잔디코트 대회일정이 있다. 500대회에는 할레 오픈Halle Open과 에건 챔피언쉽Aegon Championship이 있다. 이 중 에건 챔피언쉽은 영국의 Queen's club tennis에서 열리는 대회로 윔블던의 워밍업 대회쯤으로 여겨진다.영국에서 열리는 대회 답게 대회 최다 우승자는 앤디 머레이Andy Murray다. 2013년과 2016년에는 윔블던도 함께 우승했다. 현역선수로는 머레이와 함께 라파엘 나달Rafael Nadal(2008년)만이 더블을 달성했다.
독일에서 열리는 할레 오픈은 윔블던과 함께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의 본진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그는 이 대회만 8번 이나 우승했는데, 이는 페더러 자신의 단일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이자, 단일 선수의 할레오픈 최다 우승기록이다. 비록 지난해 페더러는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를 4강에서 만나 패하면서 탈락했지만, 이 곳이 그의 본진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잔디 시즌에는 마스터즈 1000 대회가 없어서 윔블던을 제외하면 500대회인 애건 챔피언쉽과 할레 오픈이 가장 큰 대회다. 심지어 500대회로 승격한 것도 불과 2년 전인 2015년이다. 페더러가 나달과 조코비치보다 마스터즈 1000 대회 우승 횟수가 적은 것은 잔디코트를 쓰는 마스터즈 1000 대회가 없어서 일 것이다.
그래서 잔디 시즌은 사실상 "윔블던을 누가 우승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모든 관심이 몰린다. 지난해에는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분명한 우승후보였지만, 올 시즌은 조금 복잡해졌다.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롤랑가로스 우승을 차지한 라파엘 나달Rafael Nadal도 유력 후보군에 올랐고, 호주오픈에서 18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들어올린 황제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도 더없이 강력한 우승 후보다. 여기에 올 시즌 부진하고 있지만, 롤랑가로스 4강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여준 디펜딩 챔피언 앤디 머레이Andy Murray도 여전히 유력하다.
1.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5)
- 우승 7회(03,04,05,06,07,09,12), 준우승 3회(08,14,15)
- 최근 3년 : 준우승-준우승-4강
- 2017 호주오픈 우승 + 나달 트라우마 극복으로 상승세
- 클레이시즌 건너 뛰면서 충분히 휴식, 윔블던 올인
출처:indianexpress.com
현재 윔블던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이다. 2014년과 2015년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에 막혀 준우승에 그친 페더러는 지난해에도 4강에 진출했으나, 풀세트 접전을 연타로 거치면서 밀로스 라오니치Milos Raonic에게 아쉽게 패배했다. 그는 윔블던의 상징같은 존재이지만 2012년 이후 윔블던 우승이 없는데다, 윔블던 우승 외에 딱히 노릴만한 목표도 없다. 그래서 그는 그 누구보다 이번 대회 우승에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번 윔블던에서 8번 째 우승을 해낸다면,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7회)를 넘어 윔블던의 완전한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지난 호주오픈 때만큼의 경기력이라면, 윔블던에서 페더러의 적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잔디 코트에서 호성적을 보이는 앤디 머레이Andy Murray 정도가 있지만, 여전히 머레이는 페더러에게 위협은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다. 페더러의 윔블던 우승을 최근 2번이나 저지했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이미 슬럼프에 접어들어 있다. 최근 무서운 기세로 클레이를 평정한 king of clay는 페더러의 강력한 천적이었지만, 최초로 페더러에 대한 연패기록을 갱신하는 중인데다, 이미 올 시즌에만 3패를 기록하고 있다. 잔디보다 느린 하드코트에서조차 나달은 페더러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바운드가 매우 빠른 잔디코트는 서브와 발리를 자유자재로 쓰는 페더러에게 더욱 유리한 조건이라, 나달이 위협이 되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올해 페더러는 아예 클레이 코트 시즌을 건너 뛰었다. 페더러는 과거 인터뷰에서 클레이코트에서 나달에게 패하고 윔블던에 임하는 것이 자신감의 측면에서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나이 든 페더러에게 힘들기만 하고 성적을 내기는 어려운 클레이 시즌을 아예 건너 뛰었으니 윔블던에 대한 준비는 충분히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처럼 느닷없이 빅서버에게 경기 초반을 내주면서 풀세트 경기가 되지 않는 한, 페더러는 최소 4강은 물론 우승도 충분히 해낼 것 같다.
