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씨는 29일 오후 2시 30분에 3차 대국민 담화를 하였다. 황교안 총리가 긴급히 상경해 비상대기 하고 있다는 앞선 소식을 듣고, "혹시?", "설마?" 하였다. 대국민 담화 내용을 세 가지로 요약해보면, 첫째,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둘째, 자신은 한 번도 사익을 추구한적이 없고, 주변에 사람을 잘못둔 탓이다. 셋째,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 박 씨는 지금까지의 혐의를 모두 부인하였고, 조건부 사퇴를 밝혔으나 그 과정을 국회에 넘겼다. 이번 3차 담화는 겉으로는 "사퇴를 밝힌 것"이 되었고, 속으로는 "자신의 안위를 위한 시간 끌기"가 되었다. 이에 야당들은 탄핵 절차를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탄핵일정을 재검토해야한다고 언급했다. 친박은 대통령이 "하야"라는 진정한 의사를 내놓았으니, 국회가 나서 앞으로의 과정을 만들어야 된다고 말했고, 강경 비박인 하태경 의원은 말도 안되는 담화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씨의 이번 담화로 정국은 완전히 혼돈에 또다시 접어들었다.
친박계는 어떠한가? 친박계는 억지부리기 혹은 복지부동 외에 여태껏 딱히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28일 친박 중진 회동 이후 청와대에 퇴진 뜻을 전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근혜 씨가 그 약속을 지키든 안지키든 어쨌건 공식적으로 본인의 "하야" 카드를 내밀었다. 사실상 자신의 "하야"를 담보로 친박계에 국회 주도권을 실어주며,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고자 하는 신호인 것이다. 친박계는 대통령이 사퇴 뜻을 내밀었으니, 이제 국회는 마음을 모아 질서있는 정권이양 과정을 만들자고 주장할 것이다. 본의는 둘째치고라도, 어쨌든 겉으로 "퇴진"을 말했으니, 명분도 가졌고, 거기에 "질서와 안정" 코드를 덧붙여 국회에서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국회는 탄핵안, 개헌을 두고 대립중인데, 여기에 친박계까지 나서면 대립양상은 더욱 커질 것이고, 논제들은 복잡해지며, 교착으로 인해 시간은 마냥 흘러가게 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득을 보는 것은 청와대와 친박이다.
청와대는 어떠한가? 박근혜 씨는 하야를 하든 탄핵을 당하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순간 바로 구속 수사를 받고, 형을 받아야 할 상황이다. 지지율 4%의 박 씨가 검찰조사를 세 번이나 씹어가면서도, 현재까지 안위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오직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수석, 비서관들 청와대 직원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런데 오늘 "사퇴"를 오히려 박 대통령 본인의 안위를 위한 전략적 카드로 꺼내들면서, 진퇴양난에서 빠져나올 출구전략을 만들어 낸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임기 단축"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개헌논의에 까지 발을 걸쳐두면서, 비박계의 분열까지 노렸다. "임기 단축"은 원포인트 개헌 내용이었다. 이로써 국회에 공을 넘기면서 동시에 국회의 혼란까지 노리고, 이를 통한 시간 끌기 효과 까지 얻을 수 있는 반전적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의사를 받아들이는 척 하며, 촛불집회의 동력에까지 충격을 줄 수도 있게 되었다.
야당들은 어떠한가? 야당은 이때껏 탄핵을 추진했다. 하지만 2/3가 되지 않기에 비박과의 협의를 두고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다툼이 있었고, 여기에 선총리 문제에도 다툼이 있었다. 문재인, 이재명 후보가 지지율 상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당은 박 씨의 즉각 퇴진이 마냥 반갑기도 어렵다. 그래서 국민의당은 김무성 전 대표를 위시한 비박계와 통합, 연합하여, 개헌을 노릴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연히 이는 민주당과의 갈등으로 드러났다. 먼저 민주당은 이번 3차담화로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박 씨가 "사퇴"를 언급했으니, 민주당의 "즉각 퇴진 OR 탄핵"이라는 투트랙이 힘이 빠지는 상황이다. "즉각 퇴진"은 박 씨의 "퇴진의사"에 상쇄되는 측면이 있고, "탄핵" 또한 "박 씨가 하야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의해 상쇄되는 측면이 있다. 게다가 비박계와 친박계가 협조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국민의당과의 관계도 별로인데다, 내부 이탈자까지 있을지 모르니, 마냥 탄핵을 밀어부치다가 상정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무능론에 빠지고, 박 씨는 임기를 거의 보장받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국민의당의 경우는 지지율이 나락인 찰스 때문에, 자꾸 비박계에 눈길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과 사이도 안좋고, 긴급 대선이 치뤄진다해도 승리가 안보이니, 차라리 비박계 내각제 개헌론에 몸을 담궈 내각제 연정을 해야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에 자꾸만 몸이 기울고 있는 것 같다. 일단 탄핵 지속을 언급하기는 하였지만, 이 또한 당내 의견을 명확하게 모으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혹시나 비박계의 내각제 개헌의사와 친박계의 박근혜 안위 보장 뜻이 다시 뭉쳐 개헌론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변수까지 등장하니, 국민의당 입장에서도 어디에 발을 담가야 되나 싶을 것이다.
