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Roland Garros Final
Rafael Nadal(4) d. Stanislas Wawrinka(3)
6:2, 6:3, 6:1
바브린카가 이겼으면 저 시상대 어쩔뻔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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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한 king of clay에게 적수는 없었다. 상대는 그랜드슬램 결승에 3회 진출하여 3회 모두 우승을 차지한 선수이자, 전성기 노박을 무너뜨린 유일한 선수인 Stan the Man이지만, 라 데시마를 눈 앞에 둔 King of clay에게는 그냥 에러 많은 선수에 불과했다.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은 그렇게 자신의 10번째 롤랑가로스 결승에서 자신의 10번째 머스킷티어스컵을 들어올렸다.
이로써 king of clay의 롤랑가로스 통산 전적은 79승 2패(승률 97.5%), 결승 전적은 10승이 되었다. 2008년과 2010년에 이어 세 번째로 무실세트 우승을 차지한 나달은 고작 총 35게임만 잃었는데, 이는 스웨덴의 비외른 보리Bjorn Borg가 1978년 롤랑가로스에서 기록한 32게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적은 숫자이다. 또한 이번 우승으로 통산 그랜드 슬램 우승 15회를 기록한 나달은 드디어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14회)를 제치고 역대 통산 그랜드슬램 우승 단독 2위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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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후, 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나달은 몸이 조금 덜 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에러가 없기로 유명한 나달이 에러가 많기로 유명한 바브린카와 에러 숫자를 비슷하게 가져갔다. 나달의 스트로크는 축발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불안한 상태에서 이뤄졌다. 찬스볼에서 포핸드 조차 라인을 벗어나 버리곤 했다. 아무래도 상대가 공격왕 상남자 바브린카다 보니 의식적으로 공격적인 스트로크를 치려다 리듬을 좀 잃은게 아닌가 싶었다.
1세트 2:1 나달 리드, 바브린카의 서비스 게임인 네 번째 게임이 첫 중요 지점이었다. 듀스를 6번이나 갔다. 바브린카의 퍼스트 서브는 주로 나달의 백핸드를 노렸고, 세컨 서브는 코트 밖으로 깊숙히 나가는 킥 아웃 탑스핀 서브를 종종 섞었다. 하지만 나달의 리턴은 이번 대회내내 상당히 좋았다. 리턴이 날카롭거나 강력한 건 아니지만 서비스 쪽이 3구 마무리를 하기에는 깊숙하고, 어정쩡하게 들어갔다. 그렇게 일단 랠리가 이어지면 나달 쪽이 주도했다. 서브가 좋은 바브린카가 서브로 주도를 못하니 그는 서비스 게임에서 상당히 고전했다.
나달은 4000rpm에 이르는 포핸드 어프로치 샷 이후 스트로크가 회복되는 듯 했으나, 결국 정확도가 완전히 차오르지는 못했고, 바브린카는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1세트는 거기까지 였다. 나달의 몸은 다 풀렸고, 이후 이어진 네 게임은 전부 나달이 챙겼다. 나달의 백핸드에 가끔 미스가 나오기는 했지만, 바브린카가 그것으로 주도권을 가져가기에는 나달의 폼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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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트 시작과 동시에 나달은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가볍게 따고, 그대로 바브린카의 첫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해냈다. 바브린카도 그제서야 몸이 좀 풀린 듯, 본인의 장기인 한손백핸드를 제대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달은 아예 여유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마치 백핸드 연습이라도 하듯이 그는 바브린카의 공을 집요하게 백핸드로 쳤다. 충분히 돌아서서 포핸드로 받아칠 여유가 있는 볼까지도 전부 백핸드로 처리했다. 심지어 크로스와 다운더라인을 번갈아치며 바브린카를 공격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아마도 바브린카의 위협적인 각도 큰 백핸드 크로스 샷이 혹시라도 나오면 포핸드로 받아치기 위한 전술인가보다 생각했지만, 나달의 표정이 너무 여유롭다보니 상대를 놀리려고 일부러 백핸드를 고집하는 것처럼 보였다.
2세트 3:0 상황 이후, 나달은 조금 이완된 모습을 보였다. 나달의 백핸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공이 짧고 상대적으로 약했고, 바브린카의 찬스 상황으로 종종 이어졌다. 이를 놓치지 않고 바브린카의 백핸드가 살아났다. 나달도 딱히 바브린카의 서비스 게임을 다시 브레이크 시키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렇게 서비스게임을 각자 챙겼다.