페더러의 우승에 유일하게 방해가 될만 한 요소가 있다면 시드 배정일 것이다. 랭킹에 잔디코트 성적을 포함시켜 시드를 배정하는 윔블던 특성상 시드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 페더러의 랭킹대로 5번 시드를 받게 된다면 페더러는 8강에서 머레이나 나달, 조코비치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이 든 그에게는 꽤나 부담이 될 것이다.
※ 너무 오래 쉰 탓인지, 첫 잔디 대회인 슈투트가르드 오픈에서 페더러는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39세 노장 토미 하스Tommy Haas에게 6:2, 6:7(8), 4:6으로 역전패를 당하며 자신의 잔디시즌 첫 경기를 패배로 장식했다.
2. 앤디 머레이Andy Murray(1)
- 우승 2회(13,16), 준우승 1회(12)
- 최근 3년 : 8강-4강-우승
- 디펜딩 챔피언, 홈 어드밴티지, 올 시즌 1000+ 우승 없어서 동기부여 높음
- vs Federer, 최근 5전 전패, 잔디 코트 전적 0-2
작년 말부터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앤디 머레이는 굴욕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까지 그의 올 시즌 우승 타이틀은 500대회인 두바이 오픈이 유일하고, 1000+ 대회에서는 아예 결승에 진출한 적도 없다. 롤랑가로스 4강에 오른 게 최고 기록이다. 1000시리즈에서는 아예 초반부터 탈락하느라 바빴다. 조코비치도 나란히 부진 중이기에 랭킹 1위가 유지되고 있지만, 이번 윔블던에서도 초반 라운드에서 탈락한다면 랭킹 1위 자리도 나달에게 위협받을 판이다.
지난해 페더러가 랴오니치에게 탈락해 준 덕에 머레이는 결승에서 랴오니치를 만나 가볍게 3:0으로 승리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는 녹록치 않을 듯 싶다. 페더러가 클레이 시즌까지 건너뛰고 휴식을 충분히 취한데다, 호주오픈 우승으로 자신감도 붙었고, 동기부여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레이는 최근 상승세인 라파엘 나달을 만났을 때, 승리한다고 전망하기도 어렵다. 머레이는 나달과 잔디에서 3번 맞붙어 3번 다 졌다. 전부 윔블던이었다. 머레이는 나달에게 트라우마가 있다고 할만큼 허무하게 패배했다. 머레이는 나달이 윔블던에서 사라진 이후 결승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2011년 준우승 이후 나달의 윔블던 최고 성적이 2014년 4라운드라는 것을 감안하면 나달이 머레이를 쉽게 이긴다는 예상도 어렵지만, 롤랑가로스에서 엄청난 기세를 보여준 것을 감안하면 또 머레이가 쉽게 이긴다고 예상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머레이는 윔블던의 강력한 우승후보다. 롤랑가로스에서 폼을 끌어올렸고, 윔블던 전에 열리는 에건 챔피언쉽에서 선전한다면 윔블던에서의 자신감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누가 뭐라건 윔블던은 머레이의 홈이고, 머레이가 가장 선전하는 코트도 잔디코트다. 머레이의 빠른 백핸드는 여전히 잔디에서 강력하고, 열심히 뛰어다니기에 푹신한 잔디코트는 매우 편안한 곳이다. 머레이가 우승한 그랜드 슬램 3회 중 2회는 윔블던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적어도 4강까지는 무난히 진출할것으로 보인다. 페더러만 잘 피하면 될 듯하다.
3. 라파엘 나달Rafael Nadal(2)
- 우승 2회(08,10), 준우승 3회(06,07,11)
- 최근 3년 : 4라운드(16강)-2라운드(64강)-불참
- 2017 클레이시즌에서 La Decima 이루면서 완벽하게 재기
- 롤랑가로스 무실세트 우승 -> 윔블던 우승, 2008-2010-2017(?)