비박계는 어떠한가? 엊그제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김무성 전 대표는 사실 상 총선 불출마 선언을 번복했다. 비록 "전교 꼴등이 서울대 안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라는 비아냥을 받을지 언정,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양극을 배제한 협력과 연합으로 내각제 개헌에 올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 총선때 밝힌 앞으로의 총선 불출마를 번복하면서 권력의지를 놓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보인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와 비박계는 친박 및 청와대와 선을 긋고, 야권은 "친문"이라는 표현으로 분열 시킨 뒤 비박계 및 국민의당 및 기타세력들을 모아 내각제로 밀어 자신들이 수장이 되겠다는 거대한 뜻을 품고 있어 보인다. 이와중에 박 씨가 이번 담화로 개헌론에 손을 뻗었으니, 충분히 비박계 또한 전략적으로 잡을 만한 옵션이 생긴 것이다. 내각 개헌에 힘을 실을 수 있다면, 마치 이명박 씨와 박근혜 씨가 서로를 건들지 않는 것처럼 박근혜 안위 보장을 조건으로 손을 잡고 내각제 정권 추진으로 밀 수 있다. 따라서 정진석 원내대표의 언급처럼 탄핵안에 주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검찰은 어떨까? 대면조사 3번이나 보이콧 당하고, 특검에 망신당할까 신나게 게이트를 털고 있던 검찰은 급 망설여지는 상황에 왔다. 이제 밀어야할지 당겨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특검 전 뇌물죄 기소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검찰의 의견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다. 수사가 김기춘 전 비서실장으로 가야한다는 상황까지 도달해왔으나, 박 씨의 3차 담화로 정국이 혼돈에 빠지면서, 김기춘과 우병우에 관한 수사는 다시 밀릴 것으로 보인다. 이제 검찰은 개헌론에 줄을 대야하나, 아니면, 탄핵국면에 다시 줄을 대야하나 망설여 질 것이다. 박근혜 씨가 친박, 비박과 힘을 합쳐 살아남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조건이 느닷없이 날아든 것이다.
촛불시위와 국민여론은 어떨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촛불시위의 크기가 이정도로 클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명확한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 씨가 조건부 사퇴를 내밀며 국회에 공을 넘기면, 이제 사안이 복잡해지게 된다. 따라서 아무래도 여론도 힘이 좀 빠지지 않을까 싶은 게 전망이다. 온라인으로 얼추 돌아본 반응으로는 3차 담화에서 박 씨가 본인의 혐의를 모두 부정했고, 즉각 퇴진이 아니니, 여전히 반발의지가 강해보이긴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국민 대다수의 의견이 될 수 있을지 사실 잘 예상이 되지 않는다. 이제 언론들 또한 앞으로의 정국 혼란, 정국 변수 등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잔뜩 이야기 할 것이니, "탄핵", "퇴진", "세월호 7시간" 등의 문제들이 조금은 뒤로 물러나지 않겠나 싶다. 공식적인 조건부 사퇴 발표 또한 그것이 박 씨에 대한 다양한 시민들의 각기 신뢰 문제로 외연이 확장되게 생겼으니, 기존 처럼 강력한 의사 결집이 될까도 싶다. 하지만 여전히 촛불시위와 국민여론은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변수다. 만약 3차 담화 이후에도 시위가 지속된다면, 정국혼란이 "즉각퇴진", "탄핵" 국면으로 다시 정리가 될 것이다.
여전히 박근혜씨는 질문은 "나중에" 받을거고, 혐의도 "나중에" 소상히 밝힐거라고 했다. 아주 짧게 발표하고 또다시 뒤로 사라졌다. 뭐 할지 말지 그건 당신 맘일테니. 혐의는 깨끗하게 씹었고, 국회가 길을 깔아주면 사퇴하겠단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번 박 씨의 3차 담화는 노련하다 못해 영악해보일 정도로, 놀라운 담화였다. 조금 치사한거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건, 청와대와 박 씨 입장에서는 굉장히 스마트한 카드를 내놓은 게 확실해 보인다. 도대체 이 멍청한 국면이 언제쯤 끝이 날지 모르겠다. 나날이 갑갑해진다.