2세트의 결정적 순간은 5:3에서 맞이한 나달의 서비스 게임이었다. 바브린카는 바로 이전 자신의 서비스 게임 0-30으로 몰린 상황에서 네 포인트를 연속 따내며 기세를 탔다. 만약 그 기세를 몰아 나달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해낸다면 경기는 크게 요동칠 참이었다.
하지만 나달이 불안해지기전에 바브린카는 두 개의 에러를 범했다. 30-15, 나달의 강한 포핸드 피니쉬가 네트를 맞으면서 바브린카의 찬스볼이 되었다. 세게 때린 바브린카의 공격을 나달이 발리로 받아내긴 했지만, 공은 크게 바운드 됐다. 다시 찬스볼이다. 바브린카가 한번만 더 정확하게 때린다면, 게임 초반 두 개의 에러로 내준 흐름을 되찾을 기회였다. 하지만 바브린카의 공은 멀리 나가버렸다. 다음 포인트에서도 바브린카는 멀리 나가는 백핸드 리턴으로 자멸했다. 그렇게 게임은 끝났고, 2세트 마저 나달이 가져갔다. 경기 시작 후 1시간 30분이 안되었을 때였고, 바브린카는 라켓을 부쉈다. 경기는 사실상 나달에게 넘어갔다.
2015년과 달리 이번에는 자신이 라켓을 부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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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트는 지난 티엠과의 준결승 3세트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래도 바브린카는 나달의 백핸드가 짧을 때를 노려 한 게임을 따냈다는 것 정도 밖에 없었다. 3세트 첫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당한 이후 바브린카의 두번째 서비스 게임에서 바브린카는 나달의 짧은 백핸드를 공격하면서 한 게임을 따냈다.
그 다음 바브린카의 서비스 게임이 3세트의 분수령이었다. 게임 스코어 3:1에서 바브린카는 강력한 서브로 주도권을 잡았다. 여기에 나달이 찬스 상황을 두 개 정도 놓치면서 바브린카가 게임을 따낼 기회를 얻었다. 듀스를 4번이나 거치고, 경기장에서 바브린카 응원이 나올 만큼 바브린카는 마지막 파이팅을 보였지만, 결국 그는 나달과의 랠리를 이겨내지 못했고, 에러를 연타로 범하며 3세트 두 번째 브레이크를 마저 내주고 만다. 여기까지였다. 그대로 나달은 자신의 서브게임과 바브린카의 서브 게임을 차례로 따내고 필립샤트리에의 클레이에 대자로 뻗었다. 10번째였다. 오픈 시대 이후 유일한 단일 대회 10회 우승 기록이며, 앞으로 두 번 다시 나오기 어려운 위대한 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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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브린카는 아마도 나달과의 결승을 치르면서 차라리 그냥 준결승에서 머레이한테 지고 떨어졌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을듯하다. 그만큼 king of clay의 경기력은 무시무시했고, 차원을 달리하는 것 같았다.
스탄 더 맨. 도무지 상대가 없어 보이던 무적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를 무려 두 번이나, 그것도 그랜드 슬램 결승에서 무너뜨린 선수다. 두 번 다 3:1 역전 승이었다. 특히 2015년 롤랑가로스에서는 king of clay마저 꺾고 무결점의 절정에 올라 우승이 당연시 되었던 조코비치에게, 무려 클레이 코트에서, 공격테니스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며 그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1년 뒤로 미뤄버린 선수였다.
하지만 컴백한 king of clay에게 바브린카는 애당초 공격을 해볼 기회조차 별로 없었다. 서브도 안통하고 백핸드도 안통했다. 랠리는 짧든, 중간이든, 길든 전부 나달이 앞섰다.
바브린카의 서브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나달의 백핸드를 향해 정확하게 들어갔지만, 나달의 백핸드 리턴는 예상을 넘어섰다. 바브린카의 깊게 때리는 킥서브는 나달의 포핸드로 가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후려치는 포핸드가 넘어왔다. 바브린카는 서브로 랠리 주도권을 가져올 수가 없었다.
바브린카의 백핸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바브린카의 백핸드는 꽤 여러 번 정말 멋지게 들어갔었다. 마치 지난 호주오픈 페더러를 보는 듯한 각도 깊은 백핸드도 있었다. 하지만 클레이 코트 위의 나달은 그걸 단 한번도 위너가 되게끔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떻게든 달려가서 포핸드로 받아넘겼다.