출처:atpworldtour.com
10번째 롤랑가로스 우승을 압도적인 기량으로 나달이 해내자, 사람들은 나달의 윔블던도 기대해볼만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대략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달은 2008년과 2010년에도 무실세트로 롤랑가로스를 우승했는데, 이 두 해는 바로 나달이 윔블던 우승을 차지한 해이다. 둘째, 나달은 작년 말부터 휴식을 취한 이래, 새로 영입한 코치인 카를로스 모야Carlos Moya(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모야는 나달이 10대 때 부터 긴밀한 관계에 있던 선수다)와 함께 공격적인 플레이를 익혀왔다. 그것이 점점 빛을 발하면서 올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따라서 이미 방어적인 선수일 때도 윔블던에서 꽤나 강했던 나달이 이제 공격적인 플레이까지 펼치니 빠른 코트인 윔블던에서 선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셋째, 현재 나달은 부상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올 시즌 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왔음에도 현재 부상이 없다. 본인도 본인 컨디션이 매우 좋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나달이 윔블던에서 고전한 것은 무릎부상에 시달리면서 윔블던의 낮고 빠른 볼 처리능력이 떨어진 탓이다. 하지만 이제 부상에서 자유로워졌으니 과거 처럼 선전할거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나달은 롤랑가로스 이후 에건 챔피언쉽 출전까지 건너뛰며 윔블던까지 푹 휴식을 취할 것이라는 계획까지 밝혔다.
나는 나달의 팬이지만, 나달이 딱히 윔블던에서까지 선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클레이와 잔디의 성향은 완전히 반대다. 클레이는 바운드가 느리고 높지만, 잔디는 바운드가 빠르고 낮다. 그래서 잔디코트인 윔블던에서는 서브앤발리어들과 낮고 빠르고 플랫한 스트록을 치는 선수들이 선전한다. 나달의 서브가 많이 개선되었다지만, 여전히 페더러나 머레이의 그것에 비할바는 아니다. 나달의 탑스핀 스트로크는 그것이 지닌 대단히 많은 이점들을 잔디코트에서 잃기 마련이다.
잔디코트에서는 나달의 방어력이 지닌 영향력에도 문제가 생긴다. 바운드가 빠르고 낮으니 애초에 공을 달려가 받아쳐낼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줄어든다. 롤랑가로스에서 선전한 주요 요인이었던 서브 리턴 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브레이크를 쉽게 당하는 나달의 특성 상 브레이크를 쉽게 따야되는데 잔디 표면은 나달이 상대의 서브를 리턴해내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고, 나달의 장기인 랠리로 경기를 끌고 가기도 힘들어진다. 게다가 아무리 부상에서 벗어났다 한들 어리지 않은 그가 계속 무릎을 낮추는 것은 꽤나 부담이 될 것이다.
클레이코트와 잔디코트의 바운드 각과 속도를 보라.
출처: Unibet #LuckIsNoCoincidence - Tennis Surfaces Explained
동기 측면에서도 봐도 나달이 큰 성과를 낼 것 같지는 않다. 나달의 올시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롤랑가로스 no. 10이었을 것이다. 투어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하는 것도 기록하는 것이지만, 클레이시즌에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높은 가능성과 높은 기대감을 품은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달성했다. 여기에 윔블던 우승까지 더해, 클레이와 잔디를 동시에 휩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도 굉장한 일이긴 하겠지만, 가능성이 그리 큰 일도 아니고, 딱히 그에게 대단한 의미를 지닌 일도 아니다. 차라리 호주 오픈 우승에 몰빵해 더블 그랜드 슬램 기록하는 게 동기부여가 높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윔블던에 대한 나달의 동기부여는 페더러나 머레이의 그것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나달의 이번 윔블던 목표는 4강 진출 쯤이 아닐까 싶다. 사실 8강만 가도 성공적이다. 그는 2011년 준우승 이후 4라운드 통과조차 해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호주오픈 3라운드 알렉산더 즈베레프와의 경기가 고비였듯, 이번 윔블던 또한 랭킹 10위~30위 사이의 포텐 터진 빅서버나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나 루카 폴리Lucas Pouille 같은 활발한 신예들을 만나게 되는 3-4라운드 쯤이 강력한 위기의 순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윔블던은 아마 나달이 처음으로 삼촌이자 코치인 토니 나달Toni Nadal과 함께하지 않는 대회가 될 것이다. 물통을 나란히 세우고, 라인을 절대 밟지 않으며, 머리 넘기고 코만지고 바지를 빼고 서브 넣는 유명한 루틴을 실행하느라 서브를 늦게 넣어 매번 심판으로부터 경고를 받을 정도로 익숙함에 집착하는 나달이 과연 삼촌이 함께하지 않는 "낯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변수다.
