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Rafael Nadal(4) def. Pablo Carreno Busta(20)
6:2, 2:0 retired
8강 첫경기. 비가 온 탓에 일정이 밀려 현지 시각으로 오전 일찍 경기를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메인코트인 필립 샤트리에 코트에서 열리는 경기였음에도 유난히 관중이 없었다. 그나마 있는 관중들도 같은 시간 수잔 랭글렌 코트에서 열리는 조코비치Novak Djokovic와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의 경기에 몰린 듯 했다. 어차피 나달이 이길게 뻔한 이 경기보다는 누가 이길지 모르는 조코비치와 티엠의 경기가 더 재미있을테니 말이다.
경기는 예상보다 더 일찍 끝나버렸다. 나달의 엔진에 열이 오르기도 전에 끝났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달은 경기 시작과 함께 브레이크를 따내며 2:0으로 리드했다. 하지만 곧바로 부스타가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반격했다. 하지만 난 놀라지 않았다. 나달의 경기는 언제나 그렇다. 첫세트 게임스코어가 6:2. 나중에 서브를 넣은 나달이 브레이크를 두 번 성공시키고 세트를 끝낸게 아니다. 나달은 부스타의 모든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해냈고, 자신의 서비스 게임은 두 번 브레이크 당했다. 보통의 경기와 달리 누가 서비스게임을 잘지켜내냐 싸움이었다.
출처:rolandgarros.com
2세트 부스타의 서비스 게임이 끝나고 부스타는 그대로 경기를 기권했다. 복근 부상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4라운드에서 랴오니치를 상대로 접전 풀세트 연장경기의 후폭풍 때문인 듯 하다. 8강에 올라온 선수 중 유일하게 탑시드가 아닌 부스타는 나달과 함께 복식경기에 출전한 적도 있고, 불과 얼마 전 인디언 웰스에서 연습도 함께 했던 선수다. 그래서 그런지 나달은 기권하는 그에게 다가가 격려를 전했다. 그렇게 King of Clay는 준결승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다.
2.
Dominic Thiem(6) def. Novak Djokovic(2)
7:6(5), 6:3, 6:0
도미니크 티엠Dominic Thiem이 드디어 빅4를 상대로 전부 승을 거뒀다. 지난해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을 각각 그들의 베스트 코트인 잔디와 클레이에서 무너뜨린 티엠이 올해에는 앤디 머레이Andy Murray와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를 본인의 베스트 코트인 클레이에서 무너뜨렸다. 여기에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프랑스오픈 SF 진출에 성공했다. 그것도 올해는 무실세트로 올랐다. 디펜딩 챔피언인 조코비치와의 경기를 포함해서 말이다.
출처:rolandgarros.com
승부처는 1세트였다. 그들은 서비스 게임을 각각 하나씩 주고 받더니, 이어서는 브레이크를 하나씩 각각 주고받으면 게임스코어 2:2를 만들었다. 조코비치는 다섯번째 게임에서 듀스를 6번이나 가는 끝에 겨우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지켰고, 이어 티엠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해내면서 게임스코어를 4:2로 만들었다. 아무리 조코비치가 이빨이 빠졌다 한들 그래도 티엠한테 지는 건 아니구나 싶었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조코비치는 다시 브레이크를 당했고 스코어는 동점이 되었다. 그렇게 각자의 서비스 게임을 나눠간 그들은 타이브레이크에 접어들었다. 팽팽했던 경기는 조코비치가 자신의 장기인 백핸드를 네트에 꼬라박으면서 기울었다. 티엠이 타이브레이크를 승리하며 1세트를 선취했다.
티엠이 먼저 서브를 넣은 2세트에서는 아주 평이하게 시작하자 마자 티엠이 조코비치의 서브를 브레이크 했고, 그 브레이크 한 번이 이어진 6:3 스코어로 2세트가 끝났다. 3세트는 딱히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조코비치는 더이상 경기를 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그렇게 8강에서 대회를 끝낸 디펜딩 챔피언 조코뱅크는 1640포인트를 길바닥에 버렸다.
출처:rolandgarros.com
그래도 클래스는 클래스인지라 조코비치는 적어도 1세트까지는 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폼을 보이는 King of Clay에게 올시즌 유일한 클레이코트 패배를 안겼던 차기 King of Clay는 호락호락한 선수가 아니었다.
사실 나달에 가려져서 그렇지 티엠도 이번 대회 8강까지 오는 동안 상대들을 어렵지 않게 박살냈다. 그동안 티엠이 잃은 게임 수는 고작 29게임이다. 나달의 20게임에 비하면 멀어 보일지 모르지만, 세계랭킹 1위 앤디 머레이가 8강에 오르기 까지 잃은 게임은 무려 51게임이다. 타이브레이크도 1번 밖에 없었다.
공격형 클레이 선수인 이 오스트리아 선수는 상대가 공을 조금만 만만하게 치면 온몸을 휘둘러 공을 때려 팬다. 탑스핀 대마왕 나달의 스핀량을 상회하는 무시무시한 탑스핀이 실린 티엠의 엄청나게 쎈 공을 받아치기는 쉽지가 않다. 게다가 티엠은 1회전 토믹 Bernard Tomic과의 경기에서 보여줬듯, 완벽하게 앞서는 상황에서도 마치 자신이 추격하고 있는 듯한 파이팅과 활동력을 보여준다. 이렇다 보니 티엠의 에러가 적다면, 티엠과 랠리를 계속하기 무지 어렵다.
