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이 프랑스오픈 3회전에서 니시코리 케이Kei Nishikori에게 패배한 이래, 선전했다고 평가하는 내용들과 더불어 보완점을 찾는 이야기들도 많이 나왔다. 포핸드가 더 강력해져야된다던가, 서브가 더 좋아져야 경기를 주도할 수 있다던가, 발리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된다던가, 퍼스트 서브 성공률을 높여야 탑시더들에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던가 등등, 그의 장기로 여기지는 백핸드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얘기가 다 나온 것 같다. 한국 테니스의 전설이라 일컬어지는 이형택 코치를 비롯한 몇몇 전문가들은 정현이 공의 타점을 한템포 빨리 가져가야 서양 선수들과 스피드와 파워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조언을 내어놨다. 그런데 유구한 역사와 경력을 자랑하는 그들에 비해 하찮은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그들의 평이 전부 다 헛소리로 보였다.
철저히 코리안 웨이로 접근한 평들이다. 무슨 시험 공부하듯이 백핸드 과목은 이제 됐으니까, 이제 다른 과목 성적 올리자는 식이다. 경기 전체에 대한 이해도, 맥락도 없고, 관심도 없고, 그냥 막 뱉는 이야기들 같았다. 특히 전설 이형택 코치가 내놓은 조언은 충격적이었다.
신장 180에 원핸드 백핸드를 쓰며 하드 코트가 주력이었던 이형택 코치가 해외 선수와 경쟁하려면, 본인이 내놓은 조언처럼, 타점을 한템포 빨리가져야했다. 그는 서브에 한계가 있고, 랠리 안정성도 떨어졌으며, 파워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투어에서 생존하기 위해 공을 한템포 빨리 쳐서 상대의 파워를 역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공에 실린 파워와 공의 스피드를 늘려야만 했다. 니시코리 케이가바로 그런 플레이의 정점을 보여주는 선수다. 반면에 정현은 이형택이나 니시코리 케이같은 선수와는 완전히 다르다. 정현은 투핸드가 장기이고, 신장은 180 후반이다. 그는 클레이코트에서 선전했고, 베이스라인에서 한없이 떨어진 랠리에서 강점을 보인다. 정현은 파워와 안정성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는 무려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의 포핸드에 맞서 오랜 랠리를 성공적으로 해냈을 정도다.
다른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라파엘 나달Rafael Nadal과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발리를 잘해서 그 위치에 올랐나. 그들이 서브가 좋아서 그 자리에 올랐나. 정현이 니시코리와의 경기에서 퍼스트 서브 성공률이 50% 대라고 그걸 높여야 더 높이 탑랭커들과의 경기에서 승산이 있다는 어느 기자 나부랭이의 평론이 웃기기로는 베스트였다. 어제 열린 롤랑가로스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앤디 머레이Andy Murray의 퍼스트 서브 성공률은 경기내내 50%를 달렸고, 서브가 좋다고 알려진 세계랭킹 4위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Stanislas Wawrinka조차 간신히 60%를 찍었다. 요새 날아다니고 있는 king of clay는 4라운드에서 아예 40%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그 경기에서 king of clay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듯 상대를 짓밟았다. 조언이랍시고 나오는 이야기들이 다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 갖고 막 뱉어내는 수준이다.
정현이 니시코리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이유는 기량차이가 아니다. 멘탈과 경기운영능력 때문에 패한 것이다. 다른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말 그대로 클래스가 딸려서 그렇다는 거다.
