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3일 토요일

니시코리 케이 - 정현



 2017 롤랑가로스 3회전. 정현과 니시코리 케이Kei Nishikori의 경기가 5:7, 4:6, 7:6(4), 3:0 상황에서 우천으로 중단되었다. 경기가 중단되기 직전 니시코리는 라켓을 던져 부쉈고, 메디컬 타임을 요청한 상태였다. 반면 정현은 3세트를 극적으로 따낸 이후 완전히 변곡점을 얻어낸 상황이었다. 비가 니시코리에게는 기회가 되었고, 정현에게는 아쉬움이 되었다. 만약 그대로 경기가 진행되었다면 거의 정현의 역전승이 눈앞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니시코리의 상태는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경기 전 나는 니시코리의 압도적인 승리가 되지 않을까 예측했다. 이번 정현의 상승세에서 내가 눈여겨 보았던 점은 베이스라인 멀찍이 뒤에 서서, 백핸드 쪽으로 떨어지는 볼들을 훌륭히 스트록으로 처리해내면서 백핸드 랠리를 이어가는 측면이었다. 이것이 바운드가 크고 느린 클레이코트의 특성과 더불어 강력한 경기력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았다.
  롤랑가로스 1회전과 2회전에서 상대한 샘 퀘리Sam Querrey와 데니스 이스토민Denis Istomin과의 경기도 정현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경기라고 보았었다. 퀘리는 애초에 거구의 빅서버인데다 백핸드가 매우 약하기 때문이고, 이스토민은 방어적으로 나오는 정현을 몰아부칠만한 공격력을 지닌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지없이 그 둘은 베이스라인 뒤로 물러나 백핸드 랠리만 펼치는 정현에게 좌절당했다. 
  하지만 니시코리는 다르다. 니시코리의 플레이스타일은 공격형 조코비치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라운드 스트록을 주무기로 삼는 그는 마치 라이징볼 치듯 공을 한템포 빨리친다. 탑스핀보다는 네트를 살짝 넘겨, 낮고 빠르게 들어오는 플랫성 타구를 친다. 공격적이다 보니 위너도 많고 그만큼 에러도 많다. 그의 풋워크는 빠르고 그의 스트록 동작은 매우 민첩하다. 그리고 강력한 양손백핸드는 조코비치처럼 그의 장기다. 
  정현이 고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의 니시코리의 경기템포가 매우 빠르고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공격 템포가 빠르니, 정현이 받아칠 준비를 할 시간도 짧다. 여기에 니시코리의 그라운드 스트록은 매우 빠르고 낮은 플랫성 타구니 정현으로서는 코트 전후 무빙까지 고려해야한다. 당연히 받아치는 타구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백핸드도 강력하다. 따라서 베이스라인 멀찍이 뒤에서 카운터를 노리는 정현의 백핸드 랠리 스타일이 매우 고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출처:abs-cbn


  실제 경기에서도 예상했던 부분들은 대단히 많이 나타났다. 니시코리는 코트 안으로 들어와 정현을 몰아붙였고, 정현은 더 뒤로 밀려나거나 아니면 공을 아예 받아 치지도 못했다. 한 끗차이긴 했지만, 니시코리가 1, 2세트를 가져간 건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도 두 가지가 나타났다.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니시코리의 백핸드가 완전히 맛탱이가 가버렸다는 점이다. 백핸드가 장기인 선수가 백핸드 랠리를 주무기로 쓰는 선수를 만나 백핸드가 고장나버린 것이다. 니시코리는 백핸드로 엄청나게 많은 에러를 범했다. 호주오픈 결승전에서 알수없는 포핸드 에러를 남발한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처럼 니시코리는 알 수 없는 백핸드 에러를 남발했다. 이를 의식한 듯, 정현은 더더욱 백핸드 쪽으로 공을 보냈고, 니시코리는 이를 피하지도 않고 집요하리 만큼 백핸드로 받아치고 에러를 추가했다. 돌아서서 포핸드로 친다거나, 슬라이스를 쓴다거나 하는 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했다. 그의 불안한 백핸드는 그의 다잡은 승리를 앗아갔고, 결국에는 4세트에서 라켓을 부수는 모냥새로 이어졌다. 
  두 번째는 정현의 백핸드 다운더라인이 매우 수준급이라는 점이었다. 과거 King of Clay와의 경기에서 정현의 패인 중하나는 나달의 포핸드를 백핸드로 받아넘기는데만 급급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 경기에서 정현은 샷오브데이 급의 백핸드 다운더라인 공격샷을 여러 개 선보였고, 랠리의 패턴에 있어서도 다양한 방식을 보였다. 이건 백핸드가 고장나면서 멘붕 직전인 니시코리의 멘탈을 더욱 상처내는 무기가 되었다. 
   정현으로서는 경기중단이 참으로 아까울 것 같다. 니시코리는 거의 경기를 포기하기 직전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대로였다면, 최소한 정현이 4세트는 확실히 가져갈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경기는 중단됐고, 니시코리에게는 엄청난 찬스가 왔다. 정현의 플레이가 준수했고, 백핸드가 거짓말처럼 박살난 상태에서도 니시코리는 처음 두 세트를 따냈다. 확실히 아직은 기량차가 존재하는 듯 했다. 또한 정현은 지난 호주오픈 디미트로프 전에서도 보여줬던 것과 같은 결정적 순간에서의 어이없는 실점도 여전했다. 니시코리가 충분한 휴식으로 멘탈과 백핸드를 회복하고 온다면, 정현이 그에게 그리 어려운 상대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니시코리의 승리에 걸었긴 하지만 확실히 정현도 대단한 것 같다. 탑10 출신의 거물 선수인 니시코리를 이렇게 괴롭히는 모습이나, 3세트에서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따낸 모습, 백핸드 다운더라인 등을 보면 진짜 무슨 일이 나기는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니시코리가 회복하고 온다해도 또 박살날 수도 있는 것도 사실이니. 
  하여간 그들 덕분에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이  6:0, 6:1, 6:0 승부로 가뿐하게 4회전에 진출해 있는 지금, 스릴 넘치는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연장된 경기가 어떻게 승부가 날지도 여전히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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