조코비치와의 경기에서 나타난 눈에 띄는 점은 티엠의 드랍샷이 상당히 정교해졌다는 것과 랠리 안정성이 대단히 높아진 듯한 모습이었다. 분명히 작년이나 올해 초만 해도 티엠의 드랍샷이 워낙 쓰레기 같아서 연습을 좀 하든가, 드랍샷을 쓰지를 말든가 해야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여기에 썼던 것 같은 기억도 있는데, 그 드랍샷이 갑자기 믿기 어려울 만큼 좋아졌다. 좋은 페이크 동작에서 대단히 짧고 낮게 가서 바운드도 크지 않았다.
또한 그 랠리 귀신인 조코비치를 상대로 한 랠리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점도 의외였다. 온몸으로 후려패는 티엠의 스윙 특성상 티엠은 에러가 무지 많다. 후릴 공이 아닌 데도 후리는 경우도 많았고, 결정적 순간에 그런 식으로 포인트를 잃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 티엠은 마치 연륜이 쌓인 선수라도 된 마냥 조급하지 않게 조코비치의 공을 받아넘겼다. 강하지는 않지만 상대에게 공격찬스를 내주지는 않는 적당한 방어 스트록이 나왔고, 슬라이스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조급하게 후리다 네트에 꼴아박지 않았다. 더블 폴트 포함 1세트에서 티엠이 잃은 에러 총 개수는 26개로 무려 조코비치와 같다. 언포스드 에러는 조코비치보다 고작 1개 더 많을 뿐이다. 그러면서 위너는 7개나 더 많으니 공격형 클레이 선수로서는 상당한 성과다.
3.
Semifinals
Rafael Nadal(4) vs Dominic Thiem(6)
이제 사실상 결승이나 다름없을 King of Clay와 차기 King of Clay의 4강 대진이 완성되었다. 결승으로는 바르셀로나 오픈과 마드리드 마스터즈에 이은 세 번째이고 로마 마스터즈 8강까지 포함하면 올해만 네 번째 맞대결이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는 나달이 승리했고, 로마에서는 티엠이 승리했다. 프랑스 오픈에서는 티엠이 꼬꼬마 시절이고, 나달이 마지막 프랑스 오픈 우승을 해냈던 2014년 2라운드에서 만난 적이 있다. 총 전적은 4승 2패다. 2패 중 한번이 지난 로마고, 한 번은 나달이 자신감을 위해 출전했던 2016년 아르헨티나 오픈에서 였다. 당시 1세트 가뿐하게 이긴 나달이 느닷없이 2세트 찬스에서 세트를 내주더니 그대로 3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패배했다.
출처: rolandgarros.com
객관적인 전력은 당연히 나달이 앞선다. 아무리 티엠이 잘한다 잘한다 한들, 롤랑가로스 9회 챔피언 + 올해 클레이시즌 17연승(총 22승 1패) + 4개 대회 출전 3개 대회 우승(몬테카를로(1000), 마드리드(1000), 바르셀로나(500))이라는 엄청난 스펙을 지닌 나달에게 비할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롤랑가로스는 5세트 대회다. 티엠은 체력이 확실히 입증된 선수는 아니다. 온몸으로 후려치는 데다, 활동력이 대단한 티엠의 플레이스타일을 감안하면, 티엠의 체력은 3세트를 못넘기기 딱 좋다. 실제로 티엠은 나달에게 패배했던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결승전에서도 1세트를 아쉽게 패배하자 그대로 방전된 듯한 모습을 보였고, 로마에서 나달에게 승리한 다음 조코비치와 만난 경기에서는 아예 경기 초반부터 영혼이 날아간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티엠의 컨디션이 좋아 1세트를 접전 끝에 잡아낸다고 해도 그걸 경기 승리까지 끌고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다. 게다가 나달은 아예 장기전, 체력전, 5세트에 특화된 선수고, 올 초 호주오픈에서만도 5세트 경기를 3번이나 치뤘다. 반면 티엠은 아예 5세트까지 치뤄본 경기가 커리어 통틀어 5경기에 불과하고, 그 중 3경기에서만 승리했다.
마지막으로 랠리 안정성 문제이다. 티엠의 안정성이 높아졌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무시무시한 나달의 경기력을 감안하면 티엠이 만약 에러를 피한다는 마음으로 어설프게 넘겨주기로 쳐내면 곧바로 폭발적인 탑스핀 공격이 넘어올 것이 분명하다. 만약 그것이 반복되면 티엠에게는 힘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럼 여지 없이 에러 연타가 나온다. 나달은 또다시 백핸드를 집요하게 노릴 것이고, 티엠 또한 그걸 예상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포핸드와 나달의 백핸드가 맞붙는 랠리로 전환하려고 부단히 애쓸 것이다. 그게 잘되면 티엠이 앞서가는 거고 그게 안되면 일방적으로 털리는 장면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쓰고 보니 그냥 나달이 어렵지 않게 이겨야될 것만 같다. 그런데 나는 사실 티엠이 조코비치를 이기고 4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티엠이 나달 마저 이겨버리고 결승에 진출해 허망하게 지고 준우승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로 생각해보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티엠이 져야되는 것 같으니 더 그렇다. 나달이 8강에서 몸도 못풀고 싱겁게 상대의 기권으로 끝난 것도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티엠은 조코비치를 무너뜨리면서 기세를 탔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번 롤랑가로스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가 바로 나달과 티엠의 경기가 아닐까 싶다. 클레이코트에서 하드코트 경기하듯 하고 있는 머레이와 니시코리를 보고 있자니 더 그렇다. 나달이 꼭 역사적인 10번째 프랑스 오픈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 베스트였던 2012년 롤랑가로스 이후 최고의 폼이라는 데, 2012년 롤랑가로스처럼 우승했으면 좋겠다.
출처: bleacherreport.com
티엠도 눈여겨보고 있고, 좋아하는 선수이긴 하지만, 티엠은 역시 나달이 은퇴한 이후에나 팔로우해봐야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