(많은 사람들이 잊기 마련이지만, 페더러는 클레이에서 생각보다 강하고, 나달은 잔디에서 생각보다 강하다. 페더러는 워낙 다른 코트에서의 성적이 무시무시해서 그렇지, 롤랑가로스에서도 결승 진출만도 5회에 달한다. 나달은 부상으로 불참했던 2009년을 제외하고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윔블던에서만 5회 연속 결승에 올랐다.)
출처:rafaelnadalfans.com
번외)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 (20), 최고성적 QF(2014),
2016 윔블던 : 4th Round, l. to Andy Murray 5:7, 1:6, 4:6
출처:http://www.craveonline.com
올 초 하드코트 시즌에서 회생을 노리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를 2번 연타로 무너뜨린 선수이자, 나이키가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을 이을 차기 유망주로 신나게 밀어주고 있는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 내가 이번 윔블던 대회의 다크호스로 보고 있는 선수다.
사실 올 시즌만 보면 키르기오스가 이번 윔블던 대회에서 선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고의 신체조건을 갖춘 유망주이긴 하지만, 올 시즌 그는 대략 의욕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 초 호주오픈에서도 고작 2라운드에 노장 안드레아스 세피Andreas Seppi에게 허무하게 무너지며 탈락했고, 하드코트 대회, 클레이코트 대회 가리지 않고, 별다른 활약 없이 탈락만 연속했다. 오히려 복식 대회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 마저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그는 올 초 하드코트 시즌에서 최고의 폼을 보이는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를 마이애미 4강에서 만나 세 세트 모두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올시즌 최고의 3세트 경기를 보여줬고, 호주호픈 탈락 이후 반전의 기회를 노리며 날이 서있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를 두 번이나 연속으로 무실세트로 무너뜨렸다. 키르기오스는 올 초 나달조차 범접할 수 없어보였던 페더러를 괴롭힌 유일한 선수였고, 하드코트 강자 조코비치를 거의 가지고 놀다시피하며 여유롭게 무찔렀던 유일한 선수였다.
내가 보기에 키르기오스는 현재 투어에서 활약하는 그 어떤 선수보다 훌륭한 신체능력을 지닌 선수다. 193cm, 85kg의 피지컬은 강력한 서브를 넣기에도 충분하고, 베이스라이너를 하기에도 딱히 부족함이 없다. 그의 손목힘은 가공할만한 수준이고, 유연성은 조코비치의 아성에 도전할만하다. 러닝도 빠르고, 드랍샷을 비롯한 테크닉도 준수하다. 이러한 신체능력을 기반으로 한 키르기오스의 포핸드와 서브는 특히 강력한 무기로 불리운다. 강력한 손목힘을 바탕으로 한 포핸드는 투어선수 중에서도 빠른 속도와 파워로 유명하고, 간결한 동작에서 나오지만 엄청난 속도로 꽃히는 플랫서브는 대단히 위협적이다. 더욱 당황스러운 점은 그가 세컨서브에서도 200km/h대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서브를 느닷없이 내리 꽃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는 황제 페더러 앞에서 네트앞 페이크 샷을 쓸만큼 베짱이 두둑하다.
그의 이러한 특장점들은 그를 윔블던의 다크호스로 만들기 충분하다. 빠른 잔디코트에서 그의 서브와 발리대시는 더욱 가공할만한 파워를 가질 것이고, 그의 베이스라이너적인 기량은 그가 상대의 서비스 게임을 쉽게 브레이크 해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가 윔블던의 우승자가 된다던가, 4강에 오른다던가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잘해야 8강 정도 오를 듯하고, 잘해야 빅네임을 한 명 정도 컷오프 시키는데 그칠 듯하다. 그의 피지컬과 기량은 윔블던 우승자가 되는데에 결코 부족함이 없지만, 그의 멘탈과 경기운영능력은 윔블던의 우승자가 되기에 한참은 모자란다.
그랜드슬램 중에서도 윔블던은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고, 그만큼 경쟁 또한 치열하다. 키르기오스와 같은 수준 떨어지는 멘탈로 우승할만한 그런 만만한 곳이 아니다. 여기에 그의 시드는 20번대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3라운드부터는 높은 시드 배정자들을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한 번은 또 이길지 모르지만, 녹록치않다. 그의 뭔가 엄청나게 부족해 보이는 연습량을 추정해본다면, 클레이에서 잔디로 또다시 바뀐 코트에 그가 잘 적응할 것 같지는 않다.
다크호스라고 뽑아놓고 키르기오스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이유들만 늘어놓은 것 같다. 그래도 키르기오스는 분명 탑시드 선수들이 피하고 싶은 선수임이 분명할 것이다. 그가 우승까지 해내건 아니건 어쨌건 그는 분명 우승후보를 한 명쯤은 무너뜨릴 잠재력이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키르기오스가 절대 나달 만은 만나지 않았으면 한다.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10), 최고성적 3rd Round(2016)
2016 윔블던 : 3rd Round, l. to Tomas Berdych 3:6, 4:6, 6:4, 1:6
출처: atpworldtour.com
1997년생. 한국나이로 21살. The NextGen Race to Milan 랭킹 1위. 샤샤 즈베레프는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보다 16살 어리고,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보다 11살 어리다. 그런데 벌써 그는 탑 10에 진입했다. 로저 페더러는 탑 10에 한국나이로 22살(2002년 5월, 8위)에 진입했고, 라파엘 나달은 한국나이로 20살(2005년 4월, 7위),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는 21살(2007년 3월, 10위), 앤디 머레이Andy Murray는 22살(2008년 2월, 10위)에 각각 진입했다. 알렉산더 즈베레프 보다 탑10에 일찍 진입한 빅4는 라파엘 나달이 유일하다. 테니스계는 보통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곳이고, 대기만성의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을 감안하면,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일단 세계랭킹 1위에 오를 기본 자격은 갖춘 것이나 다름없다.
빅4 세대 이후 1990년 전후 출생 세대(니시코리 케이Nishikori Kei, 마린 칠리치Marin Cilic, 밀로스 랴오니치Milos Raonic, 그리고르 디미트로프Grigor Dimitrov, 다비드 고팡David Goffin 등등)가 있고, 그 다음 세대인 96년 이전 세대(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 루카 포일Lucas Pouille, 잭 삭Jack Sock, 닉 키르기오스Nick Kyrgios)가 있었다. 이 두 세대 모두 대단히 높은 기대를 받았지만 빅4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칠리치가 US오픈 우승을 이룩하고, 라오니치가 세계랭킹 3위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빅4에 도전하기에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이들 다음에 등장하는 세대가 바로 96년 이후 출생자들인 NextGen 세대이다. 한국의 유망주 정현을 포함하여, 보르나 초리치Borna Coric, 카렌 카차노프Karen Khachanov, 프란시스 티아포Francis Tiafoe들이 이 세대의 선수들이다. 그리고 알렉산더 즈베레프도 바로 이 세대에 속한다. 비록 동년배들과 차원을 달리하고 있지만 말이다.
출처: newindianexpress.com
로마 마스터즈 결승에서 조코비치를 상대로 승리하며 첫 마스터즈 1000 우승을 달성한 즈베레프는 롤랑가로스 시작 직전 king of clay의 the ten을 방해할 선수로 꼽혔다. 나는 그런 전망과는 달리 즈베레프가 클레이 코트에는 별로 강한 선수라고 아니라고 보았고, 실제로 즈베레프는 1라운드에서 페르난도 베르다스코Fernando Verdasco를 만나 가뿐하게 탈락했다. 그의 로마 마스터즈 우승이 대단한 기록이긴 하지만, 그는 빅서버들로 점철된 대박터진 대진과 정신못차리는 조코비치라는 행운 덕에 기록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롤랑가로스와는 달리 윔블던에서는 즈베레프가 대단히 선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앞서 꼽은 닉 키르기오스와 필두로 탑시드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선수일 것이며, 피해야하는 선수일 것이라고 본다.
지난 호주오픈 나달과 즈베레프의 경기를 복기해보자. 나달이 즈베레프에게 고전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바운드가 빠른(과거 보다 더 빨라진) 로드레이버 아레나의 하드코트에서 즈베레프의 높은 타점에서 찍는 플랫서브는 물론, 탑스핀 세컨 서브까지도 나달이 리턴해내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여기에 즈베레프의 낮고 빠른 스트록, 특히 각도 큰 투핸드는 손쉽게 위너로 이어졌다. 이는 공격적인 즈베레프가 더욱 공격을 쉽게 만들었고, 랠리를 완전히 주도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몬테카를로에서 다시 만난 그들의 경기는 어땠는가. 바운드가 느린 클레이에서 즈베레프는 밀리다 못해 아예 간단한 상대가 되어버렸다. 그의 스트록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맞받아 때리기 좋은 공이 될정도였다. 위협적인 그의 서브 또한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클레이코트는 과거 황제이자 서브 대마왕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에게 조차 그랜드슬램 결승무대를 허용하지 않은 곳이다. 심지어 즈베레프는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의 정현에게조차 허무하게 경기를 내줄 정도였다.
윔블던의 잔디코트는 내내 언급해왔던 것처럼 바운드가 낮고, 빠르다. 큰 키에 서브가 강한 선수가 유리하다. 탑스핀 스트로크가 상대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낮고 빠른 플랫 스트로크를 치는 선수가 유리하다. 부드러운 지반 탓에 부상 위험이 덜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방어형 선수에게 유리한 건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가 재미없다는 의견을 들어 (바운드가 보다 높고 느려질 수 있게 끔)요새 모래를 많이 뿌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잔디는 잔디다. 즈베레프가 왜 선전할 것인지는 다 나왔다. 즈베레프는 큰 키와 강력한 서브를 가지고 있으며, 낮고 빠른 스트로크를 기반으로한 공격적 스트로크를 펼치며, 큰 키치고 가벼운 탓에 상당히 준수한 방어력을 보여주는 선수이다. 이쯤되면 즈베레프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게 이상해보일 정도이다.
여기에 즈베레프는 비록 롤랑가로스에서는 1회전에서 탈락했지만, 로마 마스터즈를 거치며 나름 상승세다. 조코비치를 이기면서 자신감까지 붙었다. 그는 페더러를 그의 안방인 할레 오픈에서 패배시킨 적도 있다. 그는 점차 탑랭커이자 차기 랭킹 1위로서 훌륭히 성장해 나가는 궤도에 있다. 아직 어린 탓에 멘탈적인 측면이나, 경기 운영 능력이 성숙된 선수는 아니지만, 패기와 상승세라는 변수도 있다. 비록 잔디 시즌 첫 대회인 리코 오픈에서 노장 쥘 뮐러Gilles Muller에게 준결승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준수한 잔디 플레이어인 줄리앙 베네통Julien Benneteau에게 베이글 스코어까지 선서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키르기오스에 대해서는 4강은 무리고, 잘해야 8강이라고 평했지만, 왠지 즈베레프는 상승세만 제대로 탄다면 결승진출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연륜이 쌓인 탑시드 선수들이 결코 호락호락한 선수들은 아니지만, 그의 공격력이 매우 뛰어나기에 흐름만 받쳐준다면 빅4를 탈락시키는 일도 나올 것 같다. 그는 이번 윔블던의 다크호스가 되기에는 매우 충분한 선수라고 확신한다.
※ 기타etc.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 스탄 바브린카Stan Wawrinka,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 그리고르 디미트로프Grigor Dimitrov, 니시코리 케이Kei Nishikori, 밀로스 라오니치Milos Raonic 등등.
그냥 평타 정도 평범하게 칠 것 같은 선수들이다. 조코비치는 롤랑가로스가 끝난 후 윔블던 까지 휴식에 들어갔다. 휴식에서 돌아온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클레이시즌을 망친 조코비치는 잔디시즌이라고 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동기부여에 문제가 있다. 이제는 자신감까지 무너져가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그는 첫 전성기의 시작이었던 2011년 3월 이후 처음으로 2위 아래로 떨어졌고, 2009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4위에 랭크됐다. 윔블던에서 회복하기에는 페더러와 나달의 상승세가 두렵고, 머레이의 동기부여가 두렵다. 클레이시즌에서 완전히 공치는 타점을 잃은 듯한 플레이를 보이면서, 장기인 백핸드가 완전히 박살나버린 조코비치는 윔블던에서 더 큰 멘붕을 당하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꾸준함이 그의 장기였기에, 호주오픈 준우승으로도 상당히 큰 반전이 되었던 나달과 달리, 조코비치는 윔블던에서 우승이라도 하지 않는 한 반전이라고 평하기도 애매하다. 만약 이번에도 3, 4라운드 쯤에서 탈락한다면, 그의 하향세는 걷잡을 수 없을 듯하다.
롤랑가로스 준우승자인 스탄 바브린카의 경우도 그리 주목이 가지 않는다. 바브린카는 원래도 잔디에서 약했다. 서브도 좋고 공격적인 선수이긴 하지만, 참으로 이상하리만큼 잔디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서브 앤 발리어보다는 베이스라인 러너에 가까운 그는 장기전에 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상하게 윔블던에서만은 예외였다. 그는 무려 10번째 도전만인 2014년에 와서야 윔블던 8강에 진출했고, 한창 분위기 좋았던 2015년에도 롤랑가로스 우승 후 8강에서 리샤르 가스케Richard Gasquet에게 풀세트 접전 끝에 패배했다. 가스케의 폼이 딱히 좋을 게 없었던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의외의 결과였다. 지난해에는 더욱 참혹했다. 4번시드로 출전한 그는 하필 재수가 없게도 부상에서 돌아와 막 분위기 타고 있던 후안 마틴 델포트로Juan Martin del Potro를 만나 2라운드에서 만났다. 하드히터들 간의 대결에서 그는 델포트로에게 세트스코어 1:3으로 패배하며 짐을 싸야 했다. 올해도 딱히 다르지는 않을 듯 하다. 롤랑가로스에서 하필 King of clay를 만나 압도당하면서 그랜드슬램 결승 승률 100% 기록이 깨진 그는 자신감보다는 오히려 자괴감을 얻었을 터이니 더욱 그렇다. 8강만 가도 바브린카로서는 성공이다.
차기 클레이의 제왕인 티엠의 윔블던 전망도 그리 밝지는 않다. 8강 진출에만 성공해도 티엠에게는 대단한 성공이 아닐까 싶다. 무지막지한 탑스핀을 치는 그는 정확히 작년 이맘때인 슈투트가르트 오픈에서 무려 페더러를 잔디에서 물리치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덕분에 그는 작년 앤디 머레이와 함께 잔디와 클레이 그리고 하드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클레이 스페셜리스트인 티엠은 king of clay가 잔디에서 상대적으로 고전하는 것과 같은 비슷한 이유로 잔디에서 고전한다. 지난해 롤랑가로스 4강까지 올랐음에도, 윔블던에서는 시드도 받지 못했던 지리 베슬리Jiri Vesely에게 3연속 타이브레이크 끝에 0:3으로 지고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뛰어다니기에 부상위험이 덜한 덕에 잔디에서 조금이나마 선전했지만, 윔블던에서 그의 탑스핀은 결코 위력적인 무기가 아니다. 그의 장기인 한 손 백핸드도 빅서버들의 랠리 주도에 약점에만 그칠 수 있다. 롤랑가로스의 티엠은 무시무시했지만, 윔블던의 티엠은 4라운드가 그의 목표가 아닐까싶다 .
나머지는 뭐 딱히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니시코리와 디미트로프는 멘탈 잘 챙겨야 될 것 같고, 라오니치는 더 큰 선수로 거듭나기위해서는 아무래도 랠리 능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백핸드는 에러도 많은 데다 밋밋하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그는 무겁고 쿵쿵대며 뛰어다니기에 체력적인 문제도 고려해야할 것 같다.
이상 이번 윔블던을 대비한 우승후보와 관심 가져야할 선수 그리고 기타(?) 몇몇 선수에 대한 잡설이다. 2007년 윔블던 결승 매치업은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이었다. 2017년 결승이 또다시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 안될 것만 같지만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 된다면 정말 2017년 한 해는 테니스 역사에 있어 보기드문 되감기의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US오픈에서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쯤 되는 매치업이 이뤄지면 더 신이 날 것 같은데. 한 번 대단히 기대하면서 지켜봐야겠다. 설렌다. 윔블던.
출처:wimbled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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