애초에 백핸드 공격이 자주 시도되지도 못했다. 랠리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브린카는 거의 단 한 번도 랠리를 주도하지 못했다. 살아난 나달의 스트로크는 바브린카가 받기에는 너무 거친 공이었다. 강한 회전을 지닌 나달의 탑스핀 스트로크는 꽤나 많은 숫자가 길게 들어갔고, 이것은 아웃도어 클레이코트의 특성과 겹쳐 바브린카가 꽤나 처리하기 힘든 공이 되었다. 높이 튀어오르는 데다, 바운드 각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코트 가운데를 기준으로 포핸드로 처리해도 될 공까지도 백핸드로 자주처리하는 바브린카에게 그와 같은 공들은 매우 곤혹스러운 공이다. 한손 백핸드는 나달의 그처럼 높이 튀는 공을 처리하기 매우 까다롭다. 공격으로 전환하기에는 공이 높아 자세가 제대로 나오기가 어렵고, 공이 적당한 높이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바운드 후 정점에 올랐다가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공을 수평으로 쳐내야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한 손 백핸드로 처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적당히 받아쳐 넘겨주는 식으로 처리하면 상황은 더욱 곤란해진다. 어설프게 넘겨진 공은 나달 같은 베이스라이너가 딱 때리기 좋은 공이 된다. 여지없이 나달은 마음놓고 스트록을 후려댔다. 방어로 승부보는 타입이 아닌 바브린카가 커버하기에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이런 랠리 딜레마는 바브린카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더욱 크게 주었을 것이다. 바브린카가 공을 입에 문다던가, 라켓을 부순다던가 하는 모습은 이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혹시라도 공격이 들어간다고 해도 나달이 다 받아내버린다. 바브린카의 빠른 공은 바운드가 느려지는 클레이에서는 받아칠수만 있다면 딱 감아치기 좋은 공이된다. 강한 스핀을 주기 위해 감아치는 타법은 보통 파워를 잃기 쉬운데, 상대가 친 공이 빠르고 강하면, 그 힘을 역이용하여 부족한 파워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달처럼 반응력과 풋워크가 빠르고, 감아 치는 데에 특화된 선수에게는 더없이 좋은 상황이 된다.
어쨌건 위와 같은 이유들로 바브린카는 제대로 자신의 테니스를 보여줄 기회도 갖지 못한 채 경기를 내줬다. 나달은 차원을 달리했다. 조코비치에게 허무하게 털리고 탈락했던 2015년 롤랑가로스가 엊그제 같은데. 몬테카를로 우승을 해냈지만, 마드리드와 로마에서 각각 머레이와 조코비치에게 순서대로 패배하며 탈락했던 작년이 엊그제 같은데. 나달은 이제 끝났다는 이야기들이 사실상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지만, king of clay는 또다시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돌아왔다.
올 시즌은 정말 마법같은 시즌이다.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가 호주오픈에 선샤인더블을 더하면서 돌아왔고,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은 롤랑가로스에 클레이 시즌을 석권하며 돌아왔다. 흥미롭게도 지난 15, 16시즌을 지배했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와 앤디 머레이Andy Murray가 나란히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위 둘의 대단함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제 시즌의 절반이 지나갔다. 이제 윔블던 잔디시즌, 북미 하드코트 시리즈, 그리고 월드투어파이널을 향해 달리는 인도어 코트 시즌이 남았다. 황제 페더러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윔블던 우승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머레이와 조코비치 또한 하드코트에 강한 만큼 이대로 시즌을 하향세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라파엘 나달의 하반기 성적은 좋은적이 많지 않다. 나달에게 남은 목표라면, 월드투어파이널 우승이나, 내년 호주 오픈 우승 정도가 될 것이다. 결국 나달은 롤랑가로스 10회 우승을 해냈으니, 사실 위 두 목표를 해내지 않아도 딱히 아쉬울게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달의 우승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뭔가 나달이 보낸 슬럼프 시기를 내 삶의 암흑기와 겹쳐 보내며 참 안타까운 나날 들이었는데, 이번 나달의 우승을 보며 참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나달이 남은 시즌을 어떻게 보낼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뭔가 내 삶도 잘 풀릴 것만 같고, 테니스도 편안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난해부터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에 관한 자료를 모아서 분석해보는 글을 써보려고 했었는데 결국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티엠은 벌써 차기 클레이의 제왕이 되어버렸다. 나달도 나달이지만, 이제는 티엠에도 본격적으로 관심 좀 가져야겠다. 하. 참 신난다. Ten 이라니.
One is difficult. Two is impressive. Ten is Rafa.
from @n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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