테니스는 게임 내 포인트가 게임 포인트로 이어지고 그것이 세트 포인트로 이어진다. 게다가 경기 도중에는 코치와 함께할 수도 없다. 여기에 심지어 하루 첫 시작 경기가 아니면 자신의 경기가 언제 시작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없다. 미친듯한 긴장감과 부담속에서 경기를 치룬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고무공 치기 놀이는 조금만 멘탈이 흔들리면 "아웃"이라는 결과로 점철된다. 엄청 간단해 보이지만 대단히 미세하고 정교한 동작들은 연속이라 조금만 집중력이 흔들려도 공은 나가버린다. 상대가 잘하지 않아도 자멸하여 질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정현이 이번 패배에서 얻어야 할 핵심교훈이 바로 이런 상황을 성공적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이기는 마인드"다. 기량은 충분하다. 백핸드는 훌륭하고, 포핸드도 부족하지 않다. 발리는 어차피 피니쉬 수단일 뿐이다. 서브도 과거에 비하면 충분히 끌어올렸다. 그는 어차피 베이스라인 러너이니, 서브에 올인할 필요도 없다. 지난 패배들을 거치며 그가 매진했던 훈련들 덕분인지, 체력적으로 기량적으로 충분히 성과를 본 것 같다.
이제 그는 이겨봐야 한다. 집중력을 유지해서 이긴다는 마인드에 익숙해져야한다. 승패의 흐름은 고작 한 두 포인트 순간에 결정된다. 바로 그 순간을 확실히 캐치하고 자신의 뜻대로 끌어나갈 수 있는 멘탈이고 역량이다. 결국 이겨내본 경험이 쌓여야하고 이기는 집중력을 끌어내려고 노력해야하난 것이다.
니시코리를 상대한 정현은, 지난 호주오픈 디미트로프Grigor Dimitrov와의 경기에서도 그랬듯, 자신이 잡은 찬스를 하나도 살리지를 못했다. 3세트 타이브레이크를 이겨낸 건 대단한 성과지만, 니시코리의 백핸드에서 이어진 자멸이 더 큰 요인이었다. 마지막 세트가 보여준다. 니시코리는 4세트를 러브게임으로 내주고 바로 이어진 5세트 임에도 그것을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바꿔버렸다. 니시코리는 바로 브레이크를 해냈다. 하지만 정현은 5:3 니시코리의 Serve for the match 게임을 브레이크 해냈다. 반전의 계기는 마련했지만, 그걸 끌고 가지 못했다. 다시 백핸드가 흔들리면서 니시코리는 또다시 멘탈이 아슬아슬해보였지만, 그는 클래스를 보였고, 정현은 자신이 만들어낸 찬스에서 자멸한 것이다. 마지막 포인트가 더블 폴트 였다는 건, 더 묘사할 필요도 없는 장면이다. 이겨본 경험과 이기는 습관이 부족하다보니, 결정적 순간에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1번 시드인 몽필스Gael Monfils를 이기며, 우승의 눈앞까지 갔던 뮌헨 오픈이 엄청나게 아쉽다. 정현에게 승리한 귀도 펠라Guido Pella가 결코 강한 선수도 아니었고, 그 대회를 우승한 알렉산더 즈베레프Alexander Zverev는 이미 바르셀로나에서 정현에게 가뿐하게 털린 선수였기 때문이다. (즈베레프가 로마와 뮌헨에서 우승했다고 무슨 클레이의 새로운 강자니, 이번 프랑스오픈에서 나달을 위협할 신예니, 하는 분석들도 우습기에 짝이 없었다. 테니스를 보는 작자들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비록 250 대회지만, 대회를 충분히 끝까지 치뤄냈고, 승리해냈다는 경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토너먼트에서 대회를 끝까지 치뤄낸 경험이라는 게 어떤 건지는 토너먼트에 참여해본 사람이라면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아무도 이 얘기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즈베레프가 로마 우승했다고 프랑스오픈의 다크호스니 뭐니 하는 바보같은 소리를 늘어놓던 기자 나부랭이들은 '정현이 잘한다. 이제 포핸드를 연습해서 잘하면 더 잘할 것이다. 윔블던도 기대해볼만하다.' 라는 식의 멍청한 소리들만 나불거리고 있다. 코트 특성이 완전히 다른데다 적응기간까지 별로 없는 윔블던에서 정현이 1회전 탈락만 면해도 대단한 성공인데 말이다.
프랑스까지 날아가서 경기를 직관했다는 테니스 협회장 같은 노인들은 또 정현을 데리고 얼마나 되도 않은 훈수두고 자빠져있을지는 안봐도 비디오다. 제대로된 코치도 없는 정현이 이제는 